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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26 10:00
이창호 저자 ‘구국의 별,평화의 횃불 안중근 평전’ 출간
  • 안중근, 그는 단지 독립운동가였을까
    그가 살아온 시대와 삶을 통해 그의 면모를 재해석한다.
서울--(뉴스와이어) 2016년 02월 26일 --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에는 총성과 함께 한 장부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코레아, 우라!(대한민국 만세) 코레아, 우라!(대한민국 만세) 코레아, 우라!(대한민국 만세)” 그와 함께, 이토 히로부미는 그대로 쓰러졌다. 장부는 곧바로 러시아 공안에 체포되어 일본 정부로 인도되었고. 일본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아 결국 1910년 3월 26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가 바로 우리 민족의 횃불 같은 정신으로 남은 영웅 안중근이다. 우리는 그를 단지 독립운동가로 기억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그것이 전부일까? 그의 발자취를 따라 그의 숨겨진 면모를 알아보자.


◇영웅 안중근, 발자취를 따라 그의 면모를 다시 본다

안중근의 역사는 곧 일본 제국주의 투쟁의 역사다

안중근은 1879년 9월 2일, 황해도 해주부 수양산 아래 광석동에서 북두칠성의 기운을 받고 태어났다. 황해도의 아주 부유한 집안에서 성균관진사인 부친 안태훈과 조 마리아 사이에서 태어나 부족함이 없던 안중근. 그는 왜 그런 편한 삶을 버리고 이토 부미에게 총부리를 겨누었을까?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조선의 상황을 이해해야 가능하다.

당시 조선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위태로운 처지였다. 나라 밖으로는 동서양의 강대국들이 무력을 앞세워 틈만 나면 조선을 삼키려고 눈을 번뜩였고, 나라 안에서는 관리가 부정부패를 저지르고 사리사욕을 채우는 일이 다반사여서 백성들이 마음 편히 생업이나 학업에 힘쓸 처지가 못되었다. 게다가 갑신정변, 청일전쟁, 을미사변, 러일전쟁 등 무수히 많은 사건과 사고들이 일어나면서 점차 국운이 기울고, 국권을 일본에 빼앗기는 수모를 당한다.

이에 대해 안중근은 지식인이자 선각자로서 이러한 상황을 인식하고 이를 타개하려면 백성들을 깨우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가 먼저 택한 방법은 백성을 위한 계몽책이었다. 그는 자신의 사비를 모두 털어 삼흥학교를 세우는가 하면, 이후 천주교 계열의 돈의학교를 인수한다.

하지만 일본의 만행은 점점 극에 달해 가고 조선의 미래가 끝을 알 수 없는 벼랑 아래로 치닫게 되면서 식민주의라는 거대한 폭풍우에 휘말리자 계몽책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해 의병운동을 전개한다. 이마저도 여의치 않자 그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것이 바로 이토 히로부미 암살이었다. 이러한 그의 일련의 행보는 지식인이자 선각자로서 시대적 고뇌와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투쟁방법의 단면을 보여준다. 사후 1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는 국내외(특히 중국과 일본을 비롯해 북한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찬사와 존경을 받고 있다. 그가 독립운동가인 것이 그 근본적 이유겠지만, 단지 그것만이 그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안중근이라는 한 인격체에서 드러낸 다채로운 모습들 하나하나가 모여서 이들에게 깊은 존경을 불러올 것이다.

안중근은 정작 어떤 사람이었나. 그렇다면 이 책에 나온 삶의 궤적에서 본 안중근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안중근은 사상가이자 위대한 실천가였다. 안중근은 이미 100년 전에 동북아를 넘어 아시아의 평화 체제를 구상한 사상가이자 그 구체적인 실천방략까지 고민한 위대한 실천가였다.

안중근은 문명개화론자이자 행동가였다. 그는 문명개화를 통해 실력을 닦는 것이 대한 독립의 전제조건이라고 생각한 문명개화론자이자, 동시에 일본의 보호정치가 한국의 문명개화가 아닌 국권 침탈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바로 무장투쟁의 선두에 나선 행동가였다.

안중근은 이상주의자였다. 그는 제국주의 시대에 열강의 이해타산 속에서 만국공법이나 국제법이 한낱 공염불에 불과하다는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자신이 먼저 포로에 관한 국제공법을 준수하고 본인도 그에 따라 정당하게 재판받기를 당당히 요구한 이상주의자였다.

안중근은 탁월한 전략가였다. 그는 의병투쟁이 무력할 때 국제열강에 대한 충격요법으로 한국의 독립 의지를 천명하고 일본 침략의 부당성을 고발하기 위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공판 과정에서도 개인의 운명보다는 거사의 목적을 알리는데 주력한 탁월한 전략가였다.

안중근은 구한말 대표적인 민족 운동가이자 교육자, 애국독립투사였다. 그는 청년기 이후 사회의 요구에 호응하면서 애국계몽운동과 독립전쟁을 전개한 구한말 대표적인 민족 운동가였다. 근대 민족의식, 민권사상, 국권사상을 가지고 있던 투철한 사상의식을 가졌던 그는 조국이 식민지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애국계몽운동을 한 교육자였으며, 의병투쟁에 직접 참가한 실천적 애국독립투사였다.

안중근은 국제 평화주의자였다. 그는 민족 독립의 논리와 동양 평화의 논리를 불가분의 관계로 구조화함으로써 일본의 침략주의를 무력화시키고 민족 독립을 쟁취하고자 했다. 그는 자민족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이기적이고 편협한 민족주의자가 아니라, 동북아의 평화와 공동 번영을 강조하며 지역 협력을 강조한 열린 민족주의자이자, 진정한 동양 평화의 주창자로서 국제 평화주의자였다.

안중근은 탁월한 문장가이자 서예가였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붓에 담아 탁월한 논리를 펼치는 문장가였다. 메시지가 강렬하면서도 은유와 비유를 자유롭게 넘나든다는 점에서 그는 훌륭한 필력을 소유한 작가였다. 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그에게 글을 부탁했고, 그가 남긴 유묵을 볼 때 그는 탁월한 서예가였다.

안중근은 위대한 종교인이었다. 그의 모든 활동에서 항상 중심이 된 것이 있었다. 바로 카톨릭이다. 궁극적으로 그의 생활과 정신에 주축이 되었던 종교적 신념에 항상 충실했던 그는 진정한 종교인의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물론 이것만으로 안중근이라는 한 사람의 면모를 모두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단지 민족주의자이자 독립운동가로만 표현되고 있는 그의 숨겨진 면모를 좀 더 드러내 그를 좀 더 면밀히 파악하고자 했던 것이 이 책의 의도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그의 숨겨진 면모를 볼 수 있다면 그의 사상과 생각을 이해하는 데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저자 소개

이창호 : 대한명인(연설학) 겸 대한민국 신지식인(교육)으로 이창호스피치리더십연구소 대표로 있다. 스피치학 분야의 국내 최고 전문가로 연간 300회 이상의 강의와 강연을 통해 개인의 고유 브랜드 ‘이창호스피치’를 구축해왔다. 국정교과서 초등학교 6학년 읽기 도서 및 고등학교 국어(下) 교사용 지도서에 글이 수록되어 있다. 또한 다양한 칼럼과 TV, 라디오 방송활동을 비롯해 한국청소년봉사단연맹 부총재, 안중근정신실천 전국웅변대회 심사위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한반도의 ‘통섭 리더십’에 대한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이순신 리더십’ 등 30여 권이 있으며, 자원봉사 지도로 대통령 표창, 세계언론평화대상 인권대상을 받은 바 있다.

◇목차

· 머리말 : 영웅 안중근, 그 정신적 계승을 위하여

1장 - 북두칠성을 등에 새긴 아이
1. 북두칠성의 정기를 받아 태어나다
2. 폭풍 전야의 조선 정세 속, 폭풍의 눈 같던 아이
3. 안중근의 명망 높은 가계
4. 상무적 기상이 남달랐던 어린 시절

2장 - 동학농민운동의 횃불 아래

1. 아버지와 함께 동학군에 맞서다
2. 갑오의려의 선봉에 선 안중근
3. 구국운동의 씨앗을 품다
4. 동학농민운동과 갑오개혁의 소용돌이 속에서
5. 가문에 드리운 검은 기운
6. 백범 김구와의 깊은 인연
7. 호방했던 청년, 안중근

3장 - 신의 이름으로

1. 천주교를 접하다
2. 천주교 대학 설립의 꿈
3. 해서교안으로 인한 탄압
4. 정의와 의협심으로 불타오르던 사나이
5. 안중근 가문의 천주교 입교와 이율배반

4장 - 나라 잃은 슬픔을 배우다
1. 러일전쟁의 발발과 일본의 국권 침탈
2. 계몽운동에 뛰어들다
3. 조국을 위해 망명 계획을 세우다
4. 상하이에서의 실망
5. 본격적인 구국운동

5장 - 의병투쟁을 벌이다
1. 일제에 의한 한국 군대의 해산
2. 조국 해방을 위해 살기로 결심하다
3. 머나먼 여정에서 만난 동지, 그리고 희망
4. 대한제국 의병 창설

6장 - 의병활동과 단지동맹
1. 국내 진입 작전
2. 만국공법 정신의 수호와 의병들의 반발
3. 단지동맹을 맺다

7장 - 코레아, 우라!
1. 빼앗은 100원
2. 거사의 결단
3. 동지를 만나다
4. 의기를 높이다
5. 10월 26일의 거사

8장 - 하얼빈에 울린 구국의 총성 소리
1. 영웅, 심문을 받다
2. 일제의 치밀한 재판 준비
3. 의거의 목적
4. 의거에 대한 반응들

9장 - 감옥 안에서 탄생한 동양평화론
1. 옥중 서신
2. 동양평화론 서문
3. 동양평화론 전감

10장 - 나의 소원은 동양 평화입니다
1. 동양 평화를 위하여
2. 동양평화론의 배경
3. 미루어진 동양 평화

·맺음말 영웅, 안중근을 기리며
·부록
1. 동양평화론 관련 유묵
2. 인심결합론(人心結合論)
3. 안중근 의사 어머니 조 마리아 여사의 편지
4. 안중근 의사가 어머니 조 마리아 여사께 드린 유서
5. 안중근 의사가 분도 어머니에게 부치는 글
6. 홍 신부님 전상서
7. 대한국인 안중근 유묵
8. 안중근 의사 연보
·참고문헌

◇책 속에서

“장차 이 아이는 큰일을 할 인물이 분명하다. 가슴과 배에 7개의 점이 있으니, 이 아이의 이름을 응할 응, 일곱 칠을 써서 응칠(應七)로 지어야겠다.”

이렇게 북두칠성의 정기를 받아 태어난 아이가 바로 안중근이었다. 응칠은 안중근의 아명으로 북두칠성의 기운을 따른다는 뜻이 담겨 있었다. 훗날 하얼빈 역에서 민족의 적,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암살한 안중근은, 뒷날 집필한 자서전‘ 안응칠 역사’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나의 성은 안(安)이요, 이름은 중근, 어릴 때의 이름은 응칠이다. 나의 타고난 성질이 가볍고 급한 듯하여 이름을 중근이라 짓고, 가슴과 배에 7개의 검은 점이 있어 어릴 적 이름을 응칠이라 하였다 한다.”
<1장_ 북두칠성을 등에 새긴 아이> 중에서

안중근은 문반이기보다 무반에 가까웠던 인물로 평가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옥중에서 해박한 사적(史的) 감각으로 당시의 역사적 사실을 분석한‘동양평화론’이나 애국혼이 넘치는 한시와 수많은 유묵에 나타난 필력 등은 당대의 석학들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만큼 그의 학문과 식견 그리고 필체가 우수했음을 보여준다.

안중근은 집안 서당에 초빙된 스승에게서 각종 유교 경전과‘통감’ 등을 배우고, 조선사와 만국 역사에 대해서도 두루 섭렵했다. 또한 활쏘기와 말타기를 즐겨 숙부와 사냥꾼을 따라 종종 산을 탔고, 그 과정에서 사격술도 익혔다. 안중근이 뒷날 대의를 위해 의병이 되고,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것은 어릴 때부터 지녔던 이와 같은 상무적인 기풍 때문일 것이다.
<1장_ 북두칠성을 등에 새긴 아이> 중에서

이렇듯 안중근은 그 생각이나 행동이 소년 시절부터 남달랐다. 글공부를 통해 과거를 준비하는 것이 당시 양반층 자제들이 밟던 전형적인 과정이었으나, 안중근은 과거 시험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버지 안태훈 역시 이를 강요하지 않았다.

안중근은 어려서부터 익힌 무예와 병법, 여기에 담대한 용기와 탁월한 지략으로 상무의 기풍을 키우면서 동학군과의 전투에 앞장섰다. 그리고 열여섯 소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뛰어난 통솔력을 보여줬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신망을 얻고 칭찬이 끊이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동학군과의 싸움을 경험하면서 안중근은 국가의 안위를 이렇게 걱정하기 시작했다.(‘안응칠 역사’, 1979)

“나라에서 문(文)을 숭상하고 무(武)를 업신여겨 백성이 군사를 알지 못하는 까닭에 나라가 점점 약해지고 있다. 만약 갑자기 외국 열강이 우리의 약함을 노려 침략하면 우리는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문약에서 벗어나 무강의 기풍을 조성함으로써 앞날에 대비해야 한다.”
<2장_ 동학농민운동의 횃불 아래> 중에서

“이처럼 나라가 어려운 이때에 자네는 분명 그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어찌하여 활동하지 않는가? 지금 서북 간도와 러시아 영토인 블라디보스토크 등에는 한국인이 백만여 명 살고 있네. 그곳이야말로 물산이 풍부해 활동하기에 충분하네. 그런데 어찌 이곳에서 가만히 앉아 일본의 만행을 보고만 있는 것인가”

벌써 오래전에 만난 김진사의 말이 떠오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안중근은 국내에서 학교를 설립해 사람들을 교육하고, 또한 단체를 만들어 나라를 구하기 위해 여러 활동을 벌였다. 그러나 일본의 간섭은 점점 심해져 갔으므로 국내에서는 활동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지금 벌이는 교육구국사업과 애국계몽활동들은 분명 조국에 큰 도움이 되는 중요한 일이었다. 그러나 어쩌면 이러한 활동만으로 나라가 독립하기를 기다리기엔 너무 늦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그는 막연하게나마 하고 있었다.
<4장_ 나라 잃은 슬픔을 배우다> 중에서

한참을 고백하듯 말하던 최재형이 드디어 눈을 떴다. 그리고 안중근을 바라봤다.

“당신이 여기까지 온 것도 그런 굶주림 때문이겠지. 조국을 떠나 이곳까지 온 것도, 다시 블라디보스토크로 떠나려는 것도 말이오. 조국에 대한, 동포에 대한, 그리고 자신의 뜻에 대한 굶주림.”

안중근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최재형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의 눈빛에서 좀 전에 살짝 비쳤던 의심의 그림자는 사라진 채였다. 그런 안중근을 최재형은 미소를 지으며 쳐다봤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내가 빛이 되겠소. 당신의 굶주림을 채워 줄 빛 말이오. 지금 그 눈빛, 어떤 것도 감내하려는 각오가 서려 있는 그 눈빛을 간직하시오. 그러면 나는 어떤 방식으로라도 당신이 걷는 길을 비추도록 노력하겠소.”

순간 안중근의 눈앞에는 정말 한 줄기 빛이 솟아난 듯했다.
<5장_ 의병투쟁을 벌이다> 중에서

안중근과 맹원들이 선혈로 쓴 ‘한국독립기’와 단지동맹 때 절단한 손가락 그리고 기타 서류는, 독립운동가들과 러시아 지역 한인들에게 항일투쟁을 전개하는 데 있어서 정신적인 지주가 되었다. 일본 외무성 자료에는 “배일배는 신을 숭배하듯이 하고 새로 조선에서 오는 자는 일부러 와서 예배를 청하는 자조차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안중근은 단지동맹의 의미를‘안응칠 역사’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그다음 해 정월, 연추 방면으로 돌아와 동지 열둘과 상의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이제까지 일을 이룩한 것이 없으니 남의 비웃음을 면할 길이 없다. 생각컨대 특별한 단체가 없다면 무슨 일이든 목적을 이루기가 어렵다. 오늘 우리들은 손가락을 끊어 맹세를 같이하여 표적을 남긴 다음에 마음과 몸을 하나로 뭉쳐 나라를 위하여 몸을 바쳐 목적을 달성하도록 하는 것이 어떠한가’라고 하였더니 모두가 좋다고 따랐다. 이에 열두 사람은 제각기 왼손 약지를 끊고, 그 피로써 태극기의 앞면에 네 글자를 크게 쓰기를 ‘대한독립’이라 하고는, 다 쓴 다음에 ‘대한 독립 만세’를 일제히 세 번 불러 하늘과 땅에 맹세하고 흩어졌다.”

단지동맹은 의병의 재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당장 일제와 싸우기보다 장기적인 계획을 추진하고자 결성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목적은 어디까지나 의병을 조직해 일제와 전쟁을 하려는 것이었다. 안중근과 의형제를 맺고 의병활동을 함께해 온 김기룡은 뒷날 시베리아 지역에서 한인사회주의운동을 했고, 안중근 의병부대에 참가했던 조응순은 고려공산당의 한인부 위원과 한국독립단 부단장으로 활동했다. 황영길은 대한민회 연추지방회 사무원과 훈춘의용군 사령관을 역임하고, 의용군 1,300여 명을 조직해 경원과 은성 등 국경 지방의 습격을 주도했다. 백규삼은 훈춘조선인기독교우회 회장, 안중근유족구제회 간부 등을 지내면서 항일구국투쟁을 전개했다(윤병석, 1999).
<6장_ 의병활동과 단지동맹> 중에서

마침내 운명의 순간, 하늘이 마련해 준 순간이 다가왔다. 러시아 관리들이 호위를 받으며 맨 앞으로 누런 얼굴에 희고 긴 수염의 조그만 늙은이가 염치도 없이 감히 하늘과 땅 사이를 누비며 걸어나오고 있었다. ‘저것이 틀림없이 늙은 도둑 이토 히로부미일 것이다’라고 생각한 안중근은 곧바로 권총을 뽑아 들고 그의 오른쪽 가슴을 향해 통렬하게 세 발을 쏘았다.

그러나 쏘고 나서 생각해 보니 의아심이 크게 일어났다. 이토 히로부미의 얼굴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만일 다른 사람을 쏘았다면 거사가 실패로 돌아가고 마는 것이었다. 안중근은 뒤쪽을 향해 다시 총을 겨누었다. 걸어나오는 일본인들 중에서 가장 위엄이 있어 보이는 앞장선 자를 향해 세 발을 쏘았다. 그리고 만일 죄 없는 자를 쏘았다면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하며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우르르 달려온 러시아 헌병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의 오른쪽 가슴을 향해 통렬하게 세 발을 쏘았다. 이때 쏜 총탄은 세 발이었다. 안중근은 재판장의 심문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내가 러시아 병대의 대열 중간쯤의 지점으로 갔을 때, 이토 히로부미는 그 앞에 열을 지어 있던 영사단 앞에서 되돌아왔다. 그래서 나는 병대의 열 사이에서 안으로 들어가 손을 내밀고 맨 앞에서 행진하고 있는 이토라고 생각되는 사람을 향해 십보 남짓의 거리에서 그의 오른쪽 상박부를 노리고 세 발 정도를 발사했다. 그런데 그 뒤쪽에도 또 사복을 입은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그가 혹시 이토 히로부미가 아닌가 생각하고 그 쪽을 향해 세 발을 발사했다. 그리고 나는 러시아 헌병에게 잡혔다.”
<7장_코레아, 우라!> 중에서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제거함으로써 평화를 누리는 것으로 이해했다. 안중근의 의거는 이토 히로부미를 제거하지 않으면 한국의 독립과 동양의 평화가 어렵다는 것을 인식한 행위였다.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제거한 일차적인 목적을 이루었지만, 궁극적으로는 한국의 독립과 동양의 평화라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는 한계를 지닌다. 안중근의 의도와는 달리 1910년부터 대한제국은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안중근 의거의 또 다른 의도는 자신의 행위가 다른 이들에게 본보기가 되고자 했다는 것이다. 다음 내용이 그것을 말해준다.

“저(안중근)는 분명히 살인죄를 범했지만, 이번 저의 행위가 장래에 조국 동포와 젊은이들이 애국심에 눈 뜨게 하고 독립심을 불태울 수 있도록 본보기가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사이토 다이켄, 장영순 역, ‘내 마음의 안중근’, 인지당, 1997, 202쪽)

이 말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안중근은 의거 목적을, 자신의 행위로 말미암아 자신과 같은 이들이 계속 나와 마침내 평화를 얻을 수 있을 것이란 믿음으로 모범을 보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는 한국인들이 독립심과 애국심을 가지고 일본에 대항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독립전쟁의 물고를 트기 위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하정호, ‘안중근의 천주교 신앙 연구’, 가톨릭대학교 대학원, 2008, 31쪽).

더불어 안중근의 의도는 조국의 위기를 전 세계에 알리려고 하였다는 것이다. 최석우는 자신의 저서에서 이렇게 말한다.

“안 도마의 목적은 오직 그의 생각에 너무 등한시되고 있는 한국문제로 여러 나라의 주의를 끌게 하려는 데 있었다.(중략) 동북아문제도 일본이 중국과 대한 제국에서 철수하는 것만이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길로 생각하고 있다.”(최석우, ‘안중근의 의거와 교회의 반응’, ‘교회사 연구 9’,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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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국의 별,평화의 횃불 안중근 평전 표지 (사진제공: 이창호스피치)
구국의 별,평화의 횃불 안중근 평전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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