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듯이 써라

내가 쓴 글을 많은 사람이 읽게 하는 가장 쉬운 길은 말하듯이 쓰는 것입니다.

종이나 컴퓨터 앞에 앉으면 친구와 이야기할 때 쓰는 것과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이 많습니다. 평소 쓰지 않던 단어와 복잡한 문장이 떠오릅니다.

쉬운 설명이 생명인 뉴스나 보도자료를 비롯해 블로그, 소셜미디어, 광고 문구, 이메일, 제품 설명서, 책, 연설문 등은 모두 말하듯이 쓰는 것이 좋습니다.

말하듯이 쓰지 않는 글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문가 집단 내의 소통을 위한 학술 논문, 추론을 하거나 논리적 관계를 따지는 철학과 비평, 나쁜 소식을 발표하는 보도자료 등이 그것입니다.

말하듯이 쓰면 좋은 점
  • 쉽다

    다음 중 어느 글이 머리에 쏙 들어오나요?
    “이 보충제는 신생물성 악성 종양 발병 가능도를 낮출 수 있는 최적의 자원입니다.”
    “이 식물성 보조제는 암을 예방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딱딱한 한자어와 전문용어로 가득한 학술 논문체보다 말하듯이 쉽게 써야 많은 독자가 읽을 게 분명합니다.

  • 끌린다

    글에서 나를 똑똑하게 느끼게 하고 싶고, 격식을 갖출수록 독자는 거리감을 느끼게 됩니다.
    멋지게 보이려고 꾸민 문장, 낯선 한자어와 영어 단어는 작가에 대해 나쁜 인상을 주게 됩니다.
    청중이 공감할 수 있는 글이 좋은 글입니다. 잘 쓴 글은 작가가 나에게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고 합니다. 단순히 구어체로 글을 쓸 수 있다면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고 보아도 될 것입니다.

  • 오래 집중한다

    매일 쓰는 평범한 말로 설명하면 독자는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됩니다. 대화체 문장은 독자를 오래 붙잡아 놓습니다.
    대화체 문장은 짧습니다. 신문사는 한 문장을 60자 이내로 짧게 쓰도록 기자들을 교육합니다. 복잡한 긴 문장은 독자의 주의력을 흐트러뜨리고 글에서 눈이 떠나게 합니다.

말하는 뇌와 글 쓰는 뇌

말하기와 글쓰기에 장애가 있는 환자들을 연구한 결과, 말하기와 글 쓰기는 서로 다른 뇌 영역에서 관장한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비슷하지만 독립적인 두 개의 언어 시스템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뇌 내에서 말하기 영역과 글쓰기 영역 간 분리는, 귀로 듣는 단어와 눈으로 읽는 단어를 처리하는 뇌 영역이 다른 데서 비롯됐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들 영역은 서로 연결되어 상호작용하는 것으로 과학자들은 보고 있습니다.
대화는 무의식적으로 할 때가 많습니다. 반면 글을 쓸 때에는 말할 땐 잘 쓰지 않던 단어를 의식적으로 꺼내 쓰게 됩니다. 이런 의식적 노력 과정에서 글을 쓸 때 범하는 흔한 실수 중 하나는 지나치게 복잡하게 설명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주장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아 이런저런 내용을 자꾸 붙이게 됩니다.

말하듯이 쓰는 요령

복잡한 것을 설명하기 위해 복잡한 문장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진짜 전문가들은 자기 분야를 친구에게 이야기할 때 복잡한 말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진짜 전문가일수록 어려운 주제를 아주 쉽게 덜 격식을 차려 말합니다.
다음 순서대로 해보면 말하듯이 쓰는 것이 쉬워질 것입니다.

  • 구체적인 독자를 상상한다

    이 글을 읽을 독자층을 주변 사람 가운데 콕 집어서 구체적으로 정합니다.
    독자층이 막내 여동생 또래라면 내 동생과 이야기한다고 상상하고 글을 씁니다. 자연스럽게 평소 하던 말이 튀어나올 것입니다.

  • 먼저 말로 설명한다

    써야 할 것에 대해 주변 사람에게 먼저 말로 설명하거나 발표를 합니다. 마땅치 않다면 혼자서 중얼거립니다.
    음성인식 소프트웨어를 써보는 것도 좋습니다. 구글 문서와 Keep, 네이버 클로바 노트, 마이크로소프트 365 등은 휴대폰 또는 데스크톱에서 음성 글쓰기 기능을 지원합니다. 말만 잘하면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글을 쓸 수 있습니다.
    말하면서 제한된 시간에 단어를 가능한 한 많이 생각해내는 행동은 앞쪽 뇌를 자극해 쓰기 능력을 향상한다고 합니다.

  • 초안을 일사천리로 쓴다

    글이 완성될 때까지 수정하지 않고 끝까지 빠르게 작성하면 글이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처음부터 완벽하게 쓴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글쓰기의 90%는 수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쓰레기 초안을 쓴다고 생각할수록 말하듯이 쓰게 됩니다.
    편집하지 않고 계속 써내려 가는 것은 어렵지만, 걱정하지 않고 계속 타이핑 하면 진짜 목소리가 나오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 쉬운 단어로 바꾼다

    어려운 한자어를 썼다면 쉬운 우리말로 바꾼다.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면 한글 사전, 유의어 사전을 찾아봅니다.
    “현저히 증가했다”보다 “눈에 띄게 늘었다”가 좋습니다.
    “~위시하여”보다 “~비롯해”가 좋습니다.
    “중심지로 부상했다”보다 “중심지로 떠올랐다”가 좋습니다.

  • 다 쓴 뒤 소리 내 읽는다

    마지막으로 소리 내 읽고 대화처럼 들리지 않는 부분은 수정합니다.
    소설가들은 단원이 끝날 때마다 쓴 글을 소리 내 읽는 특별한 의식을 치른다고 합니다.
    눈이 잡아내지 못하는 걸 귀가 잡아냅니다. 말소리에 귀를 길들이면, 그저 읽는 것만으로도 어떤 음절의 모음이 맞고 틀리는지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말하기에 관련된 뇌 영역과 글쓰기에 관련된 뇌 영역이 어울려 춤을 추면서 좋은 글이 나올 것입니다.

마치면서

글쓰기에 절대적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뇌의 구조, 글쓰기 훈련 정도에 따라 어떤 사람은 소리 내 말한 후 글로 옮기는 걸 좋아하는 반면, 다른 사람은 말보다 글로 쓰는 것이 더 편할 수도 있습니다. 분명한 점은 글을 쓸 때 음성 처리와 시각적인 처리가 동시에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엄밀해야 하는 글쓰기는 말하기보다 어렵고 반복 훈련과 연습이 필요합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지점에서 작가는 치열하게 생각을 하고 그 결실이 멋진 글로 피어납니다. 우리가 신문이나 책에서 감동하는 것은 그 치열함의 결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