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세대 지도부의‘이유 있는’위기감
2004년 춘제(春節·설날) 때 후진타오(胡錦濤)중국 주석은 베이징 서남쪽 200km에 자리 잡은 허베이성 시바이포(西柏坡)의 한 농가를 찾았다.시바이포는 중국 건국의 아버지인 마오쩌둥(毛澤東)이 중국 대륙에서 국민당 세력을 몰아낸 뒤 수도 입성을 앞두고 국정운영을 구상했던 대표적인 혁명유적지. 농민들과 함께 춘제 음식인 물만두(餃子)를 빚으며 후 주석은“농민들이 설을 쇠며 물만두라도 먹을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사회주의”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후 주석이 1년여 전 전임 장쩌민(江澤民) 주석으로부터 대권을 물려받았을 때 중국 경제는 큰 걱정거리가 없는 듯 보였다. 장 주석 역시 여러 차례 자신의 13년 치적을 강조했었다. 그랬던 중국경제가 불과 1년여 만에 농민들이 최대의 명절에 물만두를 먹기 힘들 정도로 곤란한 지경에 빠지게 됐다는 말일까. 마오는 시바이포에서 전우이자 혁명동지들에게“국민당은 물러났지만 자만하지 말자”고 다짐했다고 한다.
반 세기 넘어 후 주석 역시 시바이포에서 자만을 경계하며 원로들의 혁명정신을 추스렸을지 모른다. 그가 인계 받은 중국경제의 현실은 전임자가 자랑스럽게 넘겨줬던 것과는 그림이 크게 달랐기 때문이다. 적어도 농촌의 현실만 놓고 보면 후 주석이 잔뜩 경계심을 가질 충분한 이유가 있다.
올 연초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와 국무원이 발표한 정책문건 1호는 농촌문제에 관한 것이었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였다. 지난달 중국공산당이 국무원에 내려 보낸‘11·5(11차 5개년·2006~2010년) 규획에 대한 건의’문건에서도 7대 임무 중 첫째가 바로‘사회주의 신농촌 건설’이었다. 요컨대 농촌문제 해결은‘조화로운사회(和諧社會)건설’을 표방한 4세대 지도부에게는 경제문제를 넘어선 사회안정성의 문제, 더 나아가 자신들의 정치생명과 직결된 가장 중요한 사안인 셈이다.
현 지도부의 임기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이후에까지 걸쳐져 있다. 한국도 88올림픽 이후민권의식이 높아지면서 사회 각 부문의 불만이폭발적으로 분출됐듯 중국도 베이징 올림픽 이후농민 등 소외된 계층의 불만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져 나와 공산당 일당독재를 위협할 것이란 우려가 많다.
한국경제에 중국은 미국에 버금가는 중요한 시장이자 가장 중요한 생산거점이다. 따라서 한국기업들 역시 중국경제의 아킬레스 건인 농촌문제에 마땅히 충분한 주의를 기울여야 맞다. 그런데도 중국의 삼농(농민·농촌·농업)문제는 한국등 외국기업들의 관심사에서 다소 멀어져 있었다. 왜 그럴까.
우선 삼농문제가 환율, 임금, 판매가격 등 가격변수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중국 경제사회의 뿌리깊은 구조적 문제라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매출이나 이익에 당장 직접 영향을 주는 요인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또 외국기업 대부분은 주로 도시경제권에서 활동하며 도농격차 확대에 일조한 면이 있다. 홍콩, 대만, 한국 등 대부분 외국기업이 중국 내수시장보다는 해외수출에 관심을 기울였던 점 역시 삼농문제를 등한시한 원인일 것이다.
각종 격차와 관련이 깊은 삼농문제
사실 삼농문제는 중국 내 각종 격차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그림 1>의 오른쪽은 개혁개방 이후 선부론(先富論)에 입각한 불평등전략으로 주로 연해지역, 상공업, 도시지역에 외국인투자와고정자산투자 등이 집중됐던 상황이 나타나 있다. 차별적인 생산성 향상이 결국 소득격차를 불러왔고 이러한 구조가 중국 특유의 호구제(戶口制) 등을 통해 고착된 것이다. 일반적인 자본주의경제에서는 이 같은 소득격차는 생산요소의 이동과 가격의 조정기능을 통해 해소된다. 그러나 정부가 이주의 자유를 제한해 온 호구제 탓에 도농격차는 더욱 커졌고 과잉 농촌인력의 제한적인 도시노동 투입(民工)과 그들의 도시빈민화로 도시 내의 빈부격차도 확대되는 양상이다.
지난해 도농간 소득격차는 3.4배. 가장 부유한화동(華東) 도시지역의 평균 연 소득(11,971위안)은 가장 빈곤한 서북지역 농촌의 평균 연 소득(2,048위안)의 5.8배나 된다. 지난해 각종 정부지원에 힘입어 농촌지역 소득증가율이 도시지역소득증가율을 힘겹게 따라잡았다. 그러나 도농소득이 평준화되려면 2005년부터 계속 농촌 소득증가율이 도시의 2배가 된다고 가정해도 17년이란 장구한 시간이 더 필요하다. 사실상 도농 소득평준화는 물 건너간 셈이다. 소득불평등 상태를 반영하는 지니계수는 0.5에 육박, 국제적인경계선 0.4를 이미 넘어섰다.
노동생산성은 또 어떠한가. 세계은행이 최근 발표한 중국 산업부문간 노동생산성 분석자료에 따르면 농업분야의 노동생산성은 크게추락해 최저수준을 보였다. 농업이 농촌의 소득원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살펴보면 농민들이 이미 농업(11.0%)보다도 제조업(56.3%)에서 돈벌이를 찾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경작면적도 최근 수년 동안 환경오염, 상공용지 전환, 농업 구조조정 등의 이유로 매년 1∼2%씩 감소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농업이 중국 거시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부가가치나 수출액, 재정수입 등 모든 면에서 추락하고 있다. 그런데도 공식적으로 농업에 종사하는 인구비중은 50% 수준으로 버겁다.
노동생산성은 교육수준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2003년 기준 중국 농민 100명 중 중학교 정도의 학력을 가진 사람은 50명에 그쳤다. 학력개선속도도 매우 더디다. 초등학생들의 소재지역을 살펴보면 농촌이 대다수(66%)지만, 고등학교로 올라가면 학생 분포는 역전(도시소재 89%)된다. 열악한 교육수준은 과거와 현재는 물론 미래도농소득 격차의 설명요인이 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삼농지원과 호구제 점진개혁 병행 추진
그렇다면 중국정부의 정책방향은 어떤 것일까.우선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 호구제로 제한했던 이주의 자유를 전면 허용하는 것이다. 이 방안은단기간에 도농격차를 해소할 수 있겠지만, 엄청난 후유증을 피할 수 없다. 도시 실업인구가 급증하게 되고, 농촌 역시 사회주의 근간인 토지공유제를 지탱하기 어렵다. 무엇보다도 각종 취업기회, 복리혜택과 상대적으로 풍부한 도시기반시설이란 기득권을 나눠가져야 하는 도시 부문의 저항이 엄청날 것이다. 따라서 이 방안은 현실적으로 채택하기 어렵다.
이런 이유로 중국 정부는 호구제를 점진적으로 개혁, 이주제한을 완화하는 쪽으로 정책방향을 잡고 있다(장기적으로는 호구제를 폐지하는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대신 농촌경제의 제반 문제를 농민·농촌·농업이란‘삼농문제’로 파악해 대대적인 재정지원을 통해 자생력을 키우겠다는 것이다. 급격한 변화보다 실험을 통한 점진적개혁을 선호하는 중국 지도부의 전통적인 해결방식이 여기에서도 드러난다.
구체적으로 지난해부터 실시해온 농민수입증대정책을 지속하고 있다. 올해 초 농업세(수입의 평균 15.5%)가 계획보다 2년 앞당겨 폐지됐고 담뱃잎을 제외한 농산물에 대한 농업특산세도 폐지했다. 또 대두, 소맥 등 농작물에 대한 가격보조금이나 농민들의 농기구 구매보조금도 확대했다. 최근엔 내년 말까지 농촌에 대한 9년 무상교육을 전면 실시하겠다는 방침까지 발표됐다. 아울러 국유기업이 독점해왔던 농산물 유통시장에서 민간회사의 설립을 촉진, 유통효율화및 농민소득 향상을 꾀하고 있다. 훼손이 심한 농경지를 보호하기 위한 경작지법 등도 지속적으로 정비할 예정이다.
삼농정책 성공할까
이 같은 삼농지원에는 충분한‘실탄’이 필요하다. 즉 정부 재정여력이 충분치 않으면 실패가 불보듯 뻔하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각종 재정소요가 급증하면서 재정적자가 심화하고 있다. 물론 엄청난 규모의 국유자산이란 버팀목이 있기때문에 재정적자에 대해 큰 우려를 가질 필요는없지만 금융산업 구조조정, 국방비 등 삼농 이외의 재정 소요는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최근 농촌의 소득증가율이 도시지역을 근소하게나마 앞지른 것은 농산물 가격의 상승에 기인한 것이다. 공산품이 극심한 시장경쟁 탓에 원가상승 분을 가격에 전가시키기 어려웠던 반면농산물 가격은 정부의 보조금 정책 등에 힘입어크게 상승했기 때문이다.
향후 농산물 지지정책의 성공여부 역시 건실한 정부의 호주머니 사정에 달려 있다. 삼농정책이 성공하기 위한 또 다른 필요조건은 호구제의 원만한 개혁이다. 1억5000만 명이상으로 추산되는 농촌잉여노동력을 큰 갈등 없이 도시부문으로 이주시키지 못하는 한 농민소득증대, 농업 구조조정은 공염불에 그칠 가능성이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행적으로 도시 부문의 실업압력을 해소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지만, 현실은 반대로 흘러갈 조짐이다.
중국 발전개혁위원회의 장기 추계에 따르면2004년 7억6000만 명 수준인 농촌인구는 2020년엔 6억5000만 명 수준으로 줄고 도시인구는같은 기간 5억4000만 명에서 8억3000만 명으로늘어나게 된다. 따라서 도시에서 매년 평균1,500만개의 일자리를 보장해야 하지만, ‘발개위’의 추산으로도 매년 1000만 명 정도의 실직자양산은 불가피하다. 이런 막대한 규모의 실업자군(群)은 호구제의 점진적인 개혁을 어렵게 만드는 가장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재정수입 및 실업압력 등은 중국경제의 성장률 추세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고도성장을 유지한다면 재정수입도 늘고 실업압력도 다소 누그러질 수 있다. 바꿔 말하면 삼농문제의 해결은 중국 경제의 견조한 성장이 기본조건으로 충족돼야한다는 것이다.
높아진 기업들의 세금리스크
이상의 논의를 정리해보면 중국 내 다양한측면의 격차와 갈등이 큰 무리 없이 조정되기 어려움을 알 수 있다. 삼농정책의 원만한 성공 가능성을 낮춰보는 이유다. 그렇다고 도농, 빈부갈등이 당장 사회혼란으로 이어진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집단시위, 집단 노사분규 등이 빈발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철저히 국지적, 비조직적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중국 최대의 조직인 공산당에 대항할만한 역량을 갖춘 조직이 생겨나기 어렵다.
장기적으로 삼농정책의 실패는 13억이라는 광대한 내수자원을 활용하지못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성수기에 접어든 일부 제품의 중국 내수판로는 한계를 맞을 수밖에 없다.
외국기업 입장에서는 삼농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중국 정부의 징세 강화노력에는 충분히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특히 빈부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최저임금을 끌어올리거나 세무조사를 강화하는 등 벌써 외국기업의 부담은 늘어나는 추세이다....LG경제연구원 박래정 연구위원 (북경 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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