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상징조형물 ‘스프링’ 시안 발표 ...클래스 올덴버그, 다슬기 형상을 모티브로 제작
청계천 조형물 프로젝트 개요
지난 2003년 청계천 복원사업 추진 당시부터 기획된 청계천 조형물 프로젝트는 서울시립미술관의 자문을 거쳤으며 공공장소에 예술품을 설치하는 공공미술이니만큼 시민들에게 보다 양질의 작품을 보다 쉽게 체험하게 하기 위해 대중성과 예술성을 두루 검증받은 작가 올덴버그의 작품을 설치하기에 이르렀다.
이번에 선보인 올덴버그의 시안을 보면 외부는 탑처럼 위로 상승하는 나선형의 다슬기 모양으로 다이나믹하고 수직적인 느낌을 연출하여 복개된 청계천의 샘솟는 모양과 도시서울의 발전을 상징하며 내부는 푸른색과 붉은 색의 리본 형태로 DNA의 나선형 구조를 연상시키며 이는 자연과 인간의 결합을 상징하는 동시에 첨단과학 연구개발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서울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아울러, 올덴버그의 작품은 지금껏 공공미술작품으로 설치된 기존 작품과는 달리 밖에서 바라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터널구조로 외부에서는 입구를 통해 내부를 보거나, 샘에서 솟아나는 물을 볼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특히 야간에는 내부에서 조명이 빛을 발해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한편, 조형물의 재질 또한 이미 '조각은 늘 왜 딱딱해야 하느냐?'고 자문하며 1960년대 부드러운 조각(Soft Sculpture)을 선보인 바 있는 올덴버그는 철이나 동, 돌 등 단일한 재질이 아니라 스테인레스 스틸, 알루미늄, 섬유강화플라스틱 등의 혼합매체를 사용하여 제작하며 조형물의 내부는 부드럽고 평면적으로, 외부는 거친 표면으로 제작되어 대조를 이루게 된다.
작품 이미지 및 특징
조형물의 하단부는 원형터널로 시작되며 위로 올라가면서 전체 높이 20m 다슬기 모양의 탑을 이룬다. 표면은 꼭대기에서 조각품 내부의 넓은 리본으로 연결되는데, 대각선으로 흘러내리는 붉고 푸른 리본은 청계천변에 수직과 수평 입면을 갖는 고층건물들과 대조를 이룬다. 조형물 표면의 울퉁불퉁한 골들은 진한 붉은 색과 시원한 푸른색, 내부는 아이보리 색을 띠게 된다. 조형물 입구에서 시작되는 샘은 기포를 발생함으로써 샘솟는 자연의 물을 표현하게 되며 작품 앞에 조성될 사각연못에는 바람이 지나가면서 수면에 파장을 일으키는 효과를 나타내게 되며, 연못에 비친 조형물의 입구는 보름달의 이미지를 연출하게 된다. 조형물의 제작비는 작가비 60만불(6억원)을 비롯 총 340만불(34억원)이 소요될 예정이다.
제작과정의 기술적 특수성
청계천조형물 스프링(Spring)은 높이가 20m에 달하는 대형 조형물로서 water jet cutting, CNC(Computer Numerical Control, 컴퓨터수치제어시스템)에 의한 modelling 등 고도의 첨단 기술력이 동원된다. Water jet cutting이란 작은 틈으로 고압의 물을 쏘아 재료를 절단하는 첨단 cutting 방법으로, 물에 abrasive(연마제)을 첨가할 경우 알루미늄, 암석, 유리 등 단단한 재료를 깎을 수 있다. 이 방법은 곱고 정확한 절단면을 허용하는 동시에 열처리가 필요하지 않다는 장점을 지닌다. CNC cutting 및 milling은 CAD 데이터를 사용하여 절단, 벤딩(구부리기), 분쇄, 조판 등을 구현하는 방식으로 정확성과 빠른 속도를 자랑한다. 따라서 깎인 면끼리 정확하게 들어맞기 때문에 미술작품 제작에 흔히 사용된다. 도색의 경우, 특수 우레탄 계열의 페인트를 사용하여 작품 표면에 그림을 그리듯 섬세하게 도색이 이루어질 예정이다.
올덴버그, 그는 누구인가?
일각에서 그가 수십 미터짜리 톱이나 모종삽, 빨래집게 같은 일상의 기물을 도심에 설치한다고 해서 산업자본주의 전파의 첨병이라고 오해하고 있지만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 오히려 올덴버그는 근엄한 표정으로 바라봐야 하는 난해한 미술에서 벗어나 대중과 함께 즐기는 미술을 시도해 미술과 대중을 가깝게 만든 문화민주화의 공로자라고 평가받고 있다. 즉 그는 늘 일상 환경을 변형시키기 위해 상상력을 발휘하는 작가로 일상의 낯설게 만들기, 대상 바꾸기를 통해 재치와 유머, 메타포적 연상을 제작해왔다. 따라서, 올덴버그의 작품이 서울 청계광장이란 공공 공간에 설치지는 경우, 세계적인 설치미술가 올덴버그의 일상의 철학을 담은 작품이 매우 친근하게 다가오는 경험을 시민들은 새롭게 경험하게 될 것이다. 올덴버그는 이번 청계천 조형물 설치를 위해 그가 직접 선정한 제작 관련자 3명을 지난 10월 서울에 파견, 청계천 및 국내의 제반 제작 여건 및 관련 자료를 철두철미하게 수집하였으며, 그의 작품철학은 일상으로부터 비롯되어 청계천이란 지역성 및 시공을 뛰어넘는 공공미술작품을 선보이리라 예상된다.
청계천 조형물 프로젝트 추진과정
▷ 2003년 12월 청계천의 상징적 공간인 시점부 청계광장에 세기적인 예술 조형물을 설치하여 청계천 시점부의 상징 이미지를 강화할 필요성이 청계천복원사업회의에서 제기됨
▷ 검토단계 초기에는 청계천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탑 기능을 겸비한 대형 조형물을 설치하는 방안이 논의됐으나 광장을 과다하게 점유하는데다 청계천복원 사업의 열린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에 따라 취소.
▷ 전문가 등이 참여하여 수차례 논의를 거듭한 끝에 2004년 4월 정책회의에서 청계천 복원사업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예술조형물을 세계적 작가에 의뢰하여 설치하기로 하고 시립미술관으로부터 작가를 추천받기로 결론.
▷ 서울시립미술관은 수차레 큐레이터 미팅을 거쳐 올덴버그를 비롯한 3명의 세계적 작가를 유력 후보로 추천하면서, 올덴버그를 제1후보로 추천함.
▷2004년 5월 정책회의는 시립미술관의 추천 이유와 검토 대상이 창작 예술품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공개적인 토론보다는 제1후보 추천 작가의 작품시안을 받아보고 향후 관련 위원회에서 최종 확정키로 결정.
▷ 세계적 작가의 작품을 설치할 경우 상당한 비용이 예상되어 서울시에서 추경편성 등 예산확보 방안 검토 및 기부자를 물색하던중, 2004년 11월 문화사업에 뜻을 둔 KT가 청계천 일대에 예술품을 설치,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밝힘에 따라 청계광장의 조형물 제작 및 설치에 필요한 비용을 KT로부터 기부받기로 결정하고 관련 업무를 서울문화재단에서 추진토록 정리.
▷2004년 12월 서울문화재단은 올덴버그에게 청계천 사업의 취지 및 자료 등을 전달하고 올덴버그측은 2005년 1월에서 5월까지 청계천 조형물의 시안 드로잉 작업을 하여 2005. 6월 청계천조형물 시안을 제출하게 됨.
▷2005. 7월 올덴버그의 청계천조형물 시안은 서울시에서 개최한 서울시미술장식품분과위원회의 검토를 거쳐 조형물 설치 적합 판정을 받게 됨.
▷이에 따라 서울문화재단은 작가측과 제작비 등 구체적인 계약조건을 협의한 끝에 2005년 10월 청계천조형물 제작과 관련된 계약을 체결하게 되며 이와 함께 올덴버그가 지정한 전문가 3명이 청계천 현장을 방문하고, 경기도 인근의 작업장 시설을 조사하고 돌아감으로써 본격적인 제작단계로 접어들게 됨
▷서울문화재단은 작가측에 청계천 복원후 사진자료, 영상자료 및 설치현장의 지질, 내진기준 등 관련자료를 전달하였으며 제작방법 등에 대해 제작관련자의 제작회의가 진행되고 있음.
현재 청계천을 방문하는 내외국인은 하루 21만 명에 이를 정도로 청계천은 국내뿐만 국제적으로도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이번 청계천조형물 프로젝트는 청계천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세계적 예술작품을 선보임으로써 신선한 충격과 감동을 전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복원과정 내내 세계적 이목을 집중시켜온 청계천과 서울의 문화적 가치를 더욱 높여 세계적 관광명소로 자리매김하리라 기대된다.
※ 올덴버그 약력
Claes (Thure) Oldenburg (1929. 1. 28 스웨덴 스톡홀름 출생)
스웨덴 태생 팝아트 조각가.
평범한 물건들로 만든 거대하고 부드러운 조각품으로 유명하다. 아버지가 스웨덴의 영사로 이리저리 옮겨 다녔기 때문에 올덴버그는 유년기를 대부분 미국·스웨덴·노르웨이 등에서 보냈다. 예일 대학교에 다니는 동안(1946~50)에는 글을 쓰는 일에 크게 관심을 보였으며, 1950~1952년에 시카고에 있는 시(市) 소식 보도실에서 견습기자로 일했다.
1952~1954년에 시카고 미술연구소의 부설학교에 다녔으며, 1953년 작업실을 차려 자유기고가로 잡지에 실을 삽화를 그렸다. 그는 1953년에 미국 시민권을 얻었다. 1956년에 뉴욕시로 옮겼으며 뒷골목 생활의 요소들인 상점의 창문들과 낙서·광고·쓰레기 등에 매료되었다. 이러한 것들을 조각으로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면서 그의 관심사는 그림에서 조각으로 바뀌었다. 그는 1960~1961년에 식품과 옷, 장신구 등을 석고로 본떠 색을 칠해 모아놓은 〈가게 The Store〉를 선보였다. 이것은 실제 가게를 빌려 거기에 자신의 작품들을 진열한 것이다. 그는 1962년에 소리와 움직임, 물건, 사람 등을 포함하는 일련의 실험적인 해프닝을 시작했다. 몇몇 해프닝을 위해서 천속에 종이나 헝겊조각을 채워 넣어 커다란 물체들을 만들었다. 1962년에는 그의 가게를 옮겨놓은 듯한 전시회를 열었는데 여기에는 캔버스를 씌우고 고무로 거품을 만든 거대한 아이스크림 콘, 햄버거, 케이크 1조각 등이 전시되었다. 이런 그의 관심이 올덴버그의 대명사로 알려진 '부드러운 조각'을 낳았다. 그는 다른 팝아트 미술가들과 마찬가지로 대중소비사회의 일상적인 물건들을 주제로 삼았다. 그러나 욕조, 타자기, 전기 스위치, 선풍기 등 인간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물체들을 신중하게 선택했다. 부드럽고 임의로 변형시킬 수 있는 〈거대하고 부드러운 선풍기 Giant Soft Fan〉는 몬트리올에서 열린 '엑스포 67'의 미국관에 설치되었고 또 다른 그의 작품이 일본 오사카에서 개최되었던 '엑스포 70'에서 전시되었다. 1966년에 뉴욕에서 개최된 올덴버그 전시회에는 부드러운 조각들과 더불어 그가 '거대한 기념물'(Colossal Monument)이라고 이름붙인 소묘와 수채화 연작들이 포함되었다. 그가 초기에 구상했던 기념물들은 계획에 그치고 말았다. 이 가운데에는 1965년 뉴욕의 배터리 회사를 위한 거대한 진공청소기와 1967년 그가 졸업한 시카고 라틴 학교를 위해 계획한 〈광속으로 회전하는 곤봉 Bat Spinning at the Speed of Light〉, 같은 해에 시카고의 그랜트 공원에 설치하려 했던 거대한 규모의 작품 〈자동차 창문닦이 Windshield Wiper〉가 있다. 그러나 1969년에 〈무한궤도 위의 립스틱 Lipstick (Ascending) on Caterpillar Tracks〉은 예일대학교의 교정에 슬그머니 세워져 1970년까지 그 자리에 있다가 예일대학교의 모스 칼리지에 영구보전하기 위해 교정의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그는 이것을 시작으로 일련의 성공적인 작품들을 만들었다. 예를 들면 필라델피아에 있는 〈빨래집게 Clothespin〉(1976)와 파리의 퐁피두센터에 있는 〈담배꽁초들이 들어 있는 거대한 재떨이 Colossal Ashtray with Fagends〉(1977), 연방정부의 건축미술 계획에 따라 시카고에 있는 사회보장관리국의 건물에 만들어 놓은 〈곤봉기둥 Batcolumn〉(1977) 등이 그것들이다.
그 후로도 먼스터 시(1976~77), 네바다대학(1978~80), 아이오와의 디모인에 있는 시민회관(1978~79), 로테르담 시(1977~80) 등으로부터 의뢰를 받아 작품들을 제작했다. 그의 작품들은 세계 각국의 미술관이나 개인들이 소장하고 있다.
서울문화재단 개요
서울문화재단은 서울의 문화예술 진흥과 시민의 문화예술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2004년 3월 15일 설립됐다. '문화와 예술의 다양한 가치를 발현하고 시민과 함께 공감하는 선도적 문화예술기관'이라는 비전 아래 문화예술로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서울의 도시경쟁력을 키워가고 있다.
웹사이트: http://www.sfa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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