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은 이날 “몇 개의 이미지나 쇼로 국민을 기뻐하도록 만드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주권자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 부분에서 나는 일종의 결벽증이 있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노 대통령은 “역사란 무엇인가”라고 자문한 뒤 “집중된 권력이 일반 국민들에게 확산돼 나가는 과정, 그것을 저는 진보라고 생각”한다면서 “권력이 낮아지면서 불편한 점도 있겠지만 그 방향으로 계속 가야한다”고 강조했다.
만찬회에 앞서 노 대통령은 출입기자단이 준비한 올해의 대통령 사진전을 둘러본 뒤 “1년간을 기록한 사진들을 쭉 보니까 올해 내가 국민들과의 밀도가 떨어졌다는 느낌이 들더라”면서 “내년에는 조금 더 국민들에게 다가갈 필요가 있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다음은 노 대통령의 인사말을 요약·정리한 것이다.
제가 요즘 ‘정치인을 위한 변명’이라는 책을 한 권 보고 있는데 정당에 관한 얘기가 나옵니다. 왜 정치인이 불신을 받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그 책에서는 정당에 관한 기사는 지도부와 당원이, 정당 소속 국회의원이 지도부와 다른 주장을 하고 갈등을 일으킬 때만 보도되기 때문이라고 그렇게 써 놨습니다. 독일의 얘기입니다. 그런데 독일 민주주의는 대단히 성숙해 있고 언론도 우리와 다른 상황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책을 읽어보니까 우리가 요새 겪고 있는 정치인의 언론에 대한 불만사항이 똑같았습니다. 결과적으로 무슨 얘기냐 하면 갈등 말고는 쓸 것이 없다는 얘기입니다. 갈등이 주된 취재보도의 주제이지 독일에서도 다른 것이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기사거리를 많이 드릴수록 제가 고달픈 것입니다.
제가 참여정부 들어와서 한 것이 있다면 대통령의 권력을 줄이고 낮춘 것 그것이 제일 큰 것인 것 같습니다. 큰 변화를 보면 많이 투명해 졌습니다. 대통령이 좀 낮아지고 권력이 많이 줄어들고 약해지고 이런 것이 특징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니까 이제 아울러서 청와대 출입하는 기자도 비슷하게 가는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고 있는 진보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옛날에 진보라는 것은 제왕이 누리던 권력을 일반 국민들이 점차점차 나누어 가지면서 함께 누리는 것, 누리는 시대를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궁중에서 임금이 먹던 음식을 귀족들이 나누어 먹는 것을 굉장한 은혜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민주주의 사회가 되고 나서 돈만 있으면 너도 나도 다 같이 먹는 것이 되고, 과거에는 복식도 규제를 법으로 정해놓았다는데 이것 역시 무너져서 아무 옷이나 입을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러니까 그 사회에서 행세하는 사람들의 권력이 점차점차 확산되고 퍼져가면서 집중된 권력이 일반 국민들에게 확산돼 나가는 과정, 그것을 저는 진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을 민주주의의 진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제가 대통령을 하는 동안에는 자꾸 대통령 권력이 낮아지는 것 밖에 없을 뿐만 아니라 좀 걱정이 될 만큼 대통령의 권력을 떠받치고 있는 권력들도 지금 힘이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제가 지향하는 사회에 대한 인식이 그러니까 좋은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불편해지는 것은 제가 대통령을 하고 있는 시기의 하나의 특징일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대통령 주변에 가까이 있을수록 조금 행세하기가 나았는데 이제는 제 주변에 가까이 있을수록 불편해졌습니다. 집중적으로 통제를 받고 견제를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도 그렇고 우리 가족들마저도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면서도 때때로는 그것이 이제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제가 잘하는 것인지 못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저도 좀 더 세월이 지나봐야 답이 나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도 우리가 정한 방향이니까 뚜렷한 반론이 안 나오면 이 방향으로 계속 가봅시다.
역사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한때는 우리가 완결된 사상과 제도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끊임없이 어떤 이념적 틀 속에서 사상, 정치제도, 국가제도 등에 몰두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민주주의라는 사상체계가 생기고부터 아직도 민주주의가 어디로 진화하게 될지 그것은 아직도 두고 봐야 될 일일 것입니다.
또 영웅이 시대를 만든다고 얘기를 했는데 영웅이 시대를 만든다면 세종대왕 이후의 시대는 현저히 달라졌어야 하는데 국가나 제도, 사회, 문물, 문화 등이 그렇게 많이 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그 시대에 한글이 대중적으로 채택됐다면 사회에 어떤 변화가 있었을지 모르지만, 사대부 사회는 한글을 배척하고 세종 시대의 통치이념을 거의 거부했습니다. 세종의 통치이념이라는 것이 뚜렷하게 사상적으로 체계화되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세종의 통치이념이라고 할 수 있는 지도자의 정신이 그 이후 사대부 사회와 조선 500년 동안 계속 거의 거부당했습니다. 거부당해서 세종대왕도 역사를 바꾸지는 못 했다고 말하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지난 조선 500년 역사에서 역사는 세종대왕에 의해서 바뀌지 않았고, 탕평책을 썼던 영조 정조 시대도 정조가 돌아가시는 그 해에 정조가 아끼고 사랑하면서 어떤 새로운 사회를 이끌어 가는 새로운 세력으로 키우려고 했던 세력이 일망타진돼 버렸습니다. 그것이 조선의 망국의 길까지 가버렸습니다.
가장 역사를 크게 바꾼 사람은 고려 말에 성리학을 가지고 불교에 기반한 귀족사회를 무너뜨리고 사회제도를 개혁하고 조선이라는 유교주의 사회를 세웠고, 사대부의 명분을 가지고 통치이념으로 세워내면서 혁명을 단행했던 정도전이라고 얘기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경우는 아주 이례적인 것이지만 그것은 그 시대에 영웅이 딱 떨어져서 그런 역사적인 사건이 생긴 것입니다. 그러나 정도전보다 열 배 가는 영웅이 있어도 그 시기적 상황이 그렇게 맞지 않으면 그것은 영웅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역사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저도 아직 고민하고 있을 뿐입니다. 여러 가지를 놓고 그 중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번 찾아서 현재 가지고 있는 생각에 따라서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제가 요즘에 새로 제기해 보고 싶은 것은 지난 수백년 동안의 갈등구조에 관한 것입니다. 인간의 역사가 생기고 끊임없이 갈등의 역사는 끊임없이 존재했지만 적어도 중세까지는 지배이념 자체가 갈등을 전제로 하지는 않았습니다. 지배이념이 가지고 있는 논리구조 자체가 갈등구조를 내포하고 있는 논리는 아니었습니다. 중세에는 하느님의 질서 아래 통합되는 원리를 가지고 있었지만 계몽주의 이후의 민주주의 사상은 기존의 절대주의 권력과 또는 왕권과 시민 사이에 있어서의 갈등구조를 기본적으로 전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체제이론 자체가 내부적으로 대립구도를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시민사회 구조 속에 포섭돼 있는 언론의 영역은 끊임없이 갈등구조를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갈등적 사고와 구조에 충실할 수밖에 없게 돼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과 제 사이가 그동안에 불편했던 것은 사회운영의 원리가 기본적으로 그렇게 돼 있는 가운데 역할을 다르게 분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부시 대통령이 기사 좀 빼달라고 사정을 했는데 안 됐다는 얘기를 읽으면서 참 여러 가지 생각이 듭니다. 어디서나 기본구조는 권력은 뭔가를 숨기려 하고 시민사회와 언론은 뭔가를 계속 파내려고 하는 것에 있습니다. 역사라는 것이 이렇게 국민들의 권리가 신장되는 과정일 것입니다.
제왕이 누리던 권력을 일반 시민들도 함께 나누어 누리는 시대, 이것을 역사의 발전이라고 저도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믿고 있는 그 시대는 부드럽게 발전하지 못해서 그런지 우리 인류의 역사상 가장 참혹했던 시기였습니다. 잔인하고 참혹했던 시기였습니다. 특히 20세기를 극단의 시대, 극단의 세기라고 얘기합니다. 수천만명이 죽는 전쟁을 거쳐내고 냉전시대를 거쳐서 그 다음 시기로 들어가는데 이 시기는 소위 패러다임 시프트가 일어나는 시기, 역사적으로 그렇게 한번 짚어볼 수 있지 않는가 싶습니다.
십자군 전쟁까지 천년의 역사가 있었고 그로부터 천년동안 굽이쳐서 지금 민주주의라는 데까지 왔는데 이 민주주의가 내포하고 있는 대립과 갈등의 구도, 또는 20세기에 와서는 민주주의 자체에 있어서의 근본적으로 사회주의와의 사상적 대결구도, 이것까지를 넘어서서 이제 소위 뉴밀레니엄이라고 하는 2000년 행사를 얼마 전에 지났습니다.
그래서 이제 21세기로부터 시작되는 이 천년의 역사는 또 좀 뭔가 달라져야 될 것 아니냐, 그래서 민주주의가 가장 꽃피었을 때 스스로 자율과 책임이 항상 함께 하고 주권자와 권력이 일체화되는 것을 이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현실에 있어서 그것이 항상 분리되기 때문인데 이상으로 생각하는 그것이 좀 더 발전해 가는 과정일 때 거기에는 새로운 어떤 통합적 질서 창조적 질서의 시대가 와야 되지 않냐 저는 그리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결국 모든 것을 대립과 견제 속에서 권력을 견제해 나가고 하는 이런 시대만을 우리가 상징하고 있었는데 지금 일어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우리 역사 현상에 있어서 하나의 변화는 지도력의 위기라는 것입니다. 이제 권력의 형태가 거버넌스 형태로 변화해 간다고 많은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권력이 전부 지도력의 위기 앞에서 지금 굉장히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어느 나라 없이 정치 집단의 지도력이 굉장히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저명한 사실입니다.
국민의 정치참여도 매우 낮아지고 있고 이런 것을 볼 때 그 사회 지도력의 위기상황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것이 보기에 따라서는 구심력의 위기상황으로 볼 수 있습니다. 권력이 분산됐다는 것입니다. 권력이 시민적 조직에게 그리고 시민에게 분산돼 있습니다. 이것은 세계적인 경향입니다.
이 경향에서 우리가 새로운 사회 통합과 지도의 논리를 만들어 나가야 되는데 이것은 새로운 이론이 아니라 우리의 실천 속에서 담보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올리백 같은 사람이 지금 이 변화를 절반은 비관적으로 절반은 낙관적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앞으로 대중적 참여의 민주주의를 낙관적으로 보는 근거가 미국의 성인세대의 60% 가량이 자원봉사에 참여하고 있다든가 하는 것이고 한편 정치하는 사람들의 현실은 권력이 전부 분산돼 버리면서 사회적 구심력이 잘 형성되지 않는 데서부터 혼선이 생기고 또 한편으로서는 대결적 주장이 세를 얻어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프랑스 같은 데서 이민들의 소요가 있고 난 다음에 극우파 쪽의 정치적 지지가 더 높아지는 것처럼 한편으로는 대립적 구도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더 정치적 세가 높아져 가고 있는 이런 위기적 상황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 전부 보면서 우리 한국이 앞으로 어디로 가야하며 어떻게 하느냐 하는데 참여와 실천의 문화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창조해 나가야 되는 것 아니냐, 그래서 우리 사회의 어떤 창조적 흐름, 창조적 의제, 통합적인 의제, 통합적인 흐름 이런 것을 우리가 한번 만들어 가보자는 것이 저의 제안입니다.
금년부터 해 왔던 것인데 내년에도 이 방향으로 가보려고 합니다. 거기서 우리가 견제하면서도 만나야 되는 영역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이론이나 방향이 맞다면 정치하는 사람과 언론하는 사람이 어디선가 실천 속에서 만나는 장이 있고 그 만남의 장은 통합과 창조의 장입니다. 그래서 어떻든 끊임없이 견제하고 비판하고 감시하되 창조적 대안과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서 그것이 대립의 구도가 아니라 제3의 통합의 구도로 창조적 대안을 통해서 통합의 구도로 나가는 것입니다.
적당하게 타협하고 이익을 나누어 가지는 방식이 아니라 창조적 대안이라든지 이런 것을 통해서 함께 목표점에 접근해 가는 이 과정을 통해서 하나의 통합을 추구할 수 있는, 한 분야에 있어서 갈등적인 구조 위에서도 통합을 추구해 갈 수 있는 여지가 있습니다.
결국 장황하게 말씀드렸지만 우리가 그동안에 서로 견제하고 갈등하는 부분에서만 살아왔지만 우리가 뭔가 어디서 만날 데를 한번 만들어 보자, 만날 수 있는 만남의 광장을 한번 만들어 보자, 이것을 올해 언론에 대한 저의 화두로 내놓고 싶습니다. 그래서 내년, 또 그 이후 멀리서도 우리가 갈등의 구도 위에서 만남의 광장을 만들어서 함께 만나는 대망의 2006년, 제가 회갑을 맞이하는 해를 그렇게 한번 보람 있게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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