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 내남면 화곡지구 지표수보강 개발사업부지내 문화유적 발굴조사
그 결과 제Ⅰ구역은 통일신라시대의 요업과 관련한 생산 및 생활유적으로 수혈유구(공방지, 폐기장 등) 81기, 주혈 333개, 고상식건물지(高床式建物址) 3동, 건물지 1동과 폐기장으로 활용된 자연수로가 확인·조사되었으며, 이 외에 삼가마 2기가 확인되었다. 유물은 기와 및 토기가 약 3,000여점 이상 출토 되었다. 제Ⅱ구역은 신라시대 목곽묘 4기, 수혈식석곽묘 45기, 제사유구 8기, 옹관묘 2기, 근·현대묘 3기로 총 62기가 확인되었으며, 유물은 금동제 이식 및 환두대도를 비롯해 총 299점이 출토되었다. 제Ⅲ구역은 유적이 확인되지 않았다.
제Ⅰ구역은 요업과 관련한 공방지와 생산과정 또는 생산된 제품의 직접적인 폐기가 이루어진 생활유적으로 유적 중심을 남북으로 가로지는 자연수로를 경계로 서쪽은 요업과 관련한 생산시설 및 폐기장이, 동쪽은 주거시설이 확인·조사되었다. 이들 유구들은 동일 층위상에서 확인·조사되었으나, 내부 출토유물로 보아 시기적으로 수혈(폐기장)이 빠른 것으로 판단된다.
수혈(폐기장)에서 출토된 토기들은 6세기 전반 늦은시기에서 6세기 후반에 이르는 시간적인 폭을 가지는데 이는 수혈(폐기장)의 기능상실 이후 자연스럽게 자연수로내로 유물의 폐기가 이루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자연수로내에서 출토된 다량의 유물들은 8~9세기 늦은시기의 것들로, 이는 토층 층위상 가장자리로부터 유물의 지속적인 폐기로 인한 슬라이딩 현상과 유수에 의한 퇴적·침식의 과정 중에 수로의 발원지로부터 유입된 것으로 확인·조사되었다.
하지만 자연수로내 출토유물들은 수로의 양 가장자리에 자리 잡고 있는 유구내 출토유물과는 시기적인 폭이 크다. 이는 수로 내 출토유물들이 유수에 의해 층위적으로 불완전하며, 또한 조사구역 상부에 이와 관련된 유적이 분명이 입지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결과로 볼 때 제Ⅰ구역은 자연수로를 경계로 생산시설과 주거시설의 공간분리가 이루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출토된 유물은 수혈(폐기장)에서 녹유가 시유된 인화문 개, 고배, 대부완, 장경호, 발형기대 등이 출토되었고, 수로에선 인화문이 시문된 개, 대부완, 병 및 호편, 옹편, 와전, 토우, 벼루 등이 다종다양하게 출토되었다. 이 출토유물 중 다양한 문양이 시문된 인화문토기 및 와전 등은 안압지에서 출토된 유물의 조합상과 거의 동일한 것으로 보아 이곳에서 생산된 유물이 통일신라시대 왕경에 공급하였던 관요 및 공방지였음을 입증해주는 자료일 뿐만 아니라 나라 ‘國’, ‘寶’,‘泉’ 등의 명문 토기 및 空心塼편이 출토되었다.
제Ⅱ구역에서 조사된 유구 중 다수를 차지하는 수혈식석곽묘는 도굴과 자연삭평으로 인해 개석과 상부구조가 훼손된 상태였으나 내부구조는 전반적으로 양호한 상태로 조사되었다. 조사된 수혈식석곽묘는 경주지역에서 확인되고 있는 석곽묘의 구조나 부장품에 있어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으며, 조영방법 또한 그러하다.
유구 내에서 출토된 유물은 경주 주변지역에서 출토된 유물과 비교·검토하여 볼 때 화곡지고분군의 석곽묘군의 집중 조영시기는 대체적으로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전반으로 판단된다. 목곽묘의 경우는 이보다 이른시기인 5세기 중엽경에 에 조영된 것으로 보이며, 제Ⅱ구역의 고분군은 전반적으로 망성리 요업과 관련된 장인집단의 무덤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이처럼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피상적으로 알려진 망성리 도요지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지만, 일부분만이 조사가 진행되어 생산유적의 전모를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있어 아쉬움이 적지 않다. 그리고 지금까지 경주지역의 고분문화에 대한 실체를 파악하는 과정은 지배자층의 묘제인 적석목곽묘에 집중되어 있었으나 제Ⅱ구역에서 다수의 수혈식석곽묘가 확인·조사되어 경주지역 전문공인 집단의 분묘문화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이번 발굴조사의 의의에 대하여 현장 책임조사원인 朴光烈 조사연구실장은 “생산유적인 제Ⅰ구역의 유구 및 유물을 통하여, 그 동안 피상적으로만 알려졌던 망성리 도요지가 통일신라시대 안압지를 비롯한 왕경에 녹유토기 및 기와 등 격조 높은 제품을 생산 공급하였던 공방이었다는 실체를 확인한데서 큰 의의가 있으며, 또한 제Ⅱ구역 분묘군을 통해 왕경에 제품을 생산 공급한 장인집단의 상당한 위계를 확인한데 그 중요성이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번 조사과정에서 뿐만아니라 유물의 정리과정에서 인화문토기와 기와, 전, 토우 등 다종 다양한 유물이 확인되었다.
이중 토기에 國’, ‘寶’, ‘泉’ 등의 명문이 찍히거나 새겨진 토기와 여인상, 기마인물상, 말머리, 갑옷 입은 무사상 등 당시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토우 등이 확인되었다.
특히 空心塼 추정되는 편들이 확인되었는데, 추정규모는 가로 40㎝, 세로 25㎝, 높이 15㎝, 두께 1㎝ 정도이다. 면에는 사슴과 새끼사슴, 구름문양, 모란 등이 부조되어 있는데, 틀로 찍은 것으로 보인다.
장방형의 공심전은 앞면과 뒷면에 각각 2개의 작은 구멍이, 좌·우 양측면에 각각 1개의 구멍이, 위·아래면에 각각 큰 구멍 1개가 뚫려 있으며, 구멍 주위도 꽃무늬로 장식되어 있다. 두께가 얇아 특수한 용도로 사용하기 위하여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조사결과의 의의는 각종 토기와 기와, 전돌, 토우 등 다종 다양한 유물이 층위별로 뚜렷이 나누어져 출토되고 있어 통일신라시대 토기 및 기와 편년에 결정적인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청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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