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순천 운평리 고분 발굴조사 지도위원회 개최
일 시 : 2006. 1. 13(금) 11:00
장 소 : 전남 순천시 서면 운평리 발굴현장
조사기관 : 순천대박물관
조사내용 : 가야시대 고분군
유적이 위치한 곳은 순천시 서면 운평리 운평마을 북쪽의 구릉 하단부로 민묘와 밭으로 이용되고 있다. 발굴조사는 민묘 남쪽에 자리한 1기의 봉분(1호분)과 밭으로 경작되고 있는 경사가 완만한 곳을 중심으로 실시되었다.
1. 토광묘
4기의 토광묘가 조사되었는데, 규모와 출토유물로 보면 목곽묘 단계로 볼 수 있다.
1호 토광묘는 등고선과 나란한 방향이고, 2~4호 토광묘는 등고선과 직교하고 있는데, 경사면쪽으로는 삭평이 심하여 원상을 유지하고 있지 못하다.
유물의 부장양상은 토기류는 한쪽에 치우치거나(2·3·4호) 양 단벽쪽(1호)에 배치되어 있으며, 철기류는 추정 목곽선에 위치하거나(1호) 묘광의 중앙부(2호)에 노출되어 있다.
2. 1호분
봉분의 규모는 직경 약 8-9m, 높이 1.2m로서 소형분에 해당한다.
매장주체부는 모두 5기로서 1기의 주곽과 4기의 배장묘가 배치되어 있다.
주곽은 중앙부에 자리하는데, 북동-남서방향을 장축으로 하는 수혈식 석곽묘이다. 등고선과 나란한 방향이고, 평면형태는 세장방형이며, 규모는 430×80×80cm이다. 개석은 판석형의 할석으로 총 13매이다. 석곽의 축조방법은 양단벽과 북장벽은 5~6단 종평적하였고, 남장벽은 와수적후 종평적하였다. 유물의 부장은 양단벽쪽에 일정공간을 두고 토기류가 배치되어 있으며, 중앙부에 철기류가 노출되었다.
주구(周溝)는 전체적으로 조성된 것이 아니라, 高度가 높은 북동쪽을 중심으로 반원형으로 확인되고 있다. 너비는 160m정도이고, 깊이는 20~40cm정도이다. 단면형태는 완만한 U자형을 이루고 있다. 주구내에서는 제사용 大壺片들이 노출되었다.
주석곽의 주변으로 4기의 수혈식 석곽묘가 확인되었다. 석곽은 주석곽의 주구가 퇴적된 후에 추가로 형성되어 시기차를 보이고 있다.
3. 석곽묘
운평리에서는 1호분 외에 주변에서 5기의 수혈식 석곽묘가 조사되었다.
1~3호의 석곽묘는 등고선 방향인 북동-남서방향으로 배치되어 있고, 4·5호는 1호분과 인접하여 2기가 동-서 방향으로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석곽의 축조상태는 단벽은 1~5호 모두 하단을 와수적한 후 윗단은 종평적하였으며, 장벽은 석곽마다 조금씩 차이를 두고 있다. 유물은 대부분 양 단벽쪽에 치우쳐 부장되고 있다.
조사성과
1. 운평리 고분군에서는 토광묘 4기, 수혈식 석곽묘 5기 외에, 봉분이 있는 1호분에 대한 조사를 통하여 1기의 주석곽과 4기의 주변석곽(배장)이 확인되었다.
2. 토광묘는 좁은 공간내에 밀집분포하고 있으며, 경사면을 따라 많이 삭평되어 정확한 유구의 성격은 파악할 수 없으나 출토유물과 규모를 통하여 4-5세기대의 목곽묘로 볼 수 있다. 토기의 부장은 주로 단벽에 치우쳐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2호 토광묘에서는 대도·철모·수평구연장경호·연질장경호가 출토되어 주목되는데, 수평구연호는 소가야계로서 비교적 이른 양식이다.
그동안 전남동부지역에서 4-5세기의 묘제가 거의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운평리에서 확인된 토광(목곽)묘는 향후 이 지역의 분묘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재지계와 소가야계의 유물이 혼재되고 있어 전남동부지역과 경남서부지역의 밀접한 관련성도 제기된다.
3. 1호분 주석곽의 장폭비는 5:1정도이고, 양단벽으로 토기의 부장공간을 두고 있다. 주석곽의 주변으로 4기의 부곽이 확인되고 있는데 추가장으로 판단된다. 부장유물은 토기류가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대가야계 토기로 재지에서 제작된 것이 주류를 이룬다. 대가야계 토기 종류로는 유개장경호, 기대, 광구장경호, 고배, 개배 등이다.
1호분의 주석곽은 출토유물 및 석곽의 구조로 볼 때 고령 지산동 44호분의 단계로 5세기말경으로 편년된다.
4. 토광묘와 인접하여 확인된 수혈식석곽묘(5기)는 장폭비가 5:1정도인데, 평면형태는 1호가 세장방형을 이루고 있고 나머지는 장방형을 이루고 있다. 석곽 내부에서 목관의 흔적은 확인할 수 없었으나 관을 고정시키기 위한 판석형 할석을 세워둔 것이 확인되었다. 유물의 부장은 양단벽쪽에 치우쳐서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1호 석곽에서는 신라양식의 대부장경호와 고령양식의 유개장경호가 공반되고 있는데 이러한 예는 고령지산동 32·58호, 고성 율대리 2호·고성 송학동1호 등에서 확인되고 있다.
5. 금번에 조사된 1호분은 비교적 소형분이지만, 인접하여 중형분 2기가 확인되고 있어 추가조사가 이루어지면 이 지역의 최고 수장층의 무덤 구조와 대가야와의 관련성을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볼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운평리 유적 일대에는 밀집된 지석묘군과 토광묘도 확인되고 있어 주요 묘제가 계기적으로 확인된 셈이다. 따라서 대가야세력이 영향력을 미치기 전에도 구 순천시 권역에서는 누세적으로 중심집단이 자리잡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운평리유적은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전남동부지역에서 최초의 대가야계 고총고분군인데, 앞선 시기부터 존재했던 소가야계 토기와 묘제가 확인된다.
6. 그동안 전남지방에서 加耶系 土器가 부분적으로 출토되었지만 소홀히 취급되었다. 이러한 원인으로는 加耶를 영남지방에 한정하여 보려는 선입견이 있었고, 아울러 전남지방의 가야계 토기를 일시적인 교류나 교역의 소산으로 접근하려는 시각 때문이다. 다만, 고대사나 고고학의 일각에서 섬진강하류역을 포함한 전남동부지역에서의 가야계 토기의 발견을 대가야의 정치적 영향력의 확대와 관련지어 설명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구체적인 고고학 자료로서 뒷받침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순천 운평리 유적에서의 대가야계 고분의 발굴조사는 전남동부지역으로의 대가야의 정치적 영향력을 보여주는 획기적인 자료로 평가된다.
낙동강 하류지역이 5세기초 이후로 신라의 통제를 받는 상황에서 가야제국은 섬진강을 통해서 대외교역을 이루었던 듯하며 대가야가 479년에 중국 南齊와 교역을 이룬 통로도 바로 하동을 통해서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대가야가 전남동부지역으로 영향력을 미친 시점도 이러한 역사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순천 운평리 고분에서 대가야계 토기와 관련 묘제의 존재는 백제가 이 지역을 영역화(512년)하기 이전에 이미 대가야세력의 영향력이 있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이 시기에 운평리고분의 규모가 고총화되고 대가야토기의 출현은 전대와 차별적인데, 이는 이 지역에 대가야의 직접적인 영향력이나 후원이 있었음을 시사한다. 요컨대 운평리 고분군은 대가야세력이 전남동부지역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대가야와 밀접한 관계를 맺은 재지세력이 조영한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대가야와의 관련성이 상하지배관계였는지, 완만한 연맹관계였는지에 대해서는 추가조사와 연구가 필요하다.
아울러 금번 발굴조사를 통하여 운평리 고분군은 日本書紀 繼體紀 6년(512년)條에 나오는 任那(대가야)四縣(上哆唎·下哆唎·娑陀·牟婁) 가운데 순천에 비정되는 娑陀와 관련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추후 조사성과를 기대해 본다.
문화재청 개요
우리나라의 문화적 정체성을 지키고 대한민국 발전의 밑거름이 되어 온 문화재 체계, 시대 흐름에 맞춰 새롭게 제정된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60년간 지속된 문화재 체계가 국가유산 체계로 변화한다. 과거로부터 내려온 고정된 가치가 아닌 현재를 사는 국민의 참여로 새로운 미래가치를 만드는 ‘국가유산’. 국가유산청(구 문화재청)은 국민과 함께 누리는 미래가치를 위해 기대할 수 있는 미래를 향해 새로운 가치를 더하고 국민과 공감하고 공존하기 위해 사회적 가치를 지키며 과거와 현재, 국내와 해외의 경계를 넘어 다양성의 가치를 나눌 것이다.
웹사이트: http://www.cha.go.kr/
연락처
발굴조사과 김정남 사무관 042-481-4949
문화재청 홍보담당관실 042-481-46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