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명대 양종훈 교수 사진전 ‘희망원정대 킬리만자로에 가다’

서울--(뉴스와이어)--양종훈사진전 개요

전시명 : 희망원정대 킬리만자로에 가다
기 간 : 2006. 1. 25(수) - 2. 15(수)
장 소 : 상명대학교 예술디자인센터 갤러리 1관, 2관
주 최 : KBS 3라디오, 상명대학교
후 원 : 한국 HP, 사진예술
주요게스트 : 상명대 총장 및 부총장, 손봉숙 의원외 국회의원 다수, 상명대 교수 등

아프리카의 지붕 킬리만자로

킬리만자로는 높이가 5895m가 되는 눈덮인 산으로 아프리카 대륙의 최고봉이다. 서쪽 봉우리는 마사이어로 ‘누가예 누가이’ 즉, 신의 집이라고 불린다. 그 서쪽 봉우리 정상에는 얼어 붙은 한 마리의 표범의 시체가 있다. 도대체 그 높은 곳에서 표범은 무엇을 찾고 있었던가? 그런데, 아무도 그것에 대하여 설명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킬리만자로의 눈(헤밍웨이-박정수 번역)에 나오는 말이다 .

‘누가예 누가이’ 즉 신의 집으로, 아프리카의 지붕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잡으러 아프리카로 아프리카로 향하는 우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2005년 12월 5일 인천공항을 출발한 원정대원(대장 엄홍길)은 3일 밤낮을 비행기와 차량으로 이동하여 3일만에 킬리만자로 입구인 마랑구게이트에 도착했다.

원정대원은 장애인 10명, 멘토 10명, 제작진 14명으로 구성되었으며 장애인 대원중에는 2003년 7월 플랫폼에서 어린아이를 구하는 도중 열차에 치어 다리를 절단하여 우리에게 아름다운 철도원으로 더욱 유명한 김행균(45)씨, 세계적인 장애인 마라토너 홍석만(30), 문정훈(27)씨, 작가가 꿈인 청각장애인 윤석화(25)씨등으로 구성되었으며, 박범신(60)소설가 , 변호사(46)오세훈,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부른 가수 안치환(40) 등으로 구성된 멘토들이 하나가 되어 꿈에도 그리던 킬리만자로 입구에서 우리는 세계 8.000m급 15좌등을 성공한 엄홍길 대장과 박범신 선생의 주문으로 산신령(?)에게 무사귀환을 비는 의식을 하면서 우리들은 부풀었던 가슴을 여미고 산에 대한 겸손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아프리카의 지붕 킬리만자로 입구(해발1,800m)는 신의 산답게 우리들을 따뜻하게 맞이하는 듯 했다.

3일동안 열림 우림 지역과 수목 한계선을 넘으면서 나무가 없어지고 더 이상 물이 없는 Last water point 지역을 통과하면 대원들의 표정에는 오히려 정상에 대한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출발할 때 호롬보 산장(3,720m)까지만 가도 대성공이라고 전의를 다질 때와는 다르게 장애인 10명을 포함한 34명의 대원들은 의학적으로도 알 수 없다는 고산증세를 극복하며 호롬보 산장에 무사히 도착했다. 엄홍길 대장조차 불가능하다며 대원들에게 더 이상 산행은 목숨이 위태롭다며 설득해보지만 그럴수록 장애인 대원들의 정상에 대한 의지는 더욱 강해 보였다.

그들은 이미 장애인이 아니라 마사이족의 전사 같았다.

결국 전날 고소를 호소하며 대원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몇몇 대원을 제외한 전사(?)들은 정상의 최종 기착지인 키보(4700m)로 향했다.

그러나 킬리만자로는 우리를 그리 호락호락하게 등정을 허락하지 않았다. 숨쉬기조차 힘든 키보산장에 도착하자마자 대원들과 스텝들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고산증세를 호소하며 하나둘씩 내려가야만 했다.

목숨이 위태로운 절대 절명의 상황에서 내려가야만 하는 대원과 서너시간 후에 정상을 향에 도전하는 대원 모두 안타까움의 포옹을 해야만 했다. 고소증은 인간의 의지와 관계없이 오기 때문이다.

2005년 12월 12일 밤 11시 40분 해발4,700m 킬리만자로 마지막 관문인 키보산장에서 24명의 전사(?)들은 세계를 주름잡았던 징기스칸의 후예처럼 엄홍길대장의 진격 앞으로 명령에 살을 여미는 칼날같은 바람을 뚫고 정상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옮기기 시작했다.

계획에 없던 산행이라 장애인과 멘토의 개념은 없었다. 누구든지 고소나 체력이 떨어지면 내려와야 하는 게임과도 같았다.

대장과 대원의 차이는 분명히 있었다. 조금이라도 체력을 보강하기위해 휴식시간을 길게 자주 가지려는 대원과 시간이 지연될수록 위험하다는 엄대장의 생각이 상충되면서 김행균, 한현정, 윤석화, 강경호, 한태석 장애인 대원은 마침내 정상부근 길만스 포인트(Gillman's Point 5685m)위에 당당히 섰다. 정상인 우후루픽(Uhuru Peak)이 5895m인 점을 감안한다면 그들은 정상위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 길만 포인트 이상 오르면 탄자니아 정부가 주는 증명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엄대장은 왜 우리들을 재촉하며 쉴 틈 없이 올라갔을까. 하산 길의 답은 찾을 수 있었다.

킬리만자로 산은 화산으로 인한 미세한 자갈 산으로 낮에는 발목이 빠질 정도로 부드러운 코스의 산이다. 그래서 산행길이 딱딱하게 얼어야 하는 영하 20도씨를 웃도는 밤을 선택하여 등반해야만 하는 것이다. 위험을 무릅쓰고 말이다.

각자가 갖가지 사연을 안고 큰 사고 없이 하산한 2006년 희망 원정대는 아프리카의 최남단 희망봉에 가서 새해 희망을 빌면서 우리는 장애인, 비장애인이 아닌 하나가 되었다.

2. 작가 약력

양 종 훈

EDUCATION (학 력)

2004년 호주 RMIT University Doctor of Fine Art (예술학 박사)
1991년 미국 오하이오대학교 대학원 졸업 (포토커뮤니케이션 전공)
1988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사진학과 졸업

PERSONAL EXHIBITION (개인전)

2005년 “2005 세계평화 축전” 사진전 - 임진각 광장
2005년 “동티모르 건국 3주년 기념 사진전”국회의원회관 로비
2005년 대구MBC 초청 "God bless East Timor" 대구MBC 갤러리 M
2004년 중국청화대학 초청 Yang Jong Hoon 사진전
2004년 호주 RMIT 대학교 초청 개인전 - Urban Aborignals - 멜버른
2004년 5월 23일 ~ 29일 호주 RMIT 대학 초청 개인전 - Aborignals - 멜버른 2003년 5월 30일 ~ 6월 30일 동티모르정부수립 1주년 및 독립기념관 개관 기념사진전
2002년 10월 7일 ~ 12일 호주 원주민 “애브리지니족” - 후지포토살롱 -
2001년 12월 7일 ~ 17일 “지옥훈련” - 자연사랑 포토갤러리 -
2001년 10월 7일 ~ 13일 “Horrific drill" - RMIT 갤러리 -
2001년 1월 27일 ~ 1월 31일 “소희야” - 갤러리 룩스
1997년 2월 25일 ~ 3월 5일 “볼쇼이 발레학교 이야기” -러시아발레학교 갤러리-
1990년 2월 12일 ~ 3월 4일 “DREAM" - ALDEN LIBRARY, ATHENS OHIO
1986년 10월 2일 ~ 8일 “SUBWAY" - 인사동 백송화랑 -

Art Collection (작품 소장)

러시아 볼쇼이 발레학교
동티모르 대통령궁
대한민국 국회
주한 호주대사관
호주 RMIT 대학교
갤러리 룩스
쌍용건설
상명대학교

(양종훈의 사진전에 부쳐)

‘신의 집’으로 가는 길

박범신(작가)

촌락에 있어서나 숲속에 있어서나
평지에 있어서나 고원에 있어서나
저 아라한이 지나가는 곳
누가 그 은혜를 받지않으리.

‘법구경’(法句經)중에서 ‘아라한품’에 나오는 말이다. ‘아라한’이란 ‘붓타’ 와 동의어로 해석해도 상관없지만 정확히 말하면 소승불교에서의 수행완성자로 해석하면 된다.

킬리만자로에서 우리는 모두 ‘아라한’이었다.

열명의 장애우와 열명의 길잡이, 그리고 방송관계자 등으로 이루어진 우리 ‘희망 원정대’ 34명은 스무시간 이상의 비행과 열시간의 버스여행을 거쳐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 마랑게이트에 도착했고, 그곳으로부터 다시 나흘에 걸쳐 걸어서 정상이 곧바로 올려다보이는 키보산장(4705미터)에 당도했다. 12월 12일 저물녁의 일이었다. 그 긴 여정에서 일행 한사람 한사람과 속깊은 우의를 다지면서, 그러나 단 한번도 카메라를 놓지않았던 사람이 바로 양종훈 교수였다. 그는 친화력이 남달랐고 휴머니티가 넘쳤으며 사진으로 모든걸 담아내려는 장인정신이 대단했다.

마침내 정상을 향해 우리는 떠났다.

종일 걷고나서 불과 서너시간을 쉰 다음 키보산장을 출발한 것은 밤 11시쯤이었다. 45가 넘는 급경사의 황막한 모랫길이었다. 헤드랜턴 불빛이 길게 줄을 이었다. 칼날같은 바람이 불었고, 기온은 영하 15도를 훌쩍 넘어섰으며, 북두칠성이 산허리에 걸려 누워 있었다. 비장애인은 물론 의족을 했거나 하반신을 원활히 쓰지못하는 장애우들에겐 정말 지옥같은 고행길이었다. 더구나 고소증세는 장애우와 비장애인 사이에 구별이 없었다. 어떤 이는 5천 미터에서, 어떤 이는 5천 3백에서, 또 어떤 이는 5천 5백 미터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던 것도 바로 불가항력적인 고소증세 때문이었다. 극심한 두통과 어지럼증과 구토증세와 호흡곤란 등 갖가지 증세가 우리를 괴롭혔다. 폐에 물이 차는 폐수종증세로 긴급히 후송당한 사람도 있었다. 우리는 각자 멈춘 그 자리에서, 그러나 인간의 한계와 그 한계를 뛰어넘는 우리들 각자의 의지와 사랑과 열정을 느끼고 보았다. 각자 멈춘 곳이 바로 킬리만자로 정상이었으며, 더 나아가 우리 모두가 하나하나 킬리만자로였던 것이다.

공자는 말했다.

“세가지 길에 의하여 우리는 성지에 도달할 수 있다. 하나는 사색에 의해서다. 이것은 가장 높은 길이다. 둘째는 모방에 의해서다. 이것은 가장 쉬운 길이다. 그리고 셋째는 경험에 의해서다. 이것은 가장 고통스런 길이다.”

‘모방’의 길은 길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계통합 국면의 자본주의적 경쟁에 내몰리면서 우리 자신도 모르게 ‘습관’에 의존해 살고 ‘모방’의 길에서 성취하기도 한다. 습관적 삶은 물론 자신의 걸이 아니며 모방으로서의 성취는 또한 가짜성취에 불과하다. 그런 의미에서 그날, 키보산장을 출발해 킬리만자로의 벼랑길에 매달렸던 순간, 우리 모두는 모방과 습관에 따른 상투적인 삶의 관성을 결연히 끊어내고 생생하고 고유한 ‘경험’의 순간을 살았다. 그것은 일상 속에선 느낄 수 없는 잔인하고 생생하고 뜨거웠던 실존의 확인이었다. 그 실존의 자리엔 아무런 편견과 차별도 없었다. 우리는 모두 하찮고, 동시에 위대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 중심에 양종훈교수의 카메라가 있다.

우후루 픽(5895미터)로 올라가는 마지막 등정길에서 그는 고소증으로 거의 실신상태였다. 무거운 카메라가 그의 목에 여러 개 매달려 있었다. 그는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그 자신이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상까지 오르는 인간실존의 감동을 카메라로 담아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길고도 험한 여로에서 인간 우의의 진실하고 따뜻한 휴머니티를 통해 모든 일행과 ‘은혜’를 주고받는 진정한 ‘아라한’이었을뿐만 아니라, 남다른 집념과 열정으로 카메라를 한 순간도 놓지 않았던 속 뜨거운 ‘장인’이었다. 여기 모인 그의 사진작품들은 그러므로 단순히 ‘작품’에 머물지 않고, 인간승리의 기록이자 그 한계를 뛰어넘는 꿈의 표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킬리만자로에서, 양종훈교수는 사람으로서의 ‘아라한’이었고 동시에 사진가로서의 ‘아라한’이었다.


상명대학교 개요
상명대학교는 70년의 오랜 역사 속에서 진리, 정의, 사랑을 바탕으로 시대가 요구하는 조화로운 인격함양과 미래지향적이고 창의적이며 실용적인 유능한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 우수한 교수진을 중심으로 시대와 사회에 부응하는 새로운 학문 창출과 선도적인 연구에 최선을 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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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종훈 교수 011-9793-3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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