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대, 정시모집 논술고사 실시
건국대는 다산 정약용의 편지 글과 헤르만 헤세의 소설 작품 <유리알 유희>에서 발췌한 지문을 대상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을 분석하고 자신의 가치관에 입각하여 그 의의와 문제점을 논술하라는 문제를 출제하였다.
건국대가 제시한 다산의 편지는 다산이 유배지에서 자녀에게 보낸 글 가운데 하나로, 얼핏 ‘도시 한복판에 살면서 가문회복의 기회를 엿보라’는 명리적 사고를 담은 것처럼 보이지만 기실은 현실이 어렵고 험난하더라도 세상의 중심에 서서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삶을 취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에 대해 헤세의 <유리알 유희> 지문은 일견 현실도피의 삶을 그린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현실적 조건이나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 자신과의 본원적 대면을 통해 존재의 본질을 발견하고 실현하는 삶을 지향하고 있는 내용이다. 두 지문의 핵심을 잘 분석해내고 소신껏 논증을 전개하여 창조적이고 유효한 결론을 이끌어낸 답안을 요구하는 문제라 할 수 있다.
건국대 한성일 입학처장은 “이번 논술에서는 대학 논술고사의 본래 취지를 반영하여 학생들이 충분히 읽고 소화할 만한 동서양의 고전 지문을 바탕으로 출제하였다. 필요 이상으로 어려운 지문을 과다하게 제시하지 않고 고등학교 교과과정을 충실히 이수한 학생들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만한 내용이면서,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과 관련하여 의미 있는 시사점을 던져주는 지문을 출제했다”고 말했다.
또 논술고사 평가에 대해서 그는 “학생들이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설득력 있게 견주어 논했는지를 평가하게 될 것이며 본질적 요소를 짚어낸 깊이 있는 분석에 이어 삶에 대한 통찰력에 바탕을 둔 소신 있고 창조적인 견해를 제시한 답안이 높은 평가를 받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2006학년도 건국대학교 정시모집 논술고사 문제
아래 두 지문에 제시된 삶의 방식을 견주어 분석하고 그 의의 또는 문제점에 대하여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시오.
<가>
무릇 사대부 집안의 법도는 벼슬길에 높이 올라 권세를 날릴 때에는 빨리 산비탈에 셋집을 내어 살면서 처사(處士)로서의 본색을 잃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만약 벼슬길이 끊어지면 빨리 서울 가까이 살면서 문화(文華)의 안목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
지금 내가 죄인이 되어 너희들에게 아직은 시골에 숨어서 살게 하였다만, 앞으로의 계획인즉 오직 서울의 십리 안에서만 살게 하겠다. 만약 집안의 힘이 쇠락하여 서울 한복판으로 깊이 들어갈 수 없다면 잠시 서울 근교에 살면서 과일과 채소를 심어 생활을 유지하다가 재산이 조금 불어나면 바로 도시 복판으로 들어가도 늦지는 않다.
화와 복의 이치에 대하여 옛날 사람들도 오래도록 의심해 왔다. 충과 효를 한다 해서 꼭 화를 면하는 것도 아니고 방종하여 음란한 짓을 하는 사람이라고 꼭 박복하지만은 않다. 그러나 착한 행동을 하는 것은 복을 받을 수 있는 당연한 길이므로 군자는 애써 착하게 살아갈 뿐이다. 옛날부터 화를 당한 집안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반드시 먼 곳으로 도망가 살면서도 더 멀고 깊은 곳으로 들어가지 못했음을 걱정하곤 했다. 그리 하면 마침내 노루나 산토끼처럼 문명에서 멀어진 무지렁이들이 돼버릴 뿐이다.
무릇 부하고 귀한 권세 있는 집안은 눈썹을 태울 정도의 급박한 재난을 당하여도 느긋하게 걱정 없이 지내지만, 재난당할 것을 두려워하여 먼 시골 깊은 산속에 들어가 사는 몰락하여 버림받은 집안은 겉으로는 태평이 넘쳐흐르는 듯하지만 마음속에는 항상 근심을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간다는 말이 있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 대개 그늘진 벼랑 깊숙한 골짜기에서는 햇볕을 볼 수가 없고 함께 어울려 지내는 사람은 모두 버림받은 쓸모없는 사람이라 원망하는 마음만 가득하기 때문에 그들이 가진 견문이란 실속 없고 비루한 이야기뿐이다. 그러하기 때문에 한번 멀리 떠나면 영영 다시 돌아오지 않게 된다.
진정으로 바라노니, 너희들은 항상 심기를 화평하게 하여 벼슬길에 있는 사람들과 다르게 생활하지 말거라. 자손 대에 이르러서는 과거에 응시할 수 있고 나라를 경륜하고 세상을 구제하는 일에 뜻을 두도록 해라. 천리(天理)는 돌고 도는 것이니 한번 넘어진 사람이라서 반드시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하루아침의 분노를 이기지 못하여 서둘러 먼 시골로 이사가 버린다면 무식하고 천한 백성으로 일생을 끝마치고 말 뿐이다.
- 다산 정약용의 편지에서
<나>
어둠 속에서 짐승이 울부짖고, 수다스런 원숭이가 떠들썩하게 속세를 나무라고 있었다. 다사는 벌꿀을 찾는 일을 잊고 말았다. 호화롭게 깃털에 윤기가 반들반들 흐르는 몇 마리의 작은 새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자니까, 마치 작은 밀림처럼 우거진 고사리 덤불 사이에 난 발자국이 그의 눈에 띄었다. 아주 작은 오솔길이었다.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스럽게 헤치고 그 오솔길을 더듬어 가자니까 가지가 많은 나무 아래 조그만 움막 한 채가 보였다. 뾰족한 천막으로 고사리 덤불을 엮어서 만든 것이었다. 움막 옆의 땅바닥에서 한 사내가 몸을 바로 세우고 부동자세로 앉아서 가부좌한 다리 사이에 두 손을 가만히 올려놓고 있었다. 흰 머리칼과 넓은 이마 아래는 침착하면서 생기 없는 눈이 땅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눈을 뜨고는 있으나 자기의 내면을 성찰하는 눈이었다.
(중략)
나무는 가지와 잎으로 호흡하면서 움직이지만 요가 수도자는 미동도 하지 않고, 신들의 조각처럼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를 본 순간부터 소년도 움직이지 않고, 땅에 박힌 듯이, 사슬에 묶인 듯이 가만히 서서 마법에 홀린 듯 이 광경에 취해 있었다. 그는 선 채로 수도자를 바라보며, 햇빛 한 조각이 어깨에도, 쉬고 있는 두 손에도 비치는 것을 보았다. 그렇게 선 채로 감탄하는 동안에 햇빛도, 숲에서 들리는 새의 지저귐도, 원숭이 소리도, 명상자의 얼굴로 다가와 살갗 냄새를 맡으며 볼 위를 조금 기어 다니다가 날아가고 날아오고 하는 갈색 꿀벌도, 숲의 다양한 생활도, 이 사람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는 것을 소년은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이들 모든 것은, 아름답든 흉하든, 사랑스럽든 공포감을 주든, 그 모든 것은 수도자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다사는 알았다. 비도 그에게 한기를 느끼게 하거나 불쾌하게 할 수 없으며, 불도 그를 태울 수가 없으리라.
(중략)
여기는 모든 것이 옛날 그대로였다. 이곳에는 세월의 흐름도, 살인도, 고통도 없었다. 이곳에서는 시간과 생활이 수정처럼 견고하고, 멈춰 있고, 영원한 것처럼 보였다. 그는 수도자를 바라보았다. 첫눈에 보고 느끼던 감탄과 사랑과 존경이 그의 마음에 피어났다. 움막을 보고는 다음 장마철이 시작되기 전에 약간 고쳐야겠구나 하고 그는 생각하였다. 거기서 그는 겁 없이 몇 걸음 조심스럽게 걸어서 움막 안으로 들어가 안에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많지는 않았다. 거의 아무것도 없는 상태다. 나뭇잎으로 엮은 침대, 물이 조금 든 바가지, 텅 빈 삼베 자루 등이 있었다. 그는 자루를 들고 나와 숲속에서 요기할 것을 찾아, 과일과 달콤한 나무 속대 같은 것을 따오고, 바가지를 가지고 가서 샘물을 길어다 놓았다.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한 사람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물건만 있어도 되는 것이다. 다사는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서 몽상에 빠졌다. 그는 숲속의 아늑한 고요와 꿈과 자기 자신에 만족하였고, 청년 시절에 평화와 만족과 고향 같은 안락함을 느꼈던 이곳에 그를 되돌아오게 해준 마음의 소리에 감사하였다.
- 헤르만 헤세, <유리알 유희>에서
건국대학교 개요
독립운동의 맥동 속에서 태어난 당당한 민족사학 건국대학교는 1931년 상허 유석창 선생께서 의료제민(醫療濟民)의 기치 아래 민중병원을 창립한 이래, 성(誠) 신(信) 의(義) 교시를 바탕으로 ‘교육을 통한 나라 세우기’의 한 길을 걸어왔다. 서울특별시 광진구 능동로 서울캠퍼스와 충북 충주시 충원대로 GLOCAL(글로컬) 캠퍼스에 22개 단과대학과 대학원, 4개 전문대학원(건축전문대학원, 법학전문대학원, 경영전문대학원, 의학전문대학원), 10개 특수대학원을 운영하며 교육과 연구, 봉사에 전념하고 있다. 건국대는 ‘미래를 위한 도약, 세계를 향한 비상’이란 캐치프레이즈 하에 새로운 비전인 ‘르네상스 건국 2031’을 수립, 2031년까지 세계 100대 대학으로 도약하는 것을 목표로 ‘신지식 경제사회를 선도하는 글로벌 창의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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