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경제연구원 ‘아시아 국가들 미국채 팔기 시작했나’
1980년대 이후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를 통해 해외로 빠져나갔던 돈들이 자본수지 흑자를 통해 다시 미국으로 유입되는 추세가 계속 이어지고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의 자본수지 흑자 급증은 미국의 재정적자 확대와 밀접한 관계에 있다. 재정이 악화된 미국정부가 모자란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대규모로 국채를 발행하고 이를 외국인들이 대거 매입하면서 미국의자본수지 흑자가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이5,817억 달러의 자본수지 흑자를 기록한 2004년채권 또는 주식 거래를 통한 포트폴리오투자수지에서만 6,603억 달러의 흑자가 발생했다. 특히,외국인들의 미국채 순매입액은 3,521억 달러로미국 전체 자본수지 흑자의 61%에 달했다. 특히, 미국채 시장에 있어서 일본, 중국, 한국 등 아시아 주요국이 차지하는 중요성은 매우크다.
미국채를 보유 중인 10대 해외 주체에 일본, 중국, 대만, 한국, 홍콩 등 무려 5개의 아시아 국가가 포함되어있다. 이들 5개국의 미국채 보유액은 2005년 9월말 기준으로 외국인이 보유 중인 미국채의 54.3%, 민간부문이 보유 중인 미국채의 29%에 달한다. 아시아 국가들이 이처럼 막대한 규모의 미국채를 보유하게 된 원인으로는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와 함께 경직적인 환율정책이 지적되고있다. 즉, 자국 통화의 절상 속도를 조절하기 위해 외환시장에서 대거 달러화를 매입한 결과,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외환보유액을 운용하는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유동성이 풍부한 미국채 매입이 급증했다는 것이다. 결국, 아시아 국가들은 미국과의 무역을 통해 벌어들인 막대한 자금을 미국채 매입이라는 방식으로 다시 미국에 빌려줌으로써‘글로벌 임밸런스’를 지탱하는 역할을 해 온셈이다.
가시화되는 아시아 국가들의 미국채포지션 축소
그러나 미국채 매입에 집중되던 아시아 국가들의 외화자산 운용 방식에 최근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중앙은행, 정부 등 공공기관을중심으로 미국채 보유 규모를 줄이거나 동결함으로써 미국채 포지션을 축소하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재무부 자료에 의하면 미국채의최대 보유국인 일본은 2005년 외환보유고가 24억 달러 증가했지만 미국채 보유액은 도리어 49억 달러 감소했다. 그 결과 외국인 보유 미국채 중 일본의 비중은 36.6%에서 31.5%로5.1%p나 하락했다.
홍콩과 싱가포르도 지난 한 해 동안 미국채 보유액을 각각 11억 달러와 30억 달러만큼 줄였다. 중국과 대만의 미국채 보유액은 2005년 한 해 동안 각각 338억 달러와 32억 달러 증가했다. 하지만 2004년에 외환보유고 증가액의 31%와 48%에 해당하는 미국채를 순매수했던것에 비해 2005년에는 외환보유고 증가액의 16%와 28%에 해당하는 미국채만을 순매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외환보유액 증가 규모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국채 매입 규모가 현저하게 줄었다. 이 같은 아시아 주요국들의 미국채 포지션축소 움직임은 중앙은행, 정부 등 공공기관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아시아 6개국의 미국채 보유비중이 6%p나 하락했던 2005년에 외국 공공기관의 미국채 순매입액도 2004년 2,011억 달러에서 612억 달러로 크게 줄어들었다. 아시아 국가들의 경우, 대부분의 미국채 매입이 외환보유고를 운용하는 중앙은행 또는 정부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점과 일맥상통하는 대목이다.
한국의 미국채 투자 편중 현상 지속
그러나 지난해 한국의 움직임은 여타 아시아 국가들과 상당한 차이점을 나타냈다. 한국은행은 2005년 한 해 동안 외환보유고가 113억 달러 늘어났다고 발표했다. 반면, 미국 재무부 자료에 의하면 연기금, 금융기관 등 민간부문까지 포함한 한국의 미국채 보유액은 115억 달러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즉, 지난해 주요 아시아 국가 중 한국만이 외환보유고 증가액보다 많은 미국채를 순매입했던 것으로 분석되었다. 이를 반영하듯 외국인 보유 미국채 중 여타 아시아 주요국들의 비중이 하락하거나 변화가 없었던데 반해 한국의 비중은 0.2%p 상승했다.
올해 초 원/달러 환율이 급락하는 가운데 한국의 외환보유액이 1월 한달 동안에만 65억 달러나 급증했음을 감안하면 한국의 미국채 보유액은 올해 들어서도 크게 늘어났을 가능성이 높다.
여타 아시아 국가들의 미국채 포지션 축소 움직임이 미달러화의 약세 전환 및 미국 경제의 둔화를 염두에 둔 사전대비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한국 외화자산의 미국채 투자 편중 현상은 우려되는 대목이다. 미달러화 및 미국채의 가치 하락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그 동안 강력한 달러화강세 요인이었던 미국의 금리 인상이 연내에 종결될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유로는 점진적으로 금리를 인상하고 일본 역시 기존의 제로 금리정책을 철회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해외 주요 투자은행들은 올해 1분기이후 미국과 유로의 금리 격차가 점차 축소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향후 중국 위안화가 추가 절상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달러화 약세 요인이다. 지난 3월 5일에도 저우 샤오촨 중국 인민은행 총재는현재 하루 0.3%로 제한되어 있는 위안화 환율의 변동 폭을 더욱 확대할 수 있다는 발언을 한 바있다.
늘어나는 재정 적자로 인해 미국 정부는 계속해서 국채를 대규모로 발행해야 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미국채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빠르게 늘어나던 아시아국가들의 외환보유액은 그동안 미국채의 가장 든든한 매수자금이었다. 하지만 최근 외환시장 직접 개입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점차 확산되면서 아시아 주요국의 외환보유고 증가 속도가 크게 둔화되고 있다. 실제로 2003년과 2004년 각각2,038억 달러와 1,710억 달러나 늘어났던 일본의 외환보유액은 2005년에 24억 달러밖에 늘어나지 않았다.
아시아 국가들뿐만 아니라 유럽등 다른 나라들 역시 외환보유고 구성을 미달러화에서 유로화, 엔화 등으로 더욱 다변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는 점도 미국채 가격의 하락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글로벌 리밸런스’가능성에 대비해야
한국 역시 여타 아시아 국가들처럼 미국과 교역상대국들의 대외거래 불균형이 조정되는 가운데 환율과 금리의 변동성이 확대되는‘글로벌 리밸런스(Global Rebalance)’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현재 미국 경제는‘글로벌 임밸런스’의 급격한조정을 촉발시킬 수 있는 많은 불안 요인들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높은 석유 의존도로 인해 유가 급등시 미국의 물가상승압력은 빠르게 높아질 전망이다.
인플레 우려 등으로 당초 예상보다 큰 폭으로 금리가 인상된다면 저금리에 기반하여 급등했던 부동산 가격의 급락 가능성도 고조될 전망이다. 시중금리 상승과 부동산 가격하락은 주택관련대출의 급증으로 취약해진 미국 가계의 소비를 급격히 위축시킬 수 있다. 베이비붐 세대의 본격적인 은퇴로 인한 재정지출 급증, 허리케인 카트리나와 같은 대규모 자연재해의 재발 등도 미국 경제에 충격을 줄 수 있다. 이들 모두는 미국의 소비 위축과 교역 상대국들의 경상수지 흑자감소, 미달러화와 미채권 가격하락과 같은 변화를 초래할 수있는 요인들이다.
아시아를 비롯한 대미 경상수지 흑자국들이 막대한 달러화 자산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미달러화와 미국채의 가격이 급락할 가능성이 적다는 견해도 있다. 만약 이들 국가들이 달러화 자산을 대거 매각할 경우, 미달러화와 미국채등의 가격 하락으로 자신들이 커다란 손실을 입게 되므로 스스로 달러화 자산의 가격 하락을 초래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미국경제의 불안 요인이 늘어나고 미달러화와 미국채의 가격 하락 압력이 점차 고조되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나라들이 지금까지와 같이 달러화 자산을 계속 사줄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은 과도한 낙관론으로 보인다.
아시아 국가들의 미국채 포지션 조정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급격한‘글로벌 리밸런스’를 촉발시킬 가능성은 아직 낮아 보인다. 그러나 우려되는 대목은 이미 아시아 주요국들이‘글로벌리밸런스’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리스크 관리를 강화하면서 구체적인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별다른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외환보유고 구성을 더욱 다변화하고 민간부문 금융자산 투자의 대상 및 지역을 다양화함으로써 미달러화의 평가 절하와 달러화 자산의 가격 하락으로 인한 리스크 확대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LG경제연구원 조영무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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