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와 마술사’ 흥미로운 캐스팅 비화
이미 <컵>에 비직업 배우들을 기용했던 키엔체 노르부 감독은 <나그네와 마술사>에서 또 한번의 모험을 시도했다. 전문 배우 대신 부탄의 평범한 사람들을 대거 캐스팅한 것이다. 모범 중학생에서부터 방송국 프로듀서에 이르기까지, 연기와는 담 쌓은 사람들이 카메라 앞에 설 수 밖에 없었던 일화를 여기 소개한다.
Case 1. 종교 행사 중에 캐스팅!
미국행을 간절히 꿈꾸는 돈덥 역의 티세왕 댄덥은 원래 부탄방송(BBS) 프로듀서 겸 리포터. 1999년에서 2000년까지 미국 UC 버클리에서 방송 저널리즘 석사과정을 밟은 인재다. <나그네와 마술사>와의 인연은 2001년 스탭으로 참여했던 한 종교행사가 빌미가 됐다. 25,000명의 사람들 가운데에서 그를 알아본 노르부 감독은 주저 없이 오디션을 제안했다는 후문이다. 티세왕 댄덥은 비직업 배우임에도 길 떠나는 자의 조급함과 촉망 받는 젊은이의 거만함(?)을 자연스럽게 소화, 영화의 절반을 완벽히 책임졌다.
Case 2. 학교 수업 듣다가 캐스팅!
돈덥의 마음을 사로잡는 소남 역의 소남 라모는 1988년생. 당시 중학생이었던 그녀는 반장을 했을 만큼 총명하고 예의 바른 학생이었다. 키엔체 노르부 감독은 그녀의 첫인상을 이렇게 회상한다. ‘입고 있던 초록색 의상마냥 레몬처럼 상큼했다.’ 소남 라모는 감독의 표현대로 영화 속에 상큼 청순한 기운을 제대로 불어넣었다.
Case 3. 비 오는 날, 전화 걸다 캐스팅!
매력적인 여성과 사랑에 빠지는 남성이기에 캐스팅이 더없이 까다로웠던 ‘타시’. 이 역할은 댄덥과 마찬가지로 BBS 프로듀서로 활동 중인 르하크파 도르지에게 돌아갔다. 캐스팅 당시 그는 비 오는 거리의 공중전화부스 안에 있었다고. 그를 알아본 캐스팅 디렉터는 단숨에 달려가 그의 손을 잡았다. 르하크파는 캐스팅 직전까지도 키엔체 노르부 감독의 존재를 몰랐다고 한다.
Case 4. 저녁파티에서 캐스팅!
순수함과 매혹적인 아름다움을 동시에 소유한 인물 ‘데키’ 역은 금융기관에서 일하고 있는 데키 양줌이 맡았다. 사촌 집에서 열린 저녁파티에 들렀다가 우연히 노르부 감독의 눈에 띄어 캐스팅됐다고. ‘괜찮은 여성들이 많았기 때문에 내가 캐스팅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밝힌 그녀는 진지한 자세로 연기에 임해 스탭들을 감동시켰다.
Case 5. 영어자막 작업하러 갔다가 캐스팅!
길 위의 승려 역은 진짜 스님처럼 보이는 소남 킹이 맡았다. 실제로 부탄학교의 조사원인 그는 <나그네와 마술사>의 영어자막을 죵카어로 번역하러 갔다가 배우로 낙점됐다. ‘키엔체 노르부 감독의 연출작업은 부탄영화산업에 있어 중대한 일이다’라고 밝힌 소남 킹은 ‘내셔널 필름 리뷰 보드’의 창립멤버이기도 하다. 그는 영화에서 현명한 승려를 코믹하고 자연스럽게 연기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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