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경제연구원 ‘한미 FTA가 화학산업에 미치는 영향’
본글에서는 한국화학산업의 교역특성 및 한미양국의 무역 구조를 분석하여 한미 FTA가 화학산업에 미치는영향을 점검하고, 그에 대한 시사점을 도출하고자 한다.
한국의 화학산업, 대미 무역수지 적자 30억 달러
2005년 기준 한국 화학산업의 교역 규모는 수출 253억달러, 수입 202억 달러로서 52억 달러의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했다. 같은 해 우리나라 총 무역수지 규모가 231억 달러였음을 감안한다면 화학산업의 무역수지 흑자는매우 큰 규모로 평가된다. 그러나 화학산업을 석유화학산업과 정밀화학산업으로 구분하여 무역수지를 보면 석유화학산업은 113억 달러의 흑자를, 정밀화학산업은 61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하였다.
자본집약적 대규모 장치산업인 석유화학산업의 경우 한국은 평균적으로 내수시장 규모 대비 50% 이상의 과잉설비를 보유, 글로벌 시장에서 중요한 수출국 중 하나로 활동하고 있다. 반면 기술집약적 소량다품종 사업인 정밀화학산업의 경우 높은 부가가치가 집약되어 있는 제품은 글로벌 메이저 기업들이 세계 시장을 과점하고 있고, 한국은 일부 원재료를 수입하여 가공, 내수시장에 공급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한편, 한국과 미국 화학산업의 무역을 보면 전체 화학산업의 무역과는 상당히 다른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과 미국의 화학산업은 2005년 기준 무역규모 57억달러로서 양국 전체 무역의 8%를 차지하고 있는데, 한국의 수출은 14억 달러, 미국으로부터 수입은 43억 달러로서 30억 달러에 가까운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더욱이 주력 수출산업 중의 하나인 석유화학산업도 미국과의 무역에서는 14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석유화학산업에서 무역수지 적자는한미간 교역제품의 성격(범용 vs. 기능성) 차이가 주 요인으로서, 유사한 제품군에서도 양국간 교역 제품의 평균단가는 상당한 격차를 나타내고 있다. 즉 2005년 기준 석유화학 제품의 미국산 평균 수입 단가는 톤당2,081 달러인데 반하여, 우리나라의 대미 평균 수출 단가는 톤당 1,455 달러로 1.5배의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수출입 단가 차이는 정밀화학산업에서는 1.8배로 격차가 더욱 커진다.
결국 기술격차가 상당히 존재한다고 평가되어 온 정밀화학 산업은 물론이고, 기술격차가 크지 않다고 평가되어 온 석유화학 산업에서도 한미간 제품 부가가치수준은 상당 부분 존재하고 그로 인해 무역수지 적자 폭이 확대되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미국산 화학제품, 한국 시장에서 일본과 중국에 점차 밀려
한편 한국 화학산업의 무역은 중국과 일본, 미국 3개국과의 거래가 전체의 61%를 점유한다. 이때 중국에 대해서는 비교우위의 수출 포지션 (무역수지 흑자103억불), 일본과 미국에 대해서는 비교열위의 수입 포지션이라고 양분할 수 있다. 국가간 무역특화지수를 사용하여 분석할 경우, 2006년 한국 화학산업에 대한 미국의 무역특화지수는0.50, 일본은 0.60인 반면 중국은 -0.69로 분명한 대조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최근 무역특화지수의 변화방향을 보면 미국은 하락세, 일본은 높은 수준 지속, 중국은 완만하게 상승하고 있음이 나타난다. 미국 무역특화지수의 하락은 미국 석유화학산업의 원료인 천연가스 가격 상승으로 가격경쟁력이 약화됨과 동시에, 아시아 시장의 경쟁격화로 한국산제품이 미국 수출을 적극 추진한 결과로 풀이된다. 일본 화학산업의 경우에는 정밀화학 산업 중에서도 반도체 재료나 디스플레이 재료 부문의 빠른 상업화능력과 기술경쟁력 우위를 바탕으로 비교우위 수준을 안정되게 수성하고, 향후에도 우위가 상당기간 유지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중국의 화학산업은 기술 습득이 용이한 제품들을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이러한 양상은 일부 범용 석유화학제품(PVC, 아크릴)에서도 나타나지만, 자본부담이 작고 노동집약적 성격의 정밀화학 가공산업 영역에서 두드러지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산 정밀화학제품의 한국 수입시장 점유율은 ’97년 7%에서 ’06년에는 14%까지 상승, 국내시장에서 새로운 경쟁자로 부상하고 있다.
한미 FTA, 한국 화학산업에 긍정적 영향 가능성 높아
한미FTA가 한국 화학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산업 내부의 세부 업종을 구분하고, 각 업종별로 기술경쟁력, 경쟁현황, 가공/수요산업 현황 등을 고려하여 구체적인 영향 정도를 파악하고자 한다.
우선 화학산업 내부의 업종을 크게 석유화학과 정밀화학, 그리고 첨단소재로 구분할 수 있다. 이때 첨단소재를 과거의 정밀화학과 구분하는 이유는, 미국과의 기술경쟁력 격차나 내수시장 및 최종 수요산업의 성격등이 과거 정밀화학과는 상당한 차이가 존재하는 것에 기인한다. 첨단소재로는 상업화가 상당부분 진행된 정보전자 소재(반도체, 디스플레이, 포터블 전지 등에 사용되는 재료)가 대표적이고 대체에너지나 환경, 의학용재료 등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 석유화학, 장기적으로 고부가가치화와 수요시장 확대→ 다소 긍정적
한미 FTA가 석유화학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단기적으로 중립, 장기적으로는 다소 긍정적이라고 생각된다. 단기적으로 중립인 이유는 한국 석유화학산업의 경우 미국기업과의 기술력 격차가 크지 않고, 글로벌 시장을 대상으로 경쟁하고 있어 미국 내수시장 공략이나 국내시장방어가 중요한 의미를 가지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양국모두 전체적으로 내수시장 이상의 생산능력을 보유하고 있고, 고유가/고천연가스 가격이 고착화 되어 경쟁력이 약화된 상황에서 톤당 100 달러(제품가격은 1,000~1,500 달러) 수준의 해상운임을 극복할 수 있는 품목은 매우 제한적이다. 다만 일부 기능성 소재에서 틈새시장을 대상으로 교역이 이루어지는 상황으로, 양국모두 주 경쟁상대인 일본기업에 비하여 관세 면제에 따른 가격 경쟁력이 향상된다면 교역규모 증대와 함께 약간의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메리트는 될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한국 석유화학산업의 고부가가치화를 유인하는 자극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FTA의 효과에서 기술격차가 크지 않을 경우, FTA는 시장을 확대하고 내수시장의 보호장벽을 낮춤으로써 경쟁 촉발과 기술 격차를 좁히는 데 기여한다. 석유화학의 기능성소재사업이 이러한 영역으로, 현재 대부분 기업이 추구하는 사업 방향과도 일치하기 때문에 산업의 고부가가치화에 긍정적 측면이 존재한다고 생각된다.
한편 수요산업 측면에서는 단기적으로 섬유/잡화부문, 장기적으로는 자동차와 전자부문의 수요 증대를 기대해 볼 수 있으나 큰 효과가 나타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섬유는 관세인하 효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다양한 방법(무역구제, 원산지 규정 등)을 동원한 자국산업 보호 의지가 강력해서 시장확대가 제한적이고, 전자와 자동차는 저관세 품목이므로 관세인하 효과가 미미할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이 내용은 협상과정에서 양국 모두 민감하게 생각하는 이슈로, 협상결과에 따라 영향력의 방향과 크기가 보다 구체화 될 것이다.
● 정밀화학, 가공사업의 원가부담 개선 vs. 성장기회축소 → 다소 부정적
한미 FTA가 정밀화학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성장기회의 위축이라는 측면에서 다소 부정적으로 평가된다. 우리나라 정밀화학산업의 성장이 뒤쳐진 이유는 단일 품목에서 내수시장 규모가 너무 작고,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기에는 후발기업의 기술 및 마케팅력 격차를 극복하지 못한 것에 기인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요 공급국인 미국에 대한 관세마저 철폐된다면, 내수시장 기반의 성장 기회는 더욱 축소될 것이다. 더욱이 미국기업의 투자기회가 확대 되더라도 고부가가치 원재료 부문은 자국에서 생산하고, 국내에는 단순가공 사업 수준의 투자에 머물 가능성이 높아 투자유치 측면에서도 큰 메리트가 없는 상황이다.
반면 정밀화학 원재료에서 성장의 한계를 기정 사실로 받아들인다면, 가공기업 입장에서는 오히려 기회측면이 부각될 수도 있다. 원재료 구매에서 관세가 철폐되면 당장의 수입원가 부담이 감소되는 동시에, 미/일간 경쟁구도에서 원재료 조달 옵션이 확대되는 효과를기대할 수 있다. 특히 정밀화학 가공제품에서 중국 기업과의 경쟁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일정 관세의 수입 원재료를 사용하는 중국기업에 비해 상대적인 가격경쟁력강화 효과를 기대해 볼 수 있다.
이처럼 한미 FTA가 정밀화학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상반되는 성격이 공존하고 있어 긍정과 부정을 단정하기 어렵지만, 장기적인 산업 구조 측면에서는 부정적 영향이 클 것으로 평가된다.
● 첨단소재, 기술/자본 교류 활성화로 성장기회 확대가능 → 다소 긍정적
한미 FTA가 첨단소재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긍정적 측면이 우세한 것으로 평가된다. 여기에서는 첨단소재 산업 중 상업화가 가장 빠르게 진전되고 있는 정보전자 소재 산업을 기준으로 생각해 보고자 한다.
한국의 정보전자 소재 산업은 가공기술 중심으로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가 크지 않고, 국내 수요산업이 국제경쟁력을 보유하면서 안정적 성장기반이 될 만큼의 규모를 확보하고 있는 등 비교적 매력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다. 한편 미국의 정보전자 소재 산업은 코닝이나Merck, 3M 등 일부 기업을 제외하고는 규모와 응용/상업화 기술 측면에서 일본기업보다 비교열위에 놓여 있다. 미국은 메이저 화학기업들이 의약/농화학 등 전통적 정밀화학사업 중심의 사업구조를 보유하고 있어, 뛰어난 원천기술 능력에도 불구하고 정보전자 소재는 후발자의 위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미국의 수요산업도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이 강하지 않아, 성장을 위해서는 아시아시장 진출이 필수적인 상황이다. 이에 따라 상당수 미국 기업들은 일본이나 한국, 대만 등지에서 현지 생산거점이나 다양한 형태의 제휴를 체결했고, 시장의 다이나믹한 변화를 고려할 때 이러한 진출형태는 향후에도 유지될 것으로 전망된다.
결국 한미 FTA를 통해서 한국 정보전자 소재 산업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은 한국의 고급 노동력과 수요기반, 미국의 원천기술이 상호 교류되어 관련 기술이 한단계 업그레이드 되는 것이라 생각된다. 물론 한미 FTA가 이러한 교류에 얼마만큼의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나 금번 한미 FTA 협상 내용에 BIT(양자간투자자유화협정)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 상호 기술/자본 투자여건 개선에 긍정적 영향을 기대할 수 있다. 또한 상대국에서 생산한 소재/부품을 자국으로 들여올 때 무관세 혜택을 받게 되는 점, 지적재산권 시스템의 정비를 통해 기술 교류 및 이전의 안전성 강화 등의 요소도 FTA를 통해 상호 교류를 증대시킬 수 있는 긍정적 요인이라 생각된다.
일부에서는 관세가 철폐될 경우 미국산 고부가가치 정보전자 소재/부품의 한국시장 수입증가를 우려하기도 한다. 그러나 ▲ 동 산업에서는 특정 소재를 제외하고는 일본기업의 시장지배가 막강하여 미국산 수입에 대한 우려가 크지 않고 ▲ 미국기업이 독점 공급하는 소재는 관세가 낮아짐으로써 국내 부품산업에 원가 이익을 줄 수 있어, 관세 철폐가 경쟁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분석된다.
첨단 소재 중 정보전자 소재 외에 대체에너지, 환경, 의학용 소재 등의 분야에서는 미국이 차별적 기술우위에 있어 한미 FTA를 통해 받는 영향은 다소간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분야도 관세효과가 크지 않고 기술/자본의 교류가 핵심 화두라는 점은 거의비슷하다.
기술역량 확보라는 대 명제에 맞춰 논의 되어야
한미 간의 교역규모를 고려할 때 한미 FTA가 화학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긍정적 요인이나 부정적 요인보다는 기회와 위협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즉 관세인하 효과로 얻어질 수출입 증대 효과가 아니라 고부가가치 소재/부품 산업에 기술역량을 확보하는 과제에 기회가 되느냐, 위협이 되느냐의 문제가 핵심이라는 것이다.
특히 이와 관련하여 첨단 소재로 분류한 정보전자소재 및 에너지/환경/의학 소재 등은 산업 발전 단계상현 시점이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기술 진보 및시장 성장이 빠른 속도로 진행 중에 있고, 한국 기업들의 육성의지가 어느 때보다 강하게 분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현 시점에서 선진 원천 기술을 얼마만큼 흡수 하는가에 따라 한국 화학산업이 세계 첨단 소재 산업의 메이저 그룹에 동참할지, 아니면 근본적인 기술격차를 극복하지 못한 단순 가공 산업국에 머물지가 결정될 것이다.
한미 FTA 협상 과정에서 우리 정부와 업계가 중점적으로 고민하기를 바라는 내용도 이것이다. 한미 FTA에 어떠한 내용이 포함되어야 선진기술 확보에 보다 유리한 환경을 조성할 수 있는지, 각국의 선례와 현재의투자/기술 교류 장벽을 집중적으로 점검하여 협상내용에 담아야 할 것이다. 또한 이러한 정부의 노력이 실효성이 있고 그 내용이 기업과 국민들에게 합리적으로 홍보된다면, 한미 FTA에 대한 논의과정이 지금보다는 보다 건설적이고 효율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정부와 관련 연구기관, 업계의 보다 심층적인 연구분석과 활발한 논의가 절실한 때이다.....경제연구원 임지수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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