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는 2006.7.18(화) 14:30 대회의실에서 키르키즈스탄, 중국에서 살고 있던 독립유공자 후손들 중 대한민국 국적을 신청하여 취득하게 된 후손들이 앞으로 독립유공자의 후손이라는 자부심과 함께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자긍심을 갖고 국내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귀화증서를 법무부장관이 직접 수여하는 행사를 가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귀화증서 수여식은 천정배 법무부장관, 김희옥 차관, 법무부 실·국장, 김삼열 독립유공자유족회장이 참석한 가운데 구한말 의병대장 왕산 허위 선생의 손자 허게오르기(키르키즈스탄 국적)등 33명의 독립유공자 후손들에게 귀화증서가 수여될 것이다.
이번에 귀화허가를 받은 독립유공자 후손들은 과거 일제에 침탈당한 국권을 회복하기 위하여 국내외에서 의병활동, 3·1운동, 임시정부 활동 등으로 헌신하였던 독립유공자들의 후손들로서 오랫동안 이역만리 키르키즈스탄, 중국에서 조국에 대한 향수를 달래며 살고 있다가 최근에 독립유공자의 후손 자격으로 국적신청을 하여 국적법에 따라 국적취득이 허가된 분들이다.
천정배 법무부장관은 축사를 통해 일제의 국권침탈 전후에 국권회복을 위해 민족자존의 기치를 드높였던 독립유공자들의 위업을 기리고 그 동안 외국인의 신분으로 불편하게 생활해온 점을 위로하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각자 종사하는 분야에서 국가발전에 이바지해 줄 것을 당부할 예정이다.
법무부는 향후에도 독립유공자 후손 등 대한민국에 특별한 공로가 있는 자, 일반귀화자 등에 대한 귀화증서 수여식을 가질 예정이다.
※ 이번에 귀화 허가증을 받은 독립유공자 후손 33명은 국적법 제7조 제1항 2호 규정에 근거, 외국적동포의 국적회복 등에 관한 업무처리지침 제9조 독립유공자 등에 대한 특례 규정에 따라 특별귀화 허가됨.
〔별첨1〕
독립유공자 활동사항
1. 허위 (왕산)
○ 생존기간 : 1854.4.1-1908.9.27
○ 활동내용
- 왕산(旺山) 허 위(許蔿)는 의병장으로 의병전쟁에 참여
- 1899년 영희전 참봉과 성균관 박사 제수
- 1904년 주차일본공사 수원(駐 箚日本公使 隨員), 중추원 의관(中樞院 議官), 정삼품 통정대부 (正三品 通政大夫), 평리원 수반 판사(平理院首班判事)를 거쳐 평리원 재판장(平理院裁判長) 역임
- 최익현(崔益鉉)·김학진(金鶴鎭)과 더불어 격문을 살포로 4개월 투옥됨
- 1907.4월 경기도 포천(抱川)·연천(漣川)·적성(積城)·삭녕(朔寧)·철원(鐵原)·양주(楊州) 등지를 거쳐 강화(江華)에서 의병활동
- 이인영(李麟榮)을 추대하여 총대장을 삼고, 허 위는 군사장(軍師長)
- 허 위는 군사장 겸 진동창의대장(鎭東倡義大將)으로서 경기도와 황해도의 의병을 이끔
- 1908.2월 허 위는 결사대를 인솔 서울진입을 시도하였으나, 일본의 방해로 공략 실패
- 임진강 유역으로 집결, 그 지역에서 활약하고 있던 의병부대와 합류
- 허 위를 총대장으로 삼아 의병 부대를 재정비 연합 의병 부대 발족
- 1908년 5월 박노천(朴魯天)·이기학(李基學) 등으로 하여금 태황제의 복위·외교권 회수·통감부 철거 등의 30개조에 달하는 한국민의 기본 요구조건을 통감부에 제출
- 1908년 5월 일본 헌병 40명에 의해 체포됨
- 1908년 9월 27일 51세를 일기로 서대문형무소의 교수대에서 순국
-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
2. 김규식
○ 생존기간 : 1880.8.27-1931.4.10
○ 활동내용
- 한말 육군 참위(參尉)로서 1907년 대한제국군이 해산 당하자 통분하여 철원에서 의병을 일으켜 수차에 걸쳐 일군을 대파하였으나 부상
- 1912년 3월 만주로 망명 1919년 8월에는 서 일(徐一)·김좌진(金佐鎭) 등과 함께 북로군정서를 조직하여 사단장으로서 무장항일 투쟁
- 북로군정서에서 왕청현(汪淸縣) 십리평(十里坪)에 세운 단기속성사관학교인 사관연성소의 교관으로서 김좌진·이장녕(李章寧)·이범석(李範奭)·김홍국(金洪國)·최상운(崔尙雲) 등과 함께 전력을 다하여 청년교육에 정진
- 1920년 10월에는 북로군정서의 제2연대(연대장 김좌진) 제1대대장으로서 전투에 참여
- 그는 총사령에 취임하여 참모총장 이장녕(李章寧)·여단장 이청천(李靑天)이하 3,500여명의 대부대를 이끌고 노령의 자유시(自由市)로 이동
- 상해 임시정부로부터 1922년 3월 3백명의 독립군이 추위와 식량난으로 어려움이 있다는 급보가 도착하자 그 구제에 노력
- 청산리 독립전쟁에서 명성을 날린 청년전략가 이범석(李範奭)을 맞이하여 1923년 5월에는 연길현 명월구(明月溝)에 고려혁명군(高麗革命軍)을 조직, 총사령에 선출되어 항일투쟁 계속
- 1925년에는 김좌진·김 혁(金赫) 등이 북구 영안현(北溝寧安縣)에서 민족주의 대표를 망라 신민부(新民府)를 조직하자 이에 가담
- 1926년에는 고려혁명당(高麗革命黨)이 동년 4월 5일 길림성 영남(領南)호텔에서 조직되자, 그 중앙위원으로 활동
- 장기적인 항일투쟁은 2세 국민교육밖에 없다고 판단한 그는 연길현(延吉縣)에 학교 설립
- 1931년4월10일 공산주의자로 전향한 동족인 최 악(崔岳)의 의해 피살됨
-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
3. 강기운
○ 생존기간 : 1897.4.24-1944.9.5
○ 활동내용
- 1920년 음력 4월 간도 화룡현(和龍縣)에서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에 가입하여 제1남부지방 경호부장(警護部長) 장성순(張成順) 휘하의 송언지회(松堰支會) 경호원(警護員)으로 활약
- 1920년 7월 말경에는 장성순 이하 함경준(咸京俊)·장여극(張汝極) 등의 동지들과 함께 화룡현 사대사(四對社) 증봉동(甑峰洞) 부근 야산에서 일제의 밀정 이덕선(李德善)을 처단
- 1920년 7월말 무렵에는 두만강을 건너와 회령군 화풍면(華豊面) 무심동(無心洞) 김형섭(金亨涉)의 집에서 동민들로부터 군자금 모금활동
- 1920년 8월 중순경에는 동료 고진홍(高鎭洪)·신언규(申彦奎) 등과 함께 사대사 증봉동 부근에서 일제 헌병 보조원을 지낸 것으로 믿어지던 남성률(南聖律)을 심문
- 1922년 4월 24일 밀정 단죄와 군자금 모집활동 일경에 체포, 경성복심법원에서 제령(制令) 제7호 위반 등으로 무기징역이 확정, 옥고를 치르다가 1933년 2월 7일 출옥
-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
4. 이 정
○ 생존기간 : 미상-1942
○ 활동내용
- 1919년 8월 서 일(徐一)·현천묵(玄天默)·김좌진(金佐鎭) 등이 중심이 되어 북간도에 조직한 북로군정서에 가담하여 막빈(幕賓, 비서)으로 활약
- 1920년 10월에는 청산리독립전쟁에 참가하여 일본군 격퇴
- 대한독립군단(大韓獨立軍團)의 일원으로 노령에 들어갔다가 자유시참변을 당하게 되자 김좌진(金佐鎭)을 따라 다시 만주로 탈출
- 1923년에는 만주지역의 독립운동단체들을 통합하기 위한 군사연합회의 준비회 가담하여 회장인 이범윤(李範允)을 보필
-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
5. 허 겸
○ 생존기간 : 1851.10.23-1939.10.21
○ 활동내용
- 허 겸은 의병대장 허 위(許蔿)의 형으로 1905년 을사조약(乙巳條約)이 늑결되자 반대상소를 올렸으며 적극 반대 의지를 관철하기 위하여 을사오적을 살해할 계획을 세우다가 일경에 탐지되어 체포
- 4백여 명을 규합하여 경기도 연천(漣川) 등지에서 의병활동
- 1912년에는 만주로 망명하여 김동삼(金東三)·유인식(柳寅植) 등과 함께 중어학원(中語學院)을 개설하여 한중 친선 및 한족의 이익을 도모하는 활동을 전개
- 합화현(哈化縣)에서 부민단(扶民團)을 조직하여 초대 단장에 취임, 이 단체는 남만주 일대에 이주한 개척농민의 자치기관으로서 애족(愛族)·구국운동 등의 사업을 전개하여 음으로 양으로 광복운동에 기여
-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
6. 손병헌
○ 생존기간 : 1890-1946.2
○ 활동내용
- 1921년 10월경 중국 망명 봉천성 환인현(桓仁縣) 지방에 중국 상해의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와 관련된 한교공회(韓僑公會)를 재건하여 총회장을 맡아 활동
- 1922년 8월 환인현 남구(南區) 마권자(馬圈子)에서 무장독립군인 통군부(統軍府) 등 8개 단체대표가 모여 통의부(統義府)를 조직하자 이에 가입하여 윤세용(尹世茸)·이장녕(李章寧) 등과 함께 참모부 참모로 임명되어 활동
- 1926년부터는 간도 용정(龍井)에서 대성(大成)중학교의 교사로 민족교육을 실시하며 후진양성에 힘씀
-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
7. 김도치
○ 생존기간 : 1874.8.8-1927.3.27
○ 활동내용
- 1919년 3월 19일 창수면 창수동(蒼水面蒼水洞)의 독립만세시위에 참가
-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 행진, 창수 경찰주재소 습격
- 건물을 파괴하고 기물과 서류를 파기한 후, 객사와 주임순사 고목이삼랑(高木伊三郞)의 숙소와 조선인 순사보 송상구(宋相九)·권찬규(權燦奎)의 비품 등을 파괴
- 1919년 7월 1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름
-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
8. 최 관
○ 생존기간 : 1900.-1980.5.10
○ 활동내용
- 만주에서 대종교(大倧敎) 활동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전개
- 1931년 봄 동지 3명과 함께 백초구 영사관(百草溝 領事館)에 체포되어 고문을 받은 후 교사생활을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통고를 받고 북만주 해림(海林)으로 이주
- 1934년 3월 9일 동경성에 경일시교당을 설립
- 1934년 동경성으로 이주하여 대종교인으로 독립운동을 전개
- 대종교는 1931년 만주사변이후 일제가 만주를 지배하게 되자 항일종교로 간주되어 그 활동이 크게 위축
- 1942년 동지 24명과 함께 체포되어 징역 8년을 받고 옥고를 치름
- 1946년 대종교 총본사가 서울로 귀환한 뒤에도 만주에 남아 영안현 고려인민회장, 신안진(新安鎭) 조선족 중학교 교장
-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
9. 남인상
○ 생존기간 : 1868.-1951.5.2
○ 활동내용
- 만주에서 독립운동 단체에 가입하여 활동
- 기독교 장로로 1905년 만주(滿洲)로 망명하여, 1910년 연길현(延吉縣) 와룡동(臥龍洞)에 민족학교인 창동학교(昌東學校)를 설립하고 교장으로서 민족교육을 실시
- 남인상은 연길현 용정(龍井)에서 재남북만주 조선민족대표 17인 중 1인으로 '조선독립선언서 포고문'을 발표
- 1919년 구춘선을 중심으로 조직된 북간도지역의 대표적인 민족운동단체인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의 성원으로 활동
- 남인상은 1920년 일본군의 간도출병시에는 각처로 피신하며 독립운동 군자금 모금활동
- 그 후 광복시까지 기독교 장로로 농업에 종사하다가 광복후에는 기독교 대표로 연변(延邊) 제1차 임시참의원(臨時參議員)을 지냄
-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
10. 한용발
○ 생존기간 : 1893.10.10-1976.8.28
○ 활동내용
- 1919년 4월 8일 독립만세 시위운동, 동리 민 50여명을 규합 시위를 벌이다가 일경에 체포
- 1919 5월 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름
-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
11. 이면직
○ 생존기간 : 1873.-1932
○ 활동내용
- 1919년 4월 8일 강원도 원주군(原州郡) 지정면(地正面) 보통리(普通里) 자갑촌(自甲村)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
- 1919년 3월이래 전국 각지에서 만세운동이 전개되고 있음을 전해 듣고, 그 취지에 찬동하여 향리에서 만세운동을 계획
- 1919년 4월 8일 지정면 보통리 자갑촌 뒤 동산(東山)에서 주민 10여 명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절규하면서 시위를 전개
- 1919년 8월 16일 일경에 체포되어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아 옥고를 치름
-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3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
법무부 개요
법무부는 법치 질서의 확립과 검찰, 인권 옹호, 교정, 보호관찰, 소년보호, 법령 자문과 해석, 출입국 및 체류외국인관리 등에 관한 정책수립과 운용을 책임지는 정부 부처이다. 조직은 기획조정실, 법무실, 검찰국, 범죄예방정책국, 인권국, 교정본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로 구성되어 있다. 소속기관으로 검찰청, 보호관찰소, 위치추적중앙관제센터, 소년원, 소년분류심사원, 청소년비행예방센터, 치료감호소, 지방교정청, 교도소, 구치소, 출입국관리사무소, 외국인보호소가 있다. 부산고검장,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를 역임한 황교안 장관이 법무부를 이끌고 있다.
웹사이트: http://www.moj.go.kr
연락처
법무부 출입국관리국 국적난민과장 차규근 031)478-5027 011-204-147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