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와이어)--과학기술부 산하 기초과학 전문연구기관인 고등과학원(원장 김만원, 金萬源) 수학부 황준묵, 오용근 두 교수가 한국인 최초로 국제수학자총회(International Congress of Mathematicians, 이하 ICM)에 강연자로 초청되는 영광을 안게 되었다.

오는 8월 22일부터 8월 30일까지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개최될 제16회 ICM은 1897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최초 개최된 이래, 1900년 프랑스 파리 총회 이후 매 4년마다 개최되며 1936년 노르웨이 오슬로 총회 때부터 수학분야의 노벨상인 필즈상을 수여하고 있다.

황준묵 교수는 이번 ICM에서 대수기하 및 복소기하학 분야를 강연하며, 오용근 교수는 기하학 분야를 강의한다. 황준묵 교수는 2006년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과 2001년 ‘한국과학상’을 수상하였고, 오용근 교수는 2000년 ‘젊은 과학자상’을 수상한 바 있다.

고등과학원 출신 연구원인 올레그 이마누빌로프(Oleg Yu. Emanouvilov) 교수도 이번 총회에 초청 강연자로 선정되었다. 올레그 교수는 2년간 고등과학원 수학부 연구원으로 재직하였고, 현재 미국 아이오와 주립대학(Iowa State University)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번 강연에서 생명체의 진화에 관한 미분방정식의 조정 및 관찰을 주제로 강의하게 된다.

ICM 강연 초청은 지난 4년 동안, 지정된 각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업적을 낸 학자에게 주어지므로 그 연구의 가치와 리더로서의 역할을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았다는 데서 그 의미가 크다. 이는 세계적인 기초 과학자를 양성하기 위해 설립된 고등과학원이 그동안 자율적이고 국제적인 연구 환경 속에서 우수한 연구활동을 수행해 온 것에 대한 결과이다. 또 이는 한국 수학계의 자긍심을 불러일으키고 특히 젊은 학자들에게 꿈과 희망을 불어 넣어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8월 26일 현지에서는 고등과학원, 대한수학회 공동주최로 “한국수학의 밤” 행사를 개최하여 고등과학원이 ICM에 세 명의 초청강연자를 배출해 낸 것을 기념할 예정이다. 한국의 수학자뿐만 아니라 ‘94년 ICM에서 필즈상을 수상한 고등과학원 석학교수 젤마노프(Efim I. Zelmanov) 교수를 비롯하여 외국 저명 수학자들도 참석할 예정이다.


<참고 1> 황준묵(黃準黙)

1963년 10월 28일 출생
1986.2: 서울대 물리학과 학사
1993.6: 미국 하버드 대학 수학과 박사
1993.8~1996.8: 미국 노틀담 대학 수학과 조교수
1996.9~1999.8.31: 서울대학교 수학과 조교수
1999.9.1~현재: 고등과학원 수학부 교수

<참고2> 오용근(吳龍根)

1961년 6월 1일 출생
1983: 서울대학교 수학과 학사
1988:미국 U.C. Berkeley 대학 박사
1988.9~1989.6.: 미국 수리과학연구소(MSRI)연구원
1989.9~1991.8: 미국 뉴욕 대학 조교수
1992.9.~1997.8: 미국 위스콘신 메디슨 대학 조교수
1997.9~2001.8: 미국 위스콘신 메디슨 대학 부교수
2001.9~2002.6: 미국 고등연구소(IAS) 연구원
2001.9~현재: 미국 위스콘신 메디슨 대학 교수
1998.8.1~현재: 고등과학원 수학부 교수I

<참고3> 올레그 이마누빌로프(Oleg Yu. Emanouvilov)

1986: 모스크바 대학 학사
1991: 모스크바 대학 박사
1993: 모스크바 Forest 대학 조교수
1995: 모스크바 Forest 대학 부교수
1996.11 서울대학교 글로벌분석연구센터 연구원
1996.12~1998.8 고등과학원 수학부 연구원
1999~현재: 미국 아이오와 주립대학 교수

<참고4>
국제수학자총회(International Congress of Mathematicians)

국제수학자총회(International Congress of Mathematicians, 이하 ICM)는 1897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최초로 개최된 이래 1900년 프랑스 파리 총회 이후 매 4년마다 개최되고 있으며 1936년 노르웨이 오슬로 총회 때부터 수학분야의 노벨상인 필즈상을 수여하고 있다.

오는 8월 22일부터 8월 30일까지 열리게 되는 제16회 ICM은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개최될 예정이며 개회식에서 필즈상이 수상된다. 4년 전인 2002년에는 중국 베이징에서 개최되었고, 장쩌민 국가주석이 개회식에 참석해 ICM에 대한 중국의 국가적 지지를 보여주었다. 개회식에서 필즈상 수상자가 발표되면 노벨상과 같이 전 세계 언론에 톱뉴스로 보도된다. 미국수학회는 ICM에서 출판물 전시회를 개최하여 많은 수학자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이번 총회에 강연자로 선정된 자랑스런 한국인은 고등과학원 수학부 오용근, 황준묵 두 교수와 마이크로소프트사의 김정한 교수이다. 오용근 교수는 2000년 젊은과학자상을 수상하였는데 그 연구성과는 “사교위상수학의 플로어 호몰로지 이론”에 있어 중요한 응용방법을 규명해 이에 대한 수학자들의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켰을 뿐 아니라 이를 통한 연구 활성화에 기폭제 역할을 한 업적이다. 오교수는 이번 국제수학자총회에서 기하학 분야를 강연한다.

황준묵 교수는 올해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을 수상하였는데 기하학에서 15년간 미해결 상태로 남아있던 공간사이의 변환에 관한 ‘라자스펠트 예상’을 증명했으며, 40여년간 미해결 과제였던 ‘변형불변성의 증명’을 완성한 업적이 크게 인정을 받은 것이다. 또한 황교수는 2001년에는 복소수를 이용해 좌표를 분석하는 기하학의 한 분야인 복소다양체에 대해 연구하던 중 이 분야에서 15년 동안 미해결 문제로 남아있던 ‘라자스펠트 예상’이 참임을 증명하는 데 성공해 한국과학상을 수상하였다. 황교수는 이번 총회에서 대수 및 복소기하학 분야를 강연한다.

또한 고등과학원 출신 연구원인 올레그 이마누빌로프(Oleg Yu. Emanouvilov) 교수도 이번 총회에 초청 연사로 선정되었다. 올레그 교수는 2년간 고등과학원 수학부 연구원으로 재직하였고, 현재 미국 아이오와 주립대학(Iowa State University)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번 강연에서 생명체의 진화에 관한 미분방정식의 조정 및 관찰하는 주제로 강의하게 된다.

현재 우리나라는 국제수학연맹(International Mathematics Union, 이하 수학연맹)의 참여국 중 총 5개의 그룹 중 최하위인 그룹 1을 겨우 면해 그룹 2에 속해 있고, 한 단계 상승하고자 하는 이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실현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나라 수학계의 오랜 숙원이었던 총회의 핵심분야에서 한국 최초로 초청강연자가 배출되어 국제수학연맹에서 그룹 3으로의 부상이 가능할 전망이다.

<참고5>
“한국 수학의 밤” 개최

대한민국 수학계의 경사스런 일을 축하하기 위해서 고등과학원과 대한수학회는 오용근, 황준묵 교수의 총회 강연 직후인 8월 26일 오후 6시부터 9시까지 “한국 수학의 밤”이란 제목으로 축하행사를 갖는다.

특히 이번 행사에는 일본수학회장, 중국수학회장을 비롯하여 현 프랑스 고등과학원 (Institut Hautes Etudes Scientifiques; IHES) 원장 장 피에르부르기뇽 교수, 전임 프랑스수학회장 미셸 왈트슈미트 교수, 고등과학원 석학교수이자 미국 샌디에고 대학 교수이자 94년 필즈상 수상자인 젤마노프 교수 등이 참석할 예정이다.

‘한국수학의 밤’ 행사는 수학자들의 최고 잔치인 국제수학자총회가 개최되는 현지에서 한국 수학자들의 초청 강연 직후 현지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에 그 의미가 있다.

행사 시작 후 10분 동안은 대한수학회 창립 60주년을 맞아 지난 60년간 한국 수학의 발자취 및 발전과정을 되돌아본다. 특히 최근에 한국수학자들의 연구업적이 질적, 양적으로 비약적으로 성장해왔음을 점검하고 확인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어서 이번 ICM에 두 명의 초청강연자를 배출해 낸 고등과학원의 홍보영상물 상영과 현황소개가 있을 예정이다.

<참고6>

“필즈상” 소개 및 수학의 노벨상 미포함 이유 - 고등과학원 수학부 명효철 교수

필즈상(Fields Medal)이란?

캐나다 출신의 수학자인 존 찰스 필즈에 의해 창시된 필즈상(Fields Medal)은 매 4년마다 개최되는 국제 수학자 총회(International Congress of Mathematicians : ICM)에서 지난 4년간 수학발전에 획기적인 업적을 남긴 수학자에게 수여되는 가장 영예로운 상으로서 수학의 노벨상이라고 할 수 있다. 각 ICM에서 수상자 수가 4명 이내로 국한되어 있으며 수상 당시 연령이 40세를 초과할 수 없다는 제약 때문에 필즈상은 노벨상보다 더 까다로운 상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창시자인 존 찰스 필즈는 캐나다의 토론토 대학에서 수학학사, 미국의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유럽에 건너가 당대의 유명 수학자들과의 교분을 통해 학문의 영역을 넓히게 되었다. 일생동안 절친한 친구이자 학문적 동반자인 미타그레플러를 만난 것도 바로 이때인데, 미타그레플러가 필즈의 향후 커리어에 많은 영향을 주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필즈는 1902년 다시 캐나다로 돌아와 그 후 30년간 토론토 대학의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수학에 상당한 업적을 남겼고, 여러 가지 명예상을 수여받았으며 캐나다의 학사원 임원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1924년 캐나다의 토론토에서 개최된 ICM의 추진위원회 회장직을 맡았던 필즈가 우수한 업적을 성취한 두 명의 수학자에게 매 ICM에서 금메달을 수여할 것을 제안하자, 이러한 제안이 곧 의결되었다. 필즈는 ICM을 위한 모금에 크게 성공하여 금메달을 위한 기초자금을 마련하였고, 그 후 자기 개인의 재산도 이 자금에 증여하였다. 필즈상은 현재와 특히 미래의 수학발전에 크게 공헌할 수학자에게 금메달이 수여되기를 바라는 필즈의 뜻에 따라 수상자의 연령을 40세 미만으로 제한하였다. 그 후 몇 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필즈가 세상을 떠난 지 4년 후인 1936년 노르웨이 오슬로의 ICM에서 첫 금메달이 “필즈상” 이라는 명칭으로 수여되었다. 사실 필즈상의 금메달에 새겨진 상은 필즈가 아니라 고대 희랍 수학자 아르키메데스의 상이다.

1936년 오슬로에서 개최된 ICM에서는 첫 필즈상이 하버드 대학의 알포스(L. V. Ahlfors)교수와 MIT의 더글러스(K. Douglas) 교수에게 수여되었고, 그 후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하여 1950년까지 ICM이 중단되었다. 1950-1962년 사이에 4차례의 ICM에서는 각 각 2명의 수학자에게 필즈상이 수여되었으며, 1966년 모스크바에서 개체된 ICM에서 처음으로 4명의 수학자까지 수여하기로 결정한 후 1974년에 2명, 1983년과 1986년에 각 각 3명, 2002년에 2명의 수상을 제외하고는 1998년 베를린의 ICM에 이르기까지 각 4명에게 필즈상이 수여되었다 (1982년 폴란드의 바르샤바에서 개최된 ICM은 폴란드의 국내 정치사정으로 인하여 1983년으로 연기되었음).

1936년부터 시작하여 2002년에 이르기까지 총 44명에게 필즈상이 수여되었으며, 국가별로는 미국이 단연 1위로 15명, 프랑스 8명, 러시아와 영국이 각각 6명, 일본 3명, 독일 2명, 중국, 이탈리아, 스웨덴, 벨기에가 각각 1명으로 되어 있다. 사실 현재 미국에 영주하고 있는 필즈상 수상자는 20명 이상에 달하며 이들 모두가 최우수 10개 대학에 분포되어 있다.

수상 당시 수상자의 연구업적은 근대 수학 발전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분야이며 대체로 순수 수학에 한하고 있다. 노벨 수상자의 평균연령이 60대인데 비하여, 필즈상 수상자는 평균연령이 인생의 가장 화려한 나이인 30대로서 이미 수학이라는 학문의 최고봉에 도달한 사람들이다. 특히 필즈상은 앞으로 장기간에 걸쳐 수학 발전에 기여함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노벨상보다 더 특유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대부분의 필즈상 수상자들은 수상 후 오랫동안 연구를 활발하게 계속하고 있으며 근래에 와서 급증하고 있는 수학의 자연과학, 기계공학, 사회과학 분야들에의 많은 응용의 원동력이 되는 수학 이론 발전에 선구적 역할을 하고 있다. 근래에 와서 자연과학의 발전추세가 보다 국제화됨에 따라 노벨상과 병행하여 필즈상의 일반 인식도 높아지고 있는 현상이다. 1996년까지 밀노(J. W. Milnor, 1962), 스매일(S. Smale 1966), 히로나카(H. Hironaka, 1970), 노비코브(S. P. Novikov, 1970), 야우(S.T.Yau, 1983), 모리(S. Mori, 1990), 젤마노프(E. Zelmanov, 1994)와 같은 필즈상 수상자들이 한국을 방문함으로써 한국에서도 필즈상의 인식을 높이는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괄호안은 수상년도)

특히 1994년 수상자 중의 한명인 에핌 젤마노프(Efim Zelmanov)는 위스콘신 대학 교수였으며 그 후 시카고 대학 교수와 예일 대학 교수를 거쳐 지금은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샌디에고 교수로 재직 중이며, 고등과학원의 수학부 석학교수이다. 그는 러시아 시베리아의 수도 노보시비르스크(Novosibirsk)에 있는 주립대학에서 1977년에 학부를 마치고 동대학에서 25세에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24세의 나이로 그 당시 대수학에서 반 세기 동안 미해결된 무한차원 특수 조르단(Jordan)대수의 존재성에 관한 문제를 복잡한 이론을 사용하여 해결함으로써 천재적인 수학자로 인정받았다. 그로부터 9년후 반세기 이상 미해결된 대수학의 군(Group)론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인 “제한된 번사이드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5년후 38세의 나이에 필즈상을 받았다. 이 문제는 1902년 영국의 수학자 번사이드(W. Burnside)가 제시한 문제로부터 유래한 것으로, 많은 수학자들이 해결하려고 노력한 문제이다. 따라서 표면적으로는 젤마노프의 필즈상 수상은 단일 업적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문제의 해결과정은 군론 이외의 많은 대수 이론을 필요로 했으며, 복잡한 이론 전개와 관련된 계산은 상상할 수 없는 단계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왜 노벨상에 수학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가?

알프레드 노벨(Alfred Nobel, 1833 - 96) 은 스웨덴 출신이지만, 생애의 대부분은 프랑스를 위시하여 유럽지역 내의 외국에서 보냈다. 따라서, 노벨의 사생활이나 유언에 대한 해석도 그가 살았던 나라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다. 프랑스와 미국인들에 의하면, 노벨이 그의 유언에 “노벨 수학상”을 포함하지 않는 것은 그가 당대의 유명한 수학자인 미타그레플러(Magnus G&ouml;sta Mittag-Leffler, 1946 - 1927)와 한 여인을 사이에 두고 삼각 관계에 있었던 것에 기인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스웨덴 측에서는 만일 노벨 수학상이 있었다면 그 당시 스웨덴의 대표적인 수학자였던 미타그레플러가 한림원으로 하여금 자기를 첫 수상자로 선정하게끔 영향력을 행사하리라는 것을 미리 알고 노벨이 수학을 유언에서 제외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노벨이 미타그레플러가 첫 수상자가 되는 것을 달갑지 않게 여긴 이유는 자신의 연적(戀適)이어서가 아니라 미타그레플러 때문에 보다 우수한 다른 수학자들이 불이익을 당할 것을 우려했을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노벨과 관련하여 세인의 입에 지금까지 오르내리고 있는 미타그레플러는 19세기 말엽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스웨덴의 최고 수학 권위자로 알려져 있으며, 왕성한 학회 활동으로 스웨던을 비롯한 유럽학회에서 주목을 받았던 인물이다. 그가 창간한 「수학동향(Acta Mathematica)」지는 1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수학계에서는 가장 권위있는 저널로 불려지고 있다. 또한 그는 소냐 코발레브스카야(Sonya Kovalevskaya)라는 여성을 유명한 수학자로 키우는데 큰 역할을 했으며, 지금의 스톡홀름대학으로 발전한 스톡홀름 호그스콜라(Stockholm's Hogskola)의 원장을 지냈다.

이처럼 화려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만일 노벨 수학상이 존재했다면 미타그레플러가 과연 첫 수상자로 지목될 수 있었을 지는 장담할 수 없다. 왜냐하면 유럽에는 이미 학문적으로 그를 앞선 뽀앙카레(H. Poincare, 1854 - 1912)와 힐버트(David Hilbert)등의 수학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스웨덴 학계에 로비를 가한다면 수상이 가능할 수도 있었을 것이나 그럴 경우 세계 최고를 지향하는 노벨상의 취지에 위배되었을 것인즉, 아마도 노벨이 미타그레플러를 의식했다면 다름 아닌 이와 같은 이유였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한편에서는 수학이 노벨상에서 제외된 것은 단순히 수학에 대한 노벨의 관심 부족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는 노벨의 유언을 집행하고 후에 노벨 재단의 책임자가 된 레그나 솔맨(Ragnar Sohlman)이 제공한 자료에 근거한 해석이다.
노벨은 인류의 행복에 기여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상을 제정하여 매년 그의 유산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상금을 주도록 유언하였다. 그 상은 물리, 화학, 의학, 문학, 그리고 평화의 다섯 분야에 주어졌는데, 이들은 모두 노벨이 생전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분야였다. 그 중 물리와 화학은 노벨 자신의 직업과 깊은 연관이 있었고 문학은 평소 노벨의 문학에 대한 조예를 반영하는 것이었으며, 평화상은 그의 이상주의와 「무기를 버려라(Lay Down Your Arms!)」라는 책의 저자인 베르타 폰 슈트너와의 우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발명가이자 기술자였던 노벨은 과학상 수상 대상자는 반드시 “발명이나 발견”을 통해 “실질적인 인류 복지”에 기여한 자(者)라야 된다고 명시하였는데, 그 당시 학문의 성격상 이론 위주인 수학을 실용성 있는 분야가 아닌 것으로 간주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물리 분야만 보더라도 이론보다는 실험 분야에서 훨씬 많은 수상자를 배출해 왔다.

이밖에도 노벨과 미타그레플러의 관계가 노벨 수학상의 부재와 무관하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여러 가지 설명들이 있다. 노벨은 스웨덴 한림원의 멤버였지만 스웨덴의 학자 사회와는 별로 교류가 없었던 사람이다. 그는 성 페테르스부르그에서 학교를 다녔고, 1863년 이후로는 거의 스웨덴을 떠나 있었다. 그리고 1870년대 중반에는 파리에 정착해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미타그레플러와 접촉이 거의 없었을 것이며 둘 사이에 어떠한 적대 감정이 존재했으리라고는 추측하기 어렵다. 오히려 미타그레플러는 노벨이 사망하기 몇 해 전부터 노벨 재산의 상당 몫을 호그스콜라의 기금으로 유치할 것을 추진해 왔다고 알려지고 있는데, 만일 두 사람 사이에 응어리가 있었다면 이것이 가능했을까.

노벨은 유언장을 두 번 작성했다. 세상을 떠나기 3년전 작성된 첫 번째 유언에 호그스콜라는 다른 대상들과 함께 상속에 포함되었는데, 이는 미타그레플러의 노력의 결실로 볼 수 있겠다. 비록 두 번째 유언에서 노벨이 유산의 전부를 노벨상에 기증함으로써 무산되기는 하였지만.

설혹 두 사람 사이에 개인적인 관계가 존재했다 하더라도, 노벨이 더할 나위 없이 숭고한 이념 하에 노벨상을 창설하는 마당에 사사로운 감정 때문에 상의 취지를 왜곡시키는 것은 스스로 용납했을 것으로는 보기 어렵다. 이를 감안할 때, “노벨상에 수학이 포함되지 않은 것은 수학에 대한 노벨의 관심 부족 때문이다” 라는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이런 점에서 프랑스와 미국에서 주장하는 “연적설(戀適設)”은 단지 흥미 본위의 해석으로밖에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미타그레플러는 노벨상에 수학이 제외된 것과 관련하여 수학계의 비난의 표적이 되어 왔다. 많은 수학자들이 노벨상에 수학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에 대해 불만이 있었고, 그때마다 노벨과 미타그레플러 간의 이야기가 거론되곤 했다. 하지만 현대 수학의 역사를 통해 볼 때 미타그레플러는 수학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필즈상의 창시자인 존 찰스 필즈(John Charles Fields, 1863 - 1932) 와의 다년간의 우정을 통해 이러한 수학계의 불만을 해소하는데 일조를 한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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