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TV 특집 다큐멘터리 ‘추사(追思) 만봉’
인간문화재 단청장 만봉스님(1909년생)이 5월 17일 0시 10분 홀연히 열반에 드셨다. 세수 96세, 법랍 80세. 80년간 하루도 붓을 놓지 않았던 스님의 삶은 한국불화의 역사이다.
스님의 탱화세계는 종교적 장엄미와 신선성, 예술적 가치면에서 뛰어나 ‘소리없는 법문’으로 평가받고 있다. 다큐멘터리 <추사만봉>에서는 탱화작가로서, 승려로서, 인간으로서 그의 짧지 않은 생애를 돌아본다.
전통과 현대의 맥을 잇는 스님의 탱화는 화려한 색상과 세밀한 인물묘사로 온갖 세상사의 희로애락을 담고 있다. 6세에 출가하여 8세부터 시작해 1972년 중요무형문화재 48호 단청-불화장으로 지정되었고, 자타가 공인하는 탱화 및 단청의 최고봉에 이른 스님은 국내외 유명 사찰과 고궁의 단청 작업 및 탱화를 제작하였다. 스님은 수많은 전시회를 통해 우리나라 전통문화의 우수성을 국내는 물론 세계에 알리는데도 힘써왔다.
스님의 마지막 가는 길은 다비식과 영산재 형식의 49제 같은 정통 불교 행사로 치뤄졌다.
탱화는 온 몸으로 그리는 그림. 화폭을 바닥에 놓은 채 그 위에 앉아 허리를 구부려 화폭과 몸을 밀착시켜 그려야 한다. 만봉은 100수를 바라보는 나이에 돋보기 하나 없이 바늘끝처럼 섬세한 선과 면을 모두 채워나간다.
80년 金魚(불화에서 최고 경지에 이른 사람)의 외길. 평생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새벽부터 밤늦도록 그려온 불화, 그 수는 스님 자신조차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스님 손을 떠나 전국 사찰에 봉안된 수많은 불화는 제각각 부처님 말씀을 전하고 있다.
스님은 중요 무형문화재 제48호 단청장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그동안 단청장(丹靑匠) 보유자가 불화까지 전승해왔으나 불화제작의 특성을 고려해 최근 불화장이 분리되었는데 스님은 단청장으로 남는 것을 선택했다.
스님은 20살이 못돼서 출가했는데 7세 때 김예운 스님 아래서 불화를 배우기 시작했다. 불화를 보는 것만으로 기쁜 마음이 들었다는 스님은 18세 때 불화에서 최고 경지에 이르렀다는‘금어(金魚)’ 칭호를 받았다. 전국의 사찰에 모신 불화뿐 아니라 단청도 남한산성, 경복궁, 경회루, 남대문, 종로 보신각 등 고건축의 단청도 맡아 했다. 스님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였다.
불보살을 그리는 과정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만봉스님은 보통 아침 다섯 시, 새벽 다섯 시, 일어나서 저녁 10시까지 꼬박 작업한다. 붓을 바른 자세로 같은 그림을 몇 천 장씩 그리는데 스님의 제자로 현재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이인섭씨는 초등과에 해당하는 시방초부터 사천왕상을 그리는 천왕초, 부처님을 그리는 여래초로 넘어가는데 각각 3천장씩 그려야 한다고 말한다.
승려로서의 만봉
97세의 고령에도 세필을 손수 그릴만큼 헌신적이었던 만봉스님에게 탱화제작은 수행 그 자체였다. 늘 정좌로 앉아서 하는 불화작업은 어묵동정을 실천하는 수행자의 고행과 별반 다르지 않다. 스님은 그저 주어진 그림만 더 잘 그리려 애쓰면서 살아왔고, 어떻게 하면 부처님을 더욱 신비하고 아름답고 숭엄하고 자비롭게 보이도록 그려낼 것인가를 자나 깨나 궁리하고 매진하는 것을 법문으로 여겼다.
인간으로서의 만봉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불모지만 그는“불화조성은 평생을 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작업”이라며 겸손해 했다. 또한 그는 후학 양성도 게을리 하지 않아 스님에게 사사한 수많은 작가들이 현재 단청과 탱화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 제자 중에는 미국인(2006년 한국으로 귀화) 브라이언 베리씨나도 있다.
특집 다큐멘터리 <추사(追思) 만봉>
9월 2일(토) 오후 8시(재방송 - 3일 02시, 16시)
웹사이트: http://www.arirangtv.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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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희 3475-50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