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공 토지박물관 호로고루(瓠蘆古壘) 2차발굴조사 현장설명회 개최
발굴조사 결과 석축성벽이 구축되기 전 고구려에 의한 목책(木柵)이 먼저 있었음을 확인하게 되었으며, 기와를 사용한 지상건축물을 비롯하여 지하식 벽체건물, 수혈유구 등 다양한 유구가 확인되었다.
유물은 6엽의 연화문와당, 절풍(折風)이라는 고구려 관모(冠帽)형태의 토제품을 비롯하여, 저울추, 삼족벼루(三足硯), 각종 철기류, 전돌, 기와, 토기 등 다양하게 출토되어 고구려의 생활문화 이해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게 되었다.
특히 연화문 와당이 출토되어 와당을 사용한 건축물의 존재와 함께 쌀과 조, 콩류가 포함된 다량의 탄화곡물과 소,말,개,사슴, 돼지 등 다양한 동물의 뼈가 출토되어 호로고루의 기능과 성격을 보다 분명하게 알 수 있게 된 점이 주목된다.
토지박물관 조사단은 2차 발굴조사를 통하여 호로고루성의 중심연대가 고구려임을 재확인하였으며, 백제토성을 고구려가 석축성으로 개축하였을 가능성에 대한 그 동안의 일부 주장을 바로잡는 명확한 근거를 제공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 조사목적과 1차 발굴조사 성과
호로고루는 임진강 북안(北岸)의 현무암 수직 절벽 위에 있는 삼각형의 강안평지성(江岸平地城)으로서 행정구역으로는 연천군 장남면 원당3리 1259번지 일대이다. 호로고루(瓠蘆古壘)라는 명칭은 고구려어로 성(城)이나 마을(谷)을 의미하는 홀(忽)에 오래된 성이라고 하는 고루(古壘)가 붙여진 것으로 추정되며 임진강을 직접 도하(渡河)할 수 있는 길목에 있어 삼국시대부터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로 이용된 곳이다.
호로고루는 1991년 문화재연구소의 지표조사에서 알려지게 되었으며, 1998년 토지박물관에 의한 정밀지표조사와 2001년 1차 발굴조사가 실시되어 구조와 성격이 확인되었다. 호로고루는 다른 지역에서는 유사사례를 찾기 어려운 독특한 입지와 역사적 중요성이 인정되어 2006년 1월 사적 제467호로 지정되었으며, 성내부와 외부의 21,768㎡가 문화재구역으로 보호되고 있다.
2001년 실시된 1차 발굴조사는 당시까지만 해도 성내부의 대부분이 사유지인 관계로 지상구조물인 동벽부분에 대해서만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조사결과 동벽은 기단부와 중심부는 점토와 마사토로 판축(版築)을 하고 성벽 내·외부는 석축(石築)을 하였음이 확인되었다. 이러한 형태의 축성기법은 토성의 장점과 내구성(耐久性)과 방어력을 높일 수 있는 석축성의 장점을 모두 취한 고구려의 뛰어난 축성기술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고구려 수도인 중국 집안의 국내성(國內城)과 평양의 대성산성(大城山城) 등에서도 확인된 고구려의 특징적인 축성기법으로 추정되고 있다.
■ 2차발굴조사 성과
1차 발굴조사 이후 2005년 성내부의 토지에 대한 매입이 완료되어 2차 발굴조사는 2005년 12월부터 2006년 9월까지 실시하게 되었다. 2차 발굴조사는 조사이후 방수천으로 덮어놓은 동벽에 대한 보강작업과 함께 성내부의 시굴조사 및 일부지역에 대한 발굴조사가 진행되었다.
성 내부에 대한 조사과정에서 동벽과는 별개로 목책(木柵)으로 추정되는 유구가 확인되었다. 목책은 동벽 내부의 기저부에서 2m 정도 거리를 유지하고 있으며, 주공(柱孔)의 간격은 170∼200cm를 유지하고 있다. 토층의 양상으로 볼때 목책은 석축성벽이 구축되기 전체 설치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목책과 동시기의 유구로는 장타원형의 수혈유구가 확인되었다.
목책이 있었던 시기에는 호로고루에 기와가 사용되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지게 되었으며, 이는 1차 발굴당시 동벽 내부의 판축토에서 출토되는 고구려토기편의 출처를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발굴조사는 고구려기와가 집중적으로 출토되는 지점을 중심으로 실시하였으며, 생토면에서 2m 정도 두께로 지반을 다지고 구축한 지상건축물이 확인되었다. 후대에 훼손이 심하여 기와를 얹은 지상건축물의 정확한 규모는 알 수 없지만 현무암 할석으로 직경 1m 내외의 적심을 놓고 초석을 올려놓은 것으로 확인되며, ┑자형의 온돌구조도 확인되었다. 건물의 정면칸은 210cm 내외 측면칸은 190cm 정도이며, 일부 적심에는 고구려기와를 사용되기도 한 것으로 보아 최종단계의 고구려 건물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 외에도 생토면을 2m 정도 깊이로 파고 내면에 돌을 쌓아서 벽체를 만든 길이 6m 정도의 방형건물지, 수혈유구와 우물로 추정되는 유구가 확인되었다. 그 외에도 시굴조사를 통하여 성내부에 고구려와 통일신라시기의 다양한 유구가 중첩되거나 혹은 단독적인 형태로 남아있음이 확인되었다.
출토유물은 고구려 기와가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고 있다. 지금까지 남한지역에서 확인된 고구려기와 출토유적은 대략 8개소 정도이나 그중 호로고루에서 가장 많고 당양한 기와가 출토되어 6-7세기의 고구려기와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할 수 있게 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우물 속에서 연화문 고구려와당이 한 점 출토되어 호로고루에도 와당이 사용된 건물이 있었음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지금까지 남한지역에서 고구려와당은 유일하게 홍련봉 1보루에서 출토된 바 있어 홍련봉 1보루가 한강유역 방어사령부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어왔다. 고구려는 551년 백제와 신라의 연합군에 의하여 한강유역을 상실하게 되었으며, 이후 고구려는 임진강을 중심으로 한 방어선을 구축하게 된다. 호로고루에서 출토된 와당은 호로고루가 당시 와당이 사용된 기와건물이 구축될 정도로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였음을 입증해 주는 결정적인 자료로 판단된다.
기와와 함께 다양한 형태의 토기류도 출토되었다. 특히 목책단계의 유물과 석축성벽 단계의 유물을 검토하게 되면 목책과 석축성벽단계의 유물의 변화양상이 밝혀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출토유물 중 특이한 유물로는 고구려 벽화고분에서 확인되는 절풍(折風)이라고 하는 고구려 관모형태의 토제품이 있다. 절풍은 고구려인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던 관모이며, 가운데 부분은 둥글고 아래쪽에는 끈을 연결하였던 구멍이 뚫려있다. 이 유물은 크기가 7cm 정도여서 실제 사용한 것이 아니라 실물을 축소하여 만든 것이지만 고구려벽화고분 등에서 표현된 절풍의 실제모습을 유추할 수 있는 유물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 외에도 다리 세 개가 부착되었던 도연(陶硯)의 형태는 원형이며 물을 담아두는 연지가 원형으로 만들어진 특이한 형태이다. 도연은 명문토기와 함께 이곳에 주둔하던 고구려군의 문자생활 수준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주는 중요한 자료로 판단된다.
명문(名文)이 있는 유물은 3점이 확인되었으며, 내용은 「咸(?)國 」, 다른 한점은 「八一低低低」등으로 판독되지만 정확한 의미는 아직 알 수 없는 상태이다.
그 외에도 저울추로 추정되는 유물 2점이 출토되어 고구려의 도량형과 관련된 중요한 정보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저울추의 무게는 각각 51g, 87g이다.
또한 벽체건물에서는 다량의 탄화곡물과 다양한 동물뼈가 출토되어 고구려군의 식생활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 주게 되었다. 탄화곡물은 창고에 저장되었던 것이 불에 탄 것으로 보이는데 쌀과 조와 함께 콩과 팥, 녹두 등으로 추정되는 다양한 콩류가 출토되어 호로고루에는 무등리보루에서 확인되지 않은 콩류가 제공되었음이 확인되었다.
또한 동물뼈에는 개, 말, 소, 돼지, 사슴 등 다양한 동물의 뼈가 포함되어 있다. 여러종류의 뼈가 함께 출토되는 상태나 뼈의 절단상태로 보아 이 동물들은 자연사 한 것이 아니라 식용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이번 조사의 책임조사원인 심광주팀장은 2차 발굴조사의 성과에 대하여 “호로고루의 동벽이 축조되기 전에 있었던 목책유구를 확인한 것이 가장 큰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호로고루의 축성 및 사용시기와 남한지역 고구려유적의 기능변화 양상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될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토지박물관 조사단은 지금까지 확인된 유구에 대한 마무리조사와 함께 조사지역에 대한 GPR(Ground Penetrating Radar) 측정 및 유구와 유물에 대한 3D SCAN, 목탄을 시료로 한 연대측정과 동물뼈, 탄화곡물 등에 대한 다양한 과학적 분석을 실시할 예정이다.
조사단장인 조유전 관장은 조사유적의 향후 조사계획에 대하여 “지금까지의 조사 성과만으로도 호로고루는 남한지역에서 확인된 가장 중요한 고구려 유적의 하나로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특히 이번조사에서 고구려와당이 발견된 것은 호로고루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직 모르는 것이 너무 많고 발굴해야 할 유구도 많이 남아있습니다. 향후 치밀한 조사계획을 수립하여 정밀조사를 실시하게 되면 우리 고대사의 미스테리를 많이 해결할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라며 계획적인 연차조사의 필요성을 피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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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처
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 팀장 심광주 011-778-5020, 정나리 031-738-7784
한국토지공사 공보팀 031-738-7654, 7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