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검정’ 9월의 서울시 문화재로 선정
세검정은 원래 연산군 6년∼11년(1500∼1505)경 탕춘대를 마련하고 유흥을 위한 수각(水閣)으로 세웠다고 하는데, 일설에는 숙종 때 북한산성을 수비하기 위하여 병영 총융청을 건립하고 이곳에 있는 군사들의 휴게시설로 세운 것이라고도 한다. 그후 영조 24년(1748) 중건하였으며 이때 세검정 현판을 달았다고 한다.
광해군 15년(1623) 이귀(李貴), 김류 등이 광해군의 폐위를 의논하고 이곳 사천(沙川, 모래내ㆍ홍제천) 맑은 물에서 칼을 씻었으므로 '세검정'이라 불렀다 한다. 원래 세검(洗劍)이란 칼을 씻어서 칼집에 넣고 태평성대를 맞이하게 되었다는 뜻으로 '세검정'은 인조반정을 의거로 평가하여 이를 찬미하는 상징적 의미를 가졌다.
조선시대에는 『왕조실록』이 완성된 뒤 이 곳 세검정에서 세초(洗草, 史草를 물에 씻어 흘려 버리는 일)하였으며, 장마철에 물이 불어나면 도성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물구경을 하였다고 한다.
세검정은 1941년 부근에 있던 종이공장의 화재로 소실되어 주춧돌만 하나 남아 있었는데 정선의 『세검정도』를 참고하여 1977년 5월에 복원하였다. 복원 당시 도시계획선에 저촉되어 원위치에서 홍제천 상류로 약 40m 이전하여 복원하기로 하였으나 원위치에서 주추 자리가 드러나게 되어 도시계획선을 변경하고 원위치에 복원하게 되었다.
복원된 세검정은 서남향을 하였는데, 자연암반을 기단으로 삼아 가운데 칸이 넓고 양 협칸이 좁은 정면 3칸, 측면 1칸에, 개천쪽 서남쪽으로 가운데 칸 1칸을 내밀어 '丁'자형 평면을 이루고 있다. 암반 위에 높이가 다른 10개의 4각 장초석을 세우고 그 위에 원기둥을 세우고 바닥에는 우물마루를 깔았으며, 둘레에는 '亞'자 난간을 돌렸다. 건물 북쪽 협칸에는 밖으로 계단을 설치하여 도로에서 오르내리도록 하였다. 기둥 사이에는 문을 설치하지 않고 개방되었으며,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형태이다.
세검정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도록 계획하여 배치한 점, 안정감을 느끼도록 설계하여 평면 구성을 한 점, 알맞은 부재의 크기를 사용하여 건물의 비례와 리듬을 살린 점에서 한국 건축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세검정”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듣고자 하는 시민을 위하여 매주 토요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현장에서 전문가의 해설을 실시한다(단, 우천시 취소. 현장방문을 희망하시는 분은 버스(0212번, 1020번, 110번, 170번 )를 이용하여 세검정에서 하차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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