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압지 출토 금동판불상 일괄’ 등 2건 보물 지정

대전--(뉴스와이어)--문화재청(청장 兪弘濬)은 9월 1일 「안압지 출토 금동판불상 일괄」(雁鴨池出土金銅板佛像一括, 보물 제1475호)과 「여주이씨 옥산문중 소장 유묵」(驪州李氏玉山門中所藏遺墨, 보물 제526-⑵호) 등 2건을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보물로 지정하였다.

이번에 지정된 「안압지 출토 금동판불상 일괄(10점)」은 경주 안압지에서 출토된 불상이다. 보통의 불상이 부조, 또는 환조로 제작하는 데 비하여 이 불상은 판판한 금속판을 뒤쪽에서 두드려 불상을 표현하여 불상면이 튀어나오도록 제작한 판불이다. 이 판불은 통일신라 시기인 7세기 때에 한·중·일 세 나라 불교조각이 서로 어떻게 영향을 주고 받았는가를 파악하는 데도 중요한 자료이다.

함께 지정된 「원조오잠」「여주이씨 옥산문중 소장 유묵」은 회재 이언적 선생 관련 유적인 독락당(경북 경주)에서 소장하고 있는 유물로서 조선 유학을 대표하는 퇴계 이황 선생이 쓴 글씨들이다.

독락당 소장 유묵 17점이 지정됨에 따라, 역시 독락당 소장 글씨 자료인 「해동명적」(海東名蹟, 보물 제526호)의 지정명칭을 「여주이씨 옥산문중 소장 유묵」(보물 제526호)으로 고치고, 「해동명적」은 제526-⑴호, 이번에 지정된 「원조오잠」과 「사산오대」 등 17점은 제526-⑵호로 지정번호를 부여하여 관리하도록 하였다.

국가지정 문화재(보물) 내용

□ 보물 제1475호 「안압지 출토 금동판불상 일괄」(雁鴨池出土金銅板佛像一括)
○ 수 량 : 일괄(10점)
○ 연 대 : 통일신라(7세기)
○ 규 격(높이×너비㎝)
- 삼존불상① : 27.0×20.0㎝
- 삼존불상② : 26.0×17.5㎝
- 보살좌상① : 23.0×16.5㎝
- 보살좌상② : 24.3×17.0㎝
- 보살좌상③ : 24.2×16.3㎝
- 보살좌상④ : 13.5×17.0㎝
- 보살좌상⑤ : 22.0×15.5㎝
- 보살좌상⑥ : 21.0×15.2㎝
- 보살좌상⑦ : 23.5×16.2㎝
- 보살좌상⑧ : 23.0×17.0㎝
○ 소 재 :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
○ 소 유 : 국유
○ 내용과 가치
안압지 출토의 삼존불상 등 판불상 10점은 조각수법이 우수하고 상들의 표현이 사실적이며 입체감이 두드러진다. 양식적으로는 7세기 말의 통일신라와 중국, 일본을 포함한 국제적인 조각양식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특히, 도상이나 양식면에서 일본 법륭사 헌납보물에 있는 판불들이나 법륭사 금당 서벽 아미타정토의 본존불상과도 비교된다. 둥글고 통통한 얼굴과 자연스러운 옷 주름 처리에 보이는 조각의 사실적인 표현은 중국 당(唐)시대 전성기 불상양식을 반영하면서도 7세기 후반 통일신라 불교조각의 뛰어난 표현력을 잘 대변해준다. 이 10점의 상들은 하나의 삼존불상과 네 보살상이 한 세트로 두 종류의 소형목제 불감과 같은 구조물에 부착되어 예배된 것으로 추정된다.

주조기법 및 기량이 뛰어난 10점의 안압지 출토 판불상들은 7세기 말 통일신라 초기에 새로이 유입되는 국제적인 조각양식을 반영하는 중요한 예들로서 문화재적 가치가 높으며, 당시 한·중·일 불교조각의 양식비교 및 전파과정과 영향관계를 파악하는 데 있어 중요한 자료이다.

□ 보물 제526-⑵호 「여주이씨 옥산문중 소장 유묵」(驪州李氏玉山門中所藏遺墨)
○ 수 량 : 17점
○ 연 대 : 조선시대
○ 규 격
- 원조오잠 : 170×72㎝(전체)
- 사산오대 : 146×56㎝(전체), 118×49㎝(내지)
○ 소재지 : 독락당(경북 경주)

○ 내용과 가치

《원조오잠(元朝五箴)》

‘원조오잠’은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이 27세 때 지은 「외천잠(畏天箴)」, 「양심잠(養心箴)」, 「경신잠(敬身箴)」, 「개과잠(改過箴)」, 「독지잠(篤志箴)」을 퇴계(退溪) 이황(李滉)이 읽고 크게 감명 받아 평소 잊지 못하여 오던 중 이언적의 아들 이전인(李全仁,1516~1568,號 潛溪)의 요청으로 쓴 것이라고 전한다. 이러한 내용은 10폭에 적혀 있는 이황의 발문에 보이나 여기에는 잠계 이전인의 요청에 의해서 썼다는 기록은 없고 끝에 ‘후학 이황 근서(後學 李滉 謹書)’라고 쓴 묵적이 선명히 남아 있다. ‘원조오잠’은 퇴계가 회재의 학문과 사상을 어떻게 보고 영향을 받았는가 하는 점을 기념물적인 친필로 남겼다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가 있다.

‘원조오잠’은 광폭의 닥종이에 매 폭 6행(行), 1행 16자(字), 자경(字徑) 약 8㎝ 해서(楷書)로 쓴 것이다. 발문은 4행(行), 자경 약 4㎝ 미만의 해행서체로서 글씨는 분방하거나 과장된, 또는 거칠거나 연미한 필서가 전혀 없고, 단중여아(端重與雅)하여 순정한 원칙을 지키는 도학자의 풍모가 그대로 투영된 대표적 유묵(遺墨)이라고 할 수 있겠다. 퇴필(退筆)의 특징은 송설체(松雪體)의 유려한 필법 위에 왕희지 부자의 굳세고 단정한 필법을 보탠 것이라고 김인후는 전별시에서 언급하였는데, ‘원조오잠’은 이러한 퇴묵(退墨)의 전형적인 예에 속한 것이다.

《사산오대(四山五臺)》

이언적은 1530년 이안로(金安老)의 등용을 반대하다가 좌천되자 관직을 그만 두고 귀향한 뒤, 이듬해 자옥산 기슭에 독락당(獨樂堂) 등의 옥산정사를 짓고 주위의 승경(勝景)을 명명하였다(소위 ‘사산오대’). 이들 글씨는 그중 자옥산(紫玉山)ㆍ용추(龍湫)ㆍ귀영대(歸詠臺)ㆍ징심대(澄心臺)ㆍ세심대(洗心臺)ㆍ탁영대(濯纓臺)ㆍ관어대(觀魚臺) 7곳의 명칭을 대자(大字)로 써서 축장(軸粧)한 것들로, 회재의 아들 이전인(李全仁)이 ‘원조오잠’의 글씨를 받을 때 이 대자 편액서도 함께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퇴계의 대자서(大字書) 편액(扁額)은 도산서원의 「역락서재(亦樂書齋)」, 안동(安東) 광산김씨(光山金氏) 예안공(禮安公) 종택(宗宅)의 「후조당(後彫堂)」, 「읍청정(挹淸亭)」, 도산의 「월천서당(月川書堂)」, 예천의 「선몽대(仙夢臺)」 등 대표적인 것이 많다. 그러나 서각(書刻)을 한 편액은 존재해도 그 원본의 필적이 다 전하는 것은 아닌데, 독락당의 ‘사산오대’는 대자 편액서가 고스란히 전한다는 점에서 큰 가치가 있다고 할 것이다.


문화재청 개요
우리나라의 문화적 정체성을 지키고 대한민국 발전의 밑거름이 되어 온 문화재 체계, 시대 흐름에 맞춰 새롭게 제정된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60년간 지속된 문화재 체계가 국가유산 체계로 변화한다. 과거로부터 내려온 고정된 가치가 아닌 현재를 사는 국민의 참여로 새로운 미래가치를 만드는 ‘국가유산’. 국가유산청(구 문화재청)은 국민과 함께 누리는 미래가치를 위해 기대할 수 있는 미래를 향해 새로운 가치를 더하고 국민과 공감하고 공존하기 위해 사회적 가치를 지키며 과거와 현재, 국내와 해외의 경계를 넘어 다양성의 가치를 나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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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문화재과 임형진 연구관 042-481-4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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