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작가 2006 정 현’ 전 개최

과천--(뉴스와이어)--1995년에 시작된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 상은 동시대 미술현장에서 활발한 창작활동으로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형성하고 있는 작가에게 돌아가는 상이다.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직 전원으로 구성된 올해의 작가 선정회의에서 수차례의 추천과 토론을 거쳐 작가를 선출하여 이듬해 미술관에서 개인전의 기회가 제공된다. 해마다 과천에서 중견작가를, 덕수궁미술관에서 원로작가를 전시해 왔으나 올해에는 중견작가 1명(정 현)만이 선정되었다. 그동안 올해의 작가에 조각가가 선정된 경우는 드물어 2006년도 ‘올해의 작가’는 어느 해보다도 한국미술계에서 조각의 활성화를 도모할 수 있는 뜻 깊은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에 와서 조각이라는 장르를 굳이 주목하는 이유는 장르나 매체 선택이 유행처럼 번져 많은 작가들이 조각이라는 힘든 장르를 버리고 설치와 영상을 선택하는 미술계 현 상황에서 정 현은 소명처럼 조각 작업에 천착(穿鑿)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각이란 회화와 마찬가지로 이상의 재현을 목적으로 발생했지만 무엇보다도 ‘삼차원의 물질’이라는 특성을 간과할 수 없다.

정 현은 조각에서 오랜 전통을 지닌 인체를 대상으로 하면서 재현의 전통에서 벗어나 강한 물질감을 드러내는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여기서 물질이란 전통적인 재료가 아닌 일명 ‘하찮은 것’으로서 정 현의 조각은 고급미술, 난해한 예술품과는 멀찌감치 떨어져 자리한다. 이렇게 표현된 인간 형상은 인체에 내재된 강한 정신성과 내적인 성향을 드러낸다. 이러한 그의 작품은 이해의 대상으로서의 예술이기보다는 가슴으로 느끼고, 공감할 수 있는 예술이다.

빈약한 표현과 상투적인 형식이라는 조각 자체의 한계를 극복하고 끊임없이 전통의 맥에서 현대적 해석을 가하는 작가의 집요한 작가의식을 통해 오늘날에 팽배해 있는 ‘새로움’의 미학을 다시금 되돌아보게 한다.

- 전시의 특징 -

정 현은 조각의 본질을 힘, 에너지로 파악한다. 그는 이것을 ‘하찮은 것에서 발견되는 신선함, 날 것에서 나오는 생명력, 예측을 불허하는 이미지, 느닷없음, 비탄으로부터의 해방, 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헤매임들의 깊이’라고 한다. 원래 에너지란 물체가 가지고 있는 물리적인 힘을 의미하지만 정 현의 작품에서는 인체조각의 중요한 요소로서 작품의 생명력이라 할 수 있다. 그가 언급한 ‘하찮은 것’이란 전통 조각에서 사용하지 않는 재료를 일컬음이며 ‘날 것’이란 재료의 있는 그대로의 성분을 뜻하며 ‘신선함과 예측 불허’란 제작 과정상의 우연성을 의미한다. 여기서의 재료는 전통적인 조각의 재료인 석고, 테라코타, 대리석 등이 아닌 ‘하찮은 것’에 해당하는, 오랜 풍상에 찌든 철로용 철도침목, 문명의 찌꺼기라 할 수 있는 아스콘(아스팔트 콘크리트), 어디로 깨질지 모르는 다양한 결을 지닌 막돌, 자연광물인 석탄, 석탄에서 나온 액체인 콜타르(Coal Tar)가 그것이다. 80년대 말 마닐라삼에 석고를 적셔 거친 표면에 의해 긴장감을 표현했던 방법에서, 재료와의 한판 겨루기로 ‘예측 불허’한 우연성을 드러냈던 90년대를 지나, 2000년대에 들어서면 작가는 재료의 ‘날 것’을 그대로 드러낸다. 따라서 애써 가공하려 하지 않고 최대한 재료의 속성을 이끌어내고 있다.

- 전시의 내용 -

이번 전시는 정 현 조각의 요체를 내재된 생명력으로 파악하고 이것이 작품에 어떻게 투영되어 있는지를 살펴보는 자리이다. 전시작품은 시기 및 재료, 조형상의 변화에 따라 네 가지로 구분 전시된다.

첫째, 프랑스 유학기에 해당하는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전반 작품들에서는 인체의 역동성이 두드러진다. 그는 동작을 표현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것만을 남기고 생략함으로써 앙상한 뼈와 근육, 절단된 신체의 단편들이 존재한다. 특히 식물에서 채취한 마닐라삼을 석고에 적셔 인체를 몇 개의 선으로 표현함으로써 거친 질감을 드러냈다. 절단된 신체의 형태, 거칠고 팽팽한 표면, 그리고 과장되고 왜곡된 선은 인간존재의 절박함과 더불어 강한 동세를 나타내고 있다. 또한 격한 동작 없이 서 있는 형상에서도 내부적으로 절제되고 응축된 힘을 느낄 수 있어 이 시기 작품에서는 인체의 형상과 재료에 의해 인간의 내재된 힘을 전달하고 있다.

둘째, 199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 물질과의 한판 겨루기가 이루어진다. 여기서의 재료는 흙, 석고이며 특히 재료를 다루는 도구에 주목해야 한다. 그는 각목과 삽 등의 쇳덩이를 들었다. 작가는 내성 강한 흙의 성질을 이용해 던지고 두드리고 패는 행위를 반복했다. 이러한 표면에는 손, 칼, 도끼의 자취가 날카롭게 드러나고 흙의 찰지고 단단함이 생생하게 살아났다. 행위 뒤의 흙덩어리에는 얼굴인 듯, 토르소인 듯한 희미한 자국만이 남아있다. 거칠게 처리된 형상에서는 예측할 수 없는 효과들이 나타나고 인체의 볼륨과 주위 공간과의 경계도 사라졌다. 도려낸 얼굴, 심하게 패인 가슴, 깊은 손자국, 절단된 가슴을 안고 먼 곳을 응시하는 모습은 정신적인 공황에 빠진 현대인의 황폐함을 극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이 작품들은 물질과의 대결 과정에서 나타난 우연성을 통해 정제되고 단순화된 인간의 본질에 다가가고 있다.

셋째, 1990년대 후반부터 작품의 중요한 재료로 등장한 침목은 작가가 10년 이상 이 재료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고민해 왔던 재료이다. 철도의 무게를 지탱하며 거친 비바람을 맞아온 침목을 정 현은 전기톱과 도끼로 자르고 찍어내어 신체형상을 만들어냈다. 인체는 거의 해체되고 나무의 질긴 추상성이 그대로 작품에 드러났다. 침목의 팍팍함과 질긴 나무결은 세상에 내던져진 인간의 삶을 나타내는 듯 하다. 작가는 도끼로 침목의 표면을 음각으로 파기도 하고, 잘라낸 침목을 얼기설기 붙여 <얼굴>과 군상을 제작하기도 하였다. 특히 40개의 침목 군상은 작은 몸집에 갇혀있던 인간의 존재가 거대한 실체로 다가오는 듯 압도적이다. 깊고도 강인한 맛을 지닌 침목이라는 재료를 통해 작가는 초기작품에 나타난 역동성과 후기 작품의 물질성을 압축하여 나타내고 있는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넷째, 2004~5년에는 아스콘과 석탄, 막돌작품을 제작하였다. 이 작품은 가공되지 않은 ‘덩어리’를 그대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공통성을 띈다. 물질문명의 산물이라 할 수 있는 아스콘(아스팔트 콘크리트)은 덩어리를 전기톱으로 난폭히 떼어내 조합한 인간 형상으로 아스팔트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질감과 정적인 자세에서 인간의 퇴적층을 연상시킨다. 또한 어디로 잘려나갈지 모르는 다분히 우연성을 지닌 막돌과 자연 원석 그대로로 제공된 석탄 역시 물질이 여과없이 드러나 추상작품과의 접점을 찾아볼 수 있다.

조각은 오랜 시간이 걸려 완성되는 작품이기 때문에 초기의 의도와 발상은 시간을 거듭해가며 수정되고 보완되기 쉽다. 그래서 정 현은 흘러넘치는 상상력을 달력 뒷면이나 골판지 등 손에 잡히는 대로 수 천 점에 달하는 드로잉을 그려나갔다. 특히 작가가 즐겨 사용하는 콜타르의 경우 다양한 농담 변화가 나타나고 갈라진 붓자국으로 인해 마치 침목의 질감 같은 느낌을 전달한다. 인체라는 한정된 대상을 계속 드로잉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다양성과 힘찬 선의 움직임은 작가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제작의도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또 머리 위로 에너지가 분출하는 2005년 드로잉은 이번 전시를 맞아 17m 6개의 목전주로 태어났다. ‘앞으로 인체를 통해 말하고 싶은 힘을 더욱 과감하게 실험해 보고 싶다. 더 거칠게, 더 대담하게, 더 자유로워지기 위해 형태를 부수고 없앨 작정이다’고 했던 작가의 말처럼, 지상에서 천상으로 뻗어가는 목전주는 땅의 기운, 인간의 생명이자 염원이 하늘에 닿을 듯 솟구치고 있어, 그동안 내재되었던 에너지가 직접적으로 가시화되고 있다.

웹사이트: http://www.moc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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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교육홍보과 김자영 02-2188-6063 이메일 보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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