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세계문학상’에 총신대 김지찬 교수의 ‘언어의 직공이 되라’ 선정
「창조문학신문사」에서 ‘창조세계문학상’ 서적부문 ‘대상’으로 총신대 김지찬 교수의 저서 “언어의 직공이 되라”를 선정했다.
「창조문학신문사」의 박인과 문학평론가는 “간혹 총신대 교수에 대해 신학사상에 문제점이 있다며 이의 제기를 하는 것을 보았는데, 그 여론의 중심에 있는 자가 김지찬 교수의 ‘언어의 직공이 되라’는 책을 한 번이라도 정독하게 되면 진리의 정수를 깨닫게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이 책의 효용성과 가치에 대하여는 “기존의 한국 교계 현상과 맞물린 기독교적 정서의 혼란에 빠진 어둠의 시대에 진리의 횃불 역할을 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서, 참삶의 해석 방법에 참신한 생명력의 바람으로 우리 앞에 와서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걸쳐지는 삶의 영원한 가치 창출을 위해 성경 속으로 난 길의 특성을 보여주며 튼튼한 안내자가 되어줄 것으로 믿는다.”며, 신앙인이든 비신앙인이든 타 교단의 어느 누구든지 한 번쯤은 건전한 비평을 위해 숙독해 보아야 할 필독서로 권장하며 총신대 김지찬 교수의 저서 “언어의 직공이 되라”를 ‘창조세계문학상’의 ‘대상’으로 선정하게 된 배경을 밝혔다. ‘창조세계문학상’ ‘대상’ 선정에 대한 평은 다음과 같다.
▣ 참삶의 해석 방법에 참신한 생명력의 바람으로
― 「창조세계문학상」 선정평 / 박인과 문학평론가
참으로 많은 기독서적을 읽고 또 읽었다. 그 중에서 좋은 책들을 10 권 이내로 압축하였다. 모두 튼튼하고 싱싱하게 전개되는 창조적인 문맥과 기독교적인 신앙의 깊은 정서가 깃들어 있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특히 우리의 신앙생활과 성경 해석에 대한 고민을 풀어줄 수 있는 귀한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창조문학신문사」에서 주관하는 “창조세계문학상”에 걸맞는 특별히 돋보이는 책이 하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삶과 인생의 목적에 대해서, 특히 인류의 베스트셀러인 성경의 해석 방법에서 나타나는 오류에 대해 올바른 접근 방법을 제시함으로써 새롭지만 정통적이고 풍부한 상상력이 성경을 성경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첩경임을 역설하고 있는 “언어의 직공이 되라”(김지찬 교수 저, 생명의말씀사)이다.
「생명의말씀사」에서 <자세히읽기시리즈1>로 발행한 “언어의 직공이 되라”(국판 p. 376)의 저자 김지찬 교수는 총신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하고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했으며, 미국 칼빈신학교를 졸업하고 네덜란드 캄펜 신학대학 구약학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이다.
김지찬 교수의 저서 “언어의 직공이 되라”는 1996년 3월 15일에 초판 1쇄 발행되어 2006년 2월 25일에 13쇄 발행된 것으로서, 김지찬 교수가 이 책으로 후학들을 가르치며 건전하고 깊이 있는 성경 해석의 장을 열어가고 있으며 많은 신앙인들이 애독하고 있는 성경적 양서에 속한다.
이 “언어의 직공이 되라”는 다른 어느 책보다도 강렬한 인상으로 다가왔다. 특히 제일 먼저 펼쳐본 p.313의 “의인이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은 그 정도로 예루살렘 주민들이 타락했음을 강조하는 과장법인 것이다. ~ 누군가가 일찍 이것이 과장법임을 이야기해 주었던들 성경을 보는 나의 눈이 지금보다는 더 빨리 뜨였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있다”는 김지찬 교수의 서술은 “의인이 한 사람도 없어서 예루살렘이 멸망했다”는 얘기를 들어온 독자들에게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해오면서 많은 혼란을 겪게 했던 내용에 대한 언급으로서, 이 책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 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신앙인이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성경의 해석 방법에 대한 갈등, 성경과 신앙생활에 대한 많은 부분의 의문들에 대한 해답들을 김지찬 교수는 간직하고 있었다. 이 책의 전 내용을 논할 순 없지만 극히 일부분일지라도, 비록 몇 가지만의 선택들일지라도, 이제 기쁜 마음으로 “언어의 직공이 되라”는 교훈적인 매력들을 짚어보며 이 책의 소중함을 공유하고자 한다.
이 책은 “제1부 서론 : 루터의 권면”, “제2부 소리와 의미”, “제3부 비유적 언어와 의미”, “제4부 수사법과 의미”, “제5부 결론 : 언어는 존재의 집”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면서 본문의 제2부 ~ 제4부의 세부적인 부분에도 각각의 결론을 내리고 있어 독자들이 내용을 정리하기에 편리하도록 짜여 있다.
김지찬 교수는 이 책에서 성경 해석자들은 “언어의 직공이 되라”고 주장하면서 성경 기자가 소리의 층과 의미의 층을 유기적으로 연결시켜 핵심적 의미를 강화하는 기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성경 기자가 사용한 언어 장치들을 통해 그가 본 것을 볼 줄 아는 상상력을 키워야 한다고 한다. 성경 본문을 보고 첫인상이나 몇 가지 관찰에 근거하여 자기 멋대로 지어내는 상상력이 아니라, 성경 기자가 사용한 언어 장치를 렌즈로 사용하여 그가 본 것을 볼 줄 아는, 이성과 감정을 종합하는 능력을 가리키는 상상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의 마음 또는 의식의 총체가 은유, 환유, 범주, 상징, 이미지 등의 망상 조직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현대 언어학과 철학의 주장과도 같이 언어의 장치들은 세계를 이해하고 그 안에서 인간의 사고 행동을 통제하는 인식과 행동의 도구라고 김지찬 교수는 주장한다.
우리의 하나님은 상상력이 뛰어나신 하나님으로서 우리의 창조의 하나님은 환상적인 동물들과 식물들을 만드셨고 이미지를 만드시는 분이신데, 구약 성경의 많은 부분이 시나 묵시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면서 그것은 모두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역설한다. 그러면서 또한 주님은 비유로 하나님의 나라를 설명하셨는데 주님은 상징을 좋아하셨으며, 상상력을 동원하여 스토리 만드는 것을 즐겨하셨다고 기술한다.
위와 같은 김지찬 교수의 주장은 현대의 교인들에게 특히 한국적 사고 체계의 신앙인들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하나님의 말씀의 일점일획이라도 변화시켜서는 안 된다는 의식 속에서 행해지는 많은 성경적 지식에 대한 이해들이 편협되어 있는 한국교단에 한 줄기 충격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김지찬 교수가 집필한 “언어의 직공이 되라”는 책을 꼼꼼히 읽어 내려가다 보면 우리의 무엇이 성경의 빛깔을 오해하게 했는지를 알 수가 있다. 특히, 다독을 했다며 성경 10독, 20독, 혹은 100독을 했다는 사람, 혹은 그렇게 하려고 밤낮으로 녹음기처럼 성경의 함축적 의미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서 성경을 줄줄 읽어가는 신자들에게 성경을 어떻게 어떤 눈과 이해의 틀로서 바라보아야 하는지를 명쾌하게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부분에서 필자는 “언어의 직공이 되라”는 제호의 김지찬 교수의 책은 성경을 보고자 하는 우리에게, 특히 성경의 내용을 전달하고자 하는 신앙인들에게 필독서가 되어야 함을 말하고 싶다.
김지찬 교수는 성경 기자가 성경 본문을 함축 의미의 본문으로 구성하였는데 해석자가 이를 알지 못하고 외시(=표면적인) 의미의 산술적 합산으로만 이해한다면 이는 본문을 왜곡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언어로 기록된 성경 본문인 소리의 층이 의미 전달의 핵심 채널이 되고 있다면 이를 알지 못하고 외시 의미에만 집착한다면 본문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깊이 생각하고 기도하며, 다시금 성경 말씀을 자세히 새겨보면서 성경 기자의 의도를 알아야 한다. 김지찬 교수는 현대 언어학의 발달로 언어는 단일 의미체가 아니라 다중 의미체라는 점이 밝혀지게 된 것처럼 인간이 사용하는 대부분의 언어들은 여러 층의 의미를 품고 있는 언어 기호들 즉 다중 의미체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김지찬 교수가 인생의 묘미는 함축 의미와 이에 대한 상징 반응에 있으므로 우리는 성경이 다중 의미로 쓰여진 텍스트임을 인식하고 다중 의미로 쓰여진 텍스트를 이해하는 눈을 키워야 한다고 기술하는 것처럼 성경 기자가 사용한 언어의 틀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알아가는 지혜가 오늘의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이에 김지찬 교수는 오늘의 성경 해석자들에게 이스라엘 선지자들의 예를 들며 메시지를 보낸다.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은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닌, 긴장과 경계선의 자리에 선 자들이었다며 기존 질서의 너무 안쪽으로 들어가면 진정한 창조적 언어가 태어나기 어려우며 너무 밖으로 나가면 긴장과 시대 인식이 결핍되어 비판 기능을 감당할 수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평생 성경이라는 언어의 집에서 살아야 할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언어는 존재의 집임을 깨닫고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닌 긴장과 경계선의 자리에 서서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을 권면하는 것이다.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렘 5:1)
이 구절에 대하여 김지찬 교수는 “정말 예루살렘에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을까? 목사님들이 설교할 때 종종 의인 하나가 없어 예루살렘이 멸망하였다고 강조할 때마다 의구심이 커지는 것을 막을 길이 없었다.”고 한다. 이 부분은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많은 독자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지금도 많은 신자들은 예루살렘에 의인 한 명이 없어서 예루살렘이 멸망하였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김지찬 교수는 의인이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은 그 정도로 예루살렘 주민들이 타락했음을 강조하는 과장법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김지찬 교수도 “누군가가 일찍 이것이 과장법임을 이야기해 주었던들 성경을 보는 나의 눈이 지금보다는 더 빨리 뜨였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토로한다. 그러면서 과장법은 허위나 진실을 날조하려는 것이 아니라 전달하려는 개념이나 사실을 강조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고 역설한다. 그런데 그동안 무조건 믿어라, 무조건 받아들여야 산다고 무조건적인 주입식으로 배워온 우리들은 얼마나 힘들었던가.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이끌어 내어 광야에서 죽이려 함이 어찌 작은 일이기에 오히려 스스로 우리 위에 왕이 되려 하느냐 이뿐 아니라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도 아니하고 밭도 포도원도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니 네가 이 사람들의 눈을 빼려느냐 우리는 올라가지 아니하겠노라”(민 16:13-14)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 성경에 대하여 김지찬 교수는 이야기한다. 이스라엘의 전통 혹은 성경의 전통 안에서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가나안뿐인데 여기서 다단과 아비람은 (사망의 이미지인) 애굽을 가리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부르고 있다며, 사실상 이것은 출애굽기 3:8에서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나타나신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 가운데 가나안 땅에 대한 표현(“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패러디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한다.
성경 말씀에 대하여 이런 ‘패러디’의 표현으로 인식할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신선한 그리움의 충격을 준다. 그만큼 김지찬 교수의 성경 해석의 지침은 기존의 우리의 인식의 틀과 많이 다른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러한 해석의 열쇠가 바로 성경 기자들의 언어의 장치로 이루어진 생명의 보물단지를 풀어내는 열쇠라는 데에 의미가 깊다고 할 수 있다.
김지찬 교수는 또한, 모든 신학적 용어가 비유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라고 말하면서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인간이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그것이 아무리 부적합하다 하더라도 유비(analogy) 외에 다른 언어가 없다고 한다. 유한이 무한을 직접적으로 포착할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의 사고와 언어를 초월하는 절대자 하나님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묘사가 불가능하다고 한다.
하나님을 ‘왕’, ‘반석’, ‘방패’, ‘요새’, ‘남편’으로 묘사하는 것은 모두가 비유적이며, 하나님을 동물에 비유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면서 아모스 선지자는 아모스서 전체를 통해 ‘여호와는 사자’라는 은유를 지속적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하나님을 사자라 비유했다고 ‘하나님=사자’가 아니라는 것을 역설하면서, 인간이 하나님을 무엇에 비유하는 것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
그리고 또한 하나님의 나라가 겨자와 같고, 누룩과 같다고 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겨자처럼 생겼고 누룩 냄새가 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며 겨자처럼 누룩처럼 보이지 않는 사이에 하나님 나라가 확장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하며 성경 기자는 언어의 기법을 통해 자신이 체험한 하나님 나라를 전달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언어적 장치들은 성경 기자가 독자를 설득시키기 위해 사용한 고도의 기술이라고 보아야 한다고 한다. “흔히 성경은 문학의 백미라고도 한다.”며 성경은 종교적 문헌이면서 동시에 문학보다 더 문학적인 글이라고 주장한다. 성경을 해석할 때에 이러한 언어적 장치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성경의 성격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성경의 성격에 합치하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김지찬 교수는 종교개혁 시대에 성경의 문예성에 많은 관심이 있었는데, 교회와 성경을 문예작품(Literature)으로 이해할 때만이 성경을 성경으로 들을 수 있다는 점을 종교개혁자들은 간과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김지찬 교수는 루터가 “(성경) 문예성에 대한 지식이 없이는 순수한 신학은 결코 제자리에 설 수가 없다”고 밝혔다며 루터의 글도 소개한다.
이러한 부분들의 김지찬 교수의 언급은 그동안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 나름대로 자동적으로 인식하며 체험을 하고는 있었으나 드러내놓고 ‘이것은 이것이다’라고 명확하게 말할 수 없는 부분들이었으며 모르면 모르는 대로 그냥 은혜로 받아넘기는 데에 익숙해 있던 바리새인들과 같은 사고로, 덮어놓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들이었다. 그러나 이제 이 “언어의 직공이 되라”는 책은 성경 기자들이 사건의 기술에만 그치지 아니하고 함축적이고 다의적인 언어 창출의 대가였다는 것을 인식하기만 하여도 우리의 성경의 틀에 의한 상상력은 한없이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며 성경의 가치가 우리의 기존의 사상과 사고에 의한 범주 밖으로 무한대로 뻗어나갈 수 있음을 인식하게 해주는 것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한국어)
“브레에쉬트 바라아 엘로힘”(히브리어)
위의 내용은 성경의 첫 구절이다. 흥미롭게도 구약성경의 (히브리어의) 첫 문장의 첫 두 단어는 동일한 세 자음들의 반복이 만들어 내는 두운법이 특징이라고 김지찬 교수는 말한다. “태초에”를 뜻하는 “브레에쉬트”의 첫 세 자음과 “창조하다”라는 뜻의 동사 “바라아”의 세 자음이 동일하다고 하며, 첫 두 단어가 발음상 두운법의 현상을 드러내면서 “태초”와 “창조” 행위를 밀접히 연결시키며 강조하려는 저자의 의도를 살펴볼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창조하다”라는 동사 “바라아”와 “복주다”라는 동사 “바라크”가 밀접히 연관되어 사용되는데 두 동사가 모두 동일한 자음(b)으로 시작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것은 하나님의 목적 안에 “창조”와 “복”이 연결되고 있음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고 한다.
더욱이 이 같은 하나님의 계획이 아브라함 안에서 성취되고 있음을 창세기 성경 기자가 강조하고 있는데, 아브라함이라는 단어에 앞에서 살펴본 두운법에 관련한 세 자음이 들어있다고 한다.
이러한 김지찬 교수의 해석 방법은 우리에게 성경이 단순하게 기록되지 않았음을 가르치는 것이다. 성경 기자의 의도는 성경의 맨 처음 구절에서부터 성경 마지막 구절까지의 상황을 연결하며 구체화되어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성경의 마지막 구절은 신약 요한계시록 22장 21절로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찌어다. 아멘”으로서 성경의 맨 처음 구절의 “복주다”라는 동사 “바라크”의 의미를 표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서 또한 성경은 첫 구절 속에서 나타난 “창조”의 의미와 마지막 구절 속에서 드러내는 “복”의 의미를 끝까지 끈끈하게 연결시켜 놓음으로써 창조주 하나님의 인류에 대한 사랑을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언급한 부분들은 김지찬 교수의 “언어의 직공이 되라”는 책을 정독하며 체험한 사실들을 극히 일부분만 드러내어 보았다. 그러나 이 일부분만 보아도 우리는 지금까지 성경을 어떻게 해석하며 신앙생활에 적용시켜 왔는지 스스로 점검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임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특히, 성경은 문학적으로 해석하여서는 안 된다고 강하게 어필하던 지인들도 어느 정도 깨달아 알게 될 것이다.
어느 한 시대에 그때의 상황 속에서 이미 농익어버린 습관이나 인식들을 잘못되었다고 하며 바른 길을 제시한다면 많은 반대에 부딪치게 된다. 그러나 누군가 해야 될 일이라면 희생이 따르더라도 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지찬 교수의 “언어의 직공이 되라”는 책은 우리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왔지만 이제 모두 서서히 적응해 가리라 믿는다. 그것이 또한 창조주의 뜻일 것이라고 믿는다.
김지찬 교수가 우리에게 던지는 말은 “너무 쉽게 기존 질서 안에 편입되어 정통의 탐욕에 안주하는 자에게는 인간의 현실을 초월하는 세계를 그릴 창조적 언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현실의 벽 안에 안주하는 이성의 법칙과 현실 논리에 상상력이 사육되면 하나님이 미래에 일으키실 위대한 구원의 세계를 바라보고 그려낼 수 있는 능력이, 즉 창조적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힘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김지찬 교수는 우리에게 기존 질서의 너무 안쪽으로 들어가면 진정한 창조적 언어가 태어나기 어렵고, 너무 밖으로 나가면 긴장과 시대 인식이 결핍되어 비판 기능을 감당할 수가 없기 때문에 평생 성경이라는 언어의 집에서 살아야 할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닌, 긴장과 경계선의 자리에 서서 삶을 살아가라고 강력하게 권면하는 것이다.
이러한 김지찬 교수의 주장들은 바로 「창조문학신문」이 지향하는 바와 같아서, 김지찬 교수의 “언어의 직공이 되라”를 창조적 삶의 보물처럼 여기면서 신앙인이든 비신앙인이든 타 교단의 어느 누구든지 한 번쯤은 숙독해 보아야 할 필독서로 권장한다.
이 책의 효용성과 가치에 대하여는 기존의 한국 교계 현상과 맞물린 기독교적 정서의 혼란에 빠진 어둠의 시대에 진리의 횃불 역할을 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서, 참삶의 해석 방법에 참신한 생명력의 바람으로 우리 앞에 와서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걸쳐지는 삶의 영원한 가치 창출을 위해 성경 속으로 난 길의 특성을 보여주며 튼튼한 안내자가 되어줄 것으로 믿는다.
창조문학신문사 개요
창조문학신문사는 한민족의 문화예술을 계승하여 발전시키고 역량 있는 문인들을 배출하며 시조의 세계화를 지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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