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을사늑약 체결장소인 ‘중명전’ 사적 지정 추진

서울--(뉴스와이어)--서울시는 1904년 경운궁(문화재 지정명칭 : 사적 127호 덕수궁) 대화재 이후 고종 황제가 기거하고 집무하며 주요 사신들을 알현하는 장소가 된 「중명전(重明殿)」에 대해 정밀 사료조사와 시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통해 문화재적 가치를 재평가하여 문화재청에 사적 지정 신청하고, 조사과정에서 최초로 발굴된 중명전의 건립 당시 사진도 공개했다.

중명전은 현재 주한 미국대사 관저 서쪽에(중구 정동 1-11번지)에 자리하고 있는 지하 1층, 지상 2층의 벽돌 건물로 현재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53호로 지정되어 있다.

원래 대한제국 황실재산이었다가 광복 이후 국유재산이 되었는데 1964년 일본에서 영구 귀국한 영친왕이 황실재산 반환을 요구하자 舊황실재산법에 따라 당시 황실재산을 관리하고 있던 문화재관리국이 1969년 중명전만을 무상 양여해 주면서 국가 직접 관리대상인 경운궁과는 완전히 분리된 채 다른 길을 걸어오다 최근에야 다시 국유문화재(관리청 : 문화재청)가 되었다.

중명전은 1896년 고종황제가 러시아공사관으로 거소를 잠시 옮긴 후(일명:아관파천) 본격 조성한 경운궁 안에 1897년경 황실도서관(Library Imperial)으로 건립되었고, 황실의 귀중 도서, 인장, 어진(御眞 : 왕들의 초상화 지칭) 등이 보관되던 장소였음이 이번 서울시 조사로 확인되었다. 건립 당시 명칭은 수옥헌(漱玉軒)이었는데 ‘책고(冊庫)’로도 불려졌다.

그런데 1904.4.14 경운궁 함녕전에서 발생한 불로 고종 황제가 7~8년에 걸쳐 막대한 물력을 동원해 새롭게 조성한 경운궁의 주요건물들이 대부분 불에 타버리자 고종 황제가 황태자, 영친왕 등과 함께 수옥헌으로 이어(移御 : 왕의 거소 이전을 지칭)하면서부터 수옥헌은 종래의 황실도서관에서 경운궁 내 가장 핵심적인 권역인 황제의 집무실〔便殿〕겸 외국 사절들의 알현실로 그 기능이 크게 바뀌게 되고 우리나라 근대사의 주무대로 부각되기에 이르렀다. 1906년 후반기에는 이러한 궁궐 내 위상에 걸맞게 명칭도 ‘수옥헌’에서 ‘중명전’으로 변경되었다.

1905년 11월 17일 일본 군인들이 대궐에 대포를 매설하고 총검으로 무장 시위하는 가운데 이토 히로부미의 강압 아래에서 외부대신 박제순이 고종황제의 의사에 반하고, 참정대신(오늘날 총리)이던 한규설의 저항을 무릅쓰며 을사조약을 조인한 곳도 바로 중명전이다.

그리고 을사조약 체결 이후 일본 군인들에 의해 황궁이 포위되고 황실의 동정이 통감부에 낱낱이 보고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고종황제가 자신이 체결에 동의한 적 없는 을사조약은 무효임을 국제사회에 지속적으로 호소하는 한편 국내적으로도 백성들의 정치적 소요를 배후 조정함으로써 결국 통감부의 압력을 받은 친일파 신료들에 의해 1907년 7월 19일 퇴위하게 되는 곳도 바로 이 중명전에서 였다.

고종황제는 을사조약 체결 직후 내한한 영국기자 Douglas Story와 당시 국내에서《The Korea Review》를 발간하고 있던 H. B. Hulbert 등을 통해 1905년과 1906년 미국과 영국 정부에 밀서를 보내기도 하였으며 1907년에는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 이준, 이위종, 이상설 등 3인의 밀사를 파견하여 일본의 부당한 간섭을 호소하고 한국이 회의 참가에 대한 통보를 받지 못한 것을 항의하는 밀서(密書)를 전달하려 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중명전은 1907년의 황태자비(훗날 순종의 2번째 황후인 순정효황후) 간택과 영친왕의 황태자 결정 등 당시 대한제국의 중요한 국가적 대사들이 모두 이루어진 곳이다.

초대 통감으로 부임한 이토 히로부미는 고종 황제가 퇴위 이후로도 중명전을 근거지로 하여 순종황제를 통해 정치적 영향력을 계속 행사하려 하자 순종황제를 고종과 격리시키기 위해 창덕궁으로 이어시키고 중명전은 주한 외국인들의 사교클럽인 Seoul구락부(俱樂部)로 차용하는 건을 추진하기도 하는데 국권상실 이후인 1912년 결국 동 건은 성사되기에 이른다.

이와 같이 중명전은 일제의 침략에 맞서 자주독립을 수호하려 하였으나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지 못했던 대한제국, 나아가 우리나라 근대사의 빛과 그림자가 한데 어려 있는 중요한 역사의 현장이다.

한편 중명전은 1901년과 1925년 2차례의 화재로 건축적으로 외형과 내부가 다소 변형되기는 했으나 우리나라 최초창기 근대건축의 풍모를 간직하고 있는 몇 안 되는 건축물 중 하나로서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지역의 근대건축 유입과 변천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는 등 건축사적으로도 큰 의미를 가지는 건물로 평가되고 있다.

- 비슷한 시기에 러시아건축의 영향을 받아 건립된 경복궁의 관문각, 경운궁의 돈덕전, 구성헌, 그리고 궁궐 밖의 손탁호텔과 러시아공사관(탑 부분만 남아 있음) 등은 일제시대 혹은 광복 이후 모두 멸실 또는 훼손

- 중명전은 남아 있는 궁궐 내 양식 건축물 가운데 연대가 가장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경운궁 내 건물들 중에서도 정관헌(1902년 건립 추정)과 함께 연대가 가장 오래된 건물임

서울시는 시 문화재위원회에서도 경운궁 내에서 중명전이 가지고 있는 위상과 건물의 역사적 성격 등을 감안, 중명전을 서울시 차원의 문화재로 보존하기보다는 이미 사적 제127호로 지정된 덕수궁에 포함시켜 국가 지정문화재로 지정, 국가적 유산으로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됨에 따라 이번에 국가 지정문화재 지정을 추진하게 되었다.

이번 서울시 검토과정에서는 중명전의 1897년 건립 당시의 원형과 1925년 화재 발생 직후의 모습이 촬영된 사진이 새롭게 발굴되었는데 서울시는 이 사진의 발굴이 향후 중명전의 원형 복원 및 관리에 크게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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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http://www.seoul.go.kr

연락처

서울특별시 문화국 문화재과 조사연구팀장 이형우 02-3707-9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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