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대학교 충청문화연구소 ‘충청지역독립운동사 학술대회’ 개최
2003년 ‘당진 소난지도 의병의 역사적 재조명’을 시작으로 2004년 ‘홍성지역 독립운동의 전개와 독립운동가’, 2005년 ‘논산지역 독립운동의 전개와 독립운동가’ 라는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하여 지금까지 학계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충청지역 독립운동사를 실증적으로 고증하여 민족을 위해 산화한 충청인들의 항일독립정신과 애국애족 정신을 새롭게 평가하는 계기를 마련해 왔다.
금년에는 ‘당진 대호지 4ㆍ4 독립운동의 재조명’이라는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한다. 당진 대호지 4ㆍ4 독립만세운동은 1919년 4월 4일 대호지 면장의 지시로 마을 주민 1,000여명이 인근 천의장터까지 행진하며 전개한 만세운동이다. 대호지 4ㆍ4 독립만세운동은 사전에 독립운동추진위원회 조직, 연락망과 행동대 조직, 면장 명의의 공문과 구장을 통한 통지, 지역별 책임자들에 의한 주민 동원, 태극기와 애국가가 제작 등 치밀하게 계획된 만세운동이었다. 또한 인근 천의면 주재소를 파괴하고 발포하는 일경과 결투를 벌이는 투쟁적 시위였다. 대호지 4ㆍ4 독립만세운동은 일제의 탄압도 가혹했다. 만세운동과정에서 왜경과 헌병대에 의해 현장 사살 순국 1명을 비롯해 3명이 옥중순국했고, 39명이 징역형, 88명이 태형을 받았으며, 68명이 불기소되거나 면소를 받고 풀려나는 등 시위참여자 200여명이 일제로부터 혹형을 받았던 만세운동이었다.
금번 학술대회는 독립운동사를 전공한 전문학자들이 기조강연과 논문을 발표한다. 먼저 독립운동사 연구의 태두인 윤병석 인하대 명예교수가 ‘한국독립운동사상 3ㆍ1운동과 당진 대호지 만세운동’이란 주제로 3ㆍ1운동에서 대호지 만세운동이 갖는 역사적 의의에 대해 기조강연을 한다. 이어 김상기(충남대 국사학과 교수, 충청문화연구소장)교수가 ‘당진 대호지 4ㆍ4 독립만세운동의 역사적 배경’을 발표한다. 김상기 교수는 발표논문에서 대호지 4.4독립만세운동 배경을 대호지면 도이리에 있던 도호의숙 (桃湖義塾)의 민족교육에서 찾았다. 도호의숙은 의령남씨의 문중서당으로 위정척사이념에 철저한 화서학파의 유생 유진하(兪鎭河)를 비롯하여 심원성(沈遠聲)·이철승(李喆承) 등이 훈장으로 초빙되어 대호지 지역의 청소년들에게 존화양이론에 입각한 민족교육을 시켰고, 도호의숙에서 교육을 받은 남주원을 비롯한 도이리 지역의 의령남씨 인물들과 이대하·전성진·이춘응 등 수십 명이 4·4독립만세운동을 주도했음을 밝혔다. 특히 3월 1일 광무황제 인산에 참여하기 위해 서울에 올라가서 파고다공원에서의 만세시위에 가담했다가 내려 와 만세운동을 주도한 남주원·남계창·남상직·남상락 등이 바로 도호의숙의 동문들이었다는 점에서 대호지 4·4독립만세운동에서의 도호의숙의 역할이 컸음을 밝혔다.
이어 이정은(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책임연구원)연구원은 ‘당진대호지 4ㆍ4 독립만세운동의 전개과정과 특성’을 발표한다. 이정은 연구원은 발표논문에서 대호지 만세운동은 대호지 전면민(全面民)이 행정기관과 연계해 추진한 만세운동으로 대호지면에서 집결해 정미면 천의시장까지 행진하며 벌인 공세적인 시위운동이었음을 밝혔다. 이와 같은 시위가 가능했던 이유는 대호지가 전통적으로 종족마을이 발달한 향촌공동체적인 유대가 강한 지역이었기 가능했다고 보았다. 또한 시위를 각 문중의 대표적인 인물들과 중장년층이 주도함으로서 전주민적,공세적시위가 가능했음을 밝혔다. 아울러 대호지만세운동은 독립운동추진위원회가 조직되고 면장명의의 공문의 제작과 구장을 통한 발송, 태극기와 애국가를 제작하는 등 시위운동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만세운동이었음을 밝혔다.
마지막으로 김남석(당진 호서고등학교)교사는 ‘당진 대호지 4ㆍ4독립만세운동의 수형인 연구’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한다. 김남석 교사는 대호지 만세운동에 참여했던 200여명의 수형인을 직업ㆍ학력ㆍ종교ㆍ출신지ㆍ연령ㆍ성씨별 연구를 통해 대호지 만세운동의 성격을 구체적으로 분석했다. 김남석은 발표논문을 통해 대호지 4ㆍ4독립만세운동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그동안 논란이 되었던 많은 문제들을 객관적으로 증명하고 기존에 알려지지 않았던 8명의 만세참여자를 새롭게 발굴했다.
먼저 직업 및 학업별 현황에서 대다수 시위참여자의 직업은 농업이었으며,이들을 중심으로 행정기관(면장,면직원)이 연계해 전개한 만세운동이었고, 대호지면 송전리를 중심으로 신봉되던 천도교신자들이 참여했음을 밝혀 만세운동에 천도교가 일정부분 역할을 담당했음을 밝혔다. 연령별로는 20대~30대가 전체 수형인의 72%를 차지하여 만세운동의 주축을 이루었음을 밝혔다. 특히 만세운동이후의 수형인들의 생존기간을 살펴 본 결과 연령이 확인된 170명중 출옥이후 10년 미만 생존자가 25명(15%), 5년 미만 생존자가 17(10%)명임을 밝혀 일제의 고문의 잔혹상을 살폈다. 지역별로는 사성리, 도이리, 두산리, 송전리에서 많은 인원이 참여했고, 부안 김씨ㆍ의령 남씨와 연안 차씨 들이 만세운동에 참여한 대표적인 성씨들임을 밝혔다.
김남석은 대호지 만세운동 수형자들의 재산 변동사항도 추적했다. 대호지면 9개리의『토지대장」을 통해 4·4독립만세운동 관련자 207명을 일일이 대조하여 토지의 취득 매각과정을 살펴본 결과 남주원, 이인정 가문, 김도일, 남성우, 박창옥, 송봉숙도 경제적으로 큰 곤경에 처했음을 밝혔다. 특히 남주원의 경우 대호지면 8개리에 200필지 21만평의 토지를 일거에 매각한 것으로 보아 만세운동 참여 후 경제적 곤경을 받았음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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