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방사광가속기로 연구의 장벽 넘는다.

포항--(뉴스와이어)--지난 12월 7일 포항방사광가속기에서 10주년 기념행사가 열렸다. 1994년 12월 이곳에 가속기가 준공된 지 딱 10년이 지난 것이다. 당시 포항방사광가속기는 ‘단군이래 가장 비싼 실험장비’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가속기를 짓는데 1500억원이 투자됐기 때문이다. 왜 이처럼 비싼 실험장비가 필요한 걸까.

가속기 중에는 입자를 충돌시켜 빅뱅과 소립자의 신비를 푸는 곳(예: 스위스의 CERN)도 있지만 포항가속기는 성격이 다르다. 포항가속기는 전자를 매우 빠른 속도로 축구장 만한 원통 안에서 빙빙 돌려 높은 에너지의 빛을 만든다. 즉 ‘빛공장’인 셈이다. 가속기 앞에 ‘방사광’이란 말이 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포항가속기가 이처럼 빛을 만드는 이유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물체를 보기 위해서다. 특히 이곳에서 만들어진 X선을 이용하면 단백질 등 생체 분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생명과학자에게는 가속기가 생체분자의 3차원 구조를 볼 수 있는 거대한 현미경인 것이다.

X선을 이용해 생체분자의 비밀을 푼 연구 중 가장 유명한 사례는 50년전인 1953년 프랜시스 크릭과 제임스 왓슨이 풀어낸 ‘DNA 이중나선구조’다. 당시 세계의 내로라 하는 과학자들이 DNA 구조를 규명하기 위해 달려들었다.

이들 중 신출내기라고 할 수 있었던 크릭과 왓슨이 DNA 구조를 해명한 결정적인 계기는 DNA 결정을 X선으로 찍은 사진이었다. 크릭과 왓슨은 이 사진을 통해 DNA가 서로 보완적인 이중나선 구조였다는 것을 깨달았다(실제로 DNA X선 사진을 찍어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한 로잘린드 프랭클린은 38세의 나이에 요절하면서 1962년 왓슨과 크릭이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을 때 수상의 영광을 누리지 못했다).

20세기 생명과학에서 가장 큰 발견으로 꼽는 것은 DNA 자체의 발견이 아니라 DNA 이중나선구조의 발견이다. DNA 이중나선구조가 밝혀지면서 DNA가 어떻게 복제되는지, DNA에 담긴 유전정보가 어떻게 다른 세포와 후손으로 정확히 전달되는지 그 메커니즘의 실체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처럼 3차원 구조의 발견은 생명현상의 비밀을 푸는 것으로 연결된다.

생체분자의 입체 구조를 통해 받은 노벨상은 왓슨과 크릭이 유일하지 않다. 지난해 노벨화학상은 세포막에 박혀 있는 채널(통로) 단백질의 3차원 구조와 기능을 밝힌 과학자들에게 돌아갔다. 2001년 노벨생리의학상도 세포 주기를 조절하는 단백질 분자를 발견하고 그 구조를 밝힌 과학자들에게 돌아갔다. 이밖에도 생명의 비밀을 풀기 위해서는 구조의 발견이 직간접적으로 필요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연구를 전문적인 용어로 ‘구조생물학’이라고 하는데 앞으로 구조생물학의 인기는 더욱 올라갈 전망이다.

94년 당시 2기의 빔라인(가속기에서 빛이 나오는 곳)으로 출발한 방사광가속기는 2004년 현재 빔라인이 23기로 늘었다. 모두 2200여개의 첨단 연구를 수행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3000여개의 논문이 가속기를 이용한 연구에서 나왔다.

이곳에서 이뤄지는 연구를 몇 개 살펴보자.

포항공대 창의연구단인 생체분자인지연구단(책임자: 오병하 생명과학과 교수)은 지난해 면역 시스템에 필요한 한 단백질의 구조를 밝혀 국제 권위지인 ‘Nature Immunology’에 발표했다.

면역 반응이라고 하면 흔히 항체나 T세포 등을 떠올리는데 이것들을 ‘적응성 면역’이라고 한다. 이 면역은 항체 하나가 세균 하나만 공격하는 등 매우 전문적이지만 반응 시간이 며칠에서 2주에 걸릴 정도로 늦다. 대신 인체에는 반응 시간이 불과 몇 분에 불과할 정도로 바른 ‘선천성 면역’이 있다. 대개 세균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물질을 공격하는 단백질을 선천성 면역 시스템이라고 하며 흔히 ‘인체의 야전 사령관’으로 불린다.

오병하 교수는 이중 세균의 세포벽에 들어가는 펩티도글리칸이라는 분자에 달라붙는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밝혀냈다. 이 단백질은 마치 2개의 손이 있는 구조처럼 보이는데 하나는 펩티도글리칸에 달라붙고 다른 하나는 뭔지는 모르지만 뭔가에 달라붙는 구조처럼 보인다. 이 손 모양의 구조가 떨어져 나간 뒤 다른 곳에 달라붙어 세균이 침입했다는 신호를 보내지 않을까 하는 것이 오 교수의 가설이다.

포항공대의 또다른 창의연구단인 유전자손상신호전달연구단(책임자: 조윤제 생명과학과 교수)의 연구도 매우 흥미롭다.

세포에 들어 있는 유전자가 손상되면 세포는 암 등 병을 일으킬 수 있다. 인체는 유전자가 손상되지 않도록 막는 다양한 시스템을 갖고 있는데 이런 시스템을 정확히 밝혀내면 암 등 난치병을 치료하거나 예방하는데 쓸 수 있다. 이 연구단은 이런 시스템에 필요한 생체분자의 구조와 기능을 연구하고 있다.

조윤제 교수는 8월 19일 과학 권위지 ‘네이처’에 유전자 복제 과정을 조절해 정상 세포가 암세포로 바뀌지 않도록 하는 단백질의 구조와 기능을 발표했다. ‘제미닌’(Geminin)이라고 하는 이 단백질은 세포가 분열할 때 유전자의 복제가 딱 한 번만 일어나도록 조절한다. 즉 세포 안에서 유전자 복제가 일어난 뒤에는 이 단백질이 또다른 복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막는다는 것이다.

만일 유전자가 하나의 세포 안에서 세포 주기와 상관없이 2번, 3번 계속 복제되면 암 등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제미닌 단백질이 이 같은 문제를 막아주며 정상적으로 세포가 분열할 때가 되면 단백질이 분해돼 다시 유전자 복제가 일어나게 된다.

대학이나 병원의 웬만한 실험실에는 X선 발생기가 있다. 그런데 왜 포항방사광가속기처럼 큰 것이 필요할까. 오병하 교수는 “가속기에서 나온 X선이 훨씬 강한데다 파장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어서 실험을 훨씬 쉽고 빨리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포항방사광가속기는 먼저 전자를 빛의 속도로 가속하는 장비가 필요하다. 전자는 항상 8만V의 전압을 유지하는 전자총에서 발사돼 150m의 선형가속기를 통과하면서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된다. 여기에 2GeV(20억 전자볼트)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빛의 속도로 가속된 전자는 곧바로 둘레가 280m인 원형의 저장링으로 들어간다. 전자가 저장링에서 빛의 속도로 돌면서 빛을 방출하는 것이다. 전자가 원형으로 돌기 위해 강한 전자석이 저장링에 붙어 있다. 저장링에서 나온 빛을 실험에 이용하는 것이 바로 빔라인이다.

웹사이트: http://pal.postech.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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