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문학신문 ‘2006년을 빛낸 문인상’과 ‘신인문학상’ 발표

서울--(뉴스와이어)--창조문학신문사(대표 박인과 www.sisarang.co.kr)에서 2006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신인문학상>과 <2006년을 빛낸 문인상>(10人) 수상자들을 발표했다.

이번에 창조문학신문 신인문학상에 당선된 신진 작가들은 이정선(시부문 ‘눈 꽃’, 수필부문 ‘일본침몰’), 이혜진(시부문 ‘이방인의 이방인’), 정학모(단편소설 ‘망’) 씨 등이다.

그리고 창조문학신문사에서 ‘2006년을 빛낸 문인상’ 수상자로 10인을 선정했는데 유재건(시조 ‘紙面 託鉢지면탁발’) 씨, 김성호(시 ‘그믐밤’) 씨, 안재동(시 ‘지독한 사랑 2’) 씨, 김경녀(시 ‘塔골 211 번지’) 씨, 이윤재(시 ‘忘年’) 씨, 조성범(시 ‘눈꽃바람’) 씨, 조현길(시 ‘기도의 연못’) 씨, 이상윤(시 ‘그대에게’) 씨, 박선희(시 ‘기막힌 유등’) 씨, 박인과(시 ‘부활의 숲에서’) 씨 등이다.

창조문학신문의 <2006년을 빛낸 문인상>(10人)은 한 해 동안 왕성한 창작열과 작품력으로 우수한 작품을 탄생시킨 작가들에게 수여되는 상이다. “창조문학신문에 접수된 작품 중에서 많은 작품들이 선에 올랐으나 특히 이들의 작품이 국가와 민족과 이웃에 대한 아픔과 그리움의 삽과 괭이로 우리의 정서의 골짜기에 박혀있는 창조의 돌멩이들을 끄집어내고 있다.”고 평가하며 창조문학신문 박인과 문학평론가는 <2006년을 빛낸 문인상>(10人) 선정 배경을 밝힌다.

창조문학신문사에서 발표한 신인문학상 수상자 중에서 시부문과 수필부문에 동시에 당선된 이정선 신인이 화제가 되고 있다.

두 부문 동시 당선의 행운을 안은 이정선 씨는 오랫동안 이웃돕기에 힘써온 이경자(본명, 44세) 씨로서 신인문학상 두 부문의 당선에 대해 “저는 제 자신이 필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기에 예쁘게 봐주셔서 그런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하니 오히려 두렵습니다.”라고 하며 부끄러워했다.

그러나 “이정선 씨는 전주 기린문학회에서 이기반 교수님께 오랫동안 창작 수업을 받아왔다. 작품이 더 약해도 문예지에 흔하게 당선되는 요즘에 이정선 씨는 튼튼한 필력과 따뜻한 심성을 고루 갖춘 보기 드문 인재다.”고 하며 그의 문학은 “극과 극으로 휘몰아치는 사랑의 양성체(兩性體)”라고 문학평론가 박인과는 평가한다.

또 한 분, 시부문에 당선한 신인은 이혜진 씨이다. 당선작은 “이방인의 이방인”으로서 “ 이 작품은 선교사로 자칭하면서 우리의 서민들을 울리는 상황을 묘사한 듯하다.”면서 창조문학신문의 심사위원은 “시어의 조탁의 과정을 좀더 훈련하면 좋은 작가로서 대성할 소질이 있어 당선작으로 민다.”고 했다.

창조문학신문의 신진 작가들의 당선작들과 심사평, 그리고 당선소감, ‘2006년을 빛낸 문인상’(10人) 등의 작품은 다음과 같다.

1. 창조문학신문 신인문학상 시부문

▣ 눈 꽃(雪花) / 이정선(44세, 전주시 완산구 거주)

너는 영롱한 옥구슬처럼
빛나는 색채가 아닐까

가시광선의 숫자대로
번득이며 불을 내뿜는 순간
그리움의 잉태는 시작되지 않았을까

그러나 탄생의 설레임도 맛보기 전
시들어져 존재의 나락의 늪으로
허물어지는 슬픈 운명, 우릴
사랑하여 줄순 없을까?

사랑은 위대하므로 그 불꽃으로
나를 녹이지 않을까 우리를
녹여내지 않을까

내 몸 하나 사랑하듯
우리 모두 포근히 보듬어 주면
우린 하나인 것을

▣ 시부문 심사평 : 박인과 문학평론가
―극과 극으로 휘몰아치는 사랑의 양성체(兩性體)

첫눈이 온 날에 ‘눈 꽃(雪花)’은 한층 빛나고 있었다. 그처럼 이정선 씨의 문학과 인생은 영롱한 진주빛처럼 이웃의 소외된 그늘 속에서 빛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눈 꽃(雪花)’은 작자의 본질적 자아의 영상과 함께 겹치면서 하나의 랑데뷰를 이루고 있다. 인류의 생과 사의 관계를 눈의 속성으로 그리고 있다. 그가 그리고 있는 눈의 여정은 물리적으로 설명하자면 전기적 작용이 관여하는 것이다. 사랑에는 짜릿짜릿한 전기적 자극이 관여한다. 사랑은 각 전자들, 혹은 원자들의 행동의 양식의 표현으로서 나타나는 것이기도 하다. 물과 얼음과 수증기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쉽게 짐작이 가는 것이다. 그래서 H²O는 그 ‘존재 가치’는 변함이 없으나 전하의 충돌과 힘의 분산에 대한 함수관계에 의해서 팽창과 수렴을 계속하는 것이다. 그 상태를 ‘존재의 나락’으로 표현하고 있어서 이 시에 있어서 이 ‘존재의 나락’은 핵심적인 추상적 언어로 기능한다. 그러면서 ‘차가움’과 ‘뜨거움’ 사이에서 하나의 매듭을 위해 존재하는 양성체(兩性體)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사랑이라는 여과기의 필터를 통해 나타나는 “영롱한 옥구슬처럼 / 빛나는” 번갯불의 시작으로 탄생을 알리며 사랑의 뜨거움(불꽃)으로 그 탄생을 녹여내는, 즉 탄생과 죽음의 극한 대립에 의한 극과 극의 수렴치에 대한 기댓값, 사랑의 본질적 자아의 속성에 대한 그리움을 상징적으로 추상하기 위한 시어들의 꿈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시어의 기교면에서 보면 ‘우릴’과 ‘우리를’의 시어들을 전행에 붙여서 시어의 천칭(天秤)에 달아 올려놓고 낭송시의 힘의 균형과 이 시에 있어서의 ‘우리’라는 공동체적 관심사를 한껏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기호의 사용에 있어서 언급하면 방임형의 의문문들 속에서 단 하나, 이 시의 중앙에 위치한 단 하나의 연에 의문 부호를 달고 있다. 그 의문부호는 방임형의 의문부호라기보다는 적극적인 사랑의 행위에 대한 의문부호로서 진정 우리는 서로 사랑할 수 없을까라는 강한 물음과 그에 대한 다짐을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라는 마지막 시어의 영상을 돌풍처럼 떠올리게 하기 위해 딱 한 곳에 의문부호를 강렬하게 삽입하여 놓고 있는 것이다.

시어의 배열에 있어서 탐색해 보면 “허물어지는 슬픈 운명”의 시행이 이 시의 전체적인 구조 속에서 정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위로 7행을 보내고 아래로 7행을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7의 숫자는 행운의 숫자라고 하듯이 이러한 평범한 인식 자체도 쉽게 버리지 아니하고 터치하고 있는 것이다. 그 행운의 7행을 뺀 “허물어지는 슬픈 운명”의 시행은 사실 이 작가에 있어서 버려버리고 싶은 시행이다. 허물어지고 싶지 않고 ‘우린 하나’로 세워지고 싶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7행과 7행 사이를 벌려 ‘허물어지는 운명’을 끼워놓은 것으로 인식된다. 그렇도록 이 작자는 하나가 되기 위한 몸부림을 하는 것인데 그의 문학과 봉사활동과 일치되는 모습이다. 이 “허물어지는 슬픈 운명”의 시행이 기준선이 되어 이 시가 접혀지면 위 아래의 시행들이 서로 정확하게 겹쳐 하나가 된다.

그것은 하얀 눈이 이 ‘눈 꽃(雪花)’이 이 시의 마지막 행렬에서 보여지듯 내 몸 하나 사랑하듯 “우리 모두 포근히 보듬어 주면”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이미지로 이어진다. 이것은 눈이 천지를 뒤덮은, 오직 하나의 색깔로 표현되어 빛나는 설야(雪夜)의 극한 사랑에 대한 함수값의 표현이기도 한 것이다. 우리가 모두 사랑의 전하를 띠고 서로에게 다가가 하나가 되어가며 음극과 양극의 전깃불을 뿜어댈 때 우리의 사랑은 진정 온전하여 질 것이다.

그래서 이정선 씨는 H²O가 냉동된 ‘얼음’의 상태로 탄생하는 인류의 냉동고 같은 사랑을 표현하면서 사랑의 뜨거운 ‘불꽃’으로 서로 눈이 녹듯 녹아져야 하는 상태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누가 ‘눈 꽃(雪花)’의 존재에 대해 뜨거운 자궁이라고, 뜨거운 사랑이라고 그 사랑의 결정체라고 깊게 은유하여 표현할 수 있을 것인가. 불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이정선의 내면에 구체화되어 있는 알레고리의 표현법에 의한 상상력의 도구에 의해서다. 참으로 특이한 시인 탄생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녀의 시어들은 제각각 사랑의 전하(電荷)를 띠고 활동하는 역동적인 양성체가 되는 것이다. 모든 사물을 사랑으로 볼 수 있는 그녀의 시야는 넓다. 그녀의 시야에서 불꽃이 튀기는 어느 날 우리는 아름다운 생명의 보금자리에서 포근한 여행을 꿈꿀 것이다. 계속 건필을 빈다.

▣ 이정선 씨의 당선소감
―새장 속의 새가 둥지를 틀다

꿈은 꿈꾸는 자에겐 이루어진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 꿈이 빠른 현실로 내게 다가올 것을 예견치 못했다. 걸음마부터 시작한 문학의 길이 벌써 4개성상이 된 것 같다. 고백을 하자면 처음에는 마음이 급해 퇴고도 잊은 채 그대로 작품을 제출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창작은 갈수록 더 어렵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리고 요즈음 등단 방법이 많이 달라져서 약간의 혼동을 초래하기도 했었다. 그래서 더욱 조심스러웠다. 그렇게 망설여 왔다.

나의 작품을 세상에 내어 놓을 경우 그 누가 봐도 인정해줄 때가 있기를 기다리며 마음을 비우며 글과 싸우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창조문학신문사로부터 내가 수필과 시로써 당선되었다는 메일을 받으며 등단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창조문학신문은 특히 문학에 관한 분야를 전문적으로 다루며 오로지 작품력 있는 신인들을 발굴하여 배출하기 위해 존재하는 튼튼한 문학회사이기에 내겐 더욱 신뢰가 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설레임보다 두려움이 앞선다. 아직은 시기상조인 것 같은데, 등단이 되니 두렵다. 적어도 자신의 이름과 작품에는 책임을 져야 하는데 그만한 그릇이 될까 하고 걱정이 앞선다. 시경에 ‘여리박빙(如履薄氷)’이란 말이 있듯이 매우 조심스럽다.

또한 어느 원로 시인님께서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시를 쓰기 전에는 최소한 100권 이상의 시집을 읽고 시작하라고 권하고 싶다.” 그분은 시집100권도 읽지 않고 시를 쓴다고 덤빈다는 것은 시에 대한 모독이라고 일침을 놓는다. 어디 시뿐이겠는가, 이렇듯 아주 어려운 과제가 나를 향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기에 기쁨보다는 무거운 마음이다. 어쨌든 우주의 형상인 문학의 새장 속에 문학의 새가 되어 둥지를 틀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 비록 그 틀이 무한한 필력을 요하며 나를 훈련하겠지만 더욱 훈련된 후에 그 새장의 자유를 맘껏 누리고 싶다.

오늘이 있기까지 지도해주신 기린문학회의 이기반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문학회 회원님들과, 또한 사랑하는 가족들과 기쁨을 함께하고 싶다. 바쁘신 중에도 작품을 선별하고 심사해주신 창조문학신문 심사위원님들께도 깊이 감사드리며, 이것이 완성이 아니고 온전한 자아의 완성을 향한 출발점이라고 생각하며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져먹는다.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그 초심을 잃지 않고 꾸준히 정진하고 또 공부할 것을 약속드린다.

▣ 이방인의 이방인 / 이혜진(29세, 충남 부여産, 주일학교 교사)
-아름다운 동네에서 온 사람

창백한 얼굴에서
두려움의 금빛이 심장박동과 같이
움찔거리는 키다리 신사

온 몸이 무기처럼
이곳 저곳에 문신이 박혀있고
굶주린 호랑이처럼 용맹도 하건만
동네 밖을 나가면
제 집도 못 찾네.

자신의 할아버지가 태초에
첫 사람이었고 자신의 백색 피부와 금발은
신께서 내리신 은총의 선물이라네

우연히 찾아온 방문객을
안내할 때면 자신이 알려주는 동네가
제일 안전하다며 노래하고
가보지도 못한 나라의 소식을
이리저리 짜깁기해서
새로 쓰고 책까지 내며
엉뚱한 삶의 빈 노트에
정말 모르는 그림을 그리네

오늘도 끈질긴 집념과
세계를 지킨다는 사명감으로
우리집 대문에 못질을 하고
우리집 식량에 못질을 하고
이제 우리의 자식들을 간음하고 있네

▣ 심사평 : 문학평론가 박인과
―‘기독교의 이단’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작품

우리는 오랫동안 외세의 압력을 받아왔다.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국토적으로, 다방면에서 우리의 존재를 허물어뜨리는 역사의 피비린 전철을 밟아온 것이다. 이혜진의 작품은 이러한 맥락에서, 들끓는 심정으로 무너지는 한민족의 자긍심을 부여안고 민족적 자존감으로 독자들에게 호소하고자 한다.

특히, 종교적 색체가 우리나라에 특수하게 물들어 있는 시점에서 종교의 진리를 잘못 전달하는 사이비와 같은 혹은 사이비 교주와 같은 자들, 기독교에서 말하는 이른 바 이단의 무리와 같은 자들을 고발하기 위한 글쓰기를 선택한 것이다. 이혜진이 말하는 그들은 키가 큰 서양 사람이든 키가 작은 동양 사람이든 그들이 전하는 잘못된 진리는 “창백한 얼굴의 키다리 신사”에 비추어진 오만한 이미지이며 그것이 외세의 무수한 압력이 가해지는 우리의 시대상황과 맞물려 빚어낸 형상으로서의 “문신이 박혀있는 키다리 신사”들인 것이다.

그들을 “굶주린 호랑이”에 비유했고 그들이 말하는 언어로 “아름다운 동네에서 온 사람”으로 비유했다. 비진리로 문신한 그, “아름다운 동네에서 온 사람”은 “엉뚱한 삶의 그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가보지도 못한 나라의 소식”을 문신처럼 “이리저리 짜깁기해서 새로 쓰고 책까지 내며” 우리를 현혹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만이 “자신의 할아버지가 태초에 / 첫 사람이었고 자신의 백색피부와 금발은 / 신께서 내리신 은총의 선물이라네”라는 시어를 동원하여 그들만이 선민인 것처럼 행하는 잘못을 꼬집고 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가 된 배경과 같은 것이어서 마치 헬라시대에 유대인들이 자신들만 선민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처럼 행하는 의문의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다는 신앙적 역사의 맥락에서 성경의 거울처럼 비춰주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진정 “우리의 재산을 탐내는 자”요, 우리의 자식들을 “간음하는 자”라고까지 표현하고 있다. 이 ‘간음’이라는 시어를 붙임으로써 문자적 의미의 ‘간음’과 그 문자의 표피 속에 가리워진 우리의 ‘정신적인 간음’까지도 말하고 있는 것으로서 순수한 은혜와 사랑과 믿음과 진리에 대한 신앙의 간음, 마치 그것 또한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가나안 지역의 이방신들을 믿었던 것처럼 이 시대의 아픈 신앙적인 간음까지도 염두에 두고 있는 깊이 있는 작품이다. 우리의 독실한 기독교적 신앙과 함께 우리의 아름다운 홍익인간의 사상을 가진 한민족의 정통성을 지키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심도 있게 채색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독교적 문학작품이 많이 나와야 한다. 그래서 어지러운 한반도를 은혜와 진리와 사랑과 믿음의 힘으로 굳건히 세워야 한다. 이 작품에서 ‘이혜진’의 시어에서 ‘혜진’의 시어 역시 ‘은혜와 진리’를 닮아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혜진의 시는 우리에게 기쁨을 준다. 그녀의 다른 응모작들도 기독교적 형상화에 주력하고 있는 것들이었다.

이혜진의 시어가 알알이 여물면, 그녀의 시상이 좀 더 익숙하게 우리의 안방으로 깊이 있게 찾아들게 되면, 우리는 따스한 아랫목의 군고구마의 달콤함처럼 그의 시세계에 빠져들며 희망에 잠기게 될 것이다. 부단히 써서 창조문학신문에서 등단한 대단한 분출력으로 대성하길 빈다.

2. 창조문학신문 신인문학상 수필부문

▣ 일본침몰(수필) / 이정선(44세, 전주시 완산구 거주)

9월의 향기가 익어가던 어느 날이었다. 눈에 띄는 영화 한 편 “일본 침몰”이 시선을 잡아끈다. 요즈음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빙하가 녹아내리는가 하면 고온다습한 현상으로 계절의 감각마저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지구 전체가 몸살을 앓고 있는 때에 “일본 침몰”이라는 영화가 시내 극장가를 강타하고 있다하니 놀랄 일이다. 언제였던가! 잠자는 예언가로 잘 알려진 에드가케이시(1877∼1945)는 “일본은 반드시 바다 속으로 들어갑니다.”라 했고 일본의 도승 기다노 대승정은 일본은 20만 명 정도 살아남을 것이라고 했다. 탄허(呑虛, 1913~1983) 스님 역시 그의 저서 중에서 “부처님이 계신다면 (교림출판, 1980)”에서 일본침몰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한 부분이 있다. 일본 영토의 2/3 가량이 바다로 침몰할 것입니다. 일본은 *손방(巽方)이라고 하는데 손(巽)은 주역에서 입야(入也)로 풉니다. 이 들 입(入)자는 일본 영토의 침몰을 의미합니다.”라고 얘기하였다.

(중략)

더욱이 이 영화가 흥미를 끄는 것은 1억 2천만 인구 중에 1억 이상이 일본 땅덩어리와 함께 가라앉을 수밖에 없음이 기정사실화 된다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정부의 한 각료가 “그냥 이대로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사라지는 것을 택하겠다.”라고 말하자 일본 수상은 “나도 그 생각이 가장 마음에 와 닿는군.”이라고 했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일본인 뿐일게야.”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때마침 이를 반영이라도 하듯 대변혁을 말해주는 중요한 사건이 일간지들에 대서특필되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지난 10월 9일 북한이 핵실험을 전격 강행한 것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전 세계가 충격에 휩싸여 있었는데 이는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상상만 해도 아찔할 정도로 긴박감이 조여 오는 이때 자기 일이 아닌 양 수수방관할 것인가. 더욱이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작 소중한 것을 잊고 남의 일인 양 유희(遊戱)에 치우치는 경향을 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실정이다. 어디 그뿐이랴. 동북 공정은 무엇이고 독도 문제는 어찌 되는가!

반딧불도 제 스스로 빛을 낸다 하였거늘 하물며 우리네 인간도 빛을 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정작 할 일이 무엇인가. 나는 어디서 왔으며 내 삶의 진정한 목표는 어디 있는가.”, “자신의 그 모든 것을 허물어 버리고 사회 일각에서 말하는 상생(相生)의 의미를 진정으로 외쳐보면 어떨까. 나와 내 조상 그리고 인류를 위해 봉사한다면 그 보다 더 멋진 상생의 길은 없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대학(大學)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만물에는 본말(本末)이 있고 일에는 시종(始終)이 있으니 먼저 할 일과 나중 할 일을 가릴 줄 알면 도에 가까우니라.”

▣ 수필부문 심사평 : 이경덕 작가
―독자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심어주는 유익한 글

일본이 침몰한다는 것은 시, 소설, 수필 등 어떠한 문학의 장르에서도 제목만으로도 관심을 끌만한 것이다. 불확실성(不確實性)의 시대에 사는 현대사회에서 시대의 조류에 맞게 작가 이정선은 제목도 잘 선택하여 글을 전개하고 있다. 일본이 침몰한다는 것은 충분한 이슈(Issue)가 될만하고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으며, 실제로 ‘1억 2천만 인구 중 1억 이상의 일본 국민이 지진으로 침몰 한다면 어떻게 될까?’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점을 부각시켜 글로 표현했던 것이며, 정부 각료가 ‘사랑하는 사람과 이대로 사라지는 것이 좋겠다.’고 말한 것은 애국심이 풍부한 일본 국민성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수십 년 전 이스라엘 전쟁 시 미국에 있던 이스라엘 대학생이 학업을 포기하고 전쟁터인 조국을 향해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면서 ‘이 한 목숨 나라 위해 기꺼이 바치겠다.’고 했던 이야기는 익히 들어서 알고 있으며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이 영화에서 보여주고 있다. 영화 속의 주인공 소방대 구조대원인 레이코가 조국을 떠나는 것이 비겁하다고 생각한 것처럼 이정선 작가도 ‘그런 시점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한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필자가 말했듯이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며 나 자신의 목표는 무엇인지……’ 생각나게 하는 작품이다. 누구를 위해서 사는 것인가? 나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 상생(相生)의 삶을 엮어 가자고 말한다. 자신의 모든 것을 벗어버리고 나와 이웃, 그리고 인류를 위해 봉사하겠다는 필자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그리고 그는 먼저 할 일, 나중에 할 일이 무엇인지 우선순위를 가려 행동에 옮기도록 독자들을 유도한다. 자기 자신의 일도 못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필자의 합리성, 인간성, 봉사정신을 엿볼 수 있고 독자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심어주는 유익한 글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내용과 제목도 관심거리가 될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인간상(人間像)을 느끼게 하는 좋은 글이라 할 수 있겠다.

다만, 암시적으로라도 필자 자신이 어떠한 봉사를 하여왔고 미래에 펼쳐지는 모습을 표현하여주었으면 하는 아쉬운 점은 있다.

3. 창조문학신문 신인문학상 소설부문

▣ 망網(단편소설) / 정학모(43세, 전북 전주産, 인천시 거주)

어둔 밤바다는 미친 듯 요동치고 있었다. 하늘은 어둠을 가르는 섬광과 비를 더하며 거대한 파도의 깊이를 움직이는 거센 바람을 토해냈다. 첩첩한 산처럼 이동하는 검은 격랑 속에 위태롭게 파묻혔다 나타나는 먼 불빛은 곧 깊은 어둠 속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도 같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검은 물결이 뱉어낸 불빛은 희미하게 존재를 알렸다. 동명호는 그렇게 위험한 바다의 격랑을 타 넘으며 항해하고 있었다. 동명호 안에서 돌아보면 사위는 둥근 수평선이 어둠과 맞닿아 있는 형상으로 우주 속의 수성(水星)에 유일하게 떠 있는 듯 절대적인 거대한 두려움처럼 보였다. 온통 물의 세계라는 인식 속에 육지의 존재는 아예 전무했던 것처럼, 온통 세상은 물이 가두고 있는 당연함이 들도록 선원들에게 보이는 건 사나운 파도뿐이었다. 고된 생존의 투쟁을 낳고 있는 물의 거센 침노를 선원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뱃전에서 튀어 올라 짭짜름하게 뺨을 갈기는 매운 기세와 멀리 엄청난 굴곡을 이루며 요동치는 물결의 낙차가 일시 마음의 동요를 일게 하긴 하여도 그들은 갑판 위에 당면한 일의 중압과 생체의 부적응이 안기는 구역질이 더욱 절실한 긴장과 고통의 요소였다.
“이 새끼들아, 빈 고리 나간다 말이다. 빨리빨리 통발 대란 말야. ‘뇌수술’, 빨랑 일어나서 안 튀어!” (중략)

사람의 뇌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 나무토막처럼 굳어져 그다지 효용성이 없었다. 그래서 고통마저도 뚜렷이 인식하지 못한 채 생체의 본능이 시키는 대로 자빠지면 일어나고 빈 구역질로 몸을 부르르 떨면서도 말똥구리 같이 통발을 옮겨가고 있었다. (중략)

선체가 내려앉으며 심한 각도로 기울어지자 높은 곳에 로프를 기대고 앉은 재영의 몸은 갑판에서 벗어나 바다의 한가운데 있었다. 재영은 자신이 우주선에서 외줄을 풀며 나와 끝없는 암흑의 공간 위에 떠 있는 듯 일순 아찔함을 느꼈지만 그건 잠시 몸을 기댄 로프를 잊은 착각이었다. 재영이 기댄 로프 밑으로는 우주처럼 깊은 물결이 도도한 기세로 꿈틀거렸고 머리 뒤로는 태풍이 밀고 오는 드높은 시련의 파도가 접근하고 있었다. (중략)

마흔이 다 되어 교도소에서 출감한 재영은 어망을 빠져나온 물고기처럼 한껏 자유로운 듯 했으나 아내와 딸을 찾아내고 자신의 위치가 영영 사라진 사실을 뼈저리게 느껴 방황했다. 벌써 십년 전에 재혼해서 살고 있는 아내와 딸이 비록 풍요에 겨워 살고 있는 건 아니었어도 보기에는 행복해 보였다. 새 남편을 배웅하는 아내의 따뜻한 미소와 중학생 교복을 입은 딸의 해맑은 빛에서 재영은 자신을 드러낼 용기를 잃고 말았다. 불필요한 자신의 존재가 의미하는 바가 너무도 하잘 것 없는 기억부스러기였고 그들에게는 부담스런 더러운 짐 꾸러미가 될 것 같아 재영은 스스로 주저앉고 말았다. (중략)

물고기도 사냥하지 않고 손쉽게 얻어지는 먹이 때문에 무모하게 달려든다. 재영이 몸담았던 교도소에도 문제 해결을 그런 식으로 한 많은 수인들이 어항 속에 갇힌 물고기와 다를 바 없이 잡혀 있다. 화를 참지 못하고 이성을 배재시킨 살의적인 계획 또한 자신을 성찰하려 하지 않은 무모한 해결방법이었다. 재영은 아내가 마지막 접견을 와서 한 말이 떠올랐다. 재영의 무모한 짓은 자기 자신의 감정만을 위한 독단이라고. 고로 자기는 책임감 때문에 불행을 감내하며 살고 싶지 않다고…. 닻을 얹고 달리는 동명호의 선두(船頭)에 선 재영은 바람이 튀어 오르는 물보라를 차갑게 온 몸으로 맞아들이고 있었다. (중략)

핏빛으로 저물어가고 있는 바다를 등지고 보트는 빠른 속도로 부두를 향해 나아갔다. 수많은 갈매기들이 공중을 선회하며 날았다. 사람과 배들로 북적거리는 부두와 가까워지면서 재영은 자신의 여년에 대한 쓰임새를 긍정적으로 갈망하며 단절된 시간 건너에서 움트고 있는 삶의 애착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문을 서서히 열어젖히고 있었다. 비로소 그는 마음을 가두고 있는 그물에서 벗어난 자유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것이다.

▣ 단편소설 당선소감 / 정학모

쓴다는 행위가 내겐 늘 의미 없는 낙서처럼 여겨져 아주 오래 전에 포기하여 잊힌 일들이었다. 생명을 불어넣지도 못하는 무색한 글을 무턱대고 쓸 만큼 세상은 내게 여유를 주거나 호락호락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40을 훌쩍 넘은 인생은 여전히 삶의 고단함만을 타박하고 주위나 과거를 돌아볼 엄두를 내지 못하며 살고 있다.
많이도 변해버린 세상, 그 세상 일편에 서툴지만 자신만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이 있음을 발견하고 어설픈 글을 부끄러운 마음으로 올려보았다.
나에게 기회를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 단편소설 심사평 : 문학평론가 박인과
―삶의 바다에 박혀있는 애증의 무게를 건져내는 욕망의 투망질

정학모의 단편은 튼튼하고 헐렁한 그물조직처럼, 단단하고 여유 있게 엮여져 있음을 본다. 깔끔하면서도 맛깔스런 문장과 이미지와 이야기와 비유들이 적절하게 섞여 내밀한 고통의 인내를 감지할 수 있도록 해준다. 긴장과 이완의 여유로운 문장들의 역동성 있는 행렬들은 퍼들거리는 물고기처럼 싱싱한 언어의 지느러미들로 꿈틀거리고 있음을 본다.

삶은 우리에게 유한한 시간을 선사한다. 혹은 아직 남아있는 시간의 그물이 우리에게 유한한 어떤 삶을 건져준다. 그런데 시간은 그 존재 가치가 허무다. 그야말로 알찬 허무이다. 그래서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태초의 자궁을 추억하며 그 알차고 유한한 존재의 울타리 속에서 무한한 본질적 자아의 탈출을 꾀한다. 영원 속에 파묻히면 역시 또 영원이란 그물 속에 걸려든 것이겠지만 몸부림 하는 동안은 유한한 혹은 무한한 시간의 탈출의 꿈이 비본질적 존재의 자아성으로 우리를 흥분케 한다.

정학모의 단편은 이런 의미에서 무한하고 끊임없는 인간 본성의 질주를 닮아있다고 할 수 있다. 세상은 “어둔 밤바다”처럼 미친 듯 달려드는 커다란 어항 속 그물로서 깊게 은유되어 있다. 그 그물에 걸려들지 않으려고, 혹은 이미 걸려있는 그물의 존재 속에서 기를 쓰며 빠져나가고자 하는 물고기들의 몸부림처럼 주인공 재영이는 삶과 시간과 절망의 테두리에서 시간의 낚싯바늘에 걸려 나동그라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햇빛처럼 빛나는 딸아이의 투망 속 자유를 꿈꾸는 것이다.

재영이가 감옥이라는 삶의 그물 속에 들어가 세월을 보내는 동안 아내와 딸은 또 다른 그물 속에 걸려있었다. 그래서 그 그물의 구멍을 키워주기 위해 재영은 태안반도에서 배를 타고 투망을 던지게 된 것이다. 삶을 내동댕이 친 그물의 자유를 위해 그물을 던지는 재영의 행위가 인류의 시간을 닮아있다. 과연 투망을 던지면 물고기가 그물에 걸리는 것인지 물고기를 잡는 자가 투망에 걸려있는 것인지 모르지만 물고기의 입장에서 보면 분명 투망을 던지는 존재들이 투망에 걸려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작품 속에서 그물과 그물의 형상을 구체화시키며 곳곳에서 투망질을 하고 또는 투망질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사람과 배들로 북적거리는 부두와 가까워지면서 재영은 자신의 여년에 대한 쓰임새를 긍정적으로 갈망하며 단절된 시간 건너에서 움트고 있는 삶의 애착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문을 서서히 열어젖히고 있었다. 비로소 그는 마음을 가두고 있는 그물에서 벗어난 자유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것이다.”며 끝을 줄이고 있다. ‘단절된 시간 건너에서 움트고 있는 삶’이라고 표현했듯이 재영이는 딸애의 그물에 구멍을 내기 위해 얼마의 돈을 마련한 것 같다. 그래서 시간의 그물이 손상되어 단절된 것으로 ‘단절된 시간 건너’라고 표현되는 것이다. 그런데 ‘삶의 애착’이 또 다른 존재의 그물인 것을.

이 단편은 시작과 전개 과정에서 튼튼하다. 그런데 마무리가 허전하다. 이 소설은 재영이가 하선하면서 끝이 나는 것이다. 이 작품의 완성도는 하선하고서도 어떤 풍성한 전개를 요구한다. 그렇게 보면 이 단편 ‘망(網)’에서 작가는 많은 것을 표현하지 못한 듯 하다. 단지 광란하는 삶의 바다에서의 투망질의 이미지만 한껏 던져주고 마는 결과가 되고 마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고기잡이배에서의 철저한 상황 묘사에서 많은 것을 표현하고 드러내려 애썼지만 정작 작가의 옹골진 깊음은 쏟아내지 못한 듯 하다. 폭넓은 인간 본연의 질주를 향한 주제를 온전히 드러내기엔 단편으로선 부족한 것 같다. 그러나 신인으로서의 작품성의 깊이와 밀도와 정확하고 감각 있는 언어의 탈출이 높이 살 만하다.

4. 창조문학신문 <2006년을 빛낸 문인상>(10人) 수상작들

▣ 紙面 託鉢(지면탁발) / 유재건(42세, 한국시조문학회, 서울시 거주)

히딩크의 발언처럼 / 배가 고픈 나의 발원
발표할 지면마저 / 허기진 무명시절
탁발승 염불을 하자 / 영업방해 협박하던

끼리끼리 주고받는 / 야합의 문학상들
구십 구 섬의 부자들은 / 한 섬마저 침 흘리고
애절히 갈구를 하면 / 쌀 한 줌 주겠단다

원고료는 무지급에 / 안면몰수 인면수심
허접한 지면들을 / 돈을 받고 할애하며
생색은 태산이 되고 / 현물은 똥이 된다

초근목피 연명하며 / 중진이라 채근해도
피래미 먹기 좋다 / 장을 들고 약올린다
죽순만 창궐을 하는 / 가식만 찬 무림촌

필살기는 전무후무 / 야바위의 아전인수
달마가 동쪽으로 간 / 이유를 알겠구나
김삿갓 이슬에 젖어 / 죽장 들고 길을 트네

▣ 그믐밤 / 김성호(충북 무극産, 다음카페 망우촌 운영자)

호롱불의 그림자가 방벽을 유난히도 오르락내리락하는 그믐밤
습관적으로 터진 양말을 움켜잡고 계시는 어머님의 얼굴은 달덩이였다
옥이네 오래된 살구나무에 소쩍새가 찾아와 울기라도 하면
어머님의 시름은 소쩍 소쩍 소쩌르르 소리를 타고 외가의 사립문가에 가 계셨고
내 동생이 가볍게 코를 골며 곤히 자는 모습을 한동안 바라보시다
후우욱 불을 끄시고는 잠시 인형이 되셨다 이내 만근의 몸을 눕히셨다

창호에 달이 무겁게 지는 그믐밤이면 나는
덕지덕지한 양말을 벗어 던지고
어김없이 죽어라 개천둑을 내달리는 꿈을 꾸었다

▣ 지독한 사랑 2 / 안재동(48세, 문학평론가, 서울시 거주)

누군가를,
지독히 미워할 땐
쉬 깨닫지 못하는 것이
사랑이고

사랑으로 가득 찰 땐
잘 느끼지 못하는 것이
미움이듯이

나풀나풀 힘없이
대지로 추락하는 순간까지
계절도 바람도 탓 않고
한 번쯤의
홧홧한 사랑만을 꿈꾸는
저 성긴 늦가을 낙엽들.

바라보기만 해도
뜨거운
온몸의 저 열꽃.

▣ 塔골 211 번지 / 김경녀(64세, 전주기린문학회, 전주시 거주)
―영랑 생가에서―

몇 번의 세월이 흘러
가을의 뒷자락도 보이지 않는
눈 내리지 않은 소설小雪
탑골 211 번지를 찾는다
모란처럼 피고 지는
향 맑은 임의 노래
설레던 가슴
휘영청 밝은 밤 이련가
이슬 내린 푸른 밤 이련가
‘혼자ㅅ 마음 아실이’
간곡히 찾았지만
귀띔 없는 대숲
눈짓 없는 감나무
세월은 가도
언제까지나 멈추지 않을
찬란한 슬픔의 노래
다시 들으려
시비詩碑 앞을 바장인다.

▣ 忘年 / 이윤재(49세, 창조문인협회, 고양시 거주)

설움이 목젖 들먹이거든
뒤돌아 날 쳐다보지 말고
떠오르는 푸른 달빛 올려다보라.
내사 뭐가 뭔지 모르겠거니
그리하여
다시 복받쳐 오르거든
설움에 관하여는
서녘하늘에 물어보라.
내사 뭐가 뭔지 정녕 모르겠거니
더디고 더딘 구름인들 다는 알랴
제 하얀 머리위로 거침없는
하늘이 있음이나 알랴
하늘밑을 떠도는 설움이 있음이나 알랴
가슴 저미는 날들에 대하여도
뒤돌아 날 쳐다보지만 말고
지는 해거름 따라 사위어가는
노을빛 서녘하늘에 물어보라
내사 뭐가 뭔지 모르겠거니
그저 설움에 관하여는
서녘하늘에 물어보라.

▣ 눈꽃바람 / 조성범(43세, 인천시 거주)

열일곱
첫사랑처럼
나뭇가지에 꽃이 피었습니다
밤이 깊어지면서
촉촉한 눈꽃바람 불어오더니
스물둘
빛바랜 추억처럼
어두운 하늘에 송송이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습니다
서른셋
수천수만의 사연처럼
복개천 불 꺼진 포장마차 위로 하얗게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머리칼 날리는 눈꽃바람 타고 투 두둑
달빛에
부서져 내립니다
아침 해가
더디게 뜨기를 바라본답니다
무섭고, 외로워서요

*눈꽃바람 : [명사][북한어]눈꽃을 날리며 부는 잔잔한 바람.

▣ 기도의 연못 / 조현길(31세, 시사랑, 충주시 거주)

먼 하늘 위 푸른 연못에는
인류가 숨겨둔 행복의 샘물이
고여 있다네

빌고 빌어 정성을 드리면
오히려 그 마음을 비춰주는
맑은 연못

하지만
한번만 성을 내도
금세 말라 버리는
신비의 샘물

단박 깨쳐서
한 바가지 마실까

고요히 성내는 마음 내려 앉히고
한 바가지 얻어 마실까

아니면
홀연히 그 연못으로
이 육신 이대로
담가둘까

▣ 그대에게 / 이상윤(56세, 창조문인협회, 대구시 거주)

생각하시나요
무장무장 피어나던 우리들의 비밀이
어느 날 쯤
나비나 벌을 맞이한 꽃잎의 파문처럼
가늘게 떨리던 때를

지난 며칠 동안은
그대 가는 길에 모질게도 바람 불더니
자다가도 몇 번이나 흠칫흠칫
잠이 깨어졌지요

그리고 생각했지요

죽어서도
다시 살아날 수 있는 사랑이라면
저승길이 아니라도
나 이제 석남화 한 송이 머리에 꽂고
그대에게 가고 싶어요

풀잎에 이슬지는 하룻밤이 아니라
꽃물 든 손톱에 돋은 반달이
차갑게 이지러지고 또 이지러져서
둥근 달이 되도록

남은 날을 모두 그렇게 가고 싶어요

▣ 기막힌 유등 / 박선희(다음카페 ‘아름다운 시인의 숲’ 운영자, 부산지역)

칼날이 스치면 손등도 강이 된다
피로 얼룩진 꽃잎을 달고
느닷없는 통증의 물꼬를 따라
낭자한 꽃 한 송이 띄운다
퍼질러 앉아 울 수도 없는,

기막힌 유등流燈!
누군가 꽃 이름을 그렇게 불렀다

꽃잎 한 장씩 돋을 때마다
겁먹은 연어 한 마리 어룽어룽
헛간처럼 어두운 허공을 울었다
막막하게 흘러내리는 강
간신히 저물고 있었다

꽃 피운다는 것은
만삭의 화염을 몸속에 들여놓는 일
누군가를 진저리치도록 사랑하는 일
칼날 같은 꽃 한 송이 세상에 내놓는 날
누가 꽃을 아름답다하는가
아름다움은 얼얼하도록 아픈 관념이다

기막힌 유등,
딱 열흘 동안 강기슭을 흘렀다
쓰라린 향기 내뿜는 꽃그늘에 숨어버린
손등 위의 강,
강물이 말라버린 붉은 흔적만
기막히게 남았다

▣ 부활의 숲에서 / 박인과(47세, 문학평론가, 서울시 거주)

푸른 숲, 푸른 생명의 열매를 달다

피비리게 완성된 미래의 말씀들
툭, 툭, 터지며 무지개 빛으로 쏟아져 내릴 때
자멸의 성문과 주검의 골짜기에서 통곡하던
눈물의 예레미야를 만나리라

어둠으로 긁적이던 십자가에 양 날개 돋고
아픔의 핏방울 듣던 기억 저 편에 서서
구멍 나고 찢겨진 육체의 옷 벗고
싱싱한 창조의 잎맥으로 노래하리라

푸르게 생명으로 가지 치는 멸망의
나무 꼭대기 끝에서 꽃피우는 절망의 말초신경
찰랑찰랑 영생의 물줄기로 흔들리는
그리움의 깨끗한 뿌리털로 나는 만나리라
그리하여 예레미야의 끓는 사랑의 뼉다귀와
뜨거운 가슴팍을 만져보리라

차가운 사망의 가슴 찬란히 문드러지는
숲의 심장으로 충혈된 눈 시리게 쏟아내며
초록빛으로 박제된 시간의 수채화로 흔들리리라
끈질기게도 삶의 갈비뼈 녹여내던
영원의 불수레 돌리며
빨갛게 빨갛게 기쁨의 목 흔들리리라

창조문학신문사 개요
창조문학신문사는 한민족의 문화예술을 계승하여 발전시키고 역량 있는 문인들을 배출하며 시조의 세계화를 지향하고 있다.

웹사이트: http://www.sisarang.kr

연락처

시사랑, 0502-008-0101, 이메일 보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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