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문학신문, 2007 신춘문예 시조부문 당선작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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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문학신문사
2007-01-01 11:28
서울--(뉴스와이어)--창조문학신문은 2007 신춘문예 시조부문 당선작을 발표했다.

당선작 및 당선소감, 심사평 등은 다음과 같다.
(창조문학신문 참조 : www.sisarang.co.kr)

▣ 시조부문 민 병관 : 당선작 「달세 광고지를 붙이며」 A형

프로필 : 39세, 경남 산청産, 부산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 『전망』 시부문 등단, 3인시집 『낙하산을 펴다』 출간, 「그리고 시」, 「雨酒會」 동인, 현 금성고등학교 교사, 부산시 수영구 거주.

― ♣ 「달세 광고지를 붙이며」 / 민 병관의 시조

민락동(民樂洞)
백산(白山) 어귀
파란 대문을 찾으셔요

네모진 홑이불 줄기차게 걷어차도 따습게 맨살 부빌 햇누런 구들방과 하늘채 가차운 다락방(多樂房)이 있어요 천장에 붙여놓은 몽금포 모래알이 코 앞에서 보풀보풀 솜털되어 쌓여가죠 솥단지만 안쳐도 넘쳐나는 부엌과 무릎 내음 너풀대는 뒷간이 가붓대죠 함박웃음 머금은 구름장도 보이고 집 떠나 온 씨톨까지 채마밭이 싹 틔우죠 이제는 훌쩍 커버렸을 경은, 영광, 다연 … * 풋풋한 아이들 손 맞잡고 오셔요 푸드득, 첫 눈 맞으며 어서어서 오셔요

화들짝 찾아주셔요
두근새근
기다릴게요

* : 몇 해 전 실종되어 지금도 찾고 있는 어린이들의 이름.


― ♣ 시조부문 심사평 : 문학평론가 박인과
“어울림의 파격을 통한 시조의 중흥을 꿈꾸는 율격의 자유”

이렇게 많은 시조들을 응모해올 것을 예상치 못했다. 그 중에서 당선작을 고르기란 매우 어려웠음을 고백한다. 마치 시조의 갑작스런 부활을 보는 것 같아 기뻤다.

최종심에 오른 작품은 5편이었다. 5편 모두 고르게 시조의 무게를 지니고 있는 듯 했다. 그러나 4편 모두 시조의 초·중·종장의 무게 중심이 맞지 않았다. 어떤 작품은 종장이 중장에 비해 너무 가볍고 어떤 작품은 초장의 식상한 표현이 시조의 질감을 훼손하고 있었다. 그리고 문법적 오류도 보이고 있었다. 마지막에 두 작품이 수작으로 남게 되었는데 그 중의 민 병관의 시조에 힘을 실어주기로 했다. 이유는 겨레말의 유용한 사용과 보급에 그 근거를 두었다. 전실아, 김용매, 이기연, 박태수 씨 등은 앞으로 더 좋은 작품을 창작할 기술과 기질을 소유하고 있었음을 밝힌다.

민 병관은 사각의 자유를 꿈꾼다. 그는 그의 작품에서처럼 “네모진 홑이불 줄기차게” 걷어차며 네모진 원고지 칸에서 자유하고 싶다. 조그만 달세 방이라도 좋다. 이 고통의 네모난 감옥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운명의 삼각형 두 개가 겹쳐진 네모난 고통에서 자유할 수 있다면.

민 병관의 <창조문학신문 2007 신춘문예> 시조부문 당선작 「달세 광고지를 붙이며」는 고풍스런 시조의 흐름을 씻어내고 겨레말의 적절한 사용을 통한 시조의 중흥을 꿈꾸며 새로운 창작법을 도출해 내고자 하는 모습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중장에서는 시조 율격의 자유를 위한 풍성한 전개로서의 다양한 확산을 보이는 반면 종장에서는 시조의 정형을 유지하며 수렴되고 있다. 그래서 이러한, 중장에서의 그의 시조의 얼개를 뒤집어 펴는 행위의 목적은 자유를 위한 자유가 아니라 다양하고 질 높은 자유의 수렴을 위한 진정한 시조적 자유를 그려내고자 시도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현대적 감각의 시조 창출을 통한 어울림의 파격의 미를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민 병관의 시조가 초장에서 정형을 유지하는가 싶다가 중장에서 보따리를 잔뜩 풀어놓고 종장에서 다시 정형의 율격으로 계산되어 응집되고 있는 것은 그가 안정된 시조의 참신한 부활을 꿈꾸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 시조가 초장에서 머리 끈을 풀었다면 초장부터 맥이 빠져 산발한 두통을 가져다주었을 것이고, 종장에서 바지를 내렸다면 막판에 화장실에 갔다 와야 될 형편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분명히 신춘문예에서 떨어져 술 퍼담고 뒤가 마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절히 중장에서 허리 끈을 풀고 채워두는 것은 나중에 다시 되새김질하기에 알맞도록 구성하기 위한 그의 시문학적 영적 템포에 의한 철저한 계산에 의해서인 것을 선자는 감지하였다. 중간에서 허리끈을 풀고 시조의 영양분을 호흡할 때도 잘 살펴보면 민족적 정형의 리듬을 잘 구사하고 있다. 특히 중장의 종장이라 할 수 있는 “푸드득, 첫 눈 맞으며 어서어서 오셔요”는 3/5/4/3의 시조의 튼튼한 종장의 현(絃)을 건너고 있다. 그의 이러한 작법은 시조의 맛과 멋과 질감과 리듬감을 잘 알고 충분한 훈련을 거쳐왔기 때문인 것으로 확신된다.

시조의 시조어(필자는 시어에 대해 시조에서는 ‘시조어’라 명명함)들의 잎사귀들 몇 몇을 뜯어보면 ‘民樂洞’, ‘白山’,‘파란 대문’, ‘多樂房’, ---- ‘채마밭’, ‘풋풋한 아이들’, ‘푸드득’, ‘화들짝’, ‘두근새근’, ‘몇 해 전 실종되어 지금도 찾고 있는 어린이들의 이름’ 등이다.

이 ‘시조어’들에서 유추해 보면 평온한 마을의 격렬한 이별의 아픔의 서정을 눈물빛 언어로 빚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이 시조가 특별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민락동은 ‘民樂洞’이다. 그 동네는 부산 남구에 속해 있는 갯마을이다. 민 병관이 살고 있는 부산 수영구의 옆 동네이다. 그러면서 ‘民樂洞’은 우리 민족의 민족성, 즉 白山처럼 깨끗하고 여유로운 ‘樂’의 ‘함박웃음’ 머금은 백성이 사는 나라의 부드럽고 온화하고 평화로운 정체성을 대변한다.

그런데 그 민족에겐 한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이 시조에서 ‘몇 해 전 실종되어 지금도 찾고 있는 어린이들의 이름’을 언급한 데서 찾을 수 있다. 이 실종된 ‘어린이’의 ‘시조어’는 문자적 의미로 실제적인 ‘어린이’들을 의미하면서 그 심층 깊이에 실종된 아니면 퇴색된 한민족의 사랑과 혼, 그리고 영원성과 민족성, 또한 진취적인 기상과 평화의 꿈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民樂洞’, ‘白山’, ‘파란 대문’, ‘多樂房’과 ‘실종된 아이들’이란 ‘시조어’들로 이 시조의 주제를 직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희망한다. 그 ‘풋풋한 아이들’이 돌아올 것을, 첫 눈 내리는 한겨울이 돌아와도 한반도의 잠 못드는 들녘에서 ‘푸드득’ 하고 ‘파란 대문’에 희망의 날개 하나 돋아 올라야 할 것을 간절히 희구하고 있다. ‘맨살 부빌 햇누런 구들방’과 ‘채마밭’을 준비하고 있으니 ‘화들짝’ 우리의 그리움 열어젖히고 와 달라는 것이다. 그날이 오기까지 ‘두근새근’ 기다린다는 것이다.

자칫 느슨해질 수 있는 시조의 리듬을 중장에서도 ‘보풀보풀’, ‘너풀대는’, ‘가붓대죠’의 시조어가 활기를 주기 시작하고 ‘푸드득’의 시조어가 시조의 맛을 살려내기 시작한다. 연이어서 종장에 이르러 ‘화들짝’이라는 시조어로 이 시조에 폭포수와 같은 격한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그러면서 그 격동하는 리듬감을 다시 ‘두근새근’이라는 시조어로 서서히 잠재우며 차분히 다스려 가기 시작한다.

이러한 민 병관의 시조 창작법은 시조의 음악성을 정형의 리듬에서만이 아니라 감각적인 시조어의 사용으로 정형의 폭력적인 형상화의 극대화를 꾀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화들짝’이란 시조어는 이 시조의 매우 중요한 혈자리에 얹혀져 박힌 것으로서 그 ‘화들짝’이란 시조어는 무겁게 침체되어 있는 우리 민족성의 혈에 시침하며 생명화의 과정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네모진 홑이불’이 싫어서, 초장과 종장이라는 시조의 피륙을 만들어 그 사이의 중장에 ‘보풀보풀’거리는 ‘솜털’들을 가득 채워 넣고 누비는 이불처럼 형상화되는 특수한 창법으로 시조의 에너지를 충분히 충전한 그의 솜씨는 누가 뭐래도 2007년 신춘문예의 일품이다.

이제 시작이라는 각오로 시조어의 조탁의 과정을 꾸준히 연습해 더욱 많은 작품으로 우리에게 풍성한 기쁨을 주길 소망한다. 그렇게 될 때 시조새의 부활을 우리는 목격하게 될 것이다. 우람찬 시조새의 부활을 완성해 주길 빈다.

*누비다 : 피륙을 두 겹으로 포개어 안팎을 만들고, 그 사이에 솜을 두어 죽죽 줄이 지게 박다. ¶ 누빈 바지. 누빈 이불(야후 인터넷 사전 참조).


― ♣ 시조부문 당선소감 : 민 병관
“겨레시가 세계적인 위상을 획득할 수 있는 날을 위해”

먼저, 졸시의 가능성을 보고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세상에 내 놓기 부끄러운 작품이지만 더 정진하라는 채찍으로 받아들여 담금질을 계속 하고자 한다.
인문학의 위기와 문학의 죽음을 얘기하는 21세기에, 그것도 서구적 자유시의 주도로 우리 시조가 주변부로 밀려나는 이 시대에 나는 왜 시조를 부여잡고 있는가. 우리 겨레의 정서와 우리의 생래적인 감각을 가장 적확히 표현할 수 있는 문학 형태가 시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구의 소네트나 일본의 하이쿠 못지않게 우리 겨레시인 시조가 세계적인 위상을 획득할 수 있는 그 날을 위해 미약하나마 힘을 보태고 싶기 때문이다.
시대를 앞서가며 문학문화의 선구역을 맡고 있는 ‘창조문학신문’의 제1회 신춘문예에 당선된 것은 더없는 영광이다. 창조문학신문의 도전 정신과 문학에 대한 가열찬 애정에 걸맞는 시인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꿈꾸면서 우리 민족시 시조의 영속성을 위해 매진할 것을 약속드린다.
오늘까지 기다리던 비가 어제부터 오고 있었다.

창조문학신문사 개요
창조문학신문사는 한민족의 문화예술을 계승하여 발전시키고 역량 있는 문인들을 배출하며 시조의 세계화를 지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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