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문학신문, ‘창조문학신문 2007 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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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문학신문사
2007-01-01 16:36
서울--(뉴스와이어)--창조문학신문은 <창조문학신문 2007 신춘문예> 소설부문(A틀)의 당선작을 발표했다.

창조문학신문의 소설부문(A틀)에는 정 학모 씨가 당선되었는데 정 학모 씨의 당선작과 당선소감 및 심사평은 다음과 같다.
(참조 : www.sisarang.co.kr)

▣ 소설부문 정 학모 : 당선작 1. 「파란나라 입문서」(대표작) / 2. 「달래」

프로필 : 43세, 전북 전주産, 시사랑 신인문학상, 인천시 연수구 거주.

― ♣ 「파란나라 입문서」 / 정 학모의 단편소설(A틀).

검찰청을 거쳐 온 경찰차는 어둠의 교외를 달린 후 거대한 그림자로 압도하며 수인들을 내려다보는 성채 앞에 당도했다. 두터운 밤 빛 속에 대지를 가로막고 선 어마어마한 용강류의 공룡 같은 성채의 끝이 아물아물 어둠과 희석되어 있었다. 정문에서 잠시 멈추었던 차는 목적과 신분을 확인하고 과속 방지턱을 넘어 공룡의 아가리 속으로 미끄러지듯 빨려들어 갔다.
두 명의 대인수와 교도소에 넘어온 진수를 높은 담으로 막힌 어두운 건물이 괴괴히 맞았다. 그들에게 현실적인 불안의 압박이 서서히 가슴을 조여 왔다. 진수는 이곳이 자신이 견뎌야 할 연옥의 공간, 인간 세상에서 추방된 이들의 지하 세계인 하데스의 나라가 아닌가 싶었다. 인간 세상에서 분리된 열패감과 무기력을 둘러싼 높고 견고한 철옹성의 기운은 신의 권위를 차용한 것처럼 지대한 위용으로 그들의 정신마저 냉각시켰다.
알몸으로 검신을 당하고 신상을 세밀히 확인한 후 그들은 고무신과 파란 수의, 그리고 개인 식기들을 받아 미결사로 향했다. 그들과 길이 갈린 진수도 소년사의 긴 동굴 같은 복도를 걷고 있었다. 양 편으로 이어진 철문의 행렬 하나하나는 은행금고 문처럼 철통같아서 싸늘한 완고함이 느껴졌다. 금속에 저항하기에 인간의 신체는 너무 무력하다. 철기문명이 지닌 무서운 힘이었다.
복도의 여린 불빛이 어찔어찔 흐르며 진수의 시야를 어지럽혔다. 늘어선 방문들을 지나오면서 매복한 듯 숨어 조용한 욕질로 할경하는 끈끈한 눈초리들이 진수를 소름끼치게 하였다. 생경한 불안감이 극도의 한계로 치달아 진수의 발걸음을 무겁게 하였다. 진수는 자신의 생존에 관여할 17방 앞에 쪼그려 앉았다. 긴장감의 척도는 마구 감아 돌린 6번 기타 줄처럼 터지기 직전의 예리한 쇳소리를 내는 듯 했다. 극도의 불안이 눈앞에서 비현을 일으켰지만 진수의 이성은 마음을 차게 간직해야 한다고 애써 다짐했다. 생존의 권리가 남의 손에 맡겨지느냐 자신에게 보전되느냐 하는 첨예한 귀로에 선 진수였다. 자존을 박탈당하거나 유린당하는 건 죽음과 별다를 게 없다는 식의 진수의 생각은 인생 전반부의 어떤 심대한 고심보다 당면한 지금이 더 심각했다.
간수는 익숙한 손으로 스패너 같은 키를 비틀어 철문을 열었다. 보이지 않는 적을 대면하는 순간이었다. 진수는 호흡이 일시 정지되는 정신적 압박을 받았다. 높이가 있는 벽 위로 개방된 철창 안에서 진수를 살피던 자가 철문이 떨어져나간 직사가형 어둠의 틀 안에 하얀 한복을 입고 서 있었다. 한복은 간수에게 영색한 인사를 건네고 진수를 인도받았다. 진수는 낯선 방에 들어서면서 순간적인 암순응으로 내부의 형체가 어둔 실루엣이 되었다. 파란색 일색의 이불로 방바닥이 덮인 가운데 양 벽을 줄줄이 이고 있는 많은 머리통이 파악되며 진수는 두려움으로 가슴이 턱 막히는 느낌을 억눌렀다. 그들의 살벌한 눈빛들이 진수에게 상집되어 금세 주눅 들게 하였지만, 진수는 선입관의 두려움에 먼저 꺾이지 않으려고 정신을 가다듬고 주저 없이 자신의 자리인 화장실 옆으로 건너가 앉았다. 방안의 분위기는 허락받지 않은 행동의 당돌한 신입을 요량하려는 침묵이 잠시 낮게 깔렸다.
진수는 옛 친구들과 달리 교도소는 처음이었다. 그가 대학을 진학하기 전 고교시절의 친구들이란 대부분 부모와 학교가 포기한 불량소년들이어서 사회의 음지에서 기생하는 건달이나 폭력배들의 기질을 학습하는 과정선상에 있는 이들이었다. 그래서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중도에 소년원이나 교도소로 빠졌던 친구들이 많아 진수는 그들의 경험에 의해 저절로 이 세계의 사정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진수는 다행히 자기 선로를 이탈하지 않고 가까스로 대학을 진학해 그들과의 탈선이 학창시절의 추억 정도로 남겨지는 듯 밀려갔는데, 술로 인한 방심의 실수로 점차 멀어지고 있었던 네거티브의 영역으로 한순간에 되돌아오고 말았다. 아무튼 진수의 지금 심사는 현재 환경에서 자신을 온전히 보존해 살아남는 거였다.
앳된 한 소년이 진수에게 다가와 식기를 받아 벽장에 챙겼다. 간수를 맞이하기 위해 입었던 저고리를 벗은 한복의 배와 가슴 등에 굵은 밧줄을 감아놓은 듯 무살로 돋은 자해자국이 위압적으로 드러났다. 어설픈 문신보다 훨씬 살벌해 보였다. 한복의 자리가 철문의 시찰구와 벽 창과 수평인 구석으로 진수의 자리와 대각선 끝이었다. 밖의 감시 시선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로 방장의 자리임을 분명 진수는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한복의 행동은 방안에서 속박 받는 구석이 없었다. 진수는 무릎을 세워 얼굴을 묻었다. 자신 가치의 질량을 형태적 무게로 잡아가는 중이었다.
“니 죄명이 뭐시냐?”
누군가 마룻장에 뼈 마치는 소리를 내며 일어났다. 한복의 자리 근처였다. 표면적으로 어루만지는 듯 부드러운 어투였지만 은근하고 불손한 힘이 실려 있었다. 진수는 그 말의 진원지를 찾아 게슴츠레한 시선을 옮겼다. 한복 옆에서 일어나 앉아 팔짱을 긴 오연한 소년은 눈이 움푹 들어가고 광대뼈가 빛을 받아 번들거리는 말상이었다.
진수는 광대뼈를 소 닭 보듯 심상하게 일별한 후 다시 무릎에 얼굴을 다시 감추었다. 한복과 한 사람 건넌 광대뼈의 자리라면 서열은 아주 높았다. 진수는 그에게서 나올 다음 반응을 감춘 눈으로 감시하며 요량하고 있었다.
“요 새끼 보소. 여기가 아들 놀이터로 아는 가뵈?”
광대뼈가 이불을 화들짝 뒤엎고 곧 린치를 가할 듯 대꾼하게 꺼진 눈에 불을 켰다. 진수는 동요 없이 광대뼈를 안중에 두지 않는 중이었지만 속종은 방어의 벽돌을 움켜쥐고 준비하고 있었다. 한순간에 운명이 갈릴 중요한 시점임을 알고 있는 터였다.
한복은 눈가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었고 잠을 이루지 못하던 바닥의 군상들도 뒤스럭거리며 곧 부딪칠 일전에 관여할 듯 관심을 보였다. 불끈거리는 광대뼈의 기세로 보아 만만치 않은 유혈사태가 야기될 급박한 상황 속에서 진수는 고도의 철저한 경계로 심간을 채워 에워싼 사방의 움직임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었다. 진수는 엉덩이를 떼어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 뒷발을 조금 뺀 자세로 벽에 기대었다. 여차하면 뒷발의 탄력을 이용해 용수철 같이 튀어 올라 반격할 여지를 만든 것이다. 만약 바닥의 군상들이 합세한 몰매를 당한다면 뒷벽의 철창을 잡고서 간수가 올 때까지 버틸 작정이었다. 철창의 배수진은 바닥에 널브러져 삽시간에 만신창이로 짓밟히는 위험에서 조금이라도 비켜보려는 자구책이었다. 적어도 시야 안의 적만 상대할 수 있는 최후의 방책이 아닐 수 없었다.
저항을 뜻하는 진수의 보디랭귀지에 광대뼈의 안색이 달라졌다. 설마 신입이 다수의 고압적인 기존 세력에 대항할 줄은 예기치 못했던 모양이었다.
일촉즉발의 전운 속에서 예리한 상충은 곧 강력한 플라즈마를 일으킬 것처럼 살벌했다. 방안의 공기는 숨소리마저 앗아간 무서운 침묵이 감돌았다. 진공 같은 고요 속에 진수는 몸의 수분이 증발하여 바싹 마르는 것 같았다. 단촉의 시간동안 뇌 속 신경 뉴런들이 광속으로 움직이며 수백 가지의 싸움 루트를 산출하고 있는 듯 진수의 머리는 빠르게 움직였다.
“이 새끼, 어디서 좀 굴러먹던 꽈배기 행세여. 씨발, 징역 좋아졌구만. 뭐 하다 온 놈이냐?”
아귀세게 나오던 광대뼈가 한걸음 물러섰다. 진수는 광대뼈가 ‘꽈배기’라는 전과자로 인식해 준 데에 고마웠다. 초짜인 진수가 개꼬리 신세를 면하려고 굴침스럽게 여기에 편입하려는 거였다. 가상의 명예롭지 못한 전과가 주는 혜택을 알고 있던 터였다.
“어쩌다 폭력으로 들어왔다. 잘 좀 부탁한다.”
“뭐여 이 새끼, 어디 아픈 거 아녀? 야이 존만아, 어디다 반토막 혓바닥으로 객여. 너 뒈지고 싶어 환장했냐!”
광대뼈는 울화를 애써 감추며 여유를 보여주려는 어색한 조소로 거들먹거리다가 이내 혁연하게 본심을 드러내며 눈을 지릅떠 진수를 잡아먹을 기세였다. 그러나 바로 행동으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괄괄한 성미대로 진수를 즉시 척결하지 못함이 간수의 동태나 조용한 취침시간이 걸림돌의 상존문제라면, 그것은 작은 핑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진수를 상대로 과오를 범하고 있었다. 자신의 입에서 냅뜬 말이 허울이 아님을 증명하려면 그만한 희생쯤은 감수할 배짱이 있어야 했다. 방바닥에서 뒤스럭거리며 사태의 흐름을 엿보고 있었던 군상들이 합세할 조짐은 아직 없었다. 진수가 광대뼈나 한복과 엇나가 막상 물리적인 충돌이 생겼을 때 군상들의 동향은 어떻게 나타날지는 미지수였지만, 현재까지 무시로 툭 불거져 불리함을 가중시키는 이는 다행이 없어 진수에게 용기를 주었다. 체제의 물리적 작동 없이 맨투맨이라면 얼마나 홀가분할 것인가 하는 기대가 진수의 마음속에 잦아들었다.
여태까지 뒤로 물러나 차수로 고대했던 바가 성에 차지 않아 한복은 생감 씹은 얼굴이 되어 광대뼈를 나무랐다.
“석배, 그만 해라. 그래가지고 기어오르는 신입이 말 잘 듣겠다. 신입, 오늘은 일찍 자라. 내일은 국물도 없을 테니까.”
한복은 상황을 간단히 정리하고 누웠지만 석배는 당찬 신입 하나를 확실히 다잡지 못해 치신사납게 되었다. 그리고 섣부른 행동을 제어시키는 진수의 웅판 크기를 제대로 알아본 후에 눌러버려도 늦지 않을 거라고 그는 자위하며 분을 삭였다.
석배가 눕자 진수도 여전히 경계심을 풀지 않은 채 누웠다. 맹수들이 가득 찬 우리 안에 몸을 누인 불안감이 피로를 느끼지 못하게 하였다. 옆에 누운 곱상하게 생긴 소년이 제 이불을 끌어다 진수의 가슴에 얹어주었다.

한겨울의 창밖 색조는 한밤에서 아침으로 건너와 있었다. 부지런한 새들의 맑은 지저귐과 언제 들어도 방정맞은 기상나팔 소리가 교도소 안에 퍼졌다. 진수는 새벽녘에서야 잠깐 눈을 붙였던 것 같았다. 한 치의 앞도 예견할 수 없는 새로운 날의 시작과 함께 펼쳐지는 막막함을 피할 어떤 도피처도 없었다. 진수는 절벽위의 외나무다리를 떠밀려 건너듯 한 걸음씩 앞으로 나갈 절박한 입지를 잊지 않아야 했다.
“기상...!”
기다렸다는 듯 모든 사방에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일찍부터 깨어 있었던 방안 소년들이 발딱 일어나 부산스럽게 이불을 개어 넣고 점검대형으로 앉았다. 진수도 관(官)에서 치르는 인원점검은 받아야 했기에 한복이 마련해준 중간 자리에 끼어들었다. 한복은 뒤편의 철창을 잡고 앉았다 일어나며 운동을 하고 있었고 석배는 뒷짐을 한 채 거만하게 앞에 서서 ‘차려, 쉬어’로 소년들의 군기를 잡는 중이었다. 책상다리로 앉아 방망이처럼 편 팔을 두 무릎에 얹은 채 허리를 곧게 세우고 턱을 치켜 든 소년들의 뻣뻣한 차려 자세는 어찌나 군기가 단단한지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체제에 저항 중인 진수는 석배의 명을 무시한 채 열만 맞추었을 뿐이었다.
“똑바로 못해 이 자식들아!”
석배는 부동자세인 소년들의 가슴을 차례대로 무작하게 발로 내질렀다. 발길질을 당한 소년들은 고통을 이기려는 안간힘으로 오뚝이처럼 발딱 일어나 원위치를 잡았다. 석배가 살벌한 분위기로 몰아가는 건 당연히 진수를 겨냥해서였다. 석배는 방의 기강을 총관하는 행동대의 대장급인 1배식이었다. 석배는 진수의 근본을 가늠할 수는 없었지만 반드시 기를 죽여 체제에 순응하도록 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꼈고, 진수는 어딜 가도, 어느 자리에서건 궁은 궁이고 졸은 졸이라고 자신의 평가치를 잡아 놓고 있었다.
“하나, 두, 세, 네, 다, 여, 곱, 덟, 홉, 열...... 열여섯. 총원 열여섯 현재원 열여섯!”
보안과장이 복도에서 보통걸음으로 방을 지나는 동안 인원보고는 일사불란하게 완료되었다. 그리고 점검대형으로 앉은 채로 칫솔과 수건이 지급되어 복도 입구의 가까운 방부터 세면을 시작했다. 한복은 밥그릇 두 개를 엎어놓고 그 위에 손을 올려 팔굽혀펴기를 하면서 진수를 어떻게 처리할까 고심했다. 우선은 석배에게 맡겨 진수가 눌린다면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고, 진수의 국량이나 배경이 보잘 것 없는 허풍이라면 가차 없이 짓밟아버릴 것이고, 그래도 눌리지 않고 분란의 뿌리가 된다면 중간쯤의 적당한 직위로 복종케 해야겠다고 대충 구도를 잡고 있었다.
진수는 자기 자리로 돌아온 채 기존 체제에 도전하는 불안정한 몸으로 밖의 명령권에 맞추어 세면장에 가야 될지 잠시 망설였다. 너무 가벼운 처신 같아서였다. 그러나 유치장에서는 사회로 복귀하느냐 아니면 징역에서 썩어야 하느냐는 갈림길에 처한 상태로 몸의 청결 따위에 염두 할 여유가 없었던지라 지금 진수는 씻고 싶었다.
17방문이 열리고 대인수 소재의 감독 하에 소년들이 잰걸음으로 복도로 쏟아져 나와 세면장이 있는 밖의 통로로 향해 열을 맞추어 앉았다. 진수도 열의 끝자락에 늘쩡늘쩡 붙어 앉았으나 이내 나온 걸 후회했다. 세면장 안에서는 누군가 숫자를 세고 있었는데, 열을 마치면 한 떼의 소년들이 부리나케 달려 나오고, 빨리 나가라고 고함과 욕설이 함께 터졌다. 괜히 피지배급의 모멸을 같이 받게 생긴 꼴이었다.
17방의 차례가 되었다. 시골학교 공동 수도처럼 꼭지가 수없이 달린 거친 콘크리트 골조 위에 세면장을 통제하는 한 수인이 올라서 있고, 그는 소년들이 들어서자마자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진수는 겨우 비누를 찾아 손에 문질렀을 뿐인데 다른 소년들은 벌써 얼굴을 행구고 있었고, 짧은 시간 안에 머리를 감는 아주 동작 빠른 소년도 있었다.
“......여섯, 일곱. 여덟... 어? 너 임마, 얼굴 들어봐.”
진수가 얼굴에 비누를 묻히는데 옆에서 씻던 소년, 어제 이불을 끌어다 덮어준 창선이 슬며시 옆구리를 찔렀다. 진수는 그의 눈짓을 따라 위를 올려다보았다.
“너 진수 아니냐?”
“어? 만복이 형!”
“자식. 대학 갔다더니 겨우 이런 곳에서 또 만나냐?”
“히히히... 사는 게 만만치 않네요. 뜻대로 안 돼요.”
구속된 뒤 처음 웃어본 진수였다. 여유 없는 웃음이란 항상 가식이었다. 살벌한 이곳의 형세에 매매한 진수는 자기편을 만나 더 없이 든든하고 기뻤다. 수인들 간의 직위를 알려주듯 곱게 물 빠진 맞춤복 수의를 입고 늠름히 호령하고 있는 고교 선배였던 만복의 등장은 안개 속에 갑갑하게 갇혀 앞을 가늠할 수 없었던 진수에게 뭔가 모를 돌파구가 될 것 같아 한없이 반가웠다.
오랜만에 만난 그들은 못한 이야기를 하느라 세면을 하던 소년들이 숫자가 얽매는 시간에 급급하지 않고 득을 보았다. 만복은 재판 중에 성인이 되었으나 관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익숙해진 소년사에 머물도록 허락하고 있었다. 진수도 만복이 덕에 여유를 갖고 머리를 개운하게 감았다.
“말은 해보겠지만 박영국이 계속 싸가지 없게 나오면 담당에게 말해서 너 우리 방으로 전방시켜줄께.”
“걱정 말아요. 저도 제 다리로 살아봐야죠.”
진수는 만복이의 그늘로 피해간다면 자신의 주권을 획득하는 데 구태여 위험과 고난을 자청해 맞이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복이가 나눠준 권력에는 하자가 있음을 진수는 알고 있다. 자신의 위상이 행동으로 정립되지 않은 권위란 절대적일 수 없어 어떠한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게 보전하기란 어려울 것으로 진수는 여기고 있었다. 면전에서는 복종하는 척 하다가도 조금만 약해보이면 올라타 휘둘러보려는 게 미성숙한 소년들에게 특히 발달된 얄팍한 아집이었다. 이런 아집이 대인수들과 판이한 절대 권력을 낳고 전횡이 횡행할 수 있는 여건이 되는 것이다. 권력화 된 아집의 편리는 사회의 보편적인 관습과 윤리마저도 도착시키는 강한 매력으로 발산되기도 한다. 그리고 지배되는 이들의 속성은 합리화로 무력해진다는 것이다.
석배는 세면시간에 행동대 격인 3명의 배식조를 모아 놓고 식사 후 청소시간의 시끄러운 틈을 타 진수를 몰매 놓자고 모의하는 중인데, 창선이 나서 진수가 만복의 후배라고 고해바쳤다. 그 말은 한복, 즉 박영국을 긴장시켰다. 사실이라면 진수의 무람없는 행동은 뒷받침할 족보를 믿고 그러는 듯해 한차례의 풍파는 감수해야 될 것 같아서였다. 그래도 아무리 진수가 소년사의 입김이 막강한 만복의 후배일지언정 방 내부의 독재 폐쇄체제는 박영국의 본체이므로 누구도 간섭하지 못한다. 더구나 강도로 들어온 박영국이 어설픈 소년 ‘폭력쟁이들’의 체제부정을 용인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일단 석배의 섣부른 계획은 박영국이 유보시켰다. 박영국이 진수를 방에서 고립시켜 놓는 건 아주 쉬운 일이었고, 그러면 진수도 타고 오를 물길이 없어 앞으로 내달릴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박영국과 그의 애인 격인 고운 용모의 소년 선영이 마주앉은 자리에는 우유팩으로 짠 식탁포가 펼쳐지고 비밀장소에 숨겨두었던 금속수저가 놓여졌다. 희멀건 김치와 간장이 검게 밴 양파, 마늘종 볶음, 그리고 생선국이 나왔는데, 상류계층인 배식조의 식탁은 풍성하고 양이 많은 반면 식기닦기조와 설거지조를 거쳐 내려오면서 완전 하류계층인 방닦기조에 이르면 김치 꼭지와 먹물을 먹은 듯 시커먼 양파 껍질 부분, 세고 짓무른 마늘종, 뼈만 남은 생선국의 허접한 것들이 주어졌다. 그 반면 박영국과 배식조의 식탁은 방 인원들의 영치금으로 구매한 고추장과 버터와 닭 통조림 등의 특식을 독점해 취했다. 이곳에서는 자연스런 현상이었다. 계층 간의 확실한 구분은 통제의 수단이기도 했다.
“차려, 식사 시작!”
“감사히 먹겠습니다!“
석배의 정색한 구령에 소년들은 부동자세를 취하며 일제히 큰 소리로 답했다.
끄트머리에 앉은 진수는 멀건 국에 틀로 찍은 콩밥을 몇 젓가락 께적거리다 그만두었다. 하류계층의 소년들은 나무 수저마저 주어지지 않아 중국인처럼 밥그릇을 들고 입에 쓸어 넣고 있었다. 창선이 옆에 앉은 젖은 걸레를 담당하는 소년이 진수가 내려놓은 대궁을 눈으로 넘성거리다가 이윽고 슬며시 제 앞으로 끌고 가 국그릇에 떡 엎었다. 창선이와 하류계층 소년들은 일제히 젖은 걸레에게 눈총을 쏘았다.
진수는 하류계층 소년들이 자기에게 적대적이 아님을 은연중 느끼고 있었다. 이곳에서의 규율은 나이와 상관없이 들어온 순번대로 기수가 정해지기 때문에 어린놈한테 형님이라 부르는 경우가 17방에도 허다했다. 그러나 밑의 소년들은 실팍한 족보가 있음직한 진수에게 반말로 범접할 수도 없었지만 어딘지 귀티가 서린 부드러운 인상에 끌리는 호감마저 갖고 있었다. 소년들에게 인상은 보이는 대로의 편견으로 영향을 줄 때가 많다.
소년수들의 방 내 규율은 통제와 지배를 용이하기 위해 굉장히 엄격했다. 박영국과 석배 외에는 사유 없이 임의로 일어서 방을 거닐 수도 없었고, 화장실을 갈 적에도 바로 윗선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사유가 있어 방을 거닐 때에는 뒷짐을 지고 허리를 굽혀 까치발로 중앙을 피해 가장자리로 걸어야 했다.
박영국은 권좌에 앉아 십여 명의 소년들에게 나오는 모든 편리를 취할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가 밤이면 자태가 고운 소년 선영을 옆에 재운대도 특수한 사회 환경 여건의 사정으로 묵인되어지는 건 욕망을 가진 자들의 공감이 몰래 감추어져 있어서일 것이다. 온갖 먹을 것과 입을 것, 그리고 영치금 등은 공동자산이라는 명목 하에 착취되어 박영국과 상류계층의 풍요를 위해서 쓰이고 있었다.
박영국의 한복과 여벌의 수의는 날마다 소년들이 빨고 다리고 손질하는 데 여념이 없는 건 물론이거니와 러닝팬티와 양말은 새 것이 아니면 상대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박영국의 손톱, 발톱 손질과 귓속을 후비는 일까지 선영의 손길로 이루어지고 있으니 가히 황제의 생활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이발소에서 안마를 배웠다는 개똥이의 서비스는 전신의 근육, 혈, 머리통, 안면, 발가락과 손가락 사이사이까지 주물러 박영국을 환상의 쾌감에 이르게 하였다.
한번은 박영국이 영 심심했던지 벽에 비스듬히 기댄 등을 떼며 링아나운서 같이 거창하게 외쳤다.
“홍코너 WBA 라이트급 세계 챔피언 곤잘레스......!”
그러자 식기닦기조의 상층부에서 다부져 보이는 한 소년이 벌떡 일어나 웃통을 벗고서 관중에 대한 링 위의 챔피언 인사처럼 두 주먹을 모으고 사방에 꾸벅꾸벅 절을 한다. 이어 방 소년들 몇몇이 일제히 코러스로 ‘록키’의 시그널뮤직을 뽑아내고 곤잘레스는 현란한 섀도복싱을 하는데, 그 폼이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노련한 모습이었다. 곤잘레스와 방 소년들의 일련 행동은 박영국이 키를 누르기만 하면 언제든 자동으로 실행되는 프로그램이나 다름없었다.
“오늘은 지명 방어전이다. 기수 관계없이 아무나 지명해라. 실망시키지 말고.”
그러면서 박영국은 곁눈질로 슬쩍 진수를 비사쳐 찍었다. 진수는 무망중 박영국의 은밀한 계략에 휘말리게 되어 당혹감이 들었다. 적어도 진수의 웅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상대로 박영국이나 석배 정도는 돼야 했고, 아니면 방 전체와 맞붙어야만 체면이 설 수 있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예사롭지 않은 실력을 갖춘 하찮은 피지배급의 곤잘레스와 정면충돌하게 되었으니 남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어뜯거나 치명적인 급소를 공격해서 독방과 어떤 징벌을 감수하고라도 진수는 현실 앞의 자존을 지켜야한다는 독한 생각이 먹물처럼 채워졌다.
곤잘레스도 얼굴이 굳어 긴장하고 있었다. 박영국이 원하는 바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곤잘레스와 진수의 눈빛이 허공에서 예리하게 부딪쳤다. 방의 모든 소년들도 일시에 소리를 멈추고 움직임마저 정지되었다. 박영국과 석배는 눈을 가늘게 좁히며 상황을 주시했다. 곤잘레스는 진수에게 희미한 미소를 넌지시 건네고 돌아섰다. 그리고 지목한 이가 설거지조의 깜상이었다. 박영국의 눈가에 짧은 경련이 일었다. 살의를 띤 박영국의 눈총을 곤잘레스는 느꼈음직도 한데 개의치 않는 듯 응하기 싫은 깜상을 넉살좋게 끌어내고 있었다. 수건을 뭉쳐 감아 장갑 대신 한 권투 시합은 모두의 예상대로 거의 일방적이었다. 흑인의 강한 이미지를 닮은 깜상의 저돌적인 기질도 곤잘레스의 적수는 되지 못했던 것이었다. 전례가 그러했듯 곤잘레스의 화려한 그 기술이 다른 곳에 적용되었더라면 하는 박영국의 바람은 뜻하지 않은 각도로 빗나갔고, 그 후 곤잘레스는 석배의 트집에 한동안 봉욕으로 보복을 당했다.

진수가 교도소에 넘어온 지 나흘째 되었다. 그동안 박영국은 진수를 고립시켜 놓은 것 외에 한 일이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다 보니 상층부의 눈치 때문에 내어 놓고 대화는 할 수 없었지만 하류계층의 소년들은 방 내 생활이 너무 고된 탓에 확 뒤집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진수에게 기대를 걸고 있었다. 강권의 압박은 어떤 형태로든 변화를 바라는 심리를 낳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밑의 소년들 마음속에는 이미 진수가 받들어야 할 대상으로 들어찬 듯 눈길마저 서분서분했다. 진수는 자석의 극처럼 하나의 축이 되어가고 있었다.
진수가 어머니를 만나고 접견장 대기실로 나오자 곤잘레스가 긴 등받이 의자에 앉아 반갑게 아는 척을 했다. 곤잘레스와 깜상은 박영국의 일행이 식당에 나가 노닥거릴 적 운동시간이 걸리면 남들의 눈을 피해 진수와 접선했다. 곤잘레스는 진수와 같은 나이인 스무 살이었지만 먼저 형이라고 칭해 자신을 낮추면서 접근해 둘은 친밀해졌다. 그 사이를 눈치 챈 깜상이 끼어들며 셋의 관계는 결속이 되어 갔다. 박영국의 첩자로 인해 조명이 날 우려로 그들의 만남은 짧고 조용했다. 그러나 목적을 말하지 않아도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는 서로가 잘 알고 있었다. 친목의 유대란 사회적 힘을 얻기 위한 목적이 태반인 세상이었다. 그들의 섀도캐비닛은 암암리 조성되어 조용한 행보를 하고 있는 셈이었다.
“성님, 계속 이라고 있는다요. 깜상이랑 나는 준비가 다 됐서라. 밑의 아그들은 다 성님 하기 나름이고 웃자리에 안근 놈들은 지들이 꽉 눌러벌랑게 싸게 결단 하시랑게라.”
곤잘레스는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조급함을 드러냈지만 진수는 여전히 동요 없는 느긋함이 표정에 고여 있었다. 큰일을 앞두고도 담담하게 처신하는 진수의 냉정함이 곤잘레스는 자신과 다른 종류의 자신감이라 여겨 더욱 든든하기도 했다.
박영국이 일도양단을 내지 못하는 이유가 진수의 내력을 가벼이 볼 수 없어서라면 적당한 선에서 빨리 받아들여 방의 체제에서 흡수해야 했다. 지지부진 방치하여 방의 한 귀퉁이를 뒤틀린 모습이 되게 하는 건 바람직하지 못했다. 그 바람에 진수는 음지에서 서서히 인심을 키우고 있었다.
박영국과 석배는 아직 적과 동지의 개념이 불분명한 진수를 잊은 듯 방을 비우고 식당에 나가는 시간이 차츰 길어졌다. 진수에게는 방심의 문이 열린 시점이고 주변 정세도 몰아가는 형세에 따라 자기에게 유리한 형태로 도모할 수 있을 만큼 분위기가 무르익어 일의 실행이 임박해 왔음을 감지하게 하였다.
하늘에서 아침부터 진눈깨비를 뿌렸다. 무거운 물기를 머금은 눈은 땅에 떨어져 부서져 슬러시가 되어 화단의 앙상하게 벗은 나무 아래로 질척하게 쌓여갔다. 덕분에 날씨는 춥지 않았어도 비가 섞인 축축한 눈은 소년들의 마음을 을씨년스럽게 만들었다. 날씨와 사람들의 정서는 외로움과 절박함으로 더욱 가까워지는 법이다. 박영국이 철창에 기댄 채 밖을 보는 뒷모습도 쓸쓸함이 차 있었다. 그를 가둔 철창의 견고함과 사회에 따돌림 받은 두려움의 색조가 진해져 한층 무력감을 느끼게 하기 좋은 날씨였다.
스산한 마음을 잊고자 한다면 다른 사람의 분위기를 끌어댐이 좋을 성싶었다. 그래서 시간이 되자 박영국과 석배는 서둘러 오전 식당 개방에 빠지지 않았다. 진수에게 암시를 받은 곤잘레스와 깜상이 평화로운 감상이 잔잔히 흐르고 있는 방안에서 첨예한 긴장으로 무장을 했다. 진수는 내리는 눈의 상서로운 조짐을 믿고 싶었다. 사람들을 흩어 정신과 육체를 자유롭게 만드는 운동시간이 중간에 낀 방해의 난점을 기상이 해결해준 셈이다. 그리고 기상으로 인한 인간 내면의 나약한 감상이 충분히 발현된 시점이기도 했다. 진수는 일을 실행하기에 오후보다 오전이 나을 거라고 믿었다. 일을 오전에 마쳐 강권을 오후까지 오래 지속시켜야 취침의 끊김으로 인한 변혁에 대한 회의나 객심이 잦아들지 못하게 할 확률이 컸다. 강권 고착의 시간이 필요한 셈이다. 박영국은 평소처럼 외출 후 돌아오면 변함없을 자기의 권좌를 믿고 떠났다.
진수는 속으로 심호흡을 하고 분연히 일어나 황색선을 넘는 행위인 방 중앙을 가로질러 앞 철창을 등 뒤로 놓아 소년들 앞에 섰다. 때를 기다린 곤잘레스와 깜상도 험악한 기세로 일어났다.
“진수, 너 뭐 하는 짓이냐!”
석배 바로 아래 격인 2배식이 진수의 불가당한 행위를 저지하려 자리에서 일어나자 곤잘레스와 깜상이 삽시간에 달려들어 무작하게 짓밟았다. 3배식과 4배식은 내력이 만만치 않아 박영국조차 당차게 눌러버리지 못하는 진수가 미리 치밀한 계획 하에 벌인 일임을 알고 하극상에 손을 놓고 있을 뿐이었다.
“차려, 안 혀! 이 새끼들아.”
벽에 몰려 얻어터진 2배식은 전의를 상실했고 나머지 배식조 둘은 체면상 몸이 떨떠름해져 즉각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 사정없이 날아오는 곤잘레스의 발길질로 삽시간에 얼겁 찬 기합이 빳빳이 들었다. 방의 모든 소년들은 권력이 이동하는 걸 느꼈고, 이런 때를 대비해 어떻게 처신해야 될지를 미리 생각해 두지 않아 무리가 향하는 대로 같이 할 도리밖에 없었다.
“점검대형으로 집합해라.”
진수의 첫 명령에 하류집단은 즉각적으로 먼저 응했고, 그걸 보고 대세의 치우침을 아직 확신치 못한 상류층들도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개인의 자력으로 대항할 여건이 아니었다. 곤잘레스와 깜상이 눈을 부라리며 폭력으로 소년들의 차려 자세를 교정해주었다. 곤잘레스의 매서운 주먹을 아는지라 소년들은 옴짝달싹도 못한 채 복종해야 했다.
“이 시간 이후부터 이 방은 내가 접수한다. 나도 누구 밑에 찌그러져 살 체질이 못된다. 그래서 이런 날은 진작부터 오고 말 일이었다. 내가 여러 분들에게 박영국 시절보다 나은 생활을 줄 거라는 장담을 확실히 할 수는 없다. 왜냐면 나 역시 기강이 헤이 되어 관의 간섭이 들어오는 건 참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피차 위험한 십대들이다. 규율의 구심점이 없다면 내부의 분쟁과 분란으로 외부의 통제가 들어와 더 큰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지옥 같은 이곳을 나가면 누구나 사회에서 인간다운 대우를 받겠지만 불행히도 우리는 매우 특수한 환경에 있다. 한동안의 꿈이라 여기고 이곳의 법에 잘 적응해주길 바란다. 나도 되도록 인간성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은 하겠다.”
진수의 말이 ‘인간성’으로 매듭짓자 곤잘레스는 석배의 역할이 되어 소년들에게 ‘쉬어, 차려’를 시키며 다잡기 시작했다. 고착된 지정학적인 요인들을 갈아엎는 작업이었다. 새로운 선입관의 창출을 위해서였다.
진수는 점검대형을 풀지 않았다. 박영국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석배가 먼저 나타나 철창 안의 내정을 보고 기겁을 했다.
“어이 석배, 빨랑 튀어 들어오지 뭐헌다냐!”
곤잘레스가 부동자세로 꼿꼿해 한기가 몰아치는 방 분위기를 뒤에 업고 철창 밖의 석배에게 헤죽거리며 조롱했다.
반역의 주동자가 팔짱을 낀 채 벽에 비스듬히 기대 서 있는 진수임은 석배도 확연히 알 수 있었다. 석배는 이 엄청난 홀지풍파에 순간적으로 아찔한 현기증을 느끼며 뒤에서 오고 있는 박영국에게 달려갔다.
정황을 석배에게 들은 박영국은 마른벼락이 머리에 떨어진 듯 강한 충격에 휩싸여 서둘러 걸으며 그간 진수의 동향에서 음흉한 음모를 자신이 진정 몰랐던 것인가 되짚어 보았다. 표면상 별반 움직임이 없어 느긋이 대처하려 했던 자신의 부주의를 원망할 도리밖에 없었다.
“개새끼... 좀 대가 있는 놈 같아 때가 되면 생각해주려 했더만, 그 새 뒤에서 모사를 쳐?”
“모사라니, 섭하게. 니가 애들을 너무 못살게 구니까 나더러 나서라고 하더라. 그러지 말고 맞짱 한번 뜨게 들어와 보시지.”
박영국은 방심의 한순간에 자신의 성채를 빼앗긴 기막힌 광경을 목도하고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반면 방을 완전히 장악하고 난 진수는 심리적 우의를 실감하며 유연하게 대처하고 있었다. 이미 박영국이 들어 설 자리는 없었다. 자기 목에 칼날이 된 곤잘레스와 깜상의 도전도 무시 못했다.
“기회만 되면 널 죽여 버릴 거여!”
불시에 뒤통수를 맞고 비참해진 박영국은 진수를 잡아먹을 듯 핏발 선 눈을 흡뜨고 격분했지만, 사실 정신이 하나도 없어 우선 당장 제 한 몸 의탁할 곳을 찾아야 했다. 간수가 다가오자 박영국은 자기의 신상이 적힌 목찰을 뽑고 진수에게 다시 한 번 입술을 깨물어 보였다. 그리고 박영국은 전에 같이 징역을 산 친구가 있는 방으로의 전방을 간수에게 요구했다. 간수 뒤를 초라하게 따르는 박영국의 눈시울이 분기로 뜨거워졌다.
박영국은 방장으로 대외에 알려진 주요 인물이므로 운신의 폭이 넓어 전방이 허용이 된다지만 석배는 달랐다. 석배는 간수의 재촉에 도살장에 끌려가는 기분으로 17방에 들어가 곤잘레스에게 죽살이치게 당하고 진수 앞에 충성을 맹세했다. 상황은 번갯불처럼 강하고 신속하게 종결되었다. 이제는 흔들리지 않는 통치가 관건이었다. 그들의 반란으로 변한 건 최상층부의 사람이 몇 사람이 뒤바뀌었을 뿐이었다. 원활한 지배여건에 익숙한 경험은 매우 유리한 장점을 점하고 있어 완전히 갈아엎기에 무리가 있음을 진수는 잘 알고 있었다. 방장에 진수, 1배식에 곤잘레스, 2배식에 석배, 3배식에 깜상이 요직을 거머쥐었다. 진수는 새로 짠 판의 어색함을 안정시켜 신속히 적응하게 만들려고 당분간 철권으로 방을 통치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세면시간이 끝난 공백 동안 비닐문을 열어 둔 화장실 앞에서 개똥이가 조아린 진수의 머리에 능숙한 솜씨로 비누거품을 내고 있었다. 그들 뒤로 어젯밤 곤잘레스의 압력에 주인을 바꿔 진수 옆에서 잠을 잔 선영이 수건을 받쳐 들고 시립해 기다렸고, 축하 메시지와 함께 만복이 보내준 진수의 맞춤 수의를 세 명의 소년들이 붙어 앉아 물을 뿌려 당겨서 펴고, 천에 알루미늄 식기 두 개를 맞대어 주름을 잡고, 맞잡아 털어서 말리며 부산하게 움직였다. 방안의 모든 인적자원과 물자는 주인을 달리해 한 곳으로 집중했고 그걸 향유하고 지켜내는 과제가 통치자의 문제로 남아 있었다.
복도 끝의 미닫이 철창이 쟁연하게 열리는 기척과 함께 소재의 배식을 알리는 우렁찬 목소리가 소년사에 반향으로 퍼져나갔다.


― ♣ 소설부문 심사평 : 문학평론가 박인과
“얼음장처럼 튼튼하며 살얼음처럼 예민한 문장들이 팽팽히 당기는 긴장의 끈”

많은 단편들 속에서 중편도 보였다. 그런데 중편은 일단 정리되지 않은 문장들이 문제가 되어 제외되었다. 단편들 중에서 끝까지 올라온 작품들은 신청진의 「황우석 신드롬」, 배상현의 「가상현실」, 정학모의 「파란나라 입문서」 등이었다. 세 작품을 두고 고민하다가 정학모의 「파란나라 입문서」를 채택하게 되었다. 선 되지 않은 두 작품은 작품의 완성도와 문체, 그리고 문장의 문법적 기능면에서 다소 미흡한 부분들이 있었고, 작품의 일관성과 정보부족으로 인해 명료한 믿음을 가질 수 없는 어설픈 주입식 문장이 삽입되어 있는 것도 있었다.

정 학모는 사각의 자유를 희망한다. 그의 작품 「파란나라 입문서」에서 밝히고 있는 “철창 안에서 진수를 살피던 자가 철문이 떨어져나간 직사각형 어둠의 틀 안에 하얀 한복을 입고 서 있었다.”의 문장에 있는 “직사각형 어둠의 틀” 안에서 하얗게 자유하고자 한다.

정 학모의 응모작 「파란나라 입문서」는 첫 장부터 개성 있는 독창성이 돋보였다. 단어의 적절한 화법에 의해 작가의 세계관이 잘 드러나고 있었고, 진부하지 않고 역동성 있는 이야기의 전개 방식의 빛깔이 작가의 개성으로 나타나면서 어조가 어둑한 것 같아도 그 단어들의 조화가 새로운 힘을 분출해 내고 있었다. 그것은 정 학모가 터득한 독특한 주제의식의 영역의 빛깔을 채색하는 그만의 기술에 의해서다.

플롯(Plot)의 탄탄함도 작품의 무게를 더하고 있었다. 탁월한 인물 묘사나 사물에 대한 표현법이 갈등 구조를 조이고 있는 긴장의 끈을 팽팽히 당기고 있었다. 절정에 이를 때에도 미적이고 심미안적인 예술적 감각이 시위를 당기고 있었다. 그것은 “긴장감의 척도는 마구 감아 돌린 6번 기타 줄처럼 터지기 직전의 예리한 쇳소리를 내는 듯 했다.”고 하는 그의 문장에서 더욱 극명해지기도 했다. 이 문장은 이 작품의 절정에 이르는 복선 역할을 충분히 감당하고 있다. 이 문장은 후에 “차려, 안 혀! 이 새끼들아.”의 문장과 소설적 경락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 문장은 “2배식이 진수의 불가당한 행위를 저지하려 자리에서 일어나자 곤잘레스와 깜상이 삽시간에 달려들어 무작하게 밟은” 후의 일이다.

정 학모의 문장은 두꺼운 얼음장처럼 튼튼하며 개울물 곁 살얼음처럼 예민하다. 이 견실한 필력으로 우리의 어둠을 희망의 불쏘시게로 묘사해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더욱 건강한 글쓰기를 부탁한다.


― ♣ 소설부문 당선소감 : 정 학모
“서툴지만 부끄러운 마음으로 올려”

쓴다는 행위가 내겐 늘 의미 없는 낙서처럼 여겨져 아주 오래 전에 포기하여 잊힌 일들이었다. 생명을 불어넣지도 못하는 무색한 글을 무턱대고 쓸 만큼 세상은 내게 여유를 주거나 호락호락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40을 훌쩍 넘은 인생은 여전히 삶의 고단함만을 타박하고 주위나 과거를 돌아볼 엄두를 내지 못하며 살고 있다.
많이도 변해버린 세상, 그 세상 일편에 서툴지만 자신만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이 있음을 발견하고 어설픈 글을 부끄러운 마음으로 올려보았다.
나에게 기회를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창조문학신문사 개요
창조문학신문사는 한민족의 문화예술을 계승하여 발전시키고 역량 있는 문인들을 배출하며 시조의 세계화를 지향하고 있다.

웹사이트: http://www.sisarang.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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