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1947년 락희화학공업사 출법 이후 올해 창립 60주년 맞아
LG는 지난 60년간 선도적인 제품출시로 국민생활의 질을 향상시켰으며 적극적인 투자와 기술개발로 국가경제 성장에 이바지해 왔다
또한 끊임없는 도전을 통한 세계시장 개척과 성공적인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을 통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구본무 회장은 “올해는 LG의 역사를 써나가기 시작한지 6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라며 “고객에 대한 열정과 미래를 향한 과감한 도전정신으로 환경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100년을 넘어서는 위대한 기업, 고객이 인정하는 일등LG를 만들자”고 강조했다.
숫자로 돌아본 60년 LG의 성장역사
지난 1947년 화장품 제조로 사업을 시작한 LG가 창업 1년만에 3억원 가량의 매출을 기록한 것을 시작으로 20년뒤 화학사업에 이어 전자사업이 본격 성장하기 시작했던 1967년에 60억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또 국제화를 추진하기 시작한 1970년에는 520억원을, 무역·금융·서비스 등으로 사업의 다각화를 추진한 1980년에는 2조7천억원을, 신경영이념 ‘고객을 위한 가치창조’와 ‘인간존중의 경영’을 제정·선포하고 경영혁신을 본격화한 1990년에는 16조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매출액 규모가 각각 30조원과 12조원에 이르는 GS, LS그룹이 계열분리되었지만 2006년에는 전자, 화학, 통신·서비스 등의 3개 분야에서 창립 첫 해 대비 26만배 이상 성장한 80조원대의 매출을 기록했다.
수출의 경우 1962년에 라디오 62대를 미국에 첫수출해 4,000달러의 실적을 기록한 이후 지난 2006년에는 1,000만배 성장한 400억달러를 기록했다.
LG는 창업 첫 해인 1947년에 약 300만원의 자금을 마련하여 화장품 제조업을 시작한 이래 현재는 7조5,650억원으로 250만배 이상, 종업원수도 창립 당시 20여명에서 현재는 7,000배가 늘어난 국내외 14만명이 되었다.
국내 화학산업과 전자산업을 개척하며 발전해 온 LG의 60년 역사
◆ 선도적인 제품출시로 국민생활의 질 향상에 기여(1947~1969)
- 구인회 창업회장
우리나라 산업근대화의 주역 LG는 창업 이후 60년 동안 우리나라 최초로 화학산업과 전자산업을 개척하며 국가산업 및 경제발전을 물론 국민생활 향상에 크게 기여해 왔다.
연암 구인회 창업회장은 경남 진양군 지수면 승산마을(지금의 진주시 지수면 승내리)에 에서 일제 침략이 본격화되던 1907년에 태어나 식민지 청년의 아픔을 몸으로 겪으며 성장했다. 연암은 20대 청년 시절부터 민족의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본을 통해 경제력을 길러야 한다는 일념으로 기업가의 길을 걸었다.
해방이후 보다 큰 꿈을 펼치기 위해 부산으로 나와 새로운 길을 모색하던 연암은 1945년 11월 미군정청이 승인한 첫 무역회사인 조선흥업사를 설립했다.
해방 이듬해인 1946년, 구인회 창업회장과 사돈간이자 승산마을의 손꼽히는 만석꾼이었던 故 허정만씨는 평소 젊은 사업가인 구 창업회장의 사업역량을 눈여겨 보고 있다가 자신의 셋째 아들인 故 허준구 GS건설 명예회장의 경영수업을 의뢰하고 출자를 제의하게 되면서 양가의 동업경영이 시작되었다.
연암은 1947년 41세에 새로운 가능성을 향한 의미 있는 발걸음을 내디뎌 오늘날 LG의 모태가 된 락희화학공업사(現 LG화학)를 설립했다.
화장품 생산으로 제조업에 진출한 연암은 한국전쟁이 혼미를 거듭하던 1952년 국내 최초로 플라스틱 가공 제품을 생산함으로써 이땅에 플라스틱시대를 열었으며, 1954년에는 역시 국내 최초로 튜브 타입의 치약을 개발해 큰 성공을 거두었다.
1958년에는 국내 최초의 전자회사인 금성사를 설립했으며, 이후 라디오, 텔레비전,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전화기 등 수많은 전자제품을 국내 최초로 생산해 우리나라 전자산업의 초석을 놓았다.
또 1967년 국내 최초의 민간 정유회사인 호남정유를 설립함으로써 기업성장의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하는 한편 1969년까지 금성통신, 금성전선, 럭키개발(現 GS건설) 등을 설립해 쉼없는 성장을 거듭했다.
이렇듯 LG가 국내 경제계 및 사회적으로 크게 성장하고 있는 가운데 연암 구인회 창업회장은 1969년 12월31일 향년 63세를 일기로 영면했다.
◆ 적극적인 투자와 기술개발로 국가경제 성장에 이바지(1970~1994)
- 구자경 명예회장
1970년 1월 9일, 구인회 창업회장에 이어 구자경 회장(현 LG명예회장)이 취임함으로써 LG는 새로운 변화와 도약의 전기를 맞이했다.
화학산업과 전자산업을 양 축으로 삼아 관련 산업분야와 유통, 증권, 보험 등 금융·서비스산업으로 사업영역을 넓혀나갔다.
LG는 1970년대를 관통하며 10개의 회사를 인수하거나 설립했고, 본격적인 R&D체계 구축을 위해 금성사 중앙연구소와 럭키중앙연구소를 설립했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초에 이르는 기간 동안 LG화학은 여천공장을 준공함으로써 창업 이래 숙원이었던 석유화학 원료사업 진출의 꿈을 이루었고, 울산, 온산, 나주, 청주공장을 준공하여 생산기지의 전국화를 달성했으며, 유전공학과 정밀화학 등 첨단산업 연구의 새 지평을 열었다.
LG전자도 구미, 창원, 평택 및 청주 등 대단위 공장을 잇달아 준공하고 다양한 신제품을 개발함으로써 한국 전자산업의 리더로서 진면목을 발휘하였으며, 1982년에는 국내 기업 최초의 해외 생산법인인 GSAI를 미국 헌츠빌 시에 세우며 우리나라 산업 해외진출사의 새장을 열었다.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중반에 이르는 10여년은 변화와 혁신의 시기였다.
첨단기술 개발, 신규사업 진출 등의 영역에서 커다란 경영성과를 거두었으며1984년 1월1일자로 그룹 이름을 럭키그룹에서 럭키금성으로 변경하고 다가올 미래를 향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이름을 바꾼 이후 구자경 회장은 ‘21세기 경영구상’등을 추진하는 경영혁신에 매진했다.
다가올 21세기는 기업간 경쟁에 국경의 의미가 없어지고 기술을 무기로 한 무한 경쟁이 전개될 것이라는 구자경 회장의 판단과 예지에 의한 것이었다.
1990년 2월에는 ‘고객을 위한 가치창조’와 ‘인간존중의 경영’이라는 새로운 경영이념을 선포하는 등 21세기 경영구상을 실현하기 위한 이념과 체제를 정립했다.
◆ 끊임없는 세계시장 개척을 통한 글로벌기업으로의 도약과 성공적인 지주회사체제로의 전환(1995~현재)
- 구본무 회장
LG는 1995년 2월 22일 구본무 회장이 취임함으로써 21세기를 향한 힘찬 전진을 시작했다.
또한 럭키금성에서 ‘LG'로 CI(기업이미지통합)를 개정, 새 브랜드로 새로운 역사를 향해 출발했다.
구본무 회장 취임 이후 LG는 기존의 화학과 전자사업의 성장속에서 이동통신과 TFT-LCD사업에 도전하였으며, 중국과 유럽, 미주 지역에서 광범위하고 다각적인 세계화 전략을 펼쳐 글로벌기업으로 LG 위상을 심어 나갔다.
1997년 말 외환위기를 겪으면서는 국내기업 가운데 最大인 65억 달러 외자유치 등을 통한「재무구조 개선」, 선택과 집중에 의한 「사업구조 조정」, 그리고 지주회사체제로의 전환을 통한「출자구조 재편」등의 단계적인 구조조정을 추진해 「재무건전성」과「경영투명성」 확보라는 성공적인 구조조정 성과를 달성했다
특히 LG는 2003년 국내 대기업 중 처음으로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해 계열사간 복잡한 순환출자관계를 합리화하여 출자는 지주회사가 전담하고, 사업자회사는 출자에 대한 부담없이 전문경영인에 의한 책임경영 및 철저한 이사회 중심의 경영으로 고유사업에만 전념토록 하는 등 지배구조를 정비했다.
한편, LG는 지주회사 체제를 안착시키는 과정에서 LS그룹과 GS그룹의 계열분리를 단행함으로써 창업 이래 57년간 단 한차례의 잡음도 없이 이어졌던 구·허 양가의 동업경영체제를 아름답게 마감했다.
이로써 LG는 전자, 화학 및 통신.서비스를 핵심사업영역으로 하여 세계와 미래를 향해 힘찬 전진을 시작했다.
전자사업부문에서는 세계 각국에 100여 개의 현지법인을 설립해 글로벌기업으로 면모를 갖추었고, 특히 LG전자는 전체 매출가운데 해외매출 비중이 80%에 달하고 42인치 LCD TV, 광스토리지, 가정용 에어컨, CDMA휴대폰, 대형 TFT-LCD 등 11개 제품이 세계 일등제품으로 등극하며 명실상부한 글로벌기업으로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LCD사업은 1999년 합작법인 출범 이후 세계 No.1의 위상을 지켜오면서 글로벌 선두기업으로 위상을 확고히 하고 있으며, 특히 지난해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파주 디스플레이 클러스터의 1단계 공사를 마무리하고 세계 최초로 7세대 생산공장을 완공했다.
화학사업부문에서 현대석유화학을 인수하여 석유화학산업의 수직계열화를 완성하였고, 2차전지 및 편광판 등 정보전자소재사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육성시키고 있으며, 건축자재부문에서는 통합 브랜드 지인(Z:IN)을 출범시키며 내실 있는 성과를 거두었다.
LG생활건강은 프리미엄 전략을 적극 전개하여 재도약의 기틀을 마련하였고, LG생명과학은 팩티브의 미국 FDA 신약 승인을 받는 등 생명과학 기업의 위상을 굳건히 다졌다.
1996년 LG텔레콤으로부터 시작된 LG의 통신서비스사업도 LG데이콤과 LG파워콤 인수를 통해 우리나라 통신사업의 새로운 강자로의 도약을 기대하고 있으며, LG상사는 해외자원 개발사업과 산업용 원자재 유통사업을 미래성장 동력으로 육성하고 있다.
또한 LG는 2005년 ‘LG 브랜드 출범 10주년’을 맞아 ‘LG WAY’를 선포, 경영이념인 ‘고객을 위한 가치창조’와 ‘인간존중의 경영’을 바탕으로 ‘정도경영’을 실천하여 ‘일등 LG’를 달성하겠다는 LG의 강한 의지를 선언했다.
미래의 변화를 주도해 100년을 넘어서는 위대한 기업으로 도약 다짐
구본무 회장은 창립 60주년을 맞아 “지금 우리는 지난 60년의 성과를 기반으로 100년을 넘어서는 위대한 기업으로 발전해야 하는 중요한 시점에 서 있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구 회장은 “앞으로 우리가 직면하게 될 변화는 그 속도와 범위에 있어서 이전과는 근본적으로 다를 것”이라며 임직원에게 “이제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경각심을 불러 일으켰다.
구 회장은 “한계를 뛰어넘는 노력으로 한 발 앞서 고객이 인정하는 가치를 세계 최고의 수준으로 창출하고 전달하는 고객가치 선도경영으로 미래의 변화를 주도해야만 100년을 넘어서는 위대한 기업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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