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독립운동가 김광제·서상돈 선생
김광제 선생은 충남 보령에서 태어나 한학을 수학한 뒤 관직에 올랐다. 1905년 동래경무관으로 재직 중, 강제로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사직상소를 올려 친일파의 탄핵과 내정 쇄신을 요구하였다. 이로 인해 고군산도로 유배되었지만 뜻을 굽히지 않았고, 1906년 대구로 옮겨 서상돈 선생과 함께 광문사를 조직하여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서상돈 선생은 독실한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나 일찍이 신사고와 근대의식을 가졌다. 보부상으로 출발하여 큰 재산을 모으며 독립협회의 만민공동회에 참여하여 근대 민족운동을 전개하였다. 수구파의 탄압으로 독립협회가 해산된 뒤 대구에서 김광제와 함께 광문사를 세워 계몽운동에 동참하였다.
특히 두분은 광문사 사장과 부사장으로 활동하며 나라의 빛이 많아 외세의 간섭과 국망의 위기를 초래하였다고 인식하여 국채갚기 운동, 즉 국채보상운동을 발의, 주도하였다.
대구에 국채보상연합회의소를 조직4하여 국채보상운동을 전국적이며 거족적인 민족운동으로 이끈 것이다. 국채보상운동은 일제의 탄압으로 좌절되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민족운동을 계속하였다.
김광제 선생은 만주로 망명하여 민족교육을 실시하고 1920년 제2의 3·1운동을 시도하고 조선노동대회를 조직하여 민중계몽과 민족의식 고취에 노력하다, 1920년 7월 24일 55세를 일기로 서거하였다.
서상돈 선생은 일제의 탄압으로 국채보상운동이 좌절되자 사업 활동에 전념하여 실업진흥을 통한 민족 실력양성에 애쓰다, 1913년 6월 30일 64세를 일기로 서거하였다.
정부는 두 분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 김광제 선생, 1999년 서상돈 선생에게 각기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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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11일 09: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