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영동리 고분 발굴조사 지도위원회 개최
장 소 : 전남 나주시 다시면 영동리 발굴현장
조사기관 : 동신대박물관
조사내용 : 옹관, 석실묘 등 확인
나주 영동리고분 3차 발굴조사 개요
동신대학교 문화박물관(책임연구원 이정호교수)은 문화재청과 전남도, 나주시의 지원을 받아 2006년 10월 20일부터 2007년 3월 5일까지 예정으로 나주 다시면 영동리고분군에 대한 발굴조사를 시행하고 있다. 현재까지 이 고분에 대한 발굴조사 결과, 매장주체부가 확인된 고분 5기와 함께 고분 내부에서 옹관 26기, 석실묘 8기, 석관 3기, 와관(기와모양 관) 수 기 등 적어도 37기 이상의 고분 매장주체부가 확인되었다.
영산강유역에서 신라토기 출토
이번 발굴조사 결과 5세기 말~6세기 전반의 횡혈식석실분에서 다수의 신라토기가 확인되었다. 지금까지 신라계의 토기는 통일신라기(7세기 중반 이후)의 것이 출토되는 것이 일반적이나 이번처럼 삼국이 병립하던 5세기 말~6세기 전반의 토기가 출토된 것은 첫 사례이다.
신라토기는 제3호분에서 모두 5점이 출토되었는데 모두 토기 뚜껑이다. 이 뚜껑들은 횡혈식석실고분의 입구에서 장례의식을 치룬 후 매납한 토기 무리 중에서 출토되었다.
이번에 출토된 신라토기는 삼각집선문과 반원문이 결합된 전형적인 신라토기 문양이다. 대구·경북지역을 중심으로 낙동강 동쪽지역에 형성된 신라문화권에서 유행하였다. 이 문양은 대칼과 컴퍼스 등을 이용한 새긴 무늬이며 이후 통일신라시대에는 토기표면을 도구로 눌러서 찍는 형태의 인화문으로 대체된다. 영동리에서 출토된 신라토기의 문양형태나 새김방법은 이 유물을 출토한 5세기 말~6세기 전반의 횡혈식석실 연대와 서로 부합한다.
신라토기는 모두 5점이 출토되었는데, 이와 함께 백제의 삼족토기가 여러 점 출토되었다. 그리고 고대 영산강세력의 재지계 토기들도 출토되었다. 이 고분의 피장자가 백제, 신라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던 인물로 추정된다.
영산강유역에서 신라계의 유물이 출토된 사례로는 1996년도에 발굴조사한 나주 복암리 제3호분의 96석실 출토 말 재갈과 행엽 등이 있다. 이 유물을 근거로 고대 영산강세력과 신라가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다고 짐작하고 있었지만 후속되는 자료가 부족하여 연구가 답보상태였다. 그런데 이번에 신라 토기가 다수 확인됨으로써 고대 영산강세력과 신라의 관계를 보다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실마리가 된다.
475년, 백제는 고구려 장수왕의 공격을 받자 당시 동맹관계였던 신라에서 1만 원군이 파병된다. 그러나 이미 백제는 고구려에 패퇴하여 한강유역의 위례성을 점령당하였고 불가피하게 웅진으로 수도를 이전하게 된다. 이후 고구려의 남진에 대처하기 위해 493년(백제 동성왕)에 신라와 국혼을 하고 고구려에 대한 공수동맹을 맺는 등 동맹관계를 긴밀하게 다진다. 이 관계는 백제의 성왕과 신라의 진흥왕이 한강 유역을 두고 쟁탈전이 있기까지 약 60년간 계속되었다.
앞으로 검토가 더 필요하겠지만, 이번에 출토된 신라토기는 복암리고분 출토 신라계 말재갈 등과 함께 시기적으로 위의 역사적인 사실과 잘 부합하는 유물이다. 고대 영산강세력이 삼국의 정치·군사적인 긴장관계 속에서 펼쳤던 위상과 역할을 연구하는 실마리가 될 것이다.
다양한 묘제와 풍부한 고대 인골자료
영동리고분군의 제1호분에서는 옹관묘와 석실묘. 석곽묘, 와관 등 13기 이상의 묘실이 한 봉분 안에 매장한 복합분묘이다. 이 고분은 4세기에 전통적인 옹관고분으로 사용되다가 6세기 전반에 전기 횡혈식석실묘, 6세기 후반의 백제계 석실묘가 시간차를 두고 차례로 축조되었다. 이러한 복합분묘 형태는 나주 복암리 고분군(사적 404호)과 동일한데, 지역적·시기적으로도 직접적인 관련을 맺고 있는 고분이다.
한편, 제1호분에서는 2005년부터 시행된 제1, 2차 조사 당시 모두 15개체의 고대인골이 출토되었는데 이번 조사에서 6개체의 인골이 추가로 확인되어 총 21개체의 인골이 확인되었다. 이례적으로 다량의 고대인골이 출토되었을 뿐만 아니라 잔존상태가 양호해 추가장 또는 세골장(2차장) 등 고대 장제를 연구하는 양호한 자료가 된다. 더불어 이번 학술조사는 고대 인골의 다양한 분석이 함께 진행될 예정이다. 향후 분석결과를 통해 고대인의 체형과 모습의 복원은 물론 친족관계, 사회관계 등을 연구하는 자료가 될 것이다.
고대의 입식옹관(立式甕棺)
제4호분은 3세기부터 축조되기 시작하여 4세기 전반까지 사용된 다장 형태(한 고분에 다수의 관을 안치한 형식)의 옹관고분이다. 고대 영산강세력의 옹관묘는 일반적으로 대형 항아리를 횡으로 눕히고 내부에 피장자를 안치하는 형태가 확인되었으나 이번 발굴조사 결과 3세기의 옹관묘 중에는 대형항아리를 세워서 고분에 안치한 형식인 옹관 2기가 완전한 형태로 발굴되었다.
문화재청 개요
우리나라의 문화적 정체성을 지키고 대한민국 발전의 밑거름이 되어 온 문화재 체계, 시대 흐름에 맞춰 새롭게 제정된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60년간 지속된 문화재 체계가 국가유산 체계로 변화한다. 과거로부터 내려온 고정된 가치가 아닌 현재를 사는 국민의 참여로 새로운 미래가치를 만드는 ‘국가유산’. 국가유산청(구 문화재청)은 국민과 함께 누리는 미래가치를 위해 기대할 수 있는 미래를 향해 새로운 가치를 더하고 국민과 공감하고 공존하기 위해 사회적 가치를 지키며 과거와 현재, 국내와 해외의 경계를 넘어 다양성의 가치를 나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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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발굴조사과 김동대 사무관 042-481-494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