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장비 활용, 세포간의 정보 연결시스템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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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2005-01-05 09:41
서울--(뉴스와이어)--“우리 연구원들이 패치 클램프를 다루는 솜씨는 세계적입니다. 한국인의 손재주 덕분이죠.”

세계 최초로 통각세포에서 ‘캡사이신 채널’을 발견해 차세대 진통제 후보물질 ‘PAC20030’을 개발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서울대 약대 오우택(吳禹澤·49) 교수의 말이다.

태평양(주)이 주축으로 개발한 PAC20030은 올해 2월 말 계약을 통해 독일 글로벌 제약회사인 슈바르츠에 팔린 신약 후보물질. 태평양은 슈바르츠가 신약을 만들고 판매할 때까지 총 1600억원 이상의 기술료를 받기로 했다. 이는 국내 라이선싱 계약사상 최대액수다.

오교수는 1997년부터 창의적연구진흥사업단으로 선정된 통증발현연구단을 통해 PAC20030의 밑바탕이 된 통증 메커니즘을 밝혀 왔다.

패치 클램프는 통증 메커니즘에서 중요한 캡사이신 채널을 연구하는 데 필요한 핵심 장비이다. 캡사이신 채널은 통각신경의 세포막에 위치해 캡사이신을 주면 이온이 세포 안으로 들어가는 통로가 되는 이온 채널의 하나다.

패치 클램프는 1970년대 독일의 베르트 자크만 박사가 에르빈 네어 박사와 함께 발명한 작품이다. 두 사람은 패치 클램프를 통해 지름 1000분의 1㎜ 가량의 매우 가는 유리관을 세포막에 흡착시켜 그 안쪽에 있는 하나의 이온 채널이 열렸을 때 나오는 미량의 전류를 검출하는 기법을 개발했다. 이들은 이 기법으로 세포막에서 이온 채널의 존재와 기능을 발견한 덕분에 1991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패치 클램프의 유리관 끝에 달린 유리전극에는 세포막 일부가 들러붙게 되는데, 이 막은 세포와 외부를 절연시켜 이온 채널의 활성을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이와 같은 패치 클램프를 통해 통각신경의 세포막에 존재하는 캡사이신 채널의 활성을 확인할 수 있다. 캡사이신을 투여하면 이 채널이 열려 이온이 세포 안으로 들어가면서 미세한 전류가 발생하게 된다. 외부에서는 이 전류를 증폭해 모니터에 파형으로 보여준다.

실제 오 교수는 1994년 미국 시카고의대에 교환교수로 가 있을 때 패치 클램프를 다루는 기술을 익혔다. 생쥐의 통각신경세포에 미세한 전극을 붙이고 캡사이신을 투여하는 실험을 통해 캡사이신 채널의 존재를 처음 알아냈다.

평소에는 통각신경의 세포막에 있는 캡사이신 채널은 닫혀 있다. 그러다가 캡사이신이 이 이온채널에 결합하면 이 채널이 열리면서 나트륨 · 칼륨 등의 양이온이 밀려들어온다. 이 이온들은 양전기를 띠고 있기 때문에 통각신경을 흥분시키고 이 흥분상태가 척수를 거쳐 뇌로 전달돼 통증을 느끼게 된다. 이온 채널은 패치 클램프를 통해 신경 세포 · 분비 세포 등 여러 세포에서 근본적인 작용에 관여한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됐다. 예를 들어 난자와 정자가 수정할 때에도 그 정보는 이온 채널의 개폐를 통해 난자의 표면 전체에 신속히 전달된다.

오 교수는 “이온 채널이 잘못되면 나타나는 질병이 많다”며 “부정맥· 낭포성 섬유증 · 근무력증 · 당뇨병 등이 이온 채널과 관련되는 질병”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개개의 이온 채널의 기능이 해명되면 관련 질병의 원인과 치료법을 분자 수준에서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온 채널 연구에 필수적인 패치 클램프는 첨단 장비”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학습 및 기억에 관련된 뇌 신경세포에서 이온 채널 연구가 활발하다. 신경과학은 이온 채널을 모르면 안 되는 분야가 됐다.현재 국내에서는 광주과학기술원의 박승철 교수가 칼슘 채널을, 서울대 의대 김기환 교수가 장의 평활근에 있는 이온 채널을, 성균관대 의대 엄대용 교수가 심장근에 있는 이온 채널을 연구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세포 사이에 서로 다른 전기적 신호를 전달함으로써 신경계나 근육계에 중요한 이온 채널의 구조를 분석한 공로로 미국 뉴욕 록펠러대 하워드 휴즈 의학연구소의 로드릭 매키넌 교수가 노벨화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오 교수는 “매키넌 교수가 노벨상을 받기 전인 2003년 초 연구단을 방문해 연구시설을 둘러보고 이온 채널과 관련해 활발하게 토론을 벌였다”고 말했다.

<통각 세포와 캡사이신 채널 >

캡사이신은 고추에 들어 있는 매운 성분으로 통증을 일으킨다. 예를 들어 캡사이신을 피부에 바르면 따가운데, 이는 캡사이신이 피부에 분포한 통각세포를 흥분시키기 때문이다. 또 매운 고추를 먹으면 고추의 캡사이신이 혀의 통각세포를 흥분시켜서 맵다고 느끼게 된다. 평소에는 통각신경의 세포막에 있는 캡사이신 채널은 닫혀 있다. 그러다가 캡사이신이 이 이온채널에 결합하면 이 채널이 열리면서 나트륨·칼륨 등의 양이온이 밀려들어온다. 이 이온들은 양전기를 띠고 있기 때문에 통각신경을 흥분시키고 이 흥분상태가 척수를 거쳐 뇌로 전달돼 통증을 느끼게 된다.

생물체의 세포막에는 이온채널이 많이 있어 이를 통해 세포 안팎으로 물질이 교환되지만, 통증 유발과 관련된 이온채널은 오 교수가 발견한 캡사이신 채널이 처음이었다. 오 교수의 연구결과는 1996년 세계적인 신경과학전문지 ‘저널 오브 뉴로사이언스’ 4월 1일자에 대대적으로 실렸다. 이를 계기로 1997년 오 교수의 통증발현연구단이 과학기술부 창의적연구진흥사업단으로 선정됐다. 연구단은 올해로 벌써 7년째를 맞이했다.

<캡사이신 채널과 차세대 통증차단물질 ‘PAC20030’>

캡사이신 채널을 통해 통증이 발생하는 메커니즘을 밝혀낸 후 연구단은 새로운 진통제 개발에 성큼 다가섰다. 2002년에는 그간의 성과가 결실로 나타나기도 했다. 연구단이 서울대 약대 신의약품개발연구센터와 태평양 의약건강연구소 신약팀 등과 공동 연구한 결과 차세대 통증차단물질 ‘PAC20030’을 찾아냈던 것.

이 결과도 “캡사이신 채널은 특이하게 통각신경세포에만 있기 때문에 이 통로가 열리지 않게 만드는 물질을 찾아낸다면 이전보다 훨씬 부작용이 적은 진통제를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오 교수의 지론에서 출발했다.

연구단이 속한 공동연구팀은 처음에 체내에서 발견한 12-HPETE의 구조를 변형시켜 캡사이신 채널을 열리지 못하게 하는 물질을 합성하는 쪽으로 연구 방향을 정했다. 12-HPETE는 체내에서 캡사이신처럼 이온채널을 열어주는 ‘내인성 활성물질’. 12-HPETE를 세 부분으로 나눠 신물질을 합성하고 평가했다. 이 과정에서 모두 1,500여 물질이 합성됐고 이 가운데 PAC20030이란 물질이 효과가 가장 뛰어나면서 안정적인 물질로 평가됐다. 2002년에는 PAC20030에 대한 특허를 출원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올해 2월 말에는 PAC20030이 차세대 진통제 후보물질로 인정받아 독일의 글로벌 제약회사인 슈바르츠에 팔리기도 했다. 특히 PAC20030 개발의 주축인 태평양은 슈바르츠와의 계약을 통해 이 물질로 신약을 만들고 판매할 때까지 총 1600억원 이상의 기술료를 받게 됐다. 물론 현재 PAC20030은 전임상단계에 있으며 앞으로 10년 이상 슈바르츠와의 공동 연구가 필요하다.

웹사이트: http://www.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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