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에 걸친 나라사랑...부산지역 애국지사 이길영 선생

부산--(뉴스와이어)--2007년 3월, 우리고장 부산의 하늘을 연 것은 3.1절 부산 시내를 흔든 만세함성이었다. 그리고 3월의 마지막 날인 31일, 구포에서는 1919년 3월 29일 일어난 구포장터 만세운동을 기리는 재현행사가 펼쳐져 부산을 다시금 독립운동의 불길로 뒤덮는다.

이런 시기에 우리 고장의 독립투사들의 발자취를 살펴보고 관련 현충시설을 돌아보는 것은 매우 의미 깊은 일이라 할 것이다. 특히 3대가 함께 독립운동에 투신해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은 생존애국지사 이길영 선생(부산 영도구 거주) 같은 분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길영 선생의 조부는 이규풍 선생이며 부친은 이민호 선생이다.
이규풍 선생(1865.11.2-1932.6.1)은 1909년 안중근, 이범윤 등과 함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의용군을 조직하여 회령과 경원 등지에서 일본군을 대파하는 혁혁한 공을 세웠다. 1919년 3.1운동 후에는 서울에서 개최된 국민대회에서 박은식, 신채호, 조성환 등과 함께 평정관으로 선출되었으며 1926년 4월에는 양기탁, 고활신 등과 더불어 고려혁명당을 조직하였다. 그는 중국 길림성, 러시아에서 항일투쟁 도중 사망했으며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 받은 독립운동가이다.

이민호 선생(1895.4.7-1944.5.29)은 경성의전을 졸업하고 1919년 3.1독립운동 당시 청년들을 모아 독립만세 운동 계획을 추진, 지휘하고 본부로 돌아오던 중 체포되어 평양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출옥했다. 출옥 후 1922년 가족들과 함께 노령으로 망명하여 구국운동을 전개하다 다시 만주로 들어가 신민부 부원으로 활동하던 중 부친 이규풍 선생이 사망하자 북경으로 가서 지하공작을 계속했다. 그러나 장처명 등과 함께 체포되어 일제의 악독한 고문으로 사경을 헤매게 되자 가석방되어 병원에 입원했으나 광복을 1년여 남짓 앞두고 끝내 별세했으며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이런 조부와 부친의 영향을 받은 이길영 선생(1928.4.4 ~ )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1945년 3월 김학규 장군이 지휘하는 광복군에 입대하여 훈련을 받고 동남아전쟁에서 미군 통역병으로 투입되기 직전 광복을 맞이했으며 그 공로로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3대에 걸쳐 일제의 침략에 맞서 조국의 독립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한 것이다.

그러나 이길영 지사는 “그 당시 독립운동에 투신한 분들에 비하면 내가 한 일은 자랑할 일도 못된다 ”며 손사래를 치고는“모쪼록 독립운동 관련행사에 많은 학생들과 시민들이 참여하여 뜨거웠던 선열들의 나라사랑 정신을 함께 느껴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노(老) 애국지사의 작은 바램이었다.

부산지역에는 3월 들어서만 두 분의 애국지사가 작고하셨으며(신수명, 이광우지사) 이길영 지사를 비롯해 15명의 애국지사가 부산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웹사이트: http://busan.mpva.go.kr

연락처

부산지방보훈청 홍보담당 조진희 051-660-6331

국내 최대 배포망으로 보도자료를 배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