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열흘 넘는 순방은 하지 맙시다.”
어지간해선 ‘힘들다’는 소리를 입 밖에 내지 않는 대통령이었다. 그런 대통령이 12월 9일 새벽 서울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마중 나온 참모들에게 던진 일성이었다. 지난 4개월 동안 숨 돌릴 틈 없이 이어졌던 순방의 고단함이 가벼운 농담 같은 진지한 호소로 묻어 나왔다.
순방외교의 핵은 역시 대통령이다. 모든 것이 대통령을 통해 이루어진다. 다양한 정보와 자료들이 대통령의 머릿속으로 집중돼야 하고, 또 대통령의 입을 통해 효율적으로 표현돼야 한다. 사실상 대통령의 일인극인 셈이다. 그런 만큼 대통령으로서는 할 일은 많고 시간은 없다. 긴장은 항상 그림자처럼 붙어 다닌다. 실수는 자그마한 것조차 접근을 허용할 수 없다. 그것이 바로 순방기간 39일 동안 되풀이된 일상의 풍경이었다. 그리고 대통령은 그 기나긴 일정을 피곤하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소화해 냈다.
하루의 일정이 마무리되면 대통령은 다음 날, 또는 다음 순방국 자료를 모니터에 띄웠다. 영빈관의 늦은 밤, 호텔 서재의 이른 아침, 때로는 비행기 내의 짧은 이동 시간도 자료 검토에 활용했다. 그리고 행사와 행사 사이 막간의 자투리 시간들조차 키워드 중심으로 정리된 카드식 자료를 마지막으로 점검하고 보완하는 데 활용했다.
출발 15분 전, 코디네이터의 분장이 시작되면 대통령은 눈을 감는다. 명상을 하는 것일까? 아니면 검토한 자료의 내용들을 머릿속으로 반추하는 것일까? 의전비서관이 의전 절차를 비롯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항들을 보고하는 것도 이 때다. 5분도 안되는 짧은 시간에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될 수많은 사항들이 입력되는 경우도 있다. 대통령은 그 많은 정보들을 머릿속에 담고 방을 나선다.
이야깃거리는 항상 부족하다. 정상회담뿐만이 아니라 공식 오찬 또는 만찬이 있기 때문이다. 식사 때에는 상대국 정상의 부인 등 여러 사람들과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해야 한다. 이 부분은 어쩌면 참모들이 준비할 수 있는 영역의 바깥에 있다. 오로지 대통령의 순발력과 유머감각이 결정적 변수다. 대통령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스트레스가 아닐 수 없다.
그래도 가장 큰 스트레스는 역시 시차가 아니었을까. 어지간히 강인한 의지의 소유자인 대통령도 남미에 이은 유럽 순방에선 시차의 위력 앞에 때로 힘들어했다. 단순히 시차 때문이라기보다는 가중된 피로가 누적된 결과인 듯싶었다. 불과 1시간여의 자투리 시간에도 대통령은 간혹 깊은 잠에 빠져들곤 했다. 그렇게 고단한 대통령의 단잠을 깨운 뒤, 또 다시 기억해야 할 사항들을 빠짐없이 전달해야 하는 참모들의 곤혹스러움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런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대통령은 언제나 참모들의 우려에 한결같이 말했다.
“괜찮다.”
순방의 끝이 곧 휴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순방을 마치고 돌아오는 대통령은 그동안의 부재로 인해 평소의 배로 늘어난 국내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12월의 귀국도 마찬가지. 대통령은 여독을 미처 풀지도 못한 채 국내 일정에 전념하다 다시 한일 셔틀외교를 위해 공군1호기에 몸을 실었다. 피로의 끝이었을까. 대통령은 회담이나 회견 등 행사 하나를 마칠 때마다 연신 하품을 하며 밀려드는 졸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다음 행사가 시작되면 대통령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언제 그랬냐는 듯, 특유의 또박또박한 목소리와 정연한 논리로 적극적인 설득과 설명에 힘을 쏟는 것이었다. ‘혼신의 힘’이 거기에 있었다.
2. 실용주의 新외교
11월 16일, 브라질 대통령궁에서 열린 한·브라질 확대정상회담. 브라질 측은 자국産 쇠고기의 수출을 위해 한국 쇠고기 값이 비싸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그때 대통령의 임기응변이 번뜩였다.
“우리는 비싼 쌀, 비싼 쇠고기를 먹는 나라입니다. 그런 만큼 사람도 비싸게 대접받으려고 합니다.” 특유의 유머에 좌중의 폭소가 터졌다.
12월 3일, 한·폴란드 정상회담. 대통령은 바르샤바에 대한 인상으로 인사를 시작했다.
“바르샤바는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추웠습니다.”
폴란드측 참석자들의 표정이 다소 어색해지는 순간, 대통령이 말을 이었다. “그러나 영부인이 아주 따뜻하게 맞아주어서 따뜻해졌습니다. 그리고 각하가 우리 일행을 따뜻하게 맞아주어 지금은 아주 따뜻합니다.”
이날의 압권은 단연 폴란드 대통령의 이름이었다. 대통령의 말. “나는 우리 외교보좌관의 이름 석자도 잊어먹곤 하는데, 대통령의 이름은 여덟 자라서 여러 차례 외웠다.” 공교롭게도 이날 대통령은 우리 측 참석자를 소개하던 도중 외교보좌관 이름을 잠시 기억 못해 머뭇거린 반면, 폴란드 대통령 이름인 ‘크바시니에프스키’는 자연스럽게 언급했던 것. 장내의 웃음과 함께 회담장의 분위기는 한결 부드러워졌다.
대통령은 분위기 메이커이기도 하다. 형식적으로 시작하고 의례적으로 끝날 수 있는 회담에 진지함과 솔직함을 가지고 온다. 회담 분위기의 변화는 대통령의 설득력을 한층 높여준다. 중요한 현안의 경우, 대통령은 그냥 넘어가는 법이 결코 없다. ‘외교란 그런 것’이라며 적당히 외교적 수사를 동원해 애매하게 넘길 수도 있겠지만, 대통령은 그런 문제일수록 특별히 집요하게 역점을 둬 설명한다. 즉 회담을 ‘화기애애한 친교’로 생각하기보다는 상대의 주장을 경청하고 또 자신을 설득시키는 ‘이해의 장’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아세안+3’를 계기로 열린 한·중·일 정상회의. 대통령은 민감한 사안인 환율 안정 문제를 제기해 환율에 대한 인식을 두 나라와 공유했다. 또 일본을 향해서는 당일 아침에 보도된 문부성의 발언을 놓고 정식으로 유감을 표명하기도 했다. 러시아 방문 당시 푸틴 대통령과의 다차 회동, 칠레 산티아고에서의 한·미 정상회담, 그리고 블레어 총리와의 한·영 정상회담, 그 회담들의 대화록을 보면 대통령의 논리정연한 설득과 상대 정상의 깊은 이해가 확연히 드러난다.
“세계 역사에서 분쟁이 해결된 많은 사례들을 보면 합리적이고 정당한 주장에만 응답해서 해결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합리적이고 정당하지 않은 주장을 하더라도 그것을 현실로 인정하고 대화하고 타협함으로써 분쟁을 막게 되고 역사적인 전기를 만들었던 것입니다.”(한·영 정상회담 대화록에서)
대통령의 실용주의 노선은 정상회담으로 그치지 않았다. 가는 곳마다 또 만나는 사람마다, 대통령은 우리 외교가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형식적으로 다녀가는 대통령이 아니라 정말 의미 있는 메시지와 동선을 남기려는 대통령. 그렇게 대통령은 여러 대륙을 넘나들면서 평화를 설득하고 통상을 열었다.
순방국가 언론과의 인터뷰는 언제나 예정된 시간을 넘겼다. 인도 TV와의 회견이 그랬고, 영국 BBC와의 회견이 그랬다. 급기야 12월에 있었던 일본 마이니치신문과의 회견 후에는 ‘앞으로 인터뷰 시간을 충분히 잡을 것’을 직접 지시하기도 했다. 예정시간이 번번이 초과된 원인은 대부분 대통령에게 있었다. 하나라도 더 우리 입장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한·인도 경제인 초청 오찬간담회에서는 인도측이 무역역조 문제를 제기하자, 그 자리에서 원고를 잠시 덮어두고 이를 적극적으로 해명하기도 했다. 베트남 ASEM 당시 열린 한·EU정상회의에서는 대통령의 그런 모습에 EU측 정상들이 특별한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3. 북핵 외교, 설득의 여정
“이 점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설명 드리겠습니다.”
11월 12일, 미국 LA에서 열린 국제문제협의회(WAC) 초청 오찬. 준비된 연설을 하던 도중, 대통령이 갑자기 원고에서 눈을 떼더니 좌중을 둘러보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문제는 조금 전 언급한, ‘이 문제에 관한 북한의 주장은 합리성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대목. 대통령은 이 대목을 다시 고쳐서 이야기했다.
“준비했던 표현이 비서들이 민감하다 해서 말을 고쳤습니다. 그 표현은 ‘합리적’이라는 표현이 아닙니다. ‘합리적’은 적절한 표현이 아닙니다. 매우 민감한 문제라서 우리 참모들이 고심을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대통령은 마지막으로 정리를 했다.
“믿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만 여러 가지 상황에 비추어 일리가 있는 측면이 있습니다.”
잠깐 사이 이 광경에 북핵 문제를 놓고 한국이 처해있는 어려운 현실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북핵 문제에 대한 한국의 인식과 입장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몇몇 표현을 두고 논란을 거듭하고 고심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었던 저간의 사정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WAC연설의 1차 초안이 만들어진 것은 지난 11월 7일. 이날 대통령은 NSC와 연설팀이 준비해놓은 원고를 원점으로 돌렸다. 그리고 전혀 새로운 버전의 연설을 두 시간여에 걸쳐 구술했다. 이것이 사실상의 초안이었다. 연설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실무진들이 오래 전부터 심혈을 기울여 준비해온 원고는 아쉽게도 폐기되고 말았던 것. 그 대신 대통령은 이미 구상을 해왔던 듯, 연설의 기조를 이루는 내용을 막힘없이 구술했다. 대통령은 중요한 연설이 있을 때마다 직접 생각을 정리하여 연설팀에 구술해주곤 했는데, 이번 순방기간 중에는 WAC 이외에도 모스크바대 연설이나 소르본느대 연설이 그런 사례의 하나였다.
이틀 후인 11월 9일, 2차 구술이 있었다. 이날 특별히 새로운 내용이 추가된 것은 아니었다. 이야기 전개 방식에 변화가 있었고 논리적 정합성도 보강되었다. 이미 연설의 뼈대와 살은 대통령의 머릿속에서 거의 완벽에 가깝게 조합돼 있었다. 대통령의 메시지는 분명했다. 미국내 일부 강경 여론에 대해 한국의 입장을 분명하게 전달하려는 것이었다. 일부 언론의 사후 우려처럼 한미관계의 파국을 감행했던 것도 아니고, 국내정치용은 더더욱 아니었다. 대통령은 항상 넓게 보고 멀리 생각했다. 이날 대통령은 더 이상 독회를 할 여유가 없으니, 문장을 다듬고 완성하는 데 집중할 것을 지시했다.
초안은 많은 사람들에게 회람되지 못했다. 외교안보라인을 중심으로 내용 검토가 이루어졌다. 몇몇 표현에 대해서는 이견이 제시됐다. LA로 출발하던 12일 아침, 정동영 통일부장관이 관저로 대통령을 찾아왔고, 대통령은 연설팀을 호출했다. 정 장관의 일부 수정건의를 대통령이 받아들인 것. 통일부 장관, 국가안보보좌관, 홍보수석이 회의를 한 끝에 몇몇 군데가 수정됐다.
의견 개진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미국행 특별기 내에서도, 또 LA 도착 후에도 다양한 의견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제기됐다. 의견들은 취합돼 대통령에게 보고되었고, 대통령은 그 내용들을 숙지한 가운데 준비한 원고와 함께 오찬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연설 시간. 대통령은 준비된 원고를 군데군데 고쳐 읽으면서 제기된 의견들을 사실상 거의 다 반영했다. 그렇다고 해서 애초의 초안이 완전히 뒤바뀐 것은 아니었다. 1,2차 구술을 통해 강조했던 핵심 내용은 연설의 처음과 끝을 관통하면서 그대로 살아남아 있었다. 그것이 LA연설이었다.
LA연설은 북핵 문제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설명하는 하나의 분수령이었다. 대통령은 LA연설을 전후로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베트남 ASEM 정상회의, 산티아고 한·미 정상회담, 한·중 정상회담, 라오스에서 열린 한·중·일 정상회담, 그리고 한·영 정상회담, 한·프랑스 정상회담 등을 통해 북핵 문제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설명·설득하고 이해를 이끌어냈다. 그리고 마지막은 한·일 셔틀 정상회담. 대통령은 때마침 유골 문제로 강경론이 거센 가운데에도 대북제재 신중론을 견지하고 있던 고이즈미 총리의 노력을 높이 평가했다. 이로써 ‘한반도 전쟁 반대와 북핵의 평화적 해결’이라는 설득의 메시지로 지구 반 바퀴를 돌았던 여정은 마침내 일본 이부츠키 방문에서 마침표를 찍었다.
4. 아르빌
어쩌면 아르빌은 언제나 대통령의 마음 한 귀퉁이에 자리 잡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기에 어느 날 문득 그곳으로 발길을 돌릴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남미 순방을 마치고 밤늦게 귀국하고 나서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았던 11월 24일 수요일 오후. 여독과 시차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 대통령은 피로를 감추지 못한 모습으로 부속실 직원을 찾았다.
“아무래도 이번엔 그쪽으로 가는데, 오는 길에 아르빌을 들러봐야 되지 않겠나? 누구한테 어떻게 지시를 해야 할지 준비해 주게.”
그것이 작은 시작이었다. 대통령은 아르빌 방문을 거창한 프로젝트로 생각하지 않았다. 대통령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 가운데 하나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아르빌 방문계획이 최종 확정되고 실행에 옮겨지는 그 순간까지 대통령은 노심초사하지도 않았고 남달리 긴장하지도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담담한 표정으로 임했을 뿐. 아니 오히려 정확히 말하면 이 계획에 관한 한 철저히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모든 준비는 실무진에 전적으로 일임했다. 그 침묵이 담대함이었는지 또 다른 긴장이었는지는 끝내 알 수 없었다.
다음날인 11월 25일 목요일 오전, 본관 집무실. 대통령은 비서실장과 NSC 관계자들이 함께 한 자리에서 아르빌 방문의 검토를 공식 지시했다. 대통령 지시는 간단했다. 프랑스 방문이 끝나는대로 아르빌로 가자는 것. 어떤 전제조건도 없었고 어떤 추가단서도 없었다.
이날 오후 부속실 직원이 대통령에게 물었다.
“혹시 그곳에서 1박을 하실 계획이십니까?”
보던 서류를 내려놓으며 대통령이 대답했다.
“내가 거기서 자면 거기 사람들은 얼마나 또 힘이 들겠나?”
출국을 하루 앞둔 27일 토요일 오전. 관저 접견실에서 열린 회의에서 계획이 최종 확정됐다. 바뀐 비행항로가 그려진 지도 위에 ‘동방계획’이라는 글자가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순방 끝 방문이라 보안상 문제가 생길 것을 우려해 2005년 설날을 전후한 방문 안이 논의되기도 했으나 그것도 잠시. 결국은 이번이 적기라는 판단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대통령은 대강의 설명을 듣고는 계획을 승인했다. 끝까지 설왕설래가 있었던 것은 언론 통보시점과 엠바고 문제. 이 역시 묵묵히 듣고 있던 대통령이 정리를 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문제는 언론도 잘 협조해 줄 겁니다. 믿고 해야죠.”
그리고 잠시 후 대통령이 한 마디를 덧붙였다.
“또 알려지면 알려진 대로 가야죠. 괜찮을 겁니다.”
계획을 알고 순방길에 나선 몇몇 참모들은 마음에 부담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계획이 허점 없이 잘 짜여진 것인지, 또 미처 생각하지 못한 문제는 없는지 조바심이 났지만, 그렇다고 순방국 현지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돼 있었다. 라오스 방문을 마치고 영국 런던에 도착한 날 밤. 관계자들 회의가 심야에 열렸다. 주로 서울에서의 준비상황을 들은 다음, 현지에서 챙겨야 할 사항들을 점검하는 자리였다. 최대 고민은 역시 일정변경에 따른 보안 유지와 원활한 송고 서비스 문제였다. 다음날 아침, 간략히 준비상황을 보고 받은 대통령은 ‘알았다’는 답변과 함께 다시 한·영정상회담 준비에 몰두했다.
파리에 도착한 12월 5일 일요일. 마지막 점검회의가 열렸다. 아르빌 방문 이틀 전이었다. 서울에서 온 구체적인 시나리오와 함께 상당히 두툼한 보고서가 부속실로 전달됐다. 쿠웨이트와 이라크 당국에 양해를 구하는 대통령의 친서도 작성돼 있었다. 대통령의 서명이 필요했다. 밤이 깊어가던 10시 무렵. 대통령은 다시 간략한 보고를 받고 친서에 서명했다. 두툼한 준비 자료도 건네받았지만, 대통령은 비행기에 탑승한 뒤에 볼 수 있도록 챙겨달라며 되돌려주었다.
이틀 후인 12월 7일. 당초 계획보다 지연된 출발 시간으로 여유가 생기자 대통령은 선뜻 퐁피두센터를 찾았다. 광주문화중심도시를 염두에 둔, 예정에 없던 일정이었다. 대통령은 특별히 도서관의 운영 방식에 대해 깊은 관심을 표하면서 많은 질문을 던졌다. 영빈관으로 돌아온 대통령은 간단한 식사를 마친 후 이번 순방 공식수행원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그리고 드골공항행.
쿠웨이트 행 특별기가 이륙하자 대통령은 예정대로 기자들 앞에 나가 아르빌행을 설명하고 협조를 당부했다. 언제나 그랬듯이 대통령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런 모습이 가장 훌륭한 연출이 되었다. 이어서 기내 준비회의가 열리고 대통령은 그때서야 비로소 구체적인 시나리오를 보고받았다.
아르빌 현장 분위기는 말 그대로 대환영. 아무리 정교한 각본으로도, 그 어떠한 장치로도 만들어낼 수 없는 감동이 그곳에 있었다. 오히려 인위적으로 무언가를 연출하려 했다면 그런 장면은 결코 만들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꾸밈없이 솔직한 대통령, 권위주의를 벗어던진 친근한 대통령, 그러면서도 언제나 변화하고 도전하는 대통령이었기에 가능한 장면이 아니었을까?
대통령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아르빌 방문은 진짜 잘한 일’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대통령은 특별히 대꾸하지 않는다. ‘잘한 일’이라기보다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앞서기 때문일 것이다. 아르빌 방문으로 지지도가 상승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을 때 대통령은 고개를 갸웃하는 표정이었다. 지지도의 상승을 기대하며 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 어쩌면 아르빌을 가듯이, 꼭 그 각오와 그 자세로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의 삶을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윤태영 (제1부속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