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관련 방송보도에 대한 민언련 방송모니터위원회 보고서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을 뒤흔들어 놓고 있는 이번 사태에 대해 방송사들의 반응은 차갑기만 하다. 비정규직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던 6월부터 7월 중순까지(6.1~7.22) 비정규직 관련 방송보도를 분석한 결과, SBS가 27건, KBS가 21건, MBC가 19건을 보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방송3사가 메인뉴스에서 하루 평균 30꼭지 정도를 내보내는 것을 고려하면, 52일 동안 겨우 이틀에 한 건 정도의(전체 보도의 1.2~1.7%) 비정규직 보도를 내보내는 데 그쳤다.
특히 비정규직 문제가 작년 법제정 당시부터 예견되었고, 크고 작은 노사분규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었음에도 방송사들은 관심을 보이지 않다가 이랜드 사태가 확대되자 이랜드 노사분규와 충돌을 중심으로 보도를 내보냈다. 비정규직 관련 전체보도 중 노사분규를 다룬 보도가 방송 3사 모두 60%이상(MBC 63.2%, KBS 61.9%, SBS 62.9%)이었고, ‘충돌이나 노사갈등’을 위주로 다룬 보도도 SBS 44.4%, MBC 42.1%, KBS 38.1%나 됐다.
다만 KBS와 SBS의 경우, 비정규직 보호 법안이 시행되기 전인 6월에 KBS는 6건, SBS 7건의 보도를 통해 비정규직 법안의 문제점을 짚으려는 노력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법안이 시행된 7월에는 이랜드 노조의 점거농성이나 노사갈등을 중심으로 보도를 내보냈다.
특히 충돌장면을 계속 내보내며 갈등을 더 강조했다. 6월 29일 SBS <벼랑 끝 충돌>에서는 “플라스틱 박스가 날아들고 양쪽이 뒤엉키면서 매장 안은 아수라장”이라며 폭력적 대치 장면을 부각시켰고, KBS도 <13곳 영업중단>(7.8)에서는 “이랜드 일반노조 조합원들이 매장 입구를 가로 막은 경찰과 심한 몸싸움을 벌인다”며 몸싸움 장면을 내보냈다. MBC 역시 8일 <해고반발… 점거>에서 “개장과 함께 노조원 100여 명이 계산대를 점거했습니다. 출입구가 손수레로 막히면서 영업은 전면 중단됐다”며 앞머리에 충돌장면과 점거장면을 계속 보여줬다.
본질 외면, 소모적인 갈등으로 치부
협상경과를 전하는 방송보도의 획일적인 태도도 이랜드노조 파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확대하는 데 일조했다.
이랜드 노사협상에서 이랜드 사측이 내놓은 안은 이랜드가 까르푸를 인수할 당시 체결한 단체협약 보다 한참 후퇴한 안이다. 이미 오래전에 임금·고용에 대한 노사합의가 이뤄졌음에도 이랜드 사측은 일방적으로 단체협약을 깨고 대량 해고를 강행한 것이다. 하지만 이를 짚어주는 방송보도는 한 건도 없었다. 문제를 지적하기는커녕 노사간의 입장차가 커 갈등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는 점만을 반복해서 내보냈다. 방송보도는 사안의 본질을 다루지 않고 갈등과 물리적 충돌만을 강조하며 이랜드 파업이 소모적인 갈등만을 불러오고 있는 것처럼 다룬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와 임금 등으로 파업을 벌이고 있는 연세의료원 노사분규 관련 방송3사의 보도태도도 문제였다. 방송 3사는 ‘임금 인상과 비정규직 전환’ 때문에 파업을 한다는 단편적인 사실만을 전달하며 갈등 상황을 부각시켰고, 환자들이 불편을 호소하는 목소리를 강조했다. 물론 연세의료원 노조의 파업으로 환자들이 불편을 겪게 될 수도 있지만 적어도 파업 당사자들이 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 환자 불편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달했어야 했다. 연세의료원 노조에 따르면 비정규직의 정규직전환 비용을 일부 부담해 간호의 질을 높이고, 다인병실을 확대하는 등 환자들과 연관된 요구를 걸고 싸우고 있다고 한다. 또 응급상황에 대처할 인원을 배치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방송이 연세 의료원 노조가 환자의 생명을 담보로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줄 만한 보도를 내보낸 것과는 차이가 있다.
비정규직 문제 무관심 심각
방송 보도의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무관심은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을 제대로 다루지 않은 점, 이랜드 그룹 이외 비정규직 문제를 다룬 보도가 거의 없다는 점 등에서도 드러난다.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만을 주제로 다룬 보도는 방송 3사 중 MBC 1건에 그쳤다.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과 관련해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모범을 보여야 할 공공기관 조차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인원을 매우 한정적으로 제한했고, 정규직으로 전환된 노동자들도 정규직과는 다른 근로조건을 적용하도록 정하고 있어 호봉이 올라가거나 복리후생의 혜택을 누릴 수 없다. 사실상 고용만 안정된다는 한계가 지적되고 있는 상황에서 방송사의 관심은 부족했다. 유일한 관련 보도였던 <7만 명 정규직>(6.26)은 공공부문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이 안고 있는 한계점에 대해서 제대로 짚어주지 못한 채 정부의 입장을 그대로 전달하고, “2년 넘게 근무한 7만여 명을 오는 10월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했다”며 긍정적인 측면만을 강조하기도 했다.
민주노총의 조사 결과, 이랜드 그룹 이외에도 코레일, 서울대병원, 두산건설, 세이브 존, 피자헛, 롯데호텔, 동국대, 한국은행, 경북대병원, 송파구청 등 18곳에서 계약해지, 외주화, 직군분리 등에서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일방적 피해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방송보도에서는 이랜드 그룹, 연세 의료원 파업 등의 충돌이 부각되는 사안에만 집중해 그 외의 피해사례에 대해서는 한 건도 다루지 않았다.
다만, 박정호 기자가 다룬 KBS ‘비정규직 관련 연속기획 보도’(6.29~7.3)의 경우, 대형마트, 공공부문, 호텔, 용역업체, 우리은행 등의 비정규직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을 짚어보며 비정규직법이 미칠 영향과 해법을 제시해 차별성 있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용역 노동자 보호는?>에서 비정규직법 시행으로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하는 용역 노동자들에 대해 보도해 의미 있는 접근태도를 보였다.
해법 제시 빈약
방송 3사는 비정규직보호법이 시행되고 불거지는 여러 사태를 정리하며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 해결책이 한결같이 ‘한 발씩 양보’만을 강조하고 있다. 실상 비정규직 보호 법안에 대해 한국노총, 민주노총, 노동연구원, 민주노동당 등 각계각층의 입장이나 해법은 다르다. 또 기업의 규모와 업종, 노동자의 임금·복지 수준에 따라 비정규직 문제나 해법은 천차만별하다. 비정규직만큼의 임금을 받는 정규직 노동자에게 양보만을 강요할 수 없고, 수익률이 높은 기업일 경우의 해법도 다르다. 각계의 해법을 들어봐야 하는 이유다.
방송 3사의 전문가 취재원을 분석해 봐도 문제점이 드러난다. 방송 3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을 꼼꼼히 짚고 불고지고 있는 문제를 풀기 위한 해법을 제시하기 보다는 한 노동연구단체의 목소리만을 전문가 인터뷰로 내보내며 그것이 정답인 양 ‘한 발씩 양보’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특히 SBS의 경우 이번 사태에 대한 정리와 전망, 해결책 등에 대한 전문가 인터뷰에 은수미 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을 취재한 것이 다였다.
한편 이랜드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시민사회와 민주노총 차원의 연대가 확대되자, 방송 3사는 이번 비정규직 문제를 ‘노사대리전’으로 단정하기도 했다. SBS 3건, MBC, KBS 각 1건에서 이랜드 농성에 민주노총이 가세하면서 ‘노사대리전’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규정했다.
비정규직 법의 문제는 우리 사회의 핵심적인 문제이자, 노동자의 절반에 달하는 사람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사안이다. 이를 단순히 한 단체와 기업간의 갈등, 노사간의 갈등, 재계와 노조와의 갈등으로 치부해 한 주체의 소모적인 갈등으로 단정해서는 곤란하다. 방송사들이 우리 사회 전반의 문제를 고민하고 해법을 제시하지는 못할망정 비정규직 문제를 ‘노사대리전’이라는 작은 갈등의 틀로 규정해 비정규직 사태를 호도해서는 안 된다.
또한 민주노총은 여러 기업노조와 지역노조가 연결되어 만들어진 조직이다. 이들이 소속단체에 파업을 지지하고 연대하는 것은 상식적인 일이다. 그럼에도 민주노총이 연대투쟁을 벌이는 것에 대해 마치 불순한 배후세력이 ‘가세’한 것처럼 규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20일 오전 정부는 이랜드 노조원들이 점거농성 중이던 홈에버 상암점과 뉴코아 강남점에 공권력을 투입해 노조원 전원을 연행했다. 이와 관련해 방송 3사는 몸싸움, 연행과정, 항의집회, 기습 점거농성 등을 주로 보도했고, MBC가 2건, SBS가 1건의 보도에서 비정규직 문제와 상생해법을 제시했다. 하지만 정규직 임금양보, 기업의 인센티브 확대, 고용서비스 강화 등 기존 보도에서 제시한 피상적인 대책과 별 차이가 없었다. 최저임금을 받고 있는 이랜드 비정규직, 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이 대책이 얼마나 효과적일지, 최저임금 수준의 중소기업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얼마나 공감이 갈지 의문이다.
정부는 사업주들이 법을 악용해 비정규직을 대량 해고시킬 수 있는 상황이 충분히 예견됨에도 무책임하게 허점투성이 비정규직법을 그대로 시행했다. 또 노동부는 이랜드 사태를 중재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다가 “교섭이 안 되면 공권력을 투입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곧장 공권력을 투입해, 정부가 보여준 중재 노력이 명분쌓기에 불과한 것 아니었냐는 비판을 받았다. 결국 정부는 이랜드노조원들의 합법적인 파업을 물리적인 방식으로 진압해 이랜드 사측의 편을 들어준 것이다. 하지만 방송사는 공권력 투입에 대해 비판하거나 마지막 협상이 왜 결렬됐는지, 그 원인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자세히 알려주지 않았다.
이랜드 사측이 비정규직법의 허점을 이용해 대량해고를 철저하게 준비하고, 부당계약을 강요하는 등 기업이 져야할 최소한의 책임도 지지 않는 태도에 대해 방송은 최소한의 문제제제기도 하지 않았다. 비윤리적인 기업행태에 대해 비판하기는커녕 이를 다루지 조차 않았다. 방송이 기업의 편법을 눈감아주고, 사회적 약자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당한 싸움을 한 기업의 노사갈등으로만 치부하는 것은 우리 사회 전반에 퍼져있는 문제를 축소시키고 희석시키는 것이다. 방송이 이제라도 이번 사태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짚고, 이랜드사태의 대책을 마련하는 데 힘을 기울여주기를 바란다.
또한 방송이 노사의 중간쯤에 서서 노사가 조금씩 양보하는 것만이 비정규직 문제의 대안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무책임한 태도다. 비정규직 법안과 관련해 현재 벌어지고 있는 문제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단계적으로 시행될 법안으로 인해 비정규직의 대량 해고 사태가 가속화 될 것이고 이를 둘러싼 갈등은 심화될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는 한 기업의 노사갈등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의 문제인 것이다. 방송이 무관심하고 무책임한 태도로 비정규직문제를 대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핵심적인 문제를 축소하고 덮으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우리는 방송이 이제라도 언론으로서의 자기역할을 깨닫고 비정규직 문제를 호도하는 것을 멈추고, 방송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지와 조건을 더 깊이있게 전하고, 다각적이고 심층적인 대안 모색으로 비정규직 문제해결에 나서주기를 촉구한다.
아울러 재계와 정치권, 정부에게 촉구한다. 재계가 편·탈법으로 비정규직을 해고시키는 데만 열을 올리지 말고, 비정규직 보호법의 취지에 맞게 고용을 안정시켜 기업의 생산율을 높이는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비정규직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했지만 정작 비정규직노동자를 대량 해고하는 근거가 되고 있는 비정규직보호법에 대한 손질도 시급하다. 정부와 정치권이 하루빨리 나서서 비정규직법을 보완해 줄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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