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와이어)--국정감사 준비에 여념이 없던 환경부 상하수도국에 지난해 9월 17일 감사원에서 보낸 민원서류가 도착했다. 아파트 단독정화조 청소비 청구와 관련돼 지난 99년부터 끊임없이 제기된 고질민원이었다.

그런데 이 민원은 ‘현장을 찾아가는 행정’으로 해결됐다. 환경부에서 단독정화조 업무를 맡은 해당공무원이 민원발생 현장으로 달려가 전문가와 함께 직접 ‘검증’함으로써 주민-주민대표-업체-공무원 간 오가던 의혹과 불신을 시원하게 날려 버린 것이다. 누구나 꺼릴 만한 궂은 일이었지만 반복민원을 근원적으로 해결하려는 정면돌파 의지는 ‘분뇨’를 담당하더라도 ‘혁신적’으로 일할 수 있는 전형을 보여줬다.

부천시 한 아파트와 관련돼 감사원에서 이송된 민원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단독정화조 청소량이 91-98년까지는 매년 60-70㎥에 불과했으나 99년 갑자기 231㎥로 4배 가까이 급증했고, 2000-2003년까지는 청소비용이 매년 180㎥를 청소한 것으로 청구돼 정화조 청소업자의 과다요금 청구의혹이 높으니 조사를 바란다. 아울러 99년부터 수차례 민원을 제기했으나 형식적인 답변만 받았고, 공무원과 청소업체 간의 결탁도 의심되니 환경부가 직접 조사해주기를 덧붙이는 내용이었다.

전문가 대동한 8시간의 합동조사

상하수도국에서 단독정화조 업무를 맡은 해당공무원은 곧바로 부천시 담당공무원에게 전화해 상황파악에 들어갔다. 부천시 공무원에게서 ‘단독정화조는 80년대에 설치됐고 현재는 설계도면이 남아 있지 않아 정화조 용량이 얼마인지 서류상으로는 알 수 없는 실정’이라는 답변을 들었다.

더욱이 이 민원으로 아파트 주민과 아파트자치회 임원 간에 관리비를 놓고 심한 반목이 생겼고, 그 여파로 주민들끼리 편을 나눠 다투고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아파트자치회 임원 중에 누군가 정화조 청소업체와 짜고 비싼 값에 정화조를 청소하고 청소물량을 부풀려 처리함으로써 뒷돈을 챙기고 주민들은 비싼 관리비만 내는 피해를 보고 있다는 의혹제기였다.

민원처리를 맡은 환경부 공무원은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놓고 고심하다가 생활하수과 과장과 상의했다. 과장은 환경부에서 직접 현장으로 가서 해당 단독정화조를 퍼내 입증해보라고 격려했다. 또 청소에 드는 비용은 환경부 예산으로 지불하겠으니 적극적으로 민원을 해결하라고 뒷받침했다. 골치 아플 것만 같은 고질민원은 이렇게 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9월 22일 오전 10시. 환경부 공무원과 아파트자치회 임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환경부에서 예산을 들여서라도 직접 단독정화조를 청소해 오래 된 민원의 의혹을 풀어주겠다고 말하자 자치회장은 조사를 쾌히 승낙했다. 주민들은 분뇨 차량이 들어와 작업할 수 있도록 주차장의 차를 빼주기 시작했다.

이에 앞서 환경부 공무원은 전문가들과 상의해 합동조사반을 구성해 놓았다. 합동조사반은 해당 단독정화조의 설치와 청소감독을 맡은 부천시 청소사업소 직원, 단독정화조의 설계와 성능검사를 전담하는 환경관리공단 직원, 정화조 청소업체가 설립한 (사)한국환경청화협회 서울지회장 등으로 짜였다. 환경부에서 직접 현장검증을 하겠다는 얘기에 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이번 기회에 골치 아픈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자며 적극적으로 나서주었다.

오전 10시부터 시작한 단독정화조 청소작업은 오후 6시가 돼서야 끝났다. 120세대가 거주하는 아파트라 정화조 용량이 클 것으로 예상하고 부천시에서 영업하는 정화조 청소업체 가운데 (주)강서환경을 비롯해 규모가 큰 3개 업체에 협조를 구했는데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이날 15톤급 대형 분뇨수거 차량 10대가 동원됐다.

정화조 실측용량 처음으로 주민에게 선봬

고된 작업 끝에 오후 늦게 정화조 바닥이 모습을 드러냈다. 전문가들이 지하에 매설된 정화조의 용량 측정에 나섰다. 정화조 깊이는 무려 5m나 되었다. 줄자에 돌을 매달아 깊이를 재고, 현장에서 약식으로 설계도면을 그렸다. 그리고 가로와 세로의 길이도 쟀다. 실측 결과, 길이 10m, 폭 3.7m, 깊이 5m로 총 용량이 185㎥로 확인됐다. 단독정화조 청소 수거량도 145.4톤으로 나왔다. 마침내 처음으로 객관적인 실측자료가 주민들에게 제시됐다.

결국, 민원인이 수년 간 제기한 의혹은 아파트자치회와 관련 공무원들을 신뢰하지 못한 데 따른 의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판정났다. 주민들 간에 벌어졌던 불필요한 반목도 현장에서 사라지게 됐다.

조사가 끝나자 주민들은 “오래 된 의혹이 풀려 다행”이라며 적극적으로 민원을 해결해준 데 대해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리고 “어차피 올해 정화조 청소비용으로 산정한 금액이 있으니 그만큼은 자치회에서 직접 비용을 부담하겠다”고 제안했다. 처음부터 환경부가 청소비용 전부를 부담하겠다고 밝혔는데도 사양하면서 90만원을 자치회에서 분담했다. 나머지 비용 30만원만 환경부가 지급했다. 결과적으로 환경부와 주민이 합동으로 청소비용을 분담하고 민원도 합동으로 처리한 셈이 됐다.

만약 이번에도 그냥 한 민원인의 일상적인 불평, 불만이겠거니 하고 넘어가거나 수박겉핥기식으로 정화조 겉모양만 보고 애매모호한 문구로 민원에 답했다면 주민불신은 더욱 극에 달했을 것이다.

이번 사례에서 보듯 민원문제 해결과정은 주민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는 따뜻한 행정서비스를 펼치는 것과 같다. 작고 사소한 문제라도 적극적으로, 어떤 비용을 감수하면서까지 해결하려 할 때, 국민은 행정당국을 더 가까운 동반자로 여기게 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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