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에서 방송까지 꼬박 12개월이 걸린 이 다큐멘터리는 국내외 역사전문가 40여명이 참여했는데 동북공정의 실체를 정확히 밝혀내고 바람직한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중국, 일본, 몽골, 프랑스, 독일에 이르는 해외 5개국 현지 촬영을 했다.
이 다큐는 중국의 역사왜곡 대상이 되고 있는 고조선부터 발해까지의 역사를 빠짐없이 다루고 있는데 실제로 고인돌, 동검, 무덤양식, 산성의 모양이나 벽화 등에서 그 차이점을 조목조목 비교해가며 동북공정의 실체를 화면상에서 모두 짚어낸다.
한편 자신들의 영토에서 6,7세기 터키문화유적을 인정하는 몽골인들의 경우를 살펴보고 한국과 중국, 두 나라가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하는 의미 있는 시간도 마련했다.
<동북아시아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는 총 5부작으로 <1부 동북아시아 고대 왕국의 비밀>과 <2부 살아 숨 쉬는 동북아시아의 고대 왕국>에서는 중국의 한국사 왜곡 대상인 고조선과 부여, 고구려, 발해의 흔적을 찾아서 한민족의 우수성을 재확인함과 동시에 당시 중국 고대 왕국의 문화와 직접 비교해 봄으로서 중국의 주장이 허구임을 증명한다.
<3부 고대한국사가 왜곡되고 있다>에서는 중국 땅에서 고대 한민족국가의 유적?유물들이 어떻게 왜곡되고 있는지, 또 얼마나 훼손되고 있는지 그 현장을 찾아가는 한편, 국내외 학자들이 제시하는 근거를 통해 중국의 주장이 잘못됐음을 보여준다.
<4부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에서는 중국이 고대 한국사뿐만 아니라, 한민족의 영산인 백두산과 중국 땅에서 소수민족으로 살아가고 있는 조선족들에게서 한민족과 한국을 지워가고 있는 현장을 소개한다.
그리고, <5부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공존을 위하여>에서는 몽골과 터키, 프랑스와 독일의 사례를 통해서 한국과 중국은 물론 동북아시아가 모두 함께 공존과 번영을 모색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다.
제1부 <1부 동북아시아 고대 왕국의 비밀>
지구상에 존재하는 6만여 기의 고인돌 중, 4만여 기가 요하의 동쪽, 요동지역과 한반도에 집중 분포하고 있다. 그중 요동지역과 북한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고인돌이 바로 고조선의 고인돌이다. 요동지역에 존재하는 고조선의 고인돌 중 그 원형이 가장 잘 남아있을 뿐만 아니라 뛰어난 축조기술을 보여주고 있다는 해성시 석목진의 고인돌을 찾았다.
고인돌과 함께 고조선을 대표하는 유물인 비파형 동검. 비파형 동검은 당시 고조선이 독창적인 청동기 문화를 향유하고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기원전 10세기 무렵, 동아시아에서 종족과 문화를 구별 짓는 기준이 바로 청동검이기 때문이다. 그 당시, 고조선과 중국 왕조의 동검은 그 모양이나 구조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제2부 <살아 숨 쉬는 동북아시아의 고대 왕국>
중국 길림성 집안. 그 한가운데 1500년 전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린 고대 왕국, 고구려로 들어가는 비밀의 문이 있다. 바로 ‘광개토태왕비’다.
그 4면에 새겨진 1775개의 글자 속에는 그 어느 역사서보다도 정확한 고구려의 건국 내력과 정복활동이 기록되어 있다. 5세기 무렵, 동북아시아를 제패했던 고구려! 과연, 그 막강한 힘은 어디에서 나왔던 것일까? 그 해답의 열쇠는 광개토태왕비 안에 있었다.
“추모왕이 비류곡 홀본 서쪽 산 위에 성을 쌓고 도읍을 정하였다!“ 광개토태왕비는 고구려 건국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왜 ‘산 위에 성을 쌓고’란 표현을 사용했던 것일까? 그 의미는 국명에서 찾을 수 있다. ‘고구려’의 ‘고’는 크고 높다는 의미를, ‘구려’는 성을 의미한다. 국명 자체가 ‘거대한 성’을 뜻하는 것이다. 고구려는 그 역사가 축성과 함께 시작됐다고 내세울 정도로 ‘성’을 특히, ‘산성’을 중요시했던 것이다. 현재, 중국과 한반도에 남아있는 고구려 산성은 모두 200여개. 1500년 이상 건재한 고구려 산성의 비밀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제3부 <3부 고대한국사가 왜곡되고 있다>
2004년 8월, 한국 외교부와 중국 외교부는 5개항의 구두양해에 합의했다. 그 핵심 내용은 한 가지! 중국이 정부차원의 고구려사 왜곡을 중지하고, 시정하겠다는 것이었다. 2004년, 중국 정부 직속 최대 연구기관인 중국사회과학원 산하 변강역사지리연구중심은 고대 한민족사의 주역들이 중국의 소수민족 지방정권이라는 주장을 담은 연구논문을 일부 공개했다. 이로 인해, 한국의 반중감정이 악화되자, 중국은 학술적인 연구 활동일 뿐, 정부의 공식 입장은 아니라며 구두양해에 합의했던 것이다. 그러나, 2007년 현재, 그 홈페이지는 폐쇄됐지만, 그곳에 게재됐던 논문은 물론, 더 많은 한국사 왜곡 연구 논문이 중국사회과학원 홈페이지에 게재되고 있다.
고대 한국사의 주역이자, 동북아시아의 제왕으로 군림했던 고구려가, 하 루 아침에 중국 역대 왕조의 신하국으로, 소수민족 지방정권으로 왜곡 게재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한국사 왜곡 내용이 게재된 서적이나 잡지는 중국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출판되고 있다. 이것은 이미 중국의 한국사 왜곡이 학술적 차원이 아님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은 무슨 근거로 고대 한국사를 왜곡하고 있는 것일까?
제4부 <4부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중국의 한국사 왜곡이 가속화됐던 2004년, 중국은 백두산을 ‘중화 10대 명산’으로 선정했다.
그리고, 그 동안 변방의 오지로 여겨왔던 백두산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개발하기 시작했다.
현재, 천혜 자연의 보고인 백두산 곳곳은 건설 공사가 한창이다. 더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서 눈 축제와 같은 각종 이벤트 시설물과 국제 규모의 스키장, 온천욕을 즐길 수 있는 리조트와 같은 거대 위락단지를 조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렇게 백두산을 개발하는 한편, 백두산이 중국의 관광 명소임을 전 세계에 적극 홍보하고 있다.
2006년 한해, 이곳을 찾은 관광객은 전년의 두 배인 70만 명. 관광객 수가 늘어나는 만큼 한국의 ‘백두산’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중국의 ‘장백산’이 채워가고 있다.
지난 2006년, 제6회 동계아시안게임의 성화 채화식이 거행된 곳은 바로 백두산이었다. 이것을 계기로 백두산은 아시아 40억 인구의 뇌리 속에 중국의 장백산으로 깊이 각인되었다. 뿐만 아니라, 장백산이란 이름이 붙여진 인삼과 같은 각종 중국 제품들도 백두산을 ‘차이나 브랜드’화 하는데 한 몫하고 있다. 한민족의 영산이기도 한 백두산은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장백산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오랜 세월 백두산과 장백산이란 두 개의 이름으로 불려왔던 이곳에서 백두산이란 이름과 함께 한민족의 오랜 역사와 문화가 지워지고 있다.
제5부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공존을 위하여>
바이칼 호 남부, 오르혼 강을 중심으로 펼쳐진 초원을 지배했던 유목민족들은 북방의 광활한 영토를 지배했고, 또 유라시아 대륙을 지배했다. 중국 최초의 통일제국이었던 진나라로 하여금 만리장성을 쌓게 하고, 게르만족의 대이동을 가져왔던 훈누족이 그러하고, 동서의 세계를 하나로 통합했던 몽골제국이 그러했다. 그들은 정착문명과는 다른 개방적인 사고체계를 갖고 세상의 또 다른 축을 형성해 왔다.
그 개방적인 사고체계는 현대의 몽골인들에게도 이어지고 있다. 이 도로도 그 산물중 하나다.
돌궐시대의 유적지, 허셔차이담으로 향하는 이 도로는 터키의 국제협력발전기구인 TICA가 건설한 것이다.
터키는 돌궐을 조상으로 여기고 있고 몽골 정부는 그 부분을 존중하고 있다. 오르혼 계곡 세계문화유산 등재 당시에도 돌궐시대 유적을 “6-7세기의 터키 유적”이라고 명시했다.
몽골은 현재 자신들이 점유하고 있는 영토라고 해서 그 안에서 일어난 모든 역사를 자신들의 역사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몽골의 이러한 개방적인 사고방식은 터키와 함께 돌궐 유적을 발굴하고, 연구하고, 보호하는데 밑거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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