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문화예술회관, 기획전시 ‘무_로부터’ 개최

대구--(뉴스와이어)--대구문화예술회관(관장 박명기)에서는 올 가을 특별기획 전시로 시각예술의 근원으로서 무를 생각해보는 전시『무_로부터』전을 개최한다. 이 전시는 지역의 현대미술작가들로 구성하여 지역현대미술에서 볼 수 있는 깊이 있는 탐구 경향을 ‘없음’을 주제로 다루었다.

다양한 방식으로 주제에 접근 이들은 다양한 재료와 방식으로 존재의 문제를 다루는 작가들로 때로는 작품의 표현방식으로, 재료를 통해, 주제를 통해 접근한다. 지역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이는 자연주의 구상미술의 강세 속에서 이들 작가들은 미술의 또 다른 문제를 제기하며, 작품을 통해 다양한 색깔의 풍부한 의미를 던져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어렵다고 생각하는 현대미술을 주제로 접근하여 주제와 쉽게 연관해 볼 수 있는 전시로 꾸민다. 가을을 맞은 시민들에게 일상에서 벗어나 미술작품을 통해 깊이 있는 사색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다.

<전시 개요>
·전 시 명 : 무_로부터
·기 간 : 2007. 9. 28(금)~10. 14(일) (월요일 휴관)
·장 소 : 문화예술회관 6~10 전시실
·참여작가 : 노병열, 노상동, 박종규, 서옥순, R, 임창민, 최병소
·입 장 료 : 무료
·개 막 식 : 2007. 9. 28(금) 18:00 (전시관 로비, 메세나 홀)
- 개막특별강연 : 고충환(미술평론가)
- 강의 주제 : 한국현대미술의 동향 - 신진작가들에게 나타난 경향성을 중심으로

기획의도

‘무’란 정의할 수 없는 대상이며, ‘무’를 작품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며, 언어의 한계를 힘없이 보여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가 주는 의미는 알 수 없는 혹은 해결되지 않는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며, 우리가 보는 대상들의 근원에 대한 물음이기도 하다. 근본적으로 우리는 결국은 무엇이든 알지 못하고, 이르지 못하는 운명에 있으니 말이다. 이 전시에서 보여주는 미술 행위를 통해 우리는 그 무엇도 정의하지 않으며, 단순히 대상을 쫒아가거나 분명한 목적에 이르고자 하지도 않는다. 알 수 없는 것들의 알 수 없음을 보여줄 따름이다.

무의 개념 ‘무’의 개념은 존재의 문제에서 생각할 수 있다. ‘무’는 관계의 측면에서 반대인 ‘유’를 떠올릴 때라야 그것의 의미를 볼 수 있게 된다. 유를 통해서 만이 무의 의미가 정의되고, 역시 무를 통해서 만이 유의 의미가 정의될 수 있는 관계이다. 동양 사상에서 ‘무’는 생성의 근원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는 기氣의 관계로 세계를 읽는 동양의 오랜 전통에서 유래한 것으로, 유有는 기가 응집할 때를 이르며, 기가 다시 흩어질 때 무無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때 ‘유’와 ‘무’는 서로를 원천이라 할 수 있으며, 이들은 순환하며 서로의 꼬리를 맞물고 있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무’로의 회귀 지시할 수 있는 대상으로 ‘무’를 지칭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면 이미 시각화된 대상, 이미지, 오브제 등을 통해 무를 논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기획자는 무를 이미 시각화된 모든 대상들을 가장 잘 이해하기 위한 도구라 생각한다. 예를 들어 시각예술의 오랜 전통인 이미지의 재현은 ‘있음’을 가정하는 행위이다. 이는 역으로 실질적인 ‘무’를 가리는 것이기도 하다. ‘없음’의 문제는 시각예술의 근본적이며 태생적인 연원이기도 하고, 베일 뒤에 영원히 가려진 진실과도 같다. 이 전시를 통해 시각예술의 근본적인 연원으로서의 ‘없음’의 문제를 제기해 본다. 이미 시각화된 작품을 통해 ‘없음’을 논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감추어진 ‘있음의 허구’를 까발리는 것이다. 이는 다시 그 근본으로 회귀하는 것이며 ‘무’에 대한 자각은 시작이자 귀결이 되는 셈이다.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이미지의 상태, 의미, 지각 등 작품이 지향하는 바가 무에 근원을 두고 있는 모델들을 이 전시에서 제시해 본다. 이는 재료가 될 수도 있고, 표현방법이 될 수도 있고, 주제가 될 수도 있다. 시각적으로 보이는 것, 알고 있는 것, 느끼는 것, 생각하는 것으로부터 그것의 원래의 상태를 거슬러 올라가 보는 과정에서 우리는 ‘무’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작품은 그것의 연원으로서, 혹은 지향점으로 무를 상기하게 할 뿐이며, 이들의 상태는 경계의 위치를 벗어날 수 없다. ‘무’는 존재하지 않음으로서 존재한다고 부를 수 있는 경계의 상태를 보여줄 뿐이다. 장자는 무에 대해 재미있는 역설로 정의한 바 있다. “유가 있기 전에 무가 있으며, 다시 무가 있기 전의 무가, 또 다시 무가 있기 전에 무가......”

연락처

대구문화예술회관 전시담당 정연철 053-606-6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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