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인문대학장단, ‘인문선언’ 발표
2007 인문주간을 맞이하여, 10월 8일(월) 10시 30분에 서울대학교 문화관 중강당에서 개최되는 인문주간 개막식에서 서숙 이화여대 교수(영어영문학, 전국사립인문대학장협의회 부회장)가 전국인문대학장단(전국국공립인문대학장협의회,전국사립인문대학장협의회)을 대표하여 “인문선언 - 인문정신의 부흥을 위하여”를 낭독하였다.
2007 인문주간은 한국학술진흥재단(이사장 허상만, 이하 재단)이 주최하고, 교육인적자원부(부총리 겸 장관 김신일, 이하 교육부)가 후원하여 개최되는 행사이다.
10월 8일(월)부터 14일(일)까지 7일간 전국 8개 도시의 14개 기관이 참여하여 “열림과 소통의 인문학”을 주제로, 인문학과 관련된 학술제, 명사대담, 대중강좌, 문화체험행사, 공연, 전시 등 74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이번 인문선언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인문정신의 부재를 진단하고 그 개선방향을 모색하며, 우리 인문학이 나아갈 바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하기 위해 추진되었다.
※ 작년 9월 15일에 고려대학교 문과대 교수들이 “인문학 선언”을, 9월 26일에 전국인문대학장단이 “오늘의 인문학을 위한 우리의 제언”을 선언한 바 있다.
인문선언은 인문학자로 구성된 인문선언기초위원회에서 인문선언 초안을 작성하고, 인문학 여러 분야의 학자들과 사회 각계의 자문을 받아 완성하여 전국인문대학장단 명의로 발표되었다.
재단은 향후 인문학을 지원함에 있어서 이번 인문선언에 담겨 있는 정신과 이념을 구체화하여 중장기 정책과 각 단계별 실행계획을 마련할 계획이다.
<인문선언 -인문정신의 부흥을 위하여 >
우리는 오늘날 인문정신의 부재라는 문제 상황에 직면해 있다.
나는 누구인가? 나와 세계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사물, 행위, 사태의 의미는 무엇인가? 세상을 좀 더 살 만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가치는 무엇이며,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는가? 이러한 물음은 인간 주체의 자기인식을 위해, 그리고 주체들의 만남으로 이루어지는 사회를 위해 어느 시대에나 필요하다. 인류 역사는 이 질문들에 관한 성찰을 끊임없이 쇄신하면서 삶의 의미와 가능성을 드높이고자 하는 노력에 힘입어 전진해 왔다.
이 질문들에 응답하기 위한 지적 노력이 인문적 탐구요, 그러한 탐구를 통해 함양된 앎과 능력이 인문적 교양이며, 이를 바탕으로 사물과 사태 그리고 삶의 여러 문제들을 투시하고 새로운 해결을 모색하는 능력이 인문적 상상력이다. 인문정신은 인문적 탐구와 교양 및 상상력의 실천을 통해 자신과 세계를 더 깊이 이해하고 삶의 가치, 의미와 아름다움을 드높여 나아가는 정신이다. 인문정신은 각성된 의식 위에서 삶을 영위하는 인간 존재 모두에게 요구된다.
인문정신의 쇠퇴라는 문제 상황은 근대 문명이 그 상승기의 시민적 이상과 진취성을 잃어버리고 물신주의의 격랑 속에서 부침을 거듭해 온 데에 문명사적 원인이 있다. 19세기 말 이후 점철된 세계사적 전란의 참화, 착취·억압과 약육강식으로 얼룩진 사회체제와 국제관계 등을 목격하면서 사람들은 과연 인류에게 미래가 있는가를 회의했고, 삶과 문명의 가치를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한국사회에서는 물량적 성장 위주의 산업화와 신자유주의적 경쟁논리가 인문정신 쇠퇴의 직접적 요인이라고 우리는 진단한다. 세계 경쟁 체제에 부응한 경제적 효율성을 최고의 지위에 놓고 여타의 인간적 가치와 의미를 외면하는 상황 속에서 인문정신은 무의미하거나 어리석은 백일몽으로 간주되고 있다. 1960년대 이래의 ‘잘 살아 보세’라는 집단적 명제와 근래의 ‘삶의 질’ 추구 사이에 물질적 소유의 확대와 질적 향상이라는 차이는 있어도,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드높이는 일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희박하다는 점을 뼈아프게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같은 문제 상황이 지속될 경우, 그 결과는 개인과 사회 모두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재난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각기 다른 개성과 역할의 어울림 속에서 서로를 긍정하고 풍요로울 수 있게 하는 가치의 다양성이 실종되고, 사람들의 내면세계는 황폐해진다. 인문적 가치가 무너진 세계에서는 성별, 계층, 지위, 빈부, 연령의 구별과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타자와의 무한경쟁 속에서 불안과 고통을 면하지 못하고, 특히 사회적 약자의 고통은 더욱 커질 것이다. 상상력과 창조성은 고갈되고, 공동체는 붕괴되며, 사회는 파편적 분열에 처하게 될 것이다. 그러할 때 성장과 풍요를 지상명제로 삼던 사회의 자기파멸적 추락이 불가피하다.
인문정신은 눈앞의 실용성에 둔감하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긴 안목으로 보면 인문정신이야말로 사람과 사람, 사람과 세계의 관계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우리의 삶에 풍요로운 결실을 가져다준다. 그것은 때때로 세상과의 불화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며, 먼 길을 돌아 세상과 화해하기도 한다. 인문정신은 타자와의 건전한 유대 속에서 공동의 선과 가치를 추구하는 인간, 보이는 것의 한계를 넘어 미래를 상상하고 설계하는 능력, 물질적 소유의 구속을 넘어 삶의 의미와 아름다움이 중시되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근원적 동력이다. 다양하고 풍부한 인문적 가치가 존중될 때 그 사회의 창조성과 생명력 또한 증진된다.
인문정신의 회복을 위해서는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중에서도 우선 인문학의 자성과 쇄신이 중요하다. 우리의 인문학은 과연 오늘의 문명사적 상황과 시대 현실을 깊이 있게 투시하고 있는가. 전통과 미래의 접점에서 스스로를 성찰하고 새로운 인문정신의 지표를 추구하는 데 충실한가. 이러한 성찰적 질문과 그에 대응한 능동적 변화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아울러, 미래 사회를 책임질 세대에게 든든한 인문정신의 바탕을 제공하는 학교교육과 기성세대를 위한 평생교육이 내용과 제도의 양면에서 재정비되어야 할 것이다.
사회적 차원에서는 우리가 지향하는 국가 목표 및 전망의 설정에서 인문적 가치와 실용적 가치를 상보적으로 파악하는 관점이 확립될 필요가 있다. 국가든 기업이든 그 구성원이 자각적 의식과 창의성을 지닌 실천의 주체로서 공통의 목표에 참여할 때 더욱 큰 힘을 발휘하게 된다는 것은 인류의 역사가 준 가장 큰 가르침이다. 이를 위해 인문적 가치와 역량을 증진하는 설계는 국가적 장래를 위한 정책으로 제도화되어야 한다.
문명의 횃불을 밝히는 동력으로서 과학기술과 산업이 중요한 것처럼, 그 불빛을 치켜들고 사람다운 삶의 길을 넓혀 가는 지혜와 통찰력 또한 소중하다. 오늘의 시대 상황은 그 길을 향한 인문정신의 부흥을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요구하고 있다. 이를 위한 각성과 실천은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우리 모두의 과제임을 천명한다.
2007년 10월 8일 전국인문대학장단
한국연구재단 개요
한국연구재단은 연구활동 지원, 인력 양성, 연구인프라 구축을 통하여 국가 경쟁력 강화에 기여할 목적으로 설립된 정부 출연 학술연구지원기관이다. 국내 유일의 기초학문 육성ㆍ지원기관으로, 전 학문 분야의 균형 있는 학술활동을 지원한다.
웹사이트: http://www.nrf.go.kr
연락처
한국학술진흥재단 인문학지원팀장 윤언균, 담당자 백민정 Tel. 02-3460-5573
자료 제공 : 한국학술진흥재단 경영혁신단 정책홍보팀 Tel. 02-3460-5732, http://www.krf.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