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창건 당시 광화문지 기초 및 축조 기법 확인

대전--(뉴스와이어)--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김봉건)는 「경복궁 광화문지 및 월대 지역」에 대한 발굴조사를 실시하고, 원광화문의 정확한 위치와 규모를 밝힌 데 이어 조선시대 궁성문(宮城門)으로서는 최초로 광화문의 기초부 축조기술을 확인하였다. 또한 확인된 고종연간(고종 2년, 1865)의 광화문지 아래에 임진왜란으로 소실되기 이전, 경복궁 창건 당시(태조 4년, 1395) 광화문지의 기초도 일부 확인하였다.

최종적으로 확인된 광화문의 규모는 34.8m(동서길이) × 14.5m(남북최대잔존길이)로, 광화문의 기초는 뻘층에 지정말목을 박아 지반을 다지고 그 상면에 잡석과 흙을 마치 시루떡을 쌓듯 여러 차례 번갈아가며 판축하여 축조하였다.

지정말목(80~140cm, 두께 10cm 내외)은 30~50cm 내외의 일정한 간격으로 박아 지반의 침하를 방지하였다. 그리고 그 상면에 태조연간 유구와 고종연간 유구가 중첩되어 확인되었는데, 우선 태조연간의 광화문은 ‘U’자형으로 넓게 터파기하여 황색점토와 잡석(20×30×15cm)이 포함된 고동색 사질토를 6단으로 켜켜이 쌓았다. 그 상면에 고종연간의 광화문을 육축이 올라가는 부분에는 큰 방형(60×60×40cm) 혹은 장방형(140×50×30cm)의 석재를 2~3단으로, 그 사이 통로 부분은 흑색 사질토와 할석(잡석)을 번갈아 3~4단으로 판축하여 증축하였다. 즉, 지정 말목층의 깊이는 1.6m, 광화문 기초판축부의 깊이는 태조연간 1.3m, 그리고 그 상면에 고종연간 광화문 기초 0.7m를 추가로 덧댄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번 발굴조사를 통하여 그동안 제자리를 찾지 못했던 광화문의 제 위치와 정확한 규모를 파악하였으며, 아울러 조선시대 당시 현대 기술에 버금가는 궁성문의 정교한 축조기법이 확인되어 조선시대 궁궐 건축의 우수성을 입증하였다. 또한 태조연간의 광화문의 존재도 확인되어, 창건 당시 경복궁의 규모를 밝히는 중요한 단서를 확보하였다. 향후 광화문과 월대, 궁장은 이러한 발굴조사 결과를 토대로 복원·정비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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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문화재연구소 유적조사연구실 02-720-70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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