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삼천사지 탑비구역, 귀한 10~13세기 유물 다량 출토 500여점 공개

서울--(뉴스와이어)--서울역사박물관(관장 김우림)은 2005년 9월부터 현재까지 발굴조사중인 북한산 삼천사지 탑비구역 발굴조사 성과를 공개하는 자문위원회를 2007년 11월 6일(화) 오전 10시에 교육실(2층)에서 개최한다.

삼천사지(三川寺址)는 원효대사가 창건한 이후 존속되다가 임란이후 폐사되었다고 전해지나 이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없으며, <고려사>, <동국여지승람>, <북한지> 등에 극히 단편적인 기록이 남아있을 뿐이다.

이번 조사의 중요한 성과로는 기록이 부족하여 실체를 알 수 없었던 북한산삼천사지 및 고려전기 법상종 승려인 대지국사(大智國師) 법경(法鏡)의 행적을 살펴볼 수 있는 250여 점의 명문비편(銘文碑片)을 비롯하여 탑비전(塔碑殿)으로 추정되는 고려전기 건물지 등을 새로 확인하였다는 점, 그리고 청동사리합(靑銅舍利盒), ‘가순궁주’명금니목가구편(‘嘉順宮主’銘金泥木家具片), 은제투각칠보문장식(銀製透刻七寶文裝飾), 철제공구류(鐵製工具類), 고려석조보살두(高麗石造菩薩頭) 등 고려시대 전ㆍ중기에 해당하는 희귀한 유물들이 다수 출토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탑비전지(塔碑殿址)

건물지의 주향은 북동-남서방향이다. 대규모 산사태로 인한 지형변동과 토압, 토사로 인해 탑비전지(塔碑殿址)의 상당부분이 무너져 내렸고 일부에는 후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민묘가 자리하고 있어 건물지의 구체적인 규모를 단언하기는 힘들지만 대칭적인 구조를 감안하면 탑비전지(塔碑殿址)의 경우 정면 3칸(210×340×210㎝), 측면 1칸(340㎝)정도의 규모로 추정된다. 치석된 원형주초에 고맥이석을 사용한 고려전기의 전형적인 양식을 갖춘 구조로 건물 정면과 측면에 각주를 사용하여 1칸씩 외여닫이문을 달았다. 원주 법천사지 탑비전의 배치방식과 같이 탑비를 가운데 놓고 건물을 ‘⊓’형으로 배치하였다. 고려시대 와편과 막새류가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햇무리굽 청자편, 상감청자, 청자용문호, 청동대발, 철제발 등의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고려석조보살두(高麗石造菩薩頭)

높이 3.7cm의 소형이나 아직까지 출토된 바 없는 특이한 도상으로 주목받고 있다. 보통 오불(五佛)이나 칠불(七佛)을 표현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반하여 이번에 출토된 보살두(菩薩頭)는 삼불보관(三佛寶冠)을 갖추고 있어 불교미술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입술부분과 화불의 일부분에 채색[赤色]하였던 흔적이 보이며, 머리부분에도 검은색으로 채색한 흔적을 살펴 볼 수 있다.

대지국사명문비편(大智國師銘文碑片)

대지국사(大智國師) 법경(法鏡)은 고려 현종대(1009~1031) 현화사(玄化寺)의 창건과 함께 고려 전반기 법상종파의 화려한 등장을 주도하였던 인물이나 그의 생애와 활동을 입증해줄 유일한 자료인 비문이 일찍이 파손되어 당당한 귀부와 이수가 현존함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미술사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소홀히 취급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조사로 총 255점(630여 자 확인 가능)의 명문비편이 출토되어 고려전기 불교사 연구에 활력을 불어 넣고 있다. 이번 발굴조사로 몇몇 문헌에 대지국사비문의 찬자(撰者)로 알려진 이영간(李齡幹)을 비문에서 확인할 수 있었으며, 대지국사 법경의 출신지와 나이 등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그의 행적을 찾아볼 수 있었다. 수습된 비편에 의하면 법경은 적현(赤縣) 출신으로 승랍(僧臘) 85세에 세속(世俗) 92세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청동사리합(靑銅舍利盒)

지름 8.9cm, 높이 8.3cm. 뚜껑의 윗면에 2조의 원형 음각선을 2.1cm간격으로 2줄 장식하였고, 뚜껑과 몸통 옆면에도 약 0.1cm정도의 촘촘한 간격으로 음각장식을 하였다. 몸통의 옆면에는 섬유와 종이가 일부 겹쳐진 채로 남아있다. 바닥면에도 2조의 음각선을 1.7cm간격으로 2줄 장식하였다. 사리합의 양식 및 연대로 보아 대지국사법경과 연관되는 유물로 추정된다.

‘가순궁주’명금니목가구편(‘嘉順宮主’銘金泥木家具片)

목가구편의 일부분으로 추정되며 목심은 부식되어 남아있지 않고 목가구 겉면 칠기막에 금니(金泥)로 “嘉順宮主王氏 我嘉耦新安公 ○○世時○○”라는 문구가 남아 있다. <高麗史>에 가순궁주(嘉順宮主)는 고려 21대 희종의 4째 딸로서 신안공(新安公) 왕전(王佺, ?~1261)과 혼인하였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이 금니가구편의 연대는 적어도 13세기경에 해당됨을 알 수 있으며, 고려시대 목칠공예 편년 및 기법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다양한 문양의 금동목가구장식(金銅木家具裝飾)이 여러 점 출토되어 고려중기 목가구 및 문양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웹사이트: http://www.museum.seou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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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사박물관 조사연구과장 사종민 02-724-01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