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창건 당시 광화문 모습 밝혀져

대전--(뉴스와이어)--문화재청(청장 유홍준)은 「경복궁 광화문지 및 월대 지역」추가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이미 확인된 고종(高宗)연간 광화문지 아래에 경복궁 창건 당시인 태조(太祖)연간 광화문지(光化門址)가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음을 확인하였다.

창건 당시 광화문지는 고종연간 광화문지(상면 기준) 70cm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임진왜란에 의해 소실된 창건 당시 광화문은 고종 2년(1865년)에 재건되며, 창건 당시 기초 위에 추가로 석재를 쌓아 축조되었다.

조사결과, 창건 당시와 고종연간 광화문의 위치와 좌향(坐向)은 일치하나, 전체 규모와 통로 크기·문의 설치 위치 등은 다른 것으로 밝혀졌다.

창건 당시 광화문 육축(陸築)은 동서 27m × 남북 잔존길이 9.6m로 고종연간 (동서 31m×남북 잔존길이 11.5m)에 비해 규모가 작았으며, 고종연간 광화문이 재건되면서 처음의 기초에 석재가 덧대어져 좌우 2.2m, 북편 1.5m(추정) 가량 확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통로 폭은 고종연간과 같이 중앙문이 넓고 동서문이 좁으나, 고종연간에 비해 중앙문은 약 15cm 적고, 동서문은 약 20~30cm 큰 것으로 확인되었다.

또한 창건 당시 문설주를 설치하였던 방형 석재(120×125×70cm)가 각 통로마다 확인되었으며, 문 위치는 고종연간의 남편 입구 쪽(남편에서 약 1.2m 지점)이 아닌 통로의 가운데(남편에서 4.8m 지점)이었음을 알 수 있다.

발굴위치에는 문화재청「경복궁 복원 20개년 계획(’90~’09)」에 따라 고종연간 모습의 광화문이 복원될 예정이다.

광화문 복원을 위한 기초구조 안전성 연구 결과 복원위치 주변에 지하철이 설치되면서 토층이 교란되었고, 지하수위가 변동되는 등 하부지반이 변화하였으며, 현 지반 그대로 복원 시 부등침하 등 안전문제 우려되어 기초보강이 필요한 것으로 드러났다.

문화재청은 발굴조사 결과를 3D 실측한 후 보관 중에 있다. 발견된 태조대 유구와 해체 보관중인 고종대 유구는 문화재·현대건축·기초구조 등 분야별 전문가의 검토를 거쳐 제3의 장소에 이전하여 전시하는 방안, 현 위치를 유지하면서 기초보강 하는 방안, 강도가 약한 일부 부재를 덜어내고 나머지 부재를 활용하는 방안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 후 결정할 예정이다.

문화재청 개요
우리나라의 문화적 정체성을 지키고 대한민국 발전의 밑거름이 되어 온 문화재 체계, 시대 흐름에 맞춰 새롭게 제정된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60년간 지속된 문화재 체계가 국가유산 체계로 변화한다. 과거로부터 내려온 고정된 가치가 아닌 현재를 사는 국민의 참여로 새로운 미래가치를 만드는 ‘국가유산’. 국가유산청(구 문화재청)은 국민과 함께 누리는 미래가치를 위해 기대할 수 있는 미래를 향해 새로운 가치를 더하고 국민과 공감하고 공존하기 위해 사회적 가치를 지키며 과거와 현재, 국내와 해외의 경계를 넘어 다양성의 가치를 나눌 것이다.

웹사이트: http://www.cha.go.kr/

연락처

문화재청 홍보담당관실 042-481-4670

국내 최대 배포망으로 소식을 널리 알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