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문학신문 2008 신춘문예 시조 부문 당선작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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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문학신문사
2008-01-04 15:35
서울--(뉴스와이어)--창조문학신문사(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동)는 2007년 12월 31일 24시까지 신춘문예 시조 부문 응모 작품을 접수하고, 창조문학신문 2008 신춘문예 시조 부문 당선작과 심사평 등을 발표하였다.

♣ 창조문학신문 2008 신춘문예 시조 부문 당선작 발표

시조 부문에서 응모작은 많았지만 작품의 내용과 질에 있어서는 많은 수확을 거두지 못했다. 유독 한 작품, 양태지의 시조 ‘암자에서(향일암)’만 최종심에 올라와 당선되었다. 양태지의 시조 ‘향일암’과 심사평은 다음과 같다.

♣ 향일암(向日庵) / 양태지(서울시 영등포구)

신선이 머물던 자리 알 순 없지만
사바의 노여움은 저만큼 달아나네
하늘로 뻗쳐오르는 저 바다의 용솟음

일만의 햇살들이 번뇌를 잠재우랴
구름은 암석불 사이에 모로 눕고
옷자락 저미며 나는 바람도 쉬어간다

오가는 사람마다 머뭇대는 바윗틈
님 향한 버거운 길 오롯이 떨치고서
보살은 속세를 나선 듯 염화시 합장하네

은은한 풍경소리 태고 적 그대론데
남해라, 돌산에는 갓 향기 매섭고요
해조음 드믄 암자에 독경만이 흘러라.

※향일암 : 해를 향한 암자란 뜻, 여수 소재. 바다의 일출이 아름답기로 유명함.

♣ 신춘문예 시조 부문 심사평 : 박인과 문학평론가

기호학적으로 우선 접근해 보면 ‘8’자를 90°로 회전시키거나 혹은 역회전시키면 ∞(무한대)가 된다. 또한 ‘8’자 앞의 ‘0’자 두 개를 합하면 역시 ∞(무한대)가 된다. 이렇게 ‘8’자(팔자)를 눕게 하면 완전히 안정된 상태가 된다. 그렇지 않고 ‘8’자를 세워놓으면 언젠가 기울어질 것 같은 불안정한 상태에서 머물게 된다. ‘0’자도 세워놓으면 불안정해 보인다(즉 해가 서서 떠오르게 되면 불안정하게 보이는 것과 같다).

그런데 그 앞에 2(×)가 있다. 그래서 이를 모두 복원시키면 2×∞×∞가 되어 2∞∞가 되어 이는 역시 2∞와 같다. 이것이 2008년의 의미이다. 기호 ‘0’는 해를 의미한다. 또한 이 ‘0’는 완전을 의미한다. 모든 것을 비우고 난 뒤에 완전함에 이른다(2007년을 완전히 비우고 난 뒤에야 2008년이 온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다 비우고 난 뒤에야 완전한 ‘0’가 되어 둘레에 울타리가 생기기 때문이다. '0' 외의 다른 숫자는 둘레(=울타리)가 없다.

뜬금없이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양태지의 작품이 해와 관계되어 있기 때문에 해의 문을 열어 분석하기 위한 것이다. 향일암(向日庵)의 뜻 속에서 해를 향해 문을 열고 있는 장소를 찾을 수 있음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해를 향해 있다는 것’, 이것은 인간 누구나에게 마음 속 깊이 내재해 있는 존재의 바다 깊숙이 가라앉아 꿈틀거리고 있는 욕망의 해, 그 해의 뿌리를 향해서 해의 외출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새해에는 웅장한 일출의 광경을 보기 위해 여수의 돌산도 향일암(向日庵)을 찾는다.

바닷속에서 괴성을 지르며 튀어나온 듯한 다양한 형상의 바위들이 거북이처럼 포복하고 있거나, 태양을 향해 올라가고 있는 이 돌산도는 바다의 뿌리까지 그 몸체를 심고 있다. 즉 돌산도는 굴지성과 굴광성의 방향으로 바닷속에 있는 해를 낚아 올리기도 하고 바다를 탈출하여 하늘로 오르는 해를 연모의 시선으로 채집하기도 한다. 푸른 바다 위에 떠있는 돌산도를 바라보면 바다의 심장이 돌출된 것처럼 보인다. 그만큼 돌산도의 서정은 생명력이 있다. 피끓는 풍경으로 승천하는 해처럼 맑고 찬란한 박진감도 있다.

이 돌산도의 진실을 꿰고 있는 양태지의 시작법은 더 웅장하다. 용(龍)의 심장 박동처럼 힘이 있다. 용솟음치고 있다. 그는 시 속에서 해를 패대기쳐 버린다. 이때 ‘일만의 햇살’들이 무수히 터져나온다. 이것은 무한대의 빛이다. 무한의 햇살이다. 그러니 ‘사바의 노여움, 번뇌’가 뼈빠지게 줄행랑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해는 시간을 의미한다. 해는 365일의 시간 덩어리이다. 2008년의 해도 시간 덩어리이다. 그 무한대의 시간의 보자기, ‘0’가 한 명도 아닌 한 년도 아닌 2008년의 해를 양태지가 패대기치는 시힘에 의해서 그 견고한 시간의 껍질을 터트리고 ‘일만 햇살’, 즉 일만(무한대) 시간으로 터져나는 것이다. 그래서 2007년 동안 오지 않았던 2008년의 햇살이 온 누리에 퍼져 오르게 된 것이다.

일만 햇살의 장엄함 때문에 다가온 구름도 ‘암석불 사이에 모로 눕’는 것이다. 이 모로 눕는 것, 이것은 팔자(‘8’자)가 옆으로 눕는 것이다. 즉 ‘8’자를 90°로 회전시키는 것이다. 이 시각대의 모든 것이, 사 바세계의 자연이 모로 눕는 것이다.

이 태양의 외출 전에 이미 양태지는 ‘하늘로 뻗쳐오르는 저 바다의 용솟음’으로 우리 희망의 존재처럼 상징되는 바다의 골반을 갈라놓았다. 그런 다음에 대우주의 자궁, 그 무한대의 자궁을 열어 청명한 해를 발출시켰다. 그러고 난 다음에 출산한 아이의 볼기를 쳐 내리듯 그 년의 동그란 엉덩이를, 2008년(女ㄴ)의 해의 엉덩이를 여지없이 패대기쳐 버린 것이다.

‘하늘로 뻗쳐오르는 저 바다의 용솟음’의 상태 전에는 뻗쳐오르고 용솟음치게 하는 행위가 전제되어 있음을 내포하고 있다. 하늘로 뻗쳐오르고 용솟음치는 힘은 어마어마한 것이다.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폭탄의 폭발력으로 간주될 수 있는 것인데 그 힘의 분산이 있기에는 더 큰 핵폭탄의 폭발력과도 같은 힘의 뭉텅이가 바다에 가해졌을 경우가 전제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이 시를 창작한 사람만이 아는 것이다. 바다는 가만히 있고 태양도 가만히 있는데 작자가 심상 속에서 그렇게 활유법의 시힘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태양은 지구보다도 큰데 어떻게 지구의 일부분인 바다에서 태양이 나온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바다는 가만히 있는데 어떻게 용솟음친다고 할 수 있는가. 그것이 시의 힘이다. 양태지가 이끌고 있는 시어들의 폭발력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시힘이 무엇인들 패대기치지 못할 것이 있겠는가.

양태지가 지니고 있는 그 시의 힘이 태양의 배를 갈라놓아 지금 막 ‘일만 햇살’의 시간들이 광란을 하고 있다. 그래서 ‘번뇌도 잠재우고’, ‘구름도 모로 눕고’, ‘바람도 쉬어’가는 등의 상황들이 오버랩 되며 자연의 힘 앞에서 만물이 경외심으로 숨죽이고 있는 향일암의 역사를 시화한다.

그리고 이젠 시간의 흐름에 따라 3째수와 4째수에서는 일상의 평온함이 깃들고 있다. 이 시의 4연이 모두 기승전결의 형식으로 평화로운 암자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 시는 시조의 기승전결의 형식을 무리 없이 따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거꾸로 이 시의 연을 배치한다고 해도 기승전결의 형식이 이루어지게 되어있다.

그래서 이 시조의 각 수를 거꾸로 배열하면 저녁부터 일출시까지의 광경을 묘사했다고 볼 수 있고, 이 시의 각 연을 지금처럼 배열하면 일출시부터 저녁까지의 남해바다의 아름다운 풍경을 화폭에 옮겨놓았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양태지가 그리고 있는 희망의 시간대는 무한의 시간의 집합체로서 기호로 표시하면 ‘0’이라 할 수 있다. ‘0’은 먼 바다의 시간의 수평선에서 떠오르는 해시계이며, 향일암의 이름에도 들어있는 이 해시계가 양태지의 이름에도 들어있어서 그의 시는 해의 몸통을 품은 막강한 파워를 자랑하고 있다.

첫수 마지막 잣수 3(용솟음), 둘째 수 마지막 잣수 4(쉬어간다), 셋째 수 마지막 잣수 4(합장하네), 넷째 수 마지막 잣수 3(흘러라) 등에서 잣수의 3/4/4/3의 변화에서 시의 꼬리를 풀고 매듭짓는 창작법을 볼 수 있다. 잣수 3에서 매듭짓고 다시 잣수 4에서 풀고 다시 3으로 매듭짓는 것이다. 물론, 이 변화의 묘미를 벗어나서 각 종장 끝을 잣수 3으로 통일하고 의미와 이미지의 신축성에서 파격적인 변화의 내밀함을 시도했다면 더욱 금상첨화일 것은 두말 할 것도 없을 것이다. 시조 문학은 극도로 제한된 절제의 미학을 품고 있다. 정해진 잣수에 따라 극도로 절제된 창작만이 민족성과 문학의 효용성이 마주칠 때 그 시조의 기대치를 극대화 할 수 있다.

양태지가 풀어놓은 이 시조의 배열대로 분석한다면 시조의 끝부분 종장의 처리들은 장엄하고 고요한 평화의 꿈으로 향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시조의 종장들의 첫수에서 ‘저 바다의 용솟음’, 둘째 수에서 ‘바람도 쉬어간다’, 셋째 수에서 ‘염화시 합장하네’, 넷째 수에서 ‘독경만이 흘러라.’ 등인데 첫 번째 수에서 치솟아 오르는 힘의 분출을 표현하고, 두 번째 수에서 힘의 분산을 안정적으로 다스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세 번째 수에서 합장까지 하면서 시간의 요동을 접는다. 이제 네 번째 수에서는 그저 그대로 두어도 될 만큼 안정권으로 진입하여 그대로 두기로 한다. 그래서 마지막 시어 ‘독경만이 흘러라.’도 방임의 자세를 취한다. 이제 이 시조의 임무를 마쳤으므로 마지막 수의 마지막 종장에 와서야 마침표를 기입한다.

그 마침표 또한 해의 알로써 시간의 중지를 뜻하는 것이며 이 시간의 중지는 완전무결한 완전의 상태, 정적의 상태로서 완전한 평화의 상태임을 말한다. 점(마침표)은 한 문장의 완성을 뜻하며 또한 한 문장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이다. 이 해의 알은 시간의 바다에서 알까기를 하며 튀어오를 준비를 하며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물론 출중한 시인이 다음에 또 나타나서 향일암(向日庵)의 의미대로 해를 연모하며 용솟음치는 시어의 폭발력으로 대우주 출산의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함은 두 말 할 것도 없다.

우리에게서 시조가 죽었다고 극언을 하는 사람도 있다. 또한 시조는 시가 아니라고 망언을 하는 사람도 간혹 있다. 시조문학이 홀대받는 이 어려운 시기에 이만큼의 시조를 쓸 수 있는 사람도 흔하지는 않다. 시조로 등단하는 사람들이 어찌된 영문인지 시조를 잘 알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특히, 문예지로 등단하는 작품 속에서 그런 슬픔을 보았다.

양태지는 시조를 알고 있다. 시조의 율격도 알고 있다. 시의 힘을 어떻게 매듭짓고 풀고 품어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그것을 대자연에 얼마나 매치(match)시켜서 응축되고 풀어지는 우주의 음향을 튼튼하게 엮어갈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앞으로 그의 성공의 열쇠가 될 것이다.

창조문학신문사 개요
창조문학신문사는 한민족의 문화예술을 계승하여 발전시키고 역량 있는 문인들을 배출하며 시조의 세계화를 지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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