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수원 직물공장서 출발해 세계를 품었다
SK는 “한 기업이 반세기를 넘어 존속할 수 있었던 것은 모든 SK 고객과 주주의 믿음과 사랑, SK 구성원의 신뢰와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면서 “앞으로 새로운 100년을 향해 보다 참된 행복을 만들고 나누는 SK로 진화해 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마차로 자갈을 날라 세워진 SK
SK그룹은 8일 창립 55주년을 맞는다. SK의 55년사는 '맨손과 열정만으로 성공의 신화를 창조해 낸 기적의 역사'라고 일컬어진다.
SK그룹은 창업주인 최종건 회장이 1953년 4월8일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되다시피 한 수원시 권선구 평동 4번지를 매입해 선경직물을 세우면서 시작됐다. 최종건 회장은 당시 선경직물 종업원들과 자신의 마차를 이용해 5㎞ 떨어진 광교천에서 돌과 자갈을 날라 공장을 설립했다.
최종건 회장이 이끌던 SK는 1962년 11월 10여 년간의 유학생활을 마친 최종현 회장이 선경직물 부사장으로 취임하면서 패기(최종건)와 지성(최종현)의 쌍두마차 체제를 갖추게 된다. 손길승 회장은 1965년 12월 SK에 먼저 입사한 대학동기 이순석 사장의 권유를 받고 최초의 대졸 신입사원으로 SK에 합류한다.
SK의 인적 구성이 탄탄해지면서 회사의 성과는 비약적인 성장을 할 준비를 갖추게 된다. 1962년 섬유업계 최초로 4만6000달러 규모의 인조견을 홍콩에 수출한 데 이어 1968년에는 아세테이트 공장을 준공했고, 1969년 2월10일에는 폴리에스터 공장을 완공했다. 아세테이트와 폴리에스터의 생산으로 SK는 명실상부한 섬유기업집단으로 도약하게 되는 것이다.
수직계열화 완성과 정보통신 진출로 두 번의 도약
최종현 회장은 1974년 석유파동을 겪으며 두 가지 목표를 정했다. 하나는 석유로부터 섬유에 이르는 산업의 수직계열화를 확립시키는 것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국제적 기업으로서 손색 없는 경영능력을 배양시키는 것이었다.
최종현 회장은 수직계열화를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1973년 선경석유를 설립하고 석유사업을 본격적으로 준비하는 과정에서 1980년 대한석유공사의 민영화 문제가 제기되자 이를 인수해 그룹의 오랜 숙원이었던 ‘석유에서 섬유까지’라는 수직계열화를 완성했다. 이로써 SK는 그룹의 하드웨어를 1차로 완성했다.
최종현 회장은 1980년 초반 SK의 다음 장기 경영목표를 정보통신사업으로 정하고 1984년 미주 경영기획실을 설립, 준비한 뒤 1992년 제2이동통신 사업권을 얻어 최종 허가대상으로 선정됐다. 그러나 일부에서 부정적인 여론이 일자 사업권을 과감히 반납하고 1993년 민영화 대상이었던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을 4,271억 원이라는 막대한 인수 자금을 들여 인수했다. 10년에 걸친 SK그룹의 2차 하드웨어가 완성되는 순간이다.
한국기업 중 유일한 경영체계 구축…미래를 위한 시스템경영
최종현 회장은 그룹의 하드웨어 못지 않게 소프트웨어 구축에도 관심을 쏟았다. 1970년대 중반부터 한국인의 체형에 맞는 한국적인 경영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것이다. 결국 SK는 1979년 SKMS(선경경영관리체계)를 완성했다. SKMS의 핵심은 '사람을 활용하는 문제'에 관한 것이다. SK의 향후 경쟁력은 마케팅, 재무, R&D와 같은 것이 아니라, 인재를 어떻게 육성하고, 이런 인재들을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SK는 세계적인 일류기업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다른 기업들 수준으로 해서는 추월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최고 수준 이상’의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SK가 설정한 목표는 인간의 능력으로 해낼 수 있는 ‘최상의 수준(Super Excellent 수준)’이며 선진기업의 목표보다 한 단계 높은 수준의 목표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SKMS 정립 및 SUPEX 추구법 도입은 SK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우량기업으로 도약하는 데 결정적인 초석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무자원 산유국 실현과 수출기업으로 변신
1970년대 석유파동을 겪어봤던 최종현 회장은 자체적으로 자원을 확보하지 않으면 국가 차원의 문제로 확대될 수 있다는 ‘에너지 안보’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이후 최종현 회장은 1982년 ‘자원기획실’을 설치하고 무자원 산유국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석유개발에 나선다.
무자원 산유국의 꿈은 최태원 회장에 이르러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 현재 SK그룹은 전 세계 16개국, 29개 광구에서 석유 탐사 및 개발과 생산을 진행하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가 250일 동안 사용할 수 있는 분량인 5억1000만 배럴의 지분원유 매장량을 확보했다.
SK그룹은 국가경제에 기여하기 위해 창립 이후부터 수출기업으로 변신을 시도했다. 1962년 섬유업계 최초로 4만6000 달러 규모의 인조견을 홍콩에 수출하면서 섬유수출시대를 연 SK그룹은 1976년 수출 1억 달러를 돌파한 데 이어 2004년 100억 달러, 2005년 200억 달러, 2006년 250억 달러, 2007년 270억 달러를 기록하는 등 수출 기업으로 급성장했다.
지주회사 전환 통한 제3의 창업
최태원 회장은 지난해 7월 SK그룹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다. 최종건 회장이 1953년 직기 15대로 선경직물을 창업한 것이 ‘제1의 창업’이고, 최종현 회장이 1975년 수직계열화 선언이 ‘제2의 창업’이라면 최태원 회장의 지주회사 전환은 ‘제3의 창업’에 해당된다.
특히 최태원 회장은 지주회사 전환을 통해 지난 2004년 약속했던 재무구조 개선, 사업구조 개선, 지배구조 개선 등 3대 구조개선 약속을 모두 지키게 됐다. 전 계열사 흑자전환을 통해 재무구조를 개선했고, 내수위주의 사업구조를 수출주도형의 사업구조로 바꿨으며, 지주회사 전환을 통해 지배구조도 업그레이드했기 때문이다.
‘글로벌 SK’로 새로운 50년 연다
최태원 회장은 향후 수년이 SK의 글로벌 경영의 성과를 결정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시장에서의 생존조건은 확보했다고는 하지만 산유국과 기존 글로벌 메이저, 그리고 대규모 소비국 중심으로 글로벌 시장체제가 고착돼 가고 있는 상황에서 SK가 글로벌 메이저로 성장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최태원 회장은 “SK에 있어 ‘변화’는 선택이 아닌 생존과 성장 조건이며, 특히 속도 있는 변화가 중요하다”면서 “기업경영에 있어 변화는 선택이 아니며, 나아가 세상의 변화 속도보다 우리의 변화 속도가 떨어진다면 우리는 낙오자가 될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SK그룹은 올해부터 시작되는 3차 TO-BE 모델(2008~2010년)을 ‘지속적인 행복 창출 기반 마련’으로 정했다. ‘행복(성장)을 ‘지속적’으로 창출할 뿐 아니라 ‘글로벌’로도 확대하겠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 SK그룹 관계자는 "환율과 유가 등 기업 경영의 불확실성이 지속되고 있지만 올해부터 3차 TO-BE 모델을 시작하는 중요한 해인 만큼 중장기적인 발전의 토대를 만들어 나갈 계획”이라면서 “지난해 연말 도입한 사내 독립기업제(CIC)도 글로벌 경영을 가속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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