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과 e지원

서울--(뉴스와이어)--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는 노무현 대통령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컴퓨터 전원을 켜는 것이다. 대통령의 최신형 모니터 초기 화면에는 청와대 본관 그림을 배경으로 ‘e지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하는 인사말이 뜬다.

노 대통령은 빠른 솜씨로 자판을 두들겨 로그인 한 뒤 하루 일정부터 점검한다. 회의와 접견, 행사 등이 시간대 별로 정리되어 있는 ‘일정’ 난에서 눈에 띄는 것은 행사에 필요한 ‘말씀 자료’나 구상이 첨부된 파일이다. 이 파일이 처음 생성되는 곳은 ‘나의 구상’ 난이다. 노 대통령은 떠오르는 생각들을 ‘나의 구상’ 난에 촘촘히 기록해 놓고 있다. 예를 들어, 몇 월 며칠 수석 보좌관 회의에서 비서진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구상 난에 올려놓았다가 당일 ‘일정’ 난에 파일로 첨부하는 식이다.

하루 일정 점검이 끝나면 노 대통령은 곧바로 ‘나의 업무’ 난을 클릭한다. 각 수석실에서 올라온 보고서는 여기에 다 모여 있다. 보고서들은 이른바 ‘문서관리카드’라는 양식을 통해 대통령에게까지 올라간다. 이 카드는 보고서 작성일은 물론이고, 어떤 경로를 거쳐, 누구의 의견을 달아, 어떻게 대통령에게 보고되었는지 그 과정을 세세히 알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른바 ‘보고서의 역사’가 생긴 것이다. 또, 단순 참고, 반드시 열람, 지시 필요 등으로 보고서 처분의 용도를 달아 놓아 대통령이 우선순위를 두며 읽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보고서를 읽을 때 노 대통령이 중요시하는 것은 경로의 투명성과 합리성이다. 다양한 의견들이 어떻게 수렴, 종합되었는지를 보는 것이다. 보고서를 다 읽은 노 대통령은 지시 사항이나 의견을 달아 발송자에게 되돌려 보낸다.

노 대통령의 답신을 받은 발송자는 때로 칭찬에 으쓱해지기도 하고, 호된 질책에 간담이 서늘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답신이든 발송자로서는 대통령의 의중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A 비서관은 이렇게 말한다. “좋아졌죠. 예전에는 대통령님 지시사항이 몇 군데를 거치는 사이 의중을 정확히 헤아리기 어려울 때가 있었는데 요즘은 말씀을 직접 받게 되는 거니까 확실히 알 수 있죠.”

e지원 구축으로 시작된 디지털 보고 시스템은 가히 혁명적이라 할 만큼 대통령과 비서실의 업무 스타일에 효율성을 가져왔다. 그 첫째가 업무 처리량이다. 노 대통령이 e지원 사용에 할애하는 시간은 주중 하루 평균 4시간 정도이다. 조찬 전 두 시간, 만찬 후 두 시간쯤이다. 이 시간 동안 노 대통령은 많게는 서른 개까지 보고서를 읽는다. 디지털화가 이루어지기 전보다 세 배 정도 보고서 처리량이 늘어난 것이다.

둘째는 속도이다. 거의 실시간 시스템이라 할 만큼 보고에 대한 피드백이 빠르다. 실무자 입장에서 이보다 좋은 일은 없다. 온라인 보고이다보니 보고 시각에도 제한이 없다. 자정이 넘은 시각이나 일요일 새벽에도 보고서는 작성되는 대로 e지원에 올라가고, 노 대통령 또한 시간의 구애 없이 답신을 보낸다.

셋째는 명징성이다. 보고서의 책임 소재와 의사 전달 과정이 명확하다. 또, 대통령의 답신이 담당 부서는 물론이고, 참고할 필요가 있는 부서에까지 한꺼번에 전달되므로 관련자들 사이 이해도가 예전보다 한층 높아졌다.

넷째로 정보 교류의 원활함을 들 수 있다. 민감한 사안이 많은 청와대인지라 과거에는 부서 간 구두로 정보를 얻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문서관리카드 처리 과정에서 참고부서가 동시에 지정됨에 따라 관련자들의 정보 공유가 훨씬 쉬워진 것이다.

마지막으로 e지원의 구축은 거대한 정부기록 창고의 탄생을 가져왔다. 훗날 사가들은 참여정부의 정책처리 과정을 투명하게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노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e지원을 가장 열심히 사용하는 유저(user)이다. 그런 탓에 생겨난 에피소드 또한 적지 않다. 보고서의 디지털화에 익숙하지 않았던 비서진은 “반드시 문서 관리 카드를 사용하라”는 대통령의 엄명에 한때 고충을 겪었다. 종이 문서로 올린 보고서가 되돌아오는 것이었다. “문서 관리 카드로 보고하면 읽어 보겠다”는 답신과 함께였다.

노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최초로 전달받아 관리하는 부속실 직원들은 어느 월요일 아침 e지원을 켠 후 눈이 휘둥그레졌다. 노 대통령으로부터 쏟아져 나온 지시사항의 마지막 작성 시각이 일요일 새벽 2시였던 때문이다.

많아진 업무 처리량은 직원들의 절대 노동량을 증가시켰다. ‘대통령님이 할일 준비 파일을 전송하였습니다’라는 제목이 달린 메일은 노 대통령이 수행비서에게 보내는 메일이다. 출근 후 e지원을 켠 수행비서는 ‘대통령님이…’ 메일의 양이 많으면 많을수록 고생(?)스럽다고 토로한다. “예전에는 일요일에 출근하면 처리할 서류 업무는 거의 없었는데 요새는 온라인이니까 계속 하게 됩니다.”

노 대통령부터 e지원을 켜며 시작해 e지원을 끄는 것으로 하루를 마감하는 일상이 불러온 청와대 업무혁신이 이 정도까지 자리를 잡게 된 데에는 1년여의 시간이 걸렸고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그러나 아직도 만족하기에는 ‘멀었다’는 것이 노 대통령의 지적이다. 최근 노 대통령은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라며 비서실 전 직원에게 e지원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아이디어 개발을 당부했다.


이 진 (제1부속실 행정관)

웹사이트: http://www.president.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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