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정권교체를 통해 집권한 이명박 정부 일각에서는 지난 시기를 ‘친북좌파정권의 잃어버린 10년’으로 규정하고 이전 정부와 차별화를 시도했다.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정부 말기에 있었던 남북간 일련의 합의를 남북관계의 ‘대못질’로 인식하고 선별적 이행의지를 밝혔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남측 정세를 관망해 오던 북한이 대남 비난을 본격화한 것은 3월 26일 통일부의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6·15 공동 선언과 10·4 선언에 대한 언급이 없는 데 대한 불만의 표시로 보인다.
‘실용주의 대북정책’을 표방한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한동안 관망하던 북한의 반응이 3월말부터 말의 단계를 지나 행동으로 나오고 있다. 말도 점차 거칠어지고 있다. 북한은 개성공단 남북교류협력협의사무소 남측 당국자 철수(3월 27일), 서해상에서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3월 28일), 김태영 합참의장의 핵공격 대책 발언에 대한 반발과 남북대화 중단 공언(3월 29), 이명박 정권에 대한 원색적 비난(4월 1일) 등 연달아 대남 강경대응의 수위를 높였다. 지금도 북한의 대남비난 공세는 그치지 않고 있고, 당국간 대화도 중단된 상태다.
북한이 그동안 자제해왔던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비난과 함께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공약인 ‘비핵ㆍ개방3000’에 대해 거부의사를 분명히 함으로써 당분간 남북관계가 교착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4월 1일자 로동신문 논평원의 글 ‘남조선당국이 반북대결로 얻을 것은 파멸뿐이다’에서 “이명박의 ‘북핵포기우선론’은 핵문제의 해결은 고사하고 그에 장애만 조성하며 북남관계도 평화도 다 부정하는 대결선언, 전쟁선언 외에 다른 아무 것도 아니다”고 밝혔다. 로동신문은 “이명박의 ‘개방’ 넋두리는 결국 반북대결을 고취하기 위한 반민족적 궤변이고 북남관계를 전면 부정하는 반통일적 망동”이라고 비난하고, “리명박은 또한 그 누구의 ‘국민소득 3000’이라는 것을 들고 나와 우리를 우롱함으로써 간특한 간상배, 협잡군의 정체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고 하는 등 대통령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다.
5월 30일자 로동신문에서도 ‘논평원의 글’을 통해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조목조목 비판하면서 “실용주의 따위로는 언제가도 북남관계가 풀릴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로동신문의 논평원의 글은 ‘남조선 당국의 반민족적인 실용주의를 단죄함’ 제목으로 이 대통령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실용주의를 내들고 있는 것은 북남관계의 근본 성격과 현실을 외면”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북남관계는 외세에 의해 일시적으로 갈라진 동족 사이의 통일을 지향해 나가는 특수한 관계로, 민족내부 문제”인데 이런 “북남관계를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처럼 다루면서 실용주의를 적용하는 것은 범죄적 폭거”라고 실용주의 전반을 비난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북한이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에 대해 입장표시를 유보해오다가 4월 1일부터 ‘이명박 역도(逆徒)’란 표현까지 써가면서 비난하고 나선 것은 통일부 업무보고를 지켜보면서 남북관계 진전이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3월 26일에 있은 통일부 업무보고에서 김하중 통일부 장관은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가장 중요한 남북한 정신은 1991년에 체결한 기본합의서로 그 정신이 지켜져야 한다”면서 “기본합의서에는 한반도의 핵에 관한 것이 들어있는데, 북한도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이미 비핵화 정신에 합의한 바 있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은 남북기본합의서체제로 복귀할 것을 강조하면서 “국민 뜻에 반하는 협상은 앞으로 없을 것”이라며 “남북간 문제는 매우 투명하고 국제사회에서 인정하는 룰 위에서 적극적으로 대화할 준비를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통일부 업무보고 과정에서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인정하지 않고, 국제규범을 벗어난 북한의 예외주의적인 행동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남측이 남북기본합의서 정신을 강조하면서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에 관해 언급을 하지 않자 북한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는 남북기본합의서의 주용 내용을 남측이 제안한 것이고 1991년 당시의 사회주의권 붕괴 등의 위기의식을 반영해 수세적으로 기본합의서를 수용한 것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남측의 강조를 거북해하는 것으로 보인다.
4월 13일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이후 첫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남쪽을 봉쇄하고 미국과 바로 통하겠다는 전략을 오래 전부터 가져왔으나 성공할 수 없고 그렇게 될 수도 없다”고 밝혔다. 방미중 이명박 대통령은 4월 15일(현지시각) 북한의 대남 위협 언동과 관련, “과거와 달리 위협적인 발언 때문에 북한을 도와주고 협상하는 것은 앞으로 없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그러나 “북한에 대해 인도주의적으로 도움을 주는데 대해 다른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면서 “(북한이) 언제든지 마음을 열고 서로 좋은 관계를 맺으려고 한다면 언제든지 만날 수 있고 도움을 줄 자세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의 발언에 비춰볼 때 새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는 총선 전과 다름없이 강경하다. 하지만 총선이 끝났고, 북핵문제 해결에도 진전이 기대되기 때문에 이명박 정부도 실용주의 대북정책의 구체적 내용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그 정책의 실체가 드러나면 북한의 반응도 새롭게 나올 것이다.
북한의 대남강경 이유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북한이 대남강경 노선을 견지하는 이유는 다음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선핵폐기론에 대한 반발을 지적할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당선자 자격으로 한 지난해 12월 20일 기자회견에서 “남북간 가장 중요한 현안은 북핵폐기”라고 강조한 뒤 “북핵이 폐기됨으로써 진정한 남북경제교류가 시작될 수 있다고 보고 북으로 하여금 핵을 포기하는 것이 체제유지와 주민들을 위해 도움이 된다는 점을 설득시킬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북한은 핵문제를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 및 10·3 합의에 따라 동시행동원칙에 따라 해결해나가고 있는데 남한 새 정부가 선핵폐기론을 들고 나오자 이에 반발하고, 미국과 직접협상을 통해 비핵화 프로세스를 진전시키고 있다. 북핵문제는 북미 양자 틀과 6자회담의 다자 틀이 마련됐기 때문에 남북관계 틀에서 간섭하지 말라는 것이 북한의 입장이다.
둘째, 한미동맹 우선론에 대한 반발을 지적할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밝힌 한반도관계 인식 구조는 먼저 한미관계가 좋아지면 남북관계도 등달아 좋아지고 나아가 북미관계도 좋아진다는 ‘순차적 삼각 순환구조논리’라 할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한미공조(외세공조)와 남북협력(민족공조)이 상호배타적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지만, 한미공조를 통한 북핵문제해결과 개혁·개방 유도를 모색하고 있다. 북한은 6·15 공동선언에서 합의한 ‘우리민족끼리 이념’에 따라 민족공조를 강조하면서 외세배제를 강조해 왔기 때문에 이명박 정부의 한미관계 우선론에 대해서 강한 반발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셋째, 북한내부의 대남협상파의 퇴조와 강경파 득세 가능성을 지적할 수 있다. 노무현 정부 말기 북한이 남북관계 진전을 서둘렀던 것은 남측의 새 정부 출범을 의식한 조치였지만, 새 정부 출범 이후 상호주의 강조 등 대북 강경정책이 표면화되면서 대남 협상파(통일전선부 최승철 부부장 등)가 후퇴하고 대남 강경파(강경 이데올로그)가 득세하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남측 새 정부가 이전 정부의 합의사항들을 이행할 것으로 정세 판단을 잘못한 협상파들이 비판받고 후퇴한 반면, 대남 강경파들이 전면에 나서 대남 강경 발언을 쏟아내는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부의 강경일변도의 대북정책이 대남 강경파의 입지를 강화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 강경파의 대남비난 발언은 향후 남북관계 진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고 김정일 위원장에게도 부담을 줄 수 있지만, 지금은 지도자에 대한 충성 차원에서 대남비난을 강화하는 것으로 보인다.
넷째, ‘통미봉남’ 또는 ‘남한당국 배제 정책’을 통해 남한당국의 초조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전략을 지적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북한은 남한당국에 비난공세를 강화하는 가운데 미국과는 4월 8일 싱가포르 잠정 합의를 이뤄내고 북핵프로그램 신고를 위한 양자접촉을 지속하고 있다. 최근의 통미봉남 움직임을 둘러싸고 남한 내부에서 남남갈등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잘되던 남북관계가 경색된 것을 둘러싸고 남남갈등을 유발하여 남측정부를 궁지로 몰아넣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통미봉남은 아니고 남한당국 배제 정책이다. 당국간 대화는 중단됐지만 민간차원의 교류협력은 지속하고 있다.
6·15와 10·4 선언 이행 의지 표명
북한은 노무현 정부 임기 말 남북관계 급진전을 시도했다. 북한이 정권교체 가능성이 높았던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에서 10·4 선언 등을 통해 남북관계 진전을 시도한 것은 남측 새 정부의 출범을 의식한 조치로 볼 수 있다. 북한이 남한에서 정권교체 가능성이 높은 시점에 정상회담에 응한 것은 남측의 새 정부와 관계 설정을 의식한 조치로 볼 수 있다. 10·4 선언과 이후의 대부분의 합의 사항은 새 정부가 이행할 내용이기 때문에 북한은 남측 새 정부와 관계 재설정에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곧바로 관계 정상화를 하자는 의도로 노무현 정부 임기 말에 다양한 측면에서의 남북 합의를 이루려고 노력했던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정부 임기 중에 정상회담을 한 차례도 하지 못하고 정권교체가 이뤄질 경우 6·15 공동선언이 사문화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남북정상회담에 나왔을 가능성도 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북한의 가장 큰 불만은 남측 정부가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에 대해서 명백한 입장을 밝히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에 관한 남측의 입장 정리가 이뤄지지 않으면 남북관계의 의미 있는 진전을 보기 어려울 것이다. 두 선언은 김정일 위원장이 직접 서명한 문서로 남측이 이를 무시할 경우 김정일의 ‘통일지도자상’에 문제가 생길 수 있고, 리더십 위기로 발전할 수 있다. 식량난 등으로 북한이 남측의 도움이 절실한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대남비난을 강화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김정일 위원장이 서명한 두 선언에 대해서 남측이 무시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북한은 김정일 위원장이 직접 서명한 6·15와 10·4 선언을 통일의 기본 장전과 실천 강령으로 생각하고 이를 사수하고자 한다. 북한은 ‘우리민족끼리’와 ‘민족공조’로 전쟁을 막아내고 남북화해협력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했지만 남측의 정권교체와 남북관계 재설정 요구로 남북관계가 위기에 처한 것으로 보는 것 같다.
이명박 정부는 명분과 체면을 중시하는 북한체제의 특수성을 고려해서 두 선언에 대한 남측의 입장을 정리해야 한다. 과거 정권들이 당시의 시대정신과 요구를 반영해서 합의한 문서들에 대해서는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새로운 시대에 맞는 합의를 도출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의 경우 합의한 당시의 정부들도 합의 내용을 그대로 이행하지 못했고, 곧바로 이행하기 어려운 합의도 했다. 이명박 정부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합의문을 만들고 이행하면 된다. 새로운 합의를 만들려면 먼저 남북 간에 이미 합의한 문서들을 이행한다는 전제가 서야 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과거를 부정할 경우 신뢰를 가지고 새 합의를 할 수는 없다. 북한은 김일성-김정일 두 지도자가 지금까지 통치해왔기 때문에 과거 부정은 협상 상대에 대한 부정을 의미한다. 이명박 정부가 김정일 정권과 남북관계를 진전시키려면 과거 합의문에 대한 이행의지 표명이 전제돼야 한다.
지금까지 통일부가 밝힌 두 선언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은 ‘실천 가능한 이행방안을 검토해 나가길 기대한다’는 것이다. 김하중 통일부 장관은 4월 30일 국회 상임위 발언에서 “남북간 합의 중에는 7·4 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 6·15 선언, 10·4 선언도 있는데 이행되지 못한 것도 많다”면서 “우리로서는 앞으로 현실을 바탕으로 해서 상호 존중의 정신 아래 남북간 협의를 통해 실천 가능한 이행방안을 검토해 나가길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용주의 대북정책의 구체화
교착된 남북관계를 풀려면 이명박 정부가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에 대해서 이행의지를 밝히고, ‘비핵·개방 3000’ 구상의 재구성과 ‘실용주의’ 대북정책을 구체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비핵·개방 3000 구상은 대선 과정에서 제시한 대북정책 공약으로 야당시절 집권세력의 대북정책과의 차별화를 위한 공약일 수 있으나, 집권 이후에는 실행력이 높고 북측의 거부감이 적은 실용주의 대북정책으로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비핵은 강력히 요구할 수 있는 사항이지만, 개방과 3000달러 시대 개막은 북한이 선택할 사항으로, 북측이 이를 내정간섭으로 인식하고 있는 등 북측의 반발이 심한 대북 구상이다. 북한은 비핵·개방 3000 구상을 흡수통일방안으로 인식하고 강한 경계심을 노출하고 있다.
‘북핵포기우선론’도 그동안 한국과 미국이 추진했던 북핵정책을 종합적으로 재검토해서 북핵해결 노력과 남북관계 진전을 병행 추진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나가야 할 것이다. 노무현 정부 시기에도 출범 초기에는 북핵해결 우선주의를 내걸고 남북관계를 북핵해결과 연계했지만, 후에 북핵해결 노력과 남북관계 진전을 병행 추진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바 있다. 부시 행정부도 북핵실험 이후 선핵폐기론을 거두고 동시행동원칙에 따라 북핵 폐기를 추진하고 있다. 선핵폐기론과 북핵연계론은 부시 행정부와 노무현 정부가 추진했다가 실패한 정책이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는 북핵해결 프로세스와 남북관계 전반을 재검토(review)한 후 북한과의 관계 재정립을 해나가야 할 것이다.
최근 통일부 당국자는 “정부의 대북정책은 핵문제 해결과 남북관계 발전을 병행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 3000’ 구상이 ‘선 핵폐기 후 협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통미봉남을 경계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선핵폐기론’과 ‘비핵·개방 3000’ 구상에 북한이 반발하면서 남북관계는 교착국면에 빠져있다. 김대중 정부 이후 거의 매년 관례적으로 지원해오던 대북식량지원도 중단된 상태다. 최근 우리 정부가 옥수수 5만 톤 지원용의 표시에도 북한은 묵묵부답이다. 우리 정부가 대북 식량지원을 중단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2차 북핵위기 이후 식량지원을 중단했던 미국은 식량지원을 재개했다. 미국은 50만 톤 식량을 세계식량계획(WFP)을 통해서 북한에 지원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의 모든 핵 프로그램 신고문제가 진전됨에 따라 북미관계 개선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는 것이다.
북미관계 진전과는 대조적으로 남북관계는 교착국면을 지속하고 있다. 김영삼 정부 때 나왔던 ‘통미봉남’이란 용어가 다시 등장하고 있다. 북한이 남한당국을 배제한 가운데 미국과 핵협상을 진전시키면서 한국정부의 소외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6자회담 등에서 우리 정부의 영향력이 축소되는 것은 아닌지, 북미관계 진전에 따라 남북관계의 중요성이 약화되는 것은 아닌지 등에 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한미관계 우선론에 따라 한미동맹이 강화되면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도 잘될 것이라고 낙관론을 폈지만, 쇠고기 문제로 한미관계도 난관에 봉착해있고 남북관계도 풀리지 않고 있다.
북미관계 진전을 낙관해서인지 북한의 대남자세는 강경하다. 북미관계 진전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실용주의 대북정책’을 표방한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북한의 반응은 거칠어지고 있다. 북한은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원색적 비난과 함께 서울과 평양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하자는 이 대통령의 방미 중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부했다. 총선이 지나면 북한의 대남태도가 좀 나아질 것으로 예상했지만 아직 그런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북핵문제 해결에 진전이 있으면 남북관계 진전도 기대할 수 있지만 신뢰를 회복하고 남북관계 진전이 이뤄지려면 다소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남측 대통령의 실명을 거명하면서 대남비방을 해왔기 때문에 어느 날 갑자기 아무 일 없었듯이 남북대화에 나오고 관계를 진전시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6·15와 8·15 구간에 남북관계를 원상회복하지 못하면 교착국면이 상당히 오래 지속될 수도 있다. 지난 정부시기에서는 2005년 ‘6·17 정동영-김정일 면담’을 통해서 남북관계 교착을 풀고 6자회담을 재개한 전례가 있다. 이명박 정부가 남북관계를 풀려면 인도적인 문제와 스포츠 교류 등 비정치적인 부분에서부터 문제를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인도적 지원을 위한 적십자사간 회담 등 준당국과 민간대화를 먼저 시작하고 이를 당국대화로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베이징 올림픽과 관련한 스포츠 교류도 다시 시도해봐야 할 것이다.
김대중 정부가 추진했던 햇볕정책에 대해서도 ‘평화적 이행전략의 변종’으로 인식하고 강한 반발을 했지만 신뢰가 쌓이면서 대북 포용정책(햇볕정책)을 수용한 전례가 있다.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에도 대북송금 특검 등으로 남북관계가 순탄치 않았다. 노무현 정부 임기 말에 정상회담이 성사됐지만 정권교체로 합의 내용을 이행하지 못하고 있다. 정권 출범과 함께 신뢰를 쌓지 못하면 남북관계를 진전시키는데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북·미, 북·일관계에 진전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남북관계가 교착될 경우 한반도문제 해결국면에서 우리의 주도권이 상실될 수 있고 이에 대한 비판 여론이 비등해질 수 있다. 북핵문제 해결을 계기로 북한이 미국과 일본 등 서방과의 관계개선을 본격화해서 서방과의 대타협이 이뤄질 경우 남한당국 배제 정책을 통해서 체제이완 현상을 막고자할지도 모른다.
다른 한편으로 북핵신고 문제가 해결되면 북·미, 북·일관계 진전과 함께 남북관계 원상회복과 각종 교류를 활성화할 가능성도 있다. 식량난 등 체제위기가 심화되고 있는 북한의 내부 사정을 고려할 때 남한당국을 장기간 배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조만간 6자회담이 재개되고 북핵문제에 진전이 있게 되면 남북관계에도 진전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려면 무엇보다 남북당국간 신뢰를 쌓는 노력이 절실하다.
이명박 정부의 딜레마는 이미 표방한 대북정책의 기조와 대북지원의 원칙을 훼손하지 않고 남북관계를 정상화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대북식량지원의 경우 북한의 요청이 있어야 지원한다는 원칙을 정해놓은 상태다. 비료의 경우 지원시기를 놓쳤다. 비료와 식량지원은 필요할 때 지원해야 효과가 있는 것이다. 자존심 강한 북한체제의 속성상 비난했던 남측당국에 손 내밀기가 쑥스럽다는 점 등을 고려해서 인도적 차원의 대북지원을 조건 없이 재개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해지고 있다.
인도적 대북지원의 방법은 대한적십자사를 통한 직접지원과 세계식량계획(WFP)을 통한 간접지원, 남북당국대화를 통한 대규모 식량 및 비료지원 등의 방법이 있다.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남북직접대화를 통한 지원이지만 지금은 여의치 않다. 따라서 현시점에서는 긴급구호차원의 대북지원을 적십자사 등을 통해서 지원하는 것을 적극 고려해봐야 할 것이다. 인도적 지원은 정치적 고려를 초월해서 우선 기아에 신음하는 동포를 구하고 봐야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서울을 통하지 않고 워싱턴과 도쿄로 가는 데는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이는 1990년대에 경험한 역사적 사실이다. 북한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손쉽게 워싱턴과 도쿄를 갈 수 있었다. 북핵진전에 따라 6자회담이 재개되면 북한도 남북관계 원상회복에 관심을 보일 가능성이 있다. 이명박 정부가 ‘원칙 있는 대북포용정책’을 추진하려면 이 기회를 잡아야 할 것이다. 이 기회를 잡으려면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하지만 신뢰는 허물기는 쉬워도 쌓기는 어려운 것이다.
고 유 환 /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웹사이트: http://www.hri.co.kr
연락처
현대경제연구원 유병규 산업전략본부장 02-3669-403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