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고는 국민소득 600달러의 빈국이자 아프리카 최고의 자원부국이다. 그래서 무한한 잠재력의 나라로 불리기도 한다.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리듬과 춤이 있는 곳, 예술 애호가들에게는 아프리카 음악의 요람으로, 청동과 공작석 공예의 고향으로 알려져있다. 또 엄청난 규모의 금, 다이아몬드, 구리, 석유, 코발트 우라늄에다 휴대폰 제조에 필수적인 콜탄까지 매장된 축복받은 땅이다. 그런데 이 천혜의 자원을 탐낸 외세의 침략에 시달린 비극적인 나라이기도 하다.
전통미술, 음악, 음식과 생활상, 콩고 진출 한국 기업, 한국의 새마을 운동을 이제서야 받아들이고 있는 모습, 과거 상처를 치유하며 천연자원과 IT 산업을 중심으로 경제 성장에 주력하는 모습 등이 다큐멘터리 <안녕! 콩고>에서 펼쳐진다.
2005년 봄. 콩고 민주 공화국의 수도 킨샤샤는 여느 다른 도시와 다를 것 없는 모습이다. 세계 어디서나 발견할 수 있는 다국적 기업의 간판과 현대적인 도시 생활이다. 하지만 그 현대적인 생활 안쪽에는 아직도 전통이 그대로 살아 21세기의 방식과 공존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결혼식에서 공연되는 춤. 이 춤의 주제는 사랑으로 며칠동안 계속되던 큰 축제인 결혼식에서 공연되던 것이다.
물론 지금은 이 춤이 원형 그대로 공연되는 일은 이제 흔치않다. 이곳에도 웨딩드레스와 같은 서양식 결혼 방식이 정착된 지는 이미 오래다. 춤뿐만이 아니라 손님 맞이, 다산 기원, 구혼, 성인식, 그리고 장례식까지 콩고 민주공화국 사람들의 모든 대소사에는 음악이 함께 하고 있다. 탄생부터 성장, 죽음까지 춤으로 표현된다는 말이 과언이 아닌 곳이다.
아프리카 음악의 원류라는 콩고 음악은 이렇게 생활과 밀착된 가운데 다른 지역의 전통과 달리 계속 계승과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그리고 그 전통은 콩고의 현대 대중음악에도 강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실제로 콩고를 비롯한 아프리카 음악은 서구 음악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 한 트랜드로 자리잡고 있고 그 수준 높은 예술성으로 인해 세계 무대로의 진출도 활발한 편이다.
콩고의 문화부 장관 크리스토프 머준구(Christoph Muzungu,)를 인터뷰했다.
“콩고는 문화적인 역량이 매우 풍부하죠. 그 중에서도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콩고인에게 음악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구요. 이미 해외에서 유명한 스타로 자리매김한 음악인들도 많이 있습니다. 또 중요한건 아직 스타가 되지는 않았지만 잠재력을 갖춘 신인들이 매우 많다는 것입니다. 이미 스타가 된 음악인들은 일종의 대사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할까요. 해외에서 외국인들에게 콩고 음악의 풍부함, 나아가 아프리카의 음악과 존재를 알리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외국에서는 스튜디오가 갖춰져 있고 음반 판매도 어느정도 괜찮지만 콩고내에서는 음악 산업의 인프라가 전무하다는 겁니다. 인프라가 갖춰지면 새롭게 스타가 될 음악인들이 아주 많습니다.”
콩고에는 풍부한 원료인 구리와 공작석, 나무를 이용한 전통 공예가 활발하게 계승되고 있고 전통 공예품을 파는 시장에선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조악한 싸구려가 아니라 손으로 제대로 만든 섬세하고 수준높은 작품들을 다양하게 팔고 있다.
예술 애호가들에게는 아프리카 음악의 요람으로, 또 청동과 공작석 공예의 고향으로 알려진 콩고 민주 공화국. 하지만 이 나라에 관심이 있는 대다수 사람들에겐 그 풍부한 자원 때문에 기억되는 곳이기도 하다. 흔히 콩고 민주 공화국을 얘기할 때 사람들은 ‘지질학상의 스캔들’ 이라고 부른다. 그 이유는 엄청난 규모의 금, 다이아몬드, 구리, 석유, 코발트 우라늄에다 휴대폰 제조에 필수적인 콜탄까지 매장된 축복받은 땅이기 때문. 거기에 콩고강의 풍부한 민물고기 자원과 막대한 수력발전 용량까지 보유한 무한한 잠재력의 나라이다. 그런데 이 천혜의 자원을 탐낸 외세의 침략에 시달린 비극적 역사를 갖고 있다.
다이아몬드를 노린 벨기에의 무자비한 수탈과 식민 통치 이후 자이르라 불리며 경제 개발과 발전을 위해 노력을 시작했지만 그 풍부한 자원을 노린 주변 국가와 서구 열강의 개입 때문에 수많은 내전에 휩싸여온 역사를 갖고 있다.
1997년 로랑 카빌라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나라 이름을 자이르에서 콩고 민주 공화국으로 바꿨고 로랑 카빌라 대통령이 죽은 이후 집권한 조셉 카빌라 대통령 아래 경제 개발과 민주주의 정착이 새롭게 시도되고 있다. 1960년 벨기에에서 독립한 이후 사실상 최초라고 할 자유 민주주의 선거와 함께 정부와 콩고 민주공화국 국민 모두가 지금 가장 집중하고 있는 것은 과거 상처에 대한 치유와 경제 개발이다.
화해와 치유를 위해 가장 앞에 선 것이 바로 카빌라 재단. 죽은 로랑 카빌라 대통령을 기리기 위해 그의 딸이 설립한 카빌라 재단에서는 고아, 에이즈 환자, 과부, 환자, 정신 지체자와 장애인들을 돕는 활동을 하고 있다.
내전과 가난으로 인한 장애인 구호 사업에 관한 내용을 취재하다 한 한국인을 만날 수 있었다.
1992년 선교 활동을 하러 들어와 장애인 거주 지역에서 장애인을 돌보는 것을 시작한 김경식 목사는 내전과 무지로 상처받은 콩고 사람들을 위해 많은 일을 하고 있었다. 또 그는 복잡다단한 콩고 내정을 몸으로 겪은 경험자이기도 하다. 외국인들이 앞 다퉈 철수하던 와중에도 콩고인들과 함께 했던 그의 활동은 이제 그 땅에서 결실을 거두고 있다. 교육열도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이 높아지고 있는 콩고에 그는 4개나 되는 학교를 세웠다. 콩고 민주 공화국이 가장 필요로 했고 또 그가 콩고를 위해 특히 역점을 뒀던 것은 교육 사업. 그 결실은 이제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가장 놀라운 것은 새마을 운동이 콩고에 가 있다는 것, 킨샤사 남쪽 100KM 떨어진 시범 마을을 찾아가 봤는데 새마을 운동을 시작하면서 그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이 바로 이 길을 닦은 것이라고 한다. 2002년부터 시작된 새마을 운동 시범 마을은 현재 콩고 전역에 5군데가 있는데 이 마을은 86가구가 농업과 축산업을 함께 하면서 주변 지역의 농가보다 훨씬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이런 것은 아직 일부이고 아직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통적인 방법으로 경제 활동을 하며 살고 있다.
아직 콩가 강의 풍부한 민물고기를 잡아 생활하는 주민들이 상당수인데 목가적인 모습과 달리 삶은 쉽지 않다. 도시의 삶 역시 쉽지는 않다. 오랜 내전으로 아프리카 최고의 자원 부국 콩고는 국민소득 600달러의 빈국으로 전락했고 장기적인 경제 불황으로 실업률도 높아 서민들의 삶은 더더욱 힘들다. 거기다 관광객도 최근까지 감소 추세였다. 하지만 그 가운데 곳곳에서 조금씩 나아지는 희망적인 징조가 보이고 있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실업 문제를 해결하고 경제 개발을 위한 노력 역시 이제 정부 차원에서도 시작되고 있다. 선진국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산업 기반이 되는 제철소가 건설되고 유속이 빨라 수력 발전에 적합한 콩고강에 잉가댐을 비롯한 수력 발전 시설 계획에도 박차가 가해지고 풍부한 자원 역시 개발을 서둘고 있고 외국 자본의 진출에 대해서도 적극적이다.
아리랑TV 특별기획 다큐멘터리 <안녕! 콩고(Mbote! Congo)>
3월 18일(금) 밤 9:00(재방송 - 19일 오전 9:30, 20일 오후 5:20)
웹사이트: http://www.arirangtv.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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