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대, 금정진 관아 복원 모형도 완성
금정구(구청장 김문곤)는 2002년 5월 부산광역시에서 추진하는 금성동 산성지구 종합정비계획수립을 위한 용역 실시 때부터 역사 관광자원 명소 개발을 위하여 자체 시책사업으로 추진해 오고 있는 주요 사업으로서, 관아 건물 10동과 그에 따른 관리실, 전시실, 휴게실 등 부대시설이 들어설 예정 있다.
지난 2004년 2억원을 투입하여 1년간에 걸쳐 학술 조사(경성대학교한국학연구소 강대민교수)을 실시, 지표조사와 시굴조사, 학술대회를 거치면서 금정진 담장지를 발견하는 성과와 함께 이번에 복원 모형도가 완성되었다.
한편 금정구청장(김문곤)은 “본 프로젝트는 1차적으로는 낙후된 금성동의 발전과 주민들 삶의 질 향상을 목적으로 추진되는 것인 만큼 그 수혜가 금성동 주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며, 완공 뒤에는 기마순찰병 운영 등으로 관광객들에게 볼거리와 체험을 동시에 충족시키고 사극 촬영 세트장으로 상시 개방함으로서 역사문화 진흥발전에 적극적으로 이바지 할 계획임”을 밝혔다.
금정진(金井鎭)은 금정산성을 총괄 지휘하는 관아로 이 산성의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이다. 이 금정진은 2004년 지표조사와 시굴조사가 수행되었고, 여기에서 도출된 결과를 토대로 금정진에 대한 복원 기본계획을 수립하였다.
금정진(金井鎭)은 조선 숙종 33년(1707년) 동래부사 한배하(韓配夏)가 금정산성의 중성을 축성하면서 좌기청 6칸, 좌우행랑 각 5칸, 군기고 4칸, 화약고 1칸 내동헌 3칸, 좌기청 남쪽에 별전청 4칸을 세운 것으로 기록에 나와 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금정산성 내 금정진(金井鎭) 관아(官衙)들이 파괴되고 여기에 있었던 무기 또한 몰수당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는 주택지로 탈바꿈되어 있어, 부지의 형태조차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잔존유구의 훼손정도가 심하다.
따라서 금정산성(金井山城) 금정진(金井鎭)은 금정구를 대표하는 유적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방편으로 금정진 일곽에 대한 복원계획을 수립하였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금정진일곽의 복원은 우선, 부지조성을 실시하여 옛 모습대로 3단의 석축과 한식 담장으로 복원한다.
금정진 일곽 내의 상단에는 좌기청을 복원 배치하고, 중단에는 좌우행랑을 복원 배치한다. 그리고 하단에는 조자기청의 배치 축에 맞추어 별전청을 복원 배치하고, 또한 좌측에는 내동헌을, 우측에는 군기고를 각각 복원 배치한다. 화약고는 군기고와 연관되나, 폭발물을 포관하는 건물이기 때문에 군기고 우측에 별동으로 복원 배치한다.
금정진의 출입을 위하여 주출입구는 외삼문을 좌기청, 별전청 배치 축에 맞추어 설치하고, 뒤편의 도로와 연결하기 위하여 협문을 설치한다.
금정진 복원이외에 역사사적지로의 면모를 갖추고, 금정구 주민에게는 역사와 금정구의 정신을 체험하는 장소로 활용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금정산성역사전시관’을 건립한다. 그밖에 역사관광 탐방을 위한 외래관광객의 편의 공간으로 주차장, 공중화장실, 다목적 잔디광장 등을 설치한다. 그리고 복원 정비될 금정진은 죽전 마을 내에 있어, 주거환경 정비와 연계하여 기존 도로개선, 주변 경관조성 차원에서 죽전마을의 상징인 대나무숲 등을 조성한다.
경성대학교 개요
경성대학교는 1955년 사랑과 봉사라는 기독교 정신에 따라 경남사범대숙으로 개교하여 한성여자초급대학을 거쳐 1979년 일반 4년제 대학인 부산산업대학으로 승격하여 급성장하기 시작하였다. 그 후 1988년 세계로 뻗어가는 부산의 제일 사립대학으로 성장하기 위하여 교명을 경성대학교로 개명하여 지금까지 이르고 있다. 2005년 1월 현재 3120명의 입학정원과 700여명의 교직원, 13000여명의 재학생들이 건학이념의 구현을 위해 오늘도 최선을 다해 연구하고 공부하는 대학의 참모습을 만들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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