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신춘문예 최고의 시 ‘담쟁이 넝쿨’…‘2009 신춘문예 왕중왕 전’ 시 부문 결과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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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문학신문사
2009-01-20 11:26
서울--(뉴스와이어)--창조문학신문사 (박인과, http://www.ohmywell.com )는 시 부문의 ‘2009 신춘문예 왕중왕 전’의 결과를 발표했다.

올해의 신춘문예 당선 시들 중에서 [신춘문예 왕중왕]에 해당하는 최고의 시는 부산일보에서 당선된 조원 씨의 ‘담쟁이 넝쿨’로 결정되었다고 박인과 문학평론가는 밝혔다.

박인과는 “지방신문까지 포함한 신춘문예 당선작(가작포함) 32편을 망라했기 때문에 분석하는 데 주의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으나 실수도 있을 수 있음을 밝힌다.”, “여기 게재되는 작품 분석은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문일 수 있다”, “신춘문예 작품 열람을 인터넷 사이트에서 했으므로 작품의 내용이 간혹 틀린 부분이 있을 수도 있지만 이해해 주기 바란다.”, 그리고 “비록 잘 모르는 부분이 있어서 분석이 틀리고 어줍은 표현이 있더라도 신춘문예 당선자들께서 잘 봐 달라”고 이야기하며 “보다 더 나은 문학의 미래를 위해 스스럼없고 깔끔한 담론이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했다.

박인과 문학평론가의 [2009 신춘문예 시 작품]에 대해 분석한 문학평론은 다음과 같다.

♣ 2009 신춘문예 시부문 작품 분석 / 박인과 문학평론가
맞춤법에 맞지 않거나 문장의 오류 등이 많은 것은 신춘문예 당선작으로서 부적절

올해도 어김없이 당선작들이 창작의 제일 기본이 되는 문법을 지키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부분은 심사위원조차도 제대로 심사하지 못한 결과라고 판단한다. 문법을 잘 지킨 창작품이 문법을 지키지 못한 창작품에 밀려 낙선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러한 기본을 지키지 못하는 신춘문예는 우리 문단의 고질병이며 영원한 숙제인 것 같다. 맞춤법, 혹은 문장에 심각한 오류가 있음에도 당선된 작품이 있다면 그 결과는 신춘문예 당선작을 선택한 심사위원의 자질에도 상당한 결점이 있음을 함의한 것일 수도 있다.

이미 신춘문예의 왕으로 뽑아놓은 위대한 작품들 중에서 또 더 고귀한 왕중왕을 뽑는다는 것은 어쩌면 무리일지 모른다. 신춘문예 최고의 시를 뽑는 작업을 하는 창조문학신문사의 이 신춘 감별법은 권위 있는 문단의 원로들에 의해 단칼로 배격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창조문학신문사의 이 신춘 감별법(신춘문예 왕중왕 전)은 한국문단의 살벌한 단두대에 오르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문단이 우리 한국문학의 발전을 위해서는 이러한 의견을 수용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표현의 자유라는 문학적 힘을 빌어 이 글을 쓴다. 한국문학은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정말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이번에, 2009 신춘문예에 당선된 시들을 모아놓고 ‘신춘문예 왕중왕 전’을 진행하는 방법은 <1. 시 문장의 팽팽한 긴장감이 전체의 골격을 유지하고 있는가>, <2. 문법적 기능이 제대로 활용되고 있는가>, <3. 언어의 불필요한 낭비가 있는가>, <4. 문장들의 표현 및 전개가 명확한가>, <5. 시의 전체적인 치밀성과 함축성>, 그리고 <6. 시어의 상징성>, <7. 주제에 대한 집중력과 시의 운문성>, <8. 독자로 하여금 시를 계속하여 읽게 하는 흡인력> 등을 살펴보며 그 시적 행위의 능숙함을 합산하여 계산하는 방식을 취했다.

2009년 신춘문예에서도 어떤 작품들은 “이런 작품도 신춘문예의 당선작이 될 수 있나?”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약한 작품들도 보였다. 시가 시다워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도 보았다. 신춘문예 시들을 다 분석하여 일일이 나열하다 보면 이 글이 너무 길어질지 모른다. 그래서 각 작품들에 대해 간단히 몇 마디씩만 언급해 보기로 한다. 그래서 이 분석 자료는 각 작품들의 시 전체를 분석한 내용의 전부가 아니라 몇 가지씩만 예로 든 것임을 밝힌다.

우선, 순위를 매겨보았다. 1번에서 20번까지 순위가 매겨졌다. 이 순위는 시적 긴장력과 시 전체의 치밀성을 따져서 시어의 긴장력과 시 전체의 치밀함에서 완성도가 높은 시를 우선순위로 올리는 것이므로 어느 시가 더 좋다거나 더 나쁘다고 판단하는 기준이 아님을 분명히 밝힌다. 21번에서 32번까지의 순위는 매기지 않았다. 매겨진 순위에 대해 의문이 있는 분은 각 작품들을 펼쳐놓고 이 평가를 꼼꼼히 살펴보기 바란다.

▣ 2009 신춘문예 시 당선작들의 시적 긴장력 순위

1. 담쟁이 넝쿨(조원) / 부산일보 당선작 / 심사위원 : 김종해 강은교 안도현 시인
2. 관계 1(유태안) / 강원일보 당선작 / 심사위원 : 이승훈(한양대 명예교수), 이영춘(한국시인협회 심의위원)
3. 즐거운 장례식(강지희) / 문화일보 당선작 / 심사위원 : 최종심사는 시인 황동규, 정호승 씨, 예심은 시인 황인숙, 김기택 씨
4. 무럭무럭 구덩이(이우성) / 한국일보 당선작 / 심사위원 : 신경림(시인), 김사인(시인 동덕여대 교수), 김기택(시인)
5. 말빨(문근영) / 창조문학신문 당선작 / 심사위원 : 고용길 시인, 최성훈 시인, 이상미 시인, 김기수 시인, 박인과 문학평론가
6. 오늘은 달이 다 닳고(민구) / 조선일보 당선작 / 심사위원 : 시인 문정희, 황지우
7. 배롱나무꽃(정성수) / 전북도민일보 당선작 / 심사위원 : 최승범 / 정성수 시인 신춘문예 3관왕(2009 창조문학신문에도 시 부문 당선, 2009 한국교육신문에 동시 부문 당선)
8. 술빵 냄새의 시간(김은주) / 동아일보 당선작 / 심사위원 : 이시영 시인, 남진우 시인
9. 접시(김형출) / 창조문학신문 당선작 / 심사위원 : 고용길 시인, 최성훈 시인, 이상미 시인, 김기수 시인, 박인과 문학평론가
10. 저녁의 황사(정영효) / 서울신문 당선작 / 심사위원 : 황동규, 최동호
11. 오래된 잠(이민화) / 한라신문 당선작 / 심사위원 : 이하석 시인, 김명인 시인(고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12. 구름모자를 빼앗아 쓰다(최정아) / 매일신문 당선작 / 박재열 시인(경북대 교수),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13. 증명사진(김재준) / 광주일보 당선작 / 심사위원 : 이문재, 안도현
14. 난쟁이행성 134340에 대한 보고서(도미솔) / 국제신문 당선작 / 심사위원 : 천양희 정일근 문태준(시인)
15. 목련꽃을 들여다보면(강애나) / 창조문학신문 당선작 / 심사위원 : 고용길 시인, 최성훈 시인, 이상미 시인, 김기수 시인, 박인과 문학평론가
16. 가게 세 줍니다(유금옥) / 불교신문 당선작 / 심사위원 : 오세영(서울대 명예교수)
17. 맆 피쉬(양수덕) / 경향신문 당선작 / 심사위원 : 시인 최정례, 황지우
18. 고물차 팔던 날(최윤희) / 창조문학신문 당선작 / 심사위원 : 고용길 시인, 최성훈 시인, 이상미 시인, 김기수 시인, 박인과 문학평론가
19. 나무의 공양(이경례) / 영남일보 당선작 / 심사위원 : 이하석, 김명인
20. 되창문(정성수) / 창조문학신문 당선작 / 심사위원 : 고용길 시인, 최성훈 시인, 이상미 시인, 김기수 시인, 박인과 문학평론가 / 정성수 시인 신춘문예 3관왕(2009 전북도민일보에도 시 부문 당선, 2009 한국교육신문에 동시 부문 당선)
* 나머지 작품들은 긴장력 순위를 매기지 않고 분석자료만 공개한다.

♣ 2009 신춘문예 시 당선작들에 대한 작품 분석 - 박인과 문학평론가

1. ‘담쟁이 넝쿨’(조원, 부산일보 당선작) 분석
2009년 신춘문예 최고의 시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몇 번이나 1번과 2번의 순서가 바뀌었던 작품들이 부산일보 당선작 ‘담쟁이 넝쿨’과 강원일보 당선작 ‘관계 1’이었다. 그런데 결국 부산일보의 작품이 더 따뜻한 감동을 주고 있어서 부산일보 당선작의 ‘담쟁이 넝쿨’을 [2009 신춘문예 왕중왕 전]의 시 부문 왕중왕 시로 선정했다.

이 시는 첫 번째 행 “허공을 잡을 수 없잖아요”에서 문맥상 ‘잡을 순’으로 바꾸면 더욱 나아질 뻔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기 바란다. 그리고 치명적인 문장의 실수가 드러난다. “반듯하게 깎아놓은 계단도, 숨 고를 의자도 없는 / 매일 한 타래씩 올을 풀어 벽을 타고 오르는 일이 / 쉽지만은 않겠지요”를 잘 생각해 보기 바란다. 이 문장은 “매일 한 타래씩 올을 풀어, 반듯하게 깎아놓은 계단도 / 숨 고를 의자도 없는 벽을 타고 오르는 일이 / 쉽지만은 않겠지요”라고 해야 더욱 맞다. 잘 생각해 보기 바란다.

“먼저랄 것 없이 바늘 코를 놓을 수도 있겠지요”에서 ‘누가 먼저랄 것 없이’에서 ‘누가’를 빼놓은 문장인데 이 ‘누가’를 빼고 시문을 작성해서 얻는 이득이란 것은 없다. 오히려 자연스럽지 못한 것 같다.

2. ‘관계 1’(유태안, 강원일보 당선작) 분석
사과와 드라마와 작가의 관계를 잘 연결시킨 2009년 신춘문예의 수작이다. “여주인공,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는, 포장된 과거가 푹신한 소파처럼 놓여있는 방안, 사랑하는 남자와의 마지막 관계, 여주인공은 아무 일 없는 듯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하리라.”에서의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는,’이 문제이다. 아마도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는 포장된 과거”라고 말하는 것 같은데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는,”에서 마지막 부분에 ‘,’가 있으므로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는’의 시어는 ‘포장된 과거’를 수식하지 못하게 되어있다. 그래서 독자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상상하기 어렵게 되어있다. ‘,’의 활용이 자연스럽지 못한 데서 연유하는 불편함을 독자가 떠안아야 한다. 또한 ‘아무 일 없는 듯’보다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의 표현이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

3. ‘즐거운 장례식’(강지희, 문화일보 당선작) 분석
‘국화꽃’은 ‘국화’라는 단어로서 충분히 표현할 수 있는 시어이다. ‘국화’(菊花)에 ‘꽃’(花)을 덧붙인 시어는 한글 낭비이다. 서정주의 시 <국화 옆에서>의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라는 시어 중에서 이 ‘국화꽃’은 사실 썩 잘 활용된 표현은 아니라는 판단이다. 꼭 ‘꽃’이라는 시어가 필요할 경우 시어의 조탁에 의해 다른 표현법으로 창조할 필요가 있다. 물론 만인이 그렇게 사용하는 말이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그러나 만인이 사용한다고 해서 시어로써 꼭 그렇게 사용해야 된다는 법칙은 없다고 본다. 시인이 시를 최대한 압축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은가.

4. ‘무럭무럭 구덩이’(이우성, 한국일보 당선작) 분석
“너 또 방 안에 무슨 짓이니”의 시어에서 이 시의 자연스러운 문맥의 흐름에 따라 ‘안에’를 ‘안에서’라고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려면, 말을 그대로 옮겨 왔다면, 여기서는 시어에 따옴표를 기재해야 분명해진다. “친구에게 전화가 옵니다”도 “친구에게서 전화가 옵니다”로 바꾸어야 맞는 문장 같다. “친구에게 전화가 옵니다”와 “친구에게서 전화가 옵니다”의 차이는 엄청난 것이다.

5. 말빨(문근영, 창조문학신문 당선작) 분석
문근영의 신춘문예 당선 작품 ‘말빨’은 2009년 신춘문예의 시 중에서 가장 문법적인 시인 것으로 판단된다. 본인의 시 안에서도 ‘맞춤법’을 언급하고 있다. 각 부분의 연결도 유기적으로 매끄럽게 잘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슬픔의 편지, 계곡의 바람을 불러 / 한 가닥 명주실을 탄다”에서 “슬픔의 편지가 계곡의 바람을 불러 한 가닥 명주실을 탄다”의 의미 같은데 ‘,’가 그 의미의 통로를 막고 있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로 인해 힘이 들어가고 강조는 되겠지만 어느 독자층이 보더라도 감동이 잘 소통될 수 있는 시가 가장 좋은 시라고 생각한다. 그 소통을 ‘,’가 막지는 않고 있는지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로 인해 ‘편지’와 ‘계곡’ 사이에서 의미가 단절되는 느낌이다. 물론 ‘,’가 있더라도 독자가 의미를 단절시키지 않고 연결 지어 상상을 한다면 별 문제는 되지 않을 수 있다.

6. ‘오늘은 달이 다 닳고’(민구, 조선일보 당선작) 분석
“느티나무의 머리를 감기는 건 오랫동안 곤줄박이의 몫이었다”에서 ‘감기는’의 기본형 ‘감기다’는 ‘감다’의 피동형이다. 곤줄박이가 느티나무의 머리를 감겨주는 것이므로 ‘감겨주다’를 활용해서 “느티나무의 머리를 감겨주는 건 오랫동안 곤줄박이의 몫이었다”로 바꾸면 한결 명료해진다고 볼 수 있다.

7. ‘배롱나무꽃’(정성수, 전북도민일보 당선작) 분석
정성수 시인은 2009년 신춘문예의 3관왕이다. 2009년 창조문학신문에서도 시 부문에 당선되었고 2009년 한국교육신문에서도 동시 부문에 당선되었다. “오백 살 배롱나무가 선국사 앞마당에 / 가부좌를 틀고 있다.”의 ‘앞마당에’를 ‘앞마당에서’로 해야 더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배롱나무가 ‘앞마당에서’ 가부좌를 틀고 있기 때문이다. ‘가부좌를 틀고’를 빼면 ‘앞마당에’가 더 어울린다. “피기는 어려워도 지는 것은 금방인 꽃들”에서 ‘피기는’과 ‘지는’의 시어가 서로 충돌하고 있는데 ‘는’이 문제이다. ‘피기는’을 ‘피기가’ 혹은 ‘피기’로 바꾸면 더욱 문장에 맛이 든다.

8. ‘술빵 냄새의 시간’(김은주, 동아일보 당선작) 분석
“컹컹 우는 한낮의 햇빛, 달래며 실업수당 받으러 가는 길”에서 ‘달래는’이 무엇을 달래는 것인지가 명확하지 않다. 만약, 햇빛을 달래는 것이라면 ‘햇빛,’에서 ‘,’를 삭제해야 한다. ‘컹컹 우는’의 표현이 잘 와 닿지 않고 있다. 햇빛이 컹컹 우는 상황이 억지스러워 보인다. 독자에게 설명이 필요한 문장이라면 이미 시어로서 실패한 경우이다. “햇빛을 과식하며 즐비한 방울나무”에서 ‘즐비한’의 기본형 ‘즐비하다’는 ‘빗살처럼 줄지어 빽빽하게 늘어서 있다.’의 뜻이다. 그러므로 ‘즐비한’의 뒤에는 복수형의 명사가 와야 자연스럽다. ‘즐비한 방울나무들’이 잘 어울리는 문장이라는 생각이다.

9. ‘접시’(김형출, 창조문학신문 당선작) 분석
“접시 안을 비어놓은 눈물 한 방울”에서 ‘비어놓은’을 ‘비우다’(사역형)과 ‘놓다’(타동사)가 합성된 ‘비워놓은’으로 해야 더 알맞은 것 같다. 시인은 ‘비어지다’(자동사)와 ‘놓다’(타동사)의 합성어로서 인류의 자율적 정화기능과 본인의 참여적 기능을 염두에 둔 시어로서 자동사와 타동사의 만남을 이루어 놓았지만 ‘비어놓은’은 독자의 상상력에 약간의 무리가 따르게 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바로 앞의 시어가 ‘접시 안을’으로서 목적어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접시(삶=인생=인류)가 스스로 비어지길 원하지만 필요한 만큼 강제력도 있어야 된다는 의도의 개입을 위해 타동사 ‘놓다’가 사용된 것으로 문맥상 해석이 되지만 스스로 정화되어야 할 지구(=인류=삶)이 정화되는 주체가 아니라 정화될 목적어를 나타내는 시어 ‘접시 안을’으로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시인은 이미 ‘눈물 한 방울’이 삶이고 접시이고 그것이 시간과 인간 본질의 결정체란 차원으로 치달아 스스로 정화하기도 하고 스스로 강제력을 지닌 존재로 묘사하고 있지만 문장 속에서 시어 한 구절로 표현하기엔 약간의 무리가 따르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독자의 상상력과 시인의 상상력의 연결 고리에 틈이 난 것이다. 굳이 시어로서 이 사실을 증명하라고 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접시 안을’의 ‘접시’의 입장에서는 ‘비어’(자동사)를 택하게 되고 ‘눈물’의 입장에서는 ‘놓은’(타동사)를 택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그런데 여기서 접시=눈물이란 방정식을 독자가 이해한다면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만 아직 문장 속에서 그 부분이 뚜렷이 드러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나오는 불협화음이다. 불협화음은 “‘큰 소리를 내면 접시가 깨어진다.’는 이것은 / 진부한 얘기이다 / 그래서 정갈한 내 머리카락은 / 눈물을 떨어뜨리는 것이다.”에서도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큰 소리를 내면 접시가 깨어진다.’는 이것은 / 진부한 얘기이다”와 “그래서 정갈한 내 머리카락은 / 눈물을 떨어뜨리는 것이다.”의 사이에도 단순한 문장 간의 틈이 아니라 시인과 독자 사이의 갭gap이 있다.

10. ‘저녁의 황사’(정영효, 서울신문 당선작) 분석
“멀리 낙타의 종소리가 들리고”에서 ‘멀리’는 ‘멀리서’로 해야 자연스럽다. ‘멀리’를 활용한 예를 든다면 ‘새가 멀리 날아갔다.’라고 하는 문장이다. 새가 날아온다면 ‘새가 멀리서 날아온다.’는 문장이 맞을 것이다.

11. 오래된 잠(이민화, 한라신문 당선작) 분석
“산 그림자 마당으로 내려서면”에서 이 문장만 가지고는 “산 그림자가 마당으로 내려선다”는 것인지 “산 그림자 드리운 마당으로 내려선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힘들다. 전자의 뜻이면 ‘산 그림자’에 ‘가’를 붙여서 ‘산 그림자가’로 해야 “산 그림자가 마당으로 내려선다”로 되어 문장이 분명해진다.

12. ‘구름모자를 빼앗아 쓰다’(최정아, 매일신문 당선작) 분석
“모자를 쓴 파도가 아버지처럼 걸어온다. 갈지자로 걸으며 손을 흔든다. 친척들은 환하게 웃으며 춤을 춘다. 아버지가 두루마기를 입고 넘어진다.”에서 ‘파도가 아버지처럼 걸어오는 것’이므로 파도가 바로 아버지라고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 뒤의 문장에서 ‘아버지가 두루마기를 입고 넘어진다.’로 나오는 것은 앞뒤의 문장에서 그 연결이 매끄럽지 못하게 되는 경우이다. 만약, 앞의 문장 ‘모자를 쓴 파도가 아버지처럼 걸어온다.’를 ‘모자를 쓴 파도가 아버지가 되어 걸어온다.’로 바꾸면 의미가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도 있는 부분이다. 문장이란 이렇게 글자 몇 개 혹은 글자 하나하나에 의해 시적 정서가 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3. ‘증명사진’(김재준, 광주일보 당선작) 분석
잘 창작된 시이다. 그런데 마지막 연에서 독자에게 약간의 혼돈을 갖다 준다. “날카로운 화살 한 대가 내 몸을 뚫고 날아오르자 망치를 맞는 젊은 쇳소리가 길게 울린다/ 나는 지을 수 있는 가장 온화한 얼굴로 빛의 칼날을 받는다”에서다. 시 내용에 의하면 이미 ‘화살 한 대가 내 몸을 뚫고 날아’오를 때 이미 ‘빛의 칼날’(사진 찍을 때 터지는 빛)을 받았다. 그것은 ‘내 몸을 뚫고 날아오르자 망치를 맞는 젊은 쇳소리가 길게 울린다’에서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이미 ‘빛의 칼날’을 받았는데 또 다시 ‘빛의 칼날을 받는다’는 시적 진술에 의해서 이 시는 긴장력이 감소하고 있다고 독자들은 생각할 것이다. 잘 생각해 볼 일이다. 또 “요동을 치며”의 시어에서 ‘요동’과 ‘치며’는 명사와 동사가 함께 어울렸는데, 둘 다 움직임을 나타내는 말이다. 움직임을 나타내는 말이 중복되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요동을 치다’라는 형식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극한의 경지까지라도 응축하면 할수록 스프링 튕기듯이 긴장력이 살아나는 것이 바로 시이므로 되도록 더 압축하는 방법을 연구해도 좋을 것이라는 것이다. ‘요동치며’ 정도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요동하다<요동치다, 즉 ‘요동하다’보다 ‘요동치다’는 더 어감적으로 극심한 흔들림을 나타내줄 수 있어서 괜찮다고 생각한다.

14. ‘난쟁이행성 134340에 대한 보고서’(도미솔, 국제신문 당선작) 분석
도미솔의 시 당선작에서 “수금지화목토천해명의 끝별 명왕성은 / 난쟁이행성 134340번이란 / 우주실업자 등록번호를 받았다 / 그때부터 다리를 절기 시작한 남편은 / 지구에서부터 점점 어두워져 갔다 / 명왕성은 남편의 별 / 그가 꿈꾸던 밤하늘의 유토피아”의 시어를 보자. ‘수금지화목토천해명의 끝별 명왕성은 / 난쟁이행성 134340번이란 / 우주실업자 등록번호를 받았다’까지는 명왕성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그때부터 다리를 절기 시작한 남편은 / 지구에서부터 점점 어두워져 갔다 / 명왕성은 남편의 별 / 그가 꿈꾸던 밤하늘의 유토피아’는 남편의 이야기이다.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시가 이렇게 꼭 설명되어져야 하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작詩作 방법은 경향신문 당선작 맆 피쉬(양수덕)의 경우와 흡사하다. 이런 구조의 시작법은 감동이 덜하다. 도미솔의 시가 ‘난쟁이행성’에 관한 이야기만 하면서 남편의 이야기가 오롯이 녹아있게 창작한다면 더욱 좋은 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양수덕의 시도 ‘맆 피쉬’에 관한 이야기만 하면서 ‘계단 바닥에 누워 있던 청년’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융합되어 있게 된다면 더욱 좋은 시가 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렇게 될 때 시어의 힘이 결집되어 시적 긴장력의 극대화를 이룰 수 있다고 본다.

15. ‘목련꽃을 들여다보면’(강애나, 창조문학신문 당선작) 분석
강애나의 이 시를 보면 모국어를 상당히 잘 활용할 줄 아는 시인인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을 떠나 호주에 오래 살면서 이만큼 한글로 정서를 표현할 줄 아는 것도 모국어에 대한 사랑이 없이는 안 되는 것이다. 특히 ‘울리네요’, ‘엘토라죠’, ‘비틀거리네요’, ‘과음했나봐요’, ‘나오질 못 하네요’, ‘날아오르죠’, ‘터트리고 있어요’, ‘왁자지껄 하네요’, ‘흔들릴 겁니다’, ‘촛불을요’ 등은 모국어로써 시의 음악성을 한껏 살려낸 것이다. 2009년 전 작품을 통틀어서 다 뒤져보아도 이만큼 리드미컬하게 시를 창작한 시인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데 한 사람, 다른 부문인 동시 부문에 당선된 김철이의 ‘도토리 키재기’는 모국어의 리듬감을 재치있게 표현하고 있어 귀중한 작품이 되었다. 시란 이렇게 음악성도 상당히 중요한 정서의 메신저가 되는 것인데 어찌 된 일인지 요즘 시들은 그 중요한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듯해서 슬프다.

16. ‘가게 세 줍니다’(유금옥, 불교신문 당선작) 분석
이 시는 먼저 제목부터 잘못되었다. 제목은 창작품의 머리와 같이 중요한 부분인데 신춘문예 당선작이 제목이 잘못되었다. 제목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심각한 일이다. “가게 세 줍니다”의 제목이 시의 내용과 정 반대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인에게는 듣기에 같은 말이라도 띄어쓰기 등을 잘 해야 하는 의무가 부여된 것이다. 문법은 감정 소통의 최소한의 기본 장치이다. 이 룰을 지키지 않으면 작품 앞에서 독자가 이해를 못하거나 감동이 전달되지 않거나 오히려 불편하거나 역효과를 일으킬 수도 있다. “가게 세 줍니다”의 제목이 왜 이 작품에서 적절치 않을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자. “가게 세 줍니다”는 우선 <가게(명사)+세(명사)+줍니다(동사)>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알기 쉽게 표현하면 “가게 세 줍니다”는 “가게의 세를 줍니다(집주인에게 세들어 사는 사람이 집세를 주는 것)”이 된다. 그래서 시인은 같은 말이라도 다른 표현법을 써서 독자들이 혼란스럽지 않게 창작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면 제목을 어떻게 달아야 할까. 여기서 제목은 아마도 이렇게 달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가게 세줍니다”, 혹은 “가게 세놓습니다.”, 혹은 “가게 빌려줍니다.” 정도가 적당한 표현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보는데 어차피 이것은 필자 본인의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다. 만약 “가게 세줍니다”라고 제목을 붙이면 이 “가게 세줍니다”는 <가게(명사)+세줍니다(동사)>의 형태가 되어 이 시의 제목으로서 무난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는데 이것도 필자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다.

이 작품은 띄어쓰기도 잘 안 되어 있다. 물론 인터넷 상의 오기誤記일 수 있다. 그러나 인터넷 상에 올려진 신춘문예 당선 시 작품이 오기인 것은 지금까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그만큼 복사해서 옮겨가는 네티즌들이 시 작품은 소중하게 다룬다는 것이다. 띄어 써야 할 부분을 붙여 쓴다든가 붙여 써야 할 부분을 띄어 쓸 수도 있다. 그러나 특별한 시적 효용이 기대되지 않는 한 철저히 띄어쓰기 법칙은 지켜져야 한다. 특히, 이 작품의 제목에서 띄어 쓸 때와 붙여 쓸 때는 전혀 다른 상황이 되어버릴 수도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제발, 신춘문예 작품을 심사하여 선하는 심사위원도 정확하게 심사하여 신춘 때마다 응모하는 수많은 문학도들에 대한 의무를 다해주기를 바란다. 맞춤법이 잘 된 시가 있고 맞춤법이 틀린 시가 있을 때, 맞춤법이 잘 된 시가 감동이 덜 하더라도 필자는 그 작품을 당선작으로 할 것이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몇 천 편이 들어오는 시 작품 중에서 맞춤법 제대로 맞춘 작품이 없다는 것을 나는 이해 못한다. 문법 공부를 철저히 하고 창작하여 신춘문예에 응모하는 문학도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또한 “벌 나비가 주 고객 이였는데요”에서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독자들은 다 알 것이다. 특히, ‘이였는데요’의 부분이다. 필자는 ‘이었는데요’라고 쓸 때 더 잘 된 표현이라고 본다. 그리고 “(참새가) 가위로 꽃대를 자르다”(‘참새가’는 필자가 삽입)에서 필자는 참새가 어떻게 가위를 쥐고 꽃대를 자를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된다. 시적 표현의 자유는 허락될 수 있는 것이지만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는 시적 자유가 되어야 한다. ‘(참새가) 가위로 꽃대를 자르다’의 시어를 ‘(참새가) 가위 같은 부리로 꽃대를 자르다’로 표현하면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다고 본다.

이 시는 제목뿐만 아니라 내용에도 ‘가게 세 줍니다’라는 시어가 있다. 그래서 이 시는 내용과 제목이 모두 안 맞다. 또한 3연 마지막과 4연 마지막의 전개가 너무 급하다. “여름이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갔어요 // 가을이 이삿짐 트럭을 타고 지나간 다음 날 나는 보았죠.”의 시어의 전개 구조 속에서 여름이 지나갔는데 바로 가을이 지나갔다고 하는 표현은 시상이 너무 급하게 흘러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부분에서 시적 풍요를 기대할 수 없는 급박함 속의 느슨한 긴장감이 이 시의 가치를 갉아먹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연을 구별해 놓았다고 하지만 급한 것은 급한 것이다. 여름과 가을 사이에 표현되지 못한 무엇인가가 있다는 얘기이다.

17. ‘맆 피쉬’(양수덕, 경향신문 당선작) 분석
이 시는 설명조 혹은 산문체의 어조로 이루어졌다. 특히 “맆 피쉬라는 물고기는 물 속 바위에 낙엽처럼 매달려 산다”라고 친절히 설명해 준다. 이러한 부분들이 이 시가 시답지 못하게 만드는 부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독자들은 알 수 있을 것이다. 앞의 문장 “땡볕더위에 잎맥만 남은 이파리 하나 / 지하도 계단 바닥에 누워 있던 청년은 / 양말까지 신고 노르스름한 병색이었다”에서 ‘지하도 계단 바닥에 누워 있던 청년은 / 양말까지 신고 노르스름한 병색이었다’는 바로 앞의 ‘땡볕더위에 잎맥만 남은 이파리 하나’를 설명하고 있는 말이다. 이러한 문장들이 이 시의 긴장력을 흐트러뜨리고 있다는 것을 앎으로써 과감하게 응축된 문장으로 더 다듬어져야 함을 필요로 하는 시이다.

18. ‘고물차 팔던 날’(최윤희, 창조문학신문 당선작) 분석
이 시의 “종말을 서명했다”는 문법적으로는 썩 잘 표현된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시적 표현으로서는 성공하고 있다. “한 때 새파란 어깨를 걸고 쏘다니던”의 시어는 이 시의 내용 앞뒤 문장에 잘 관계되지 않아서 독자와의 소통을 방해한다. 바로 ‘어깨를 걸고’의 표현 때문이다. 어깨를 건다는 이미지가 독자에게 잘 와 닿지 않는다.

19. ‘나무의 공양’(이경례, 영남일보 당선작) 분석
“졸참나무가 제 몸통을 의탁해왔네 / 지난 태풍에 겨우 건진 살림살이지만 / 기와 불사를 생각하며 제 몸 선뜻 내 놓았다네”는 이 시의 첫 연에 나오는 문장들이다. 그런데 이 문장들 안에 있는 ‘지난 태풍에 겨우 건진 살림살이지만’이란 시어는 없어도 의미가 아주 잘 통한다. 그런데 이 ‘지난 태풍에 겨우 건진 살림살이지만’의 시어가 들어감으로 해서 독자에게 혼란을 준다. ‘살림살이’가 졸참나무의 살림살이인지 아니면 졸참나무가 살림살이인지 그것도 아니면 작가의 내면에 있는 살림살이인지 불분명하며 이 부분에 들어갈 문장으로서는 적절치 않다. 왜냐하면 이 부분에서 문맥상 ‘지난 태풍에 겨우 건진 살림살이지만’의 ‘살림살이’는 졸참나무가 살림하던 살림살이이어야 한다. 그런데 그 ‘살림살이’가 졸참나무의 몸통이니 더욱 이해를 하기 어렵게 만든다. 그렇다면 차라리 이 문장은 없어도 좋을 뻔했다. 만약, 이 시의 첫 행에서 ‘졸참나무가 제 몸통의 일부를 의탁해왔네’로 한다면 이해가 될 수도 있다. 시란 내 안에서 있지 않고 표현의 예술로 승화되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에 필히 독자를 의식해야 한다. 그런데 독자가 전혀 알 지 못하는 혼자만의 독백으로 시를 쓴다면 그것은 시문장의 규칙에서 벗어난 것이다. 내 감동이 타인에게 전해질 수 있는 소통의 문장이 시이며, 나와 타인의 감성의 통로를 연결해주는 것이 시의 문장이다.

20. ‘되창문’(정성수, 창조문학신문 당선작) 분석
“뀅한 눈으로 바라보는 이웃집 할아버지”의 ‘뀅한’의 기본형 ‘뀅하다’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로 하자. 이 ‘뀅하다’는 ‘멍하다’의 평북 방언이다. 이 ‘멍하다’의 뜻은 “정신이 나간 것처럼 자극에 대한 반응이 없다.”, “몹시 놀라거나 갑작스러운 일을 당하여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얼떨떨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뀅하다’에는 ‘무엇에 놀란’의 의미도 가미가 될 수 있다. 그런데 ‘퀭하다’의 뜻을 보면 “눈이 크고 정기가 없다. 눈이 퀭하니 어디가 아픈 모양이다.”의 뜻이다. 이 시의 문맥상 ‘퀭하다’의 시어가 더 밀접하게 관련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뀅하다’라는 방언이 이 시에 사용됨으로서의 특별한 기능을 하는 것도 없다. 그럴 바에는 ‘퀭하다’를 시어로 사용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 시의 셋째 연은 시 전체의 긴장력을 흐트러뜨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세 번째 연의 “법정 제3군 전염병, 폐결핵 / 폐결핵을 위해서 / 크리스마스 씰은 몇 장이나 사면 되느냐”라는 문장에 대해 또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 시는 ‘나’가 아내의 질병인 폐결핵을 완치시키기 위해서 애쓰고 있다는 것을 독자에게 알려주고 있다. 그런데 이 문장에서는 그 행위가 ‘폐결핵을 위해서’라고 되어있다. 그러면 폐결핵을 위해서 ‘나’가 공부를 하는 것이 되고 만다. 이 문장을 ‘폐결핵을 치료하기 위해서’라고 하면 문장이 더욱 명료해짐을 볼 수 있다. 이 시는 두 번째 연까지 긴장력이 지속되다가 이 세 번째 연에서 그 긴장력이 흩어진다. 그리고 네 번째 연에서는 긴장력이 다시 살아나지만 세 번째 연의 흐트러짐 때문에 전체적인 긴장력은 힘을 잃고 만다.

나머지 신춘문예 시 당선작들 12편은 긴장력 순위를 매기지 않았다. 그 12편의 작품에 대해서 짧게 언급하겠다.

♣ ‘비 온 뒤’(구민숙, 대전일보 당선작) 분석
이 시의 세 번째 행인 “또르르! 굴러”에서 ‘!’가 썩 잘 표현된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담아 내 온”에서 ‘내’가 명사가 아닌 이상 ‘내온’으로 해야 더 맞는 표현이 된다. “말 안 듣길 소문난”에서 ‘안 듣길’을 ‘안 듣기로’로 해야 하지 않을까. “서른여섯 나는, 물컹해진 나의 그것과 비교하며 / 녀석들을 살짝 만져보고도 싶다 ”의 시어들은 물방울의 싱싱함을 보고 자신의 그것이 물컹해진 것과 비교하며(무슨 비교인지도 모르겠지만) 녀석들(물방울들)을 살짝 만져보고 싶다는 표현으로 보여진다. 그런데 이 시어들이 전체적인 긴장감을 흐트러뜨리고 있다. 시어로서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

♣ ‘입춘’(안성덕, 전북일보 당선작) 분석
잘 창작된 작품으로서 시인이 그려놓은 따뜻한 봄의 색깔과 의미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마지막 부분이 좀 걸렸다. “돌아올 개개비떼 노래 낱낱이 기록하겠다 / 코흘리개 맡겨놓고 감감 소식 없는 며느리도 / 한 소식 보내오겠다”에서 ‘기록하겠다’, ‘보내오겠다’는 이수복(李壽福,1924-1986)의 ‘봄비’라는 시어 ‘짙어오것다’. ‘지껄이것다’, ‘타오르것다’ 등의 말맛(어감)을 닮아있다. 물론 의식하면서 창작하지는 않았겠지만 되도록 자신의 독특한 창작의 향기로만 독자의 창을 깨우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것이 시의 은밀한 맛이다. 또한, 시어 “코흘리개 맡겨놓고 감감 소식 없는 며느리도 / 한 소식 보내오겠다”에서 ‘감감 소식 없는’은 <감감(명사)+소식(명사)+없는>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은 ‘감감히’라는 부사형에서 ‘히’를 생략함으로 말미암아 독자는 ‘감감’을 명사로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시어는 ‘감감의 소식 없는’으로 되어 의미가 모호해진다. 예를 들어 ‘그녀의 결혼 소식을 감감 모르고 있었다’의 경우와는 다르다. 이때는 <‘감감’+모르고>의 형식이므로 자연스럽게 독자는 ‘감감’이 부사형이라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시어는 시어가 꼭 알맞게 꽂혀야 될 부분이 있다. 시에 사용되는 언어는 같은 뜻이라고 해도 아무 곳에나 끼워져서 존재할 수 없는 시적 생명체이다.

♣ ‘기와 이야기’(이수윤, 전남일보 당선작) 분석
이수윤의 시 <기와 이야기>의 문장 “된장 꽃으로 핀 푸른 곰팡이도 밉지만은 않은 객 / 선선히 걷어내면 풋고추가 달다는 어머니는 // 먼데 소식에 귀를 세우는 능소화 / 하늘을 능멸하고 조소하는 그것을 왜 심으셨나 / 기와는 말없이 다 알고 있다”에서 살펴보기로 하자. ‘선선히 걷어내면 풋고추가 달다는 어머니’의 시어가 독자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을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필자는 ‘~하면 ~하다’의 이 문장 구조에서 ‘~하면’에 해당하는 문장은 조건에 해당하고 ‘~하다’에 해당하는 문장은 결과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이 ‘~하다’의 행위는 ‘~하면’의 결과이기 때문에 이 문장에서 ‘풋고추가 달다’는 결과는 ‘선선히 걷어내면’의 결과가 되어야 하는데 독자는 어떻게 해서 <선선히 걷어내면 풋고추가 달게 되는 것>인지를 이해할 수가 없을 것이다. 또 ‘기와는 말없이 알고 있다’에서 ‘기와는 말이 있으면서 알아야 하는 것인가’라는 독자의 질문에 직면할 수도 있다. ‘말없이’의 시적 효용이 제대로 발산되지 못한 경우이다. 이 ‘말없이’를 ‘말이 없지만’으로 바꾸면 무리 없이 이해될 수 있다. 또한 ‘말하지 않고 있지만’으로 바꾸어도 뜻이 통한다.

♣ ‘골목 안으로 열리는 봄날의 동화童話’(정원, 경상일보 당선작) 분석
정원의 당선작에서 “동네 골목골목 안은 그 화음에”의 시어에서 ‘동네 골목골목 안은’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동네(명사)+골목골목(명사)+안은>의 형식이다. 그래서 이것을 독자들이 이해한다면 <동네가 골목골목을 안았다>고 하는 뜻인지 아니면 <동네의 골목골목 안(內)>이라고 하는 의미인지 혼동하기 쉽게 되어 있다. “아이들 하나 둘 길 위에 비워지고”에서 ‘길 위에’를 ‘길 위에서’로 하면 시어가 더 정확해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이 문장은 사실 <아이들이 하나 둘 떠나 길이 비워진다>는 뜻일 것이다. 그런데 이 문장은 ‘아이들’이 비워진다고 하고 있어서 독자의 이해를 힘들게 하고 있다. 그런데도 시어로서 무난하다. 왜냐하면 이 문장에서 아이들이 비워지는 것이 아니고 길이 비워진다는 결론에 독자들이 쉽게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시어가 작가 나름의 성공을 거두었다고도 볼 수 있다.

♣ ‘휠체어 달리기’(김봉래, 동양일보 당선작) 분석
이 시는 작위적인 느낌이 많이 드는 시어들로 이루어져 있다. 문학작품은 되도록 작위적인 느낌 없이 자연스러울수록 좋다. 그리고 “생의 고비가 직선의 레인 일 수는 없는 거라고 위로”에서는 ‘직선의 레인’이 ‘직선의 레일’이 되면 시어가 더욱 명확해 질 수도 있다.

♣ ‘정글에서 온 풍경’(유병만, 경인일보 당선작) 분석
문장이 서로 자연스럽게 어울려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다. 그리고 “손가락이 주춤 열리고”, “들녘 한 켠이 ~ 곰곰이 쭈그려 앉는다” 등의 표현에서 주어와 부사와 동사와의 관계를 잘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런 표현은 독자들을 어리둥절하게 할 수도 있다.

♣ ‘선물’(윤이산, 뉴스제주 당선작) 분석
이 작품은 수필처럼 읽힌다. 각 행을 이어서 읽으면 더욱 그러한 느낌이 들 것이다.

♣ ‘호모 오토모빌리스Homo automobilis’(정인숙, 창조문학신문 당선작) 분석
2009 경제신춘문예에서 시 ‘하루살이’로 가작 입선된 작가이다. 창조문학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과 경제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동시 당선된 작가로서 2009년 신춘문예 2관왕이다. 시가 산문화되는 추세이지만 좀 더 시선의 응축이 필요하다. 이 시가 더 응축되고 서정화 되면 더 좋은 작품이 될 것이다.

♣ ‘냄비 속의 여자’(강성남, 농민신문 당선작) 분석
강성남의 시 [냄비 속의 여자]에서는 시적 진술이 일관되지 않고 있음이 발견된다. “화기를 가하는 건 늘 내부 쪽이다 / 잊으려 하면 할수록 / 불은 두꺼운 바닥을 투과하여 / 이마까지 달군다”에서 ‘화기를 가하는 건 내부 쪽’이라고 하면서 불이 ‘두꺼운 바닥을 투과’한다고 함으로써 앞뒤의 진술이 서로 맞지 않다. ‘두꺼운 바닥을 투과’한다는 것은 불이 외부에서 들어옴을 얘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닥이 다층인 그녀 / 확 끓어올랐다 파르르 식어버리는 성깔이 아니다 / 급작스런 온도 변화에 민감하다 / 함부로 열을 가하는 것은 금물이다”에서 ‘그녀’는 ‘확 끓어올랐다 파르르 식어버리는 성깔이 아니다’라고 한 뒤에 ‘급작스런 온도 변화에 민감하다’고 함으로써 뒤의 문맥이 앞의 문장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 또한, ‘함부로 열을 가하는 것은 금물이다’라고 하는 문장이 왜 여기에 있어야 하는지, 왜 ‘함부로 열을 가하는 것은 금물’인 것인지 독자는 알 수 없다. 시어에 대한 타당성이 확보되지 못한 경우이다.

♣ ‘하루살이’(정인숙, 경제신춘문예 가작) 분석
3연으로 이루어져 있고 독자의 공감을 얻고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좀 더 압축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산문적 진술에 의해 시적 긴장이 풀어져 있음이 발견된다. 특히 ‘...’의 사용이 더욱 이 시의 긴장력을 풀어놓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 ‘아르정탱 안을 습관적으로 엿보다’(윤은희, 무등일보 당선작) 분석
시는 긴 시이든 짧은 시이든 좋은 작품이 되려면 긴장력을 확보해야 하는데 이 시는 긴장력 확보에 실패하고 있다. 또한 각 부분 간의 연결이 자연스럽지 못함으로써 창작자와 독자 간 감성의 소통에 불편을 준다. 장시의 호흡 속에서 시적 긴장력을 획득하고 있는 작품이다. 그렇지만 시어가 좀 더 적절하게 활용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꽃화분”의 ‘꽃’과 ‘화’는 같은 뜻을 지닌 단어이다. “약하게 슬어지는 音調”에서 ‘슬어지는’을 ‘스러지는’으로, “남자의 팔뚝이 검게 그을다만 남성성을 과시하고 있어요”에서 ‘그을다만’을 ‘그을리다 만’으로, 그리고 “맥주의 쓴맛을 혀 위에 굴리며 곁눈짓으로 농담을 엿들었다”에서 ‘곁눈짓으로’를 ‘곁눈질로’라고 바꾸면 좀 더 시어가 적절하게 사용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 ‘내압’(이병승, 경남신문 당선작) 분석
이 시는 작위적인 느낌이 강하다. 그것은 시인이 어떤 낱말을 생각하고 충분한 숙성, 혹은 조탁 과정 없이 바로 시어로 기술해버리는 행위에 근거하고 있다. 이를테면 ‘시뻘건 각혈’을 ‘시뻘건 각혈처럼’으로 바꾼다면 시어가 훨씬 자연스러워질 것이다.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녹물이 피처럼 붉을 뿐이지 ‘각혈’은 아닌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 시에서 행해지는 ‘단정적 기술’에 의해서 얻는 시적 이익은 미미하다고 판단되기 때문에 그런 화법을 사용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시는 비유의 어법에 의해서 좀 더 풍요롭고 자연스럽게 흐를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리고 “건너 집 옥상 화단”에서 ‘건너 집’이란 표현이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건너 + 집>의 형식인데 부자연스러운 생소함이다. 북한어에 ‘건넌집’이라는 표현은 있다.

결론적으로 맞춤법에 맞지 않고 문장의 오류 등이 많거나 시적이지 않은 시는 신춘문예 당선작으로서 부적절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2009년 신춘문예에도 역시 산문 형식의 시작법이 주를 이루었고, 맞춤법에 맞지 않거나 문장의 오류 등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적어도 신춘문예에 당선되는 작품은 맞춤법과 문장의 활용에 있어서 정확해야 한다. 그리고 산문 형식의 시작법이 정당성을 획득하려면 그 시가 산문처럼 이루어져 있다고 하더라도 시적 운문성과 긴장력을 획득해야 한다. 그것이 생명인데 문학도가 산문을 산문처럼 써놓고 시라고 응모할 수 있는, 또한 그것이 신춘문예 시 당선작으로 뽑힐 수 있는 신춘문예 제도라면 신춘문예의 의미는 이미 퇴색되어 있는 것이다. 또한 맞춤법이 안 되었거나 시가 아닌 산문을 신춘문예 시 당선작으로 뽑는 심사위원이 있는 한 한국문단의 미래는 절망 그 자체다.

그리고 외국어를 시어로 사용하는 시인들이 있다. 외국어를 시어로 사용하는 데에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 현재 한국의 문화 속에 외래어가 계속하여 형성되고 있고 외국문학과 문화가 우리 한민족의 삶 속에 깊이 자리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우리의 아름다운 한글이나 전통적인 문학 혹은 문화 양식이 흐트러지고 퇴보해도 좋다는 이야기에 정당성을 부여하지는 못한다. <박인과 문학평론가>

창조문학신문사 개요
창조문학신문사는 한민족의 문화예술을 계승하여 발전시키고 역량 있는 문인들을 배출하며 시조의 세계화를 지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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