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와이어)--LIG손해보험(www.LIG.co.kr, 대표이사 구자준)은 5일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LIG손해보험 본사 사옥에서 임직원과 영업가족, 고객 등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창사 50주년 기념식’을 개최했다.

1959년 범한해상이라는 이름으로 창립된 이래 지난 달 27일로 창사 50주년을 맞은 LIG손해보험은 고객에 대한 감사의 뜻을 전하고, 임직원 및 영업가족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 이 날 행사를 마련했다. 50주년을 축하하는 기념 떡커팅과 임직원의 흥겨운 율동 공연 등 시종일관 밝은 분위기 속에 치러진 이날 행사는 기념식에 직접 참석한 30여명의 고객에게 감사패를 전달하는 특별한 순서로 끝을 맺었다. 초청된 고객들은 LIG손해보험에 적어도 20년 이상 인연을 맺어온 장기 우수고객들로, 구자준 회장이 직접 감사패와 소정의 선물을 직접 전달하며, 오랜 기간 회사를 아끼고 사랑해준 고객들에 대한 감사의 뜻을 표했다.

기념식 직후에는 LIG손해보험 본사 1층에 제작된 ‘LIG손해보험 50주년 역사관’ 제막식을 가졌다. 5개의 기둥으로 구성된 ‘LIG손해보험 50주년 역사관’에는 고객과 함께해온 지난 50년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새겨져 있어 오가는 이의 시선을 끌었다.

구자준 회장은 이날 기념사를 통해 “LIG손해보험이 업계의 ‘리딩 컴퍼니’로, 그리고 100년을 향하는 장수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고객의 변치 않는 사랑과 성원 덕분이었다며, 고객과 함께 한 50년을 넘어 고객과 사회에 희망을 전하는 100년 기업을 향해 더욱 힘차게 전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LIG손해보험 50년, 주요 발자취

LIG손해보험은 1959년 1월 27일, 범한해상(汎韓海上)이란 이름으로 보험업에 첫 발을 내디뎠다. 일찍이 보험업에 관심을 가져오던 조선기업㈜ 부사장 오진환(吳鎭煥) 씨가 1957년부터 보험회사 설립을 위한 본격적인 준비에 착수해 1년 6개월여 만에 재무부로부터 보험업 면허를 인가 받을 수 있었다. 당시 6·25전쟁 휴전 협정 이후 원조물자와 수출입 물동량이 급속도로 증가하며 해상보험 회사의 영업 전망이 매우 밝았다. 태평로 2가에 위치한 덕수빌딩 2층에 사무실을 마련한 범한해상은 115㎡ 규모 사무실에 총 임직원 9명으로 매우 단출하게 시작됐다.

회사가 창립된 1959년의 가장 큰 사회적 이슈는 태풍 사라호의 강습이었다. 9월 23일 발생한 사라호는 사망·실종 1,000여명의 인명피해와 15만 5,841 세대의 가옥을 파괴시켜 전무후무한 피해를 발생시켰다. 해상보험과 관련해 해상항공 풀이 보험계약자에게 지불해야 하는 보험금은 6,400여만환이었는데, 이중 1,125만환의 보험금을 지급해야 했던 범한해상은 신생 회사였음에도 그 어느 회사보다 신속하고 정확하게 보험금을 지급해 고객들로부터 공신력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국내에서 두 번째의 해상보험 전업회사로 출발해 적하보험에 주력하던 범한해상은 이후 선박보험과 화재보험, 그리고 특종보험 등에 차례로 진출하며 종합 손해보험사로서의 면모를 갖추었으며, 이런 발전은 영업실적으로 즉각 나타났다. 창업 10년 째인 1968년의 실적을 보면 원수보험료 수입이 4억9,217만원, 정미보험료 수입이 3억7,692만원으로 창업 원년에 비해 각각 33배, 27배 이상의 괄목한 만한 성과를 올렸다.

기업보험에 치중해 있던 보험시장이 가계보험을 개척해나가기 시작하던 1970년, 범한해상은 럭키그룹에 편입돼 시장 경쟁력을 비약적으로 배가시킬 수 있었다. 럭키그룹은 오랫동안 보험업 진출을 고려했던 故 구인회(具仁會) 럭키그룹 창업회장의 뜻을 살리고, 1967년부터 가동에 들어간 호남정유의 막대한 원유 수송 물량을 감당하기 위해 범한해상 인수에 적극적이었다. 럭키그룹에 편입되면서 대외 공신력이 높아졌을 뿐 아니라, 경영쇄신과 영업조직을 대폭 강화한 범한해상은 이후 급격한 성장곡선을 보이며 업계 상위권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1970년대 손해보험 업계의 전체 성장률이 41.6%를 기록한 반면 범한해상의 성장률은 61%를 기록, 1980년에 거수보험료 304억원을 달성하며 창사이래 처음 업계 정상에 등극했다.

1988년, 모그룹의 이름을 따 ‘럭키화재’로 이어 1995년에 ‘LG화재’로 사명을 변경한 LIG손해보험은 이후로 고객 만족을 최우선 가치로 정하고 각종 서비스를 선보이며 업계를 주도해 왔다. 업계 최초로 고객프라자를 신설하고, 자동차 긴급출동 서비스인 ‘매직카서비스’를 도입하면서 보험 서비스에 일대 혁신을 불러 일으켰다. 특히 1996년 시행한 ‘매직카서비스’는 국내 동종 업계는 물론 외국 손해보험사까지 벤치마크를 할 만큼 큰 호응을 이끌어내며 회사의 명성을 드높였다.

1997년 불어 닥친 IMF란 국가적 위기로 말미암아 한 때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제 11대 대표이사 사장으로 구자훈(具滋薰) 사장이 부임하며 비상경영체제로 돌입, 수익성 중심의 균형성장 추구를 통해 경제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었다. 오히려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에는 보험전문 신용평가회사인 A.M.Best로부터 국내 보험업계 최초로 A-(Excellent) 등급을 획득하며, 명실공히 국내 우량 보험회사로의 입지를 굳혔다.

2002년 4월, 현 대표이사인 구자준(具滋俊) 회장이 대표이사 사장으로 취임하며 ‘LG화재’의 재도약을 이끌었다. 구 회장은 ‘마라톤 경영’, ‘탐험 경영’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며 철저한 준비와 기초체력, 그리고 불굴의 의지와 도전의 자세를 사내에 전파했는데, 이미 적자에 허덕이던 럭키생명을 마라톤 경영을 통해 부임 1년만에 흑자로 전환시킨 경험을 가지고 있는 그였다. 구 회장은 취임 이듬해인 2003년에 새로운 경영전략인 ‘비전 2010’을 선포하며 초우량 금융그룹으로의 도약을 위해 부단한 혁신활동을 전개했다.

현재의 사명인 LIG손해보험으로 개명한 것은 지난 2006년 4월. 1999년 LG그룹으로부터 계열 분리한 이래 ‘LG화재’를 계속 사용해오다 급속도로 진행돼 가는 금융 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미래 지향적인 CI로의 변경을 단행했다. 사옥도 이사했다. 강남구 역삼동에 지상 18층 지하 6층의 ‘LIG타워’를 신축해 새로운 강남시대를 연 것이다.

LIG손해보험의 2008년 한해 매출액은 4조4,610억원, 12월 기준 자산은 7조9,422억원에 이른다. 회사 규모에 맞춰 식구수도 늘어 현재 근무하는 임직원만 2,800여 명에 영업가족은 2만여명에 이른다. 연 매출 1,400여만원, 총 직원 9명으로 시작했으니, 가히 비교하기도 힘들 정도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하겠다.

고객과 함께한 50년, 보험 선진화에 앞장서 온 50년

1959년, 비록 보험업계에서는 비교적 후발주자로 시작했지만, LIG손해보험은 언제나 한 발 앞선 제도와 서비스로 국내 손해보험 시장의 발전을 선도해왔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자동차보험 서비스의 혁명이라 할 ‘매직카서비스’. 1996년 3월에 선보인 ‘LG 매직카 서비스’는 무료 긴급출동 서비스, 자동차 구입자금 대출서비스, 보상 만족을 실현한 안심콜 서비스 등 그야말로 자동차보험에서 가능한 모든 서비스를 하나로 묶어 제공하는 종합서비스였다. 특히 무료 긴급출동 서비스에는 배터리 충전, 타이어 교체, 비상 급유 서비스 등 자동차 운행시 발생할 수 있는 긴급 상황이 거의 모두 포함돼 있어 고객은 물론 경쟁사들로부터 뜨거운 관심의 대상이 됐다. 현재 거의 대부분의 자동차보험사가 ‘매직카서비스’를 모델로 해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당시 ‘매직카서비스’가 시장에 던진 파장과 영향력을 추정해볼 수 있다.

시간을 오래 거슬러 올라가 회사가 문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은 1962년, LIG손해보험(당시 범한해상)은 업계 최초로 항공보험을 개발하며 특종보험 시장을 선도했다. 해상과 화재보험 계약을 둘러싸고 경쟁이 치열해지자 업계는 새로운 보험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특종보험에 관심을 돌리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당시로서는 새로운 보험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었는데, 보험증권의 양식은 물론 적용요율의 예조차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40여 차례에 걸친 외국계 재보험사와의 서신 및 정보교류 끝에 항공보험 개발에 필요한 제번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고 마침내 항공보험 상품을 완성해 그 해 10월, 신생 항공사인 대한항공공사와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

LIG손해보험은 세계화 추세에 따른 국제경쟁력 강화에도 앞장섰다. 1978년 세계보험시장의 중심지인 영국의 런던에 주재사무소를 개설한 것을 시작으로 1987년 미국 뉴욕, 1988년 일본 동경, 1995년 중국 천진과 베트남 하노이에 주재사무소를 각각 설치하며 중장기 해외진출을 위한 초석을 일찌감치 만들어 나갔다. 현재 LIG손해보험은 미국과 인도네시아에 법인을 설립해 운영 중이며, 중국에서도 지난해 영업을 위한 내인가를 획득해 2009년 내 독립법인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2006년 4월, ‘LIG손해보험’으로의 사명 변경을 단행하며 업계 최초로 상호에 ‘손해보험’을 적용했다. 기존의 화재보험이나 해상보험이 손해보험업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점차 줄어들고, 매출의 절반 이상을 가계보험이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명을 ‘화재’나 ‘해상’만으로 국한 짓는 것이 오히려 부자연스러운 일이었지만, 그 어느 곳도 사명을 변경하는 위험을 감수하지는 않았다. LIG손해보험의 사명 변경 이후 3년이 지나지 않은 현재, 종합 손해보험사 12곳 중 6곳이 상호에 ‘손해보험’을 넣어 사용하고 있다.

LIG손해보험 CI의 그래픽 아이콘인 ‘희망구름’은 고객의 소중한 꿈과 희망을 지켜주고 더 나아가 실현시켜 주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Leading Insurance Group’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LIG’라는 사명처럼, LIG손해보험은 보험금융 전문가로서 미래를 선도해 가는 기업, 고객과 사회에 희망을 전하는 기업이 되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달린다. 지난 50년을 그래왔던 것처럼.

“위기를 기회로, 고객과의 희망 약속 100년”

최근 전세계적인 금융위기 확산, 급속한 고령화의 진전, 자본시장통합법 시행 및 새로운 금융상품 판매채널의 도입 등에 따른 금융환경 변화는 이전의 시대와는 전혀 다른 게임의 룰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LIG손해보험은 또 다른 50년을 맞이하며 ‘고객과 함께한 50년 희망의 약속 100년’이라는 슬로건과 함께 제2의 창업을 시작하는 자세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LIG손해보험은 2017년까지 현재의 손보업계 내 2위권 그룹에서 벗어나 Top-tier 그룹으로 도약하고자 한다는 계획이다. Top-tier 그룹 도약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핵심사업인 손해보험업의 경쟁기반이 강화돼야 한다는 판단 아래, 2010년까지 전통채널의 양적·질적 우위확보를 위한 혁신노력과 함께 신채널 역량 강화를 통해 향후 금융산업에서 핵심역량으로 예상되는 멀티채널 리더십 확보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뿐만 아니라 금융겸업화 및 고령화 추세에 능동적으로 대응해 혁신적인 금융 및 생활보장서비스 모델을 단계적으로 구축해 나갈 계획이다. 기 진출한 증권업 등 투자관련 금융업을 지속적으로 강화하여 고객에게 원스톱 금융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종합 금융투자회사로 발전시킨다는 전략이다. 또한 더 나아가 금융업과 시너지효과를 가지면서 국민들의 안락한 노후생활 등 명품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다양한 서비스 사업분야 진출을 적극 추진해 고객의 Life Stage별 Total Service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해 나간다는 중장기 계획도 가지고 있다.

LIG손해보험 구자준 회장은 “최근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의 확산과 금융환경의 급격한 변화는 우리에게 많은 과제를 안겨주고 있지만, 고난과 역경을 도전과 열정으로 슬기롭게 돌파해온 지난 50년의 소중한 경험은 100년 기업의 대업을 달성하는 값진 밑거름이 될 것”이라며, 금융위기 극복과 중장기 비전 달성을 자신했다.

KB손해보험 개요
KB손해보험은 대한민국의 손해보험 회사다. 전신은 1959년 1월 세워진 범한해상보험이다. 1962년 국내 업계 최초로 항공보험을 개발했다. 1970년 4월 럭키금성그룹이 범한의 주식을 인수하고 1976년 6월 증권거래소에 주식을 상장했다. 1978년 세계보험시장의 중심지인 영국 런던에 주재사무소를 개설했다. 1987년 미국 뉴욕, 1988년 일본 도쿄, 1995년 중국과 베트남에 주재사무소를 설치해 해외진출을 위한 초석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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