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와이어)--실물경제가 침체되고 국가간 교역이 부진해지면서 그간 진행되어 온 엔화강세 현상이 주춤하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향후 일본을 비롯한 몇몇 나라에서 수출산업을 지원하고 실물경제 침체를 완화하기 위해 환율절하 시도가 나타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서브프라임 사태가 불거진 2007년 하반기 이후 엔화의 강세 국면이 나타나고 있다. 2007년 7월 중 달러당 123.8엔까지 절하되었던 엔-달러 환율은 금융위기가 현실화되면서 빠르게 절상되어 작년 연말에는 87엔/달러까지 하락했으며, 최근에도 95엔/달러 내외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엔-달러 환율이 90엔 아래로 떨어진 것은 1995년 이래 14년만에 처음이다. 특히 금융위기 상황에서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달러화뿐만 아니라 유로, 파운드, 위안 등 대부분의 주요 통화에 대해 강세를 나타냄으로써 지난 2월까지 엔화의 실질실효환율(2007년 7월 대비 33.0%)이 엔-달러 명목환율(24.6%)보다 더욱 가파르게 절상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1990년대 후반 동아시아 외환위기나 2001년 IT 버블 붕괴 당시와 같은 경제위기 상황에서 엔화는 약세를 나타냈지만, 이번 금융위기가 시작되고부터는 강세를 나타내고 있다. 엔화의 이러한 강세 현상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현실화되는 과정에서 전세계적으로 엔화에 대한 수요가 빠르게 늘어난 것에 기인한다. 하지만 최근 일본의 경제상황이 빠르게 악화되면서 부분적으로는 이러한 엔화 수요가 약해지는 모습도 함께 나타나고 있어 향후 엔화환율의 방향성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산업에 있어 일본경제가 부품 및 소재의 주요 조달원인 동시에 수출경쟁국이라는 관점에서 향후 엔화 환율의 움직임이 가지는 중요성은 더욱 크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안전자산으로 선호

글로벌 금융위기가 현실화되면서 국제금융시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안전자산 선호현상은 달러화뿐만 아니라 엔화에 대한 수요도 함께 증가시켰다. 2007년 7월과 8월 투자은행들의 펀드환매 중단 조치, 2008년 3월의 베어스턴스 파산과 9월의 리만 브라더스 사태 등 금융시장 불안정이 증폭되는 주요 국면마다 엔화 가치는 강한 상승압력을 받았다. 이는 일본 금융시장이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라는 판단에 근거한다. 즉 일본 금융기관들이 모기지 및 관련 파생상품에 대한 투자로부터 입은 손실이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훨씬 적은 데다, 1조 달러가 넘는 풍부한 외환보유액을 지니고 있어 금융위기 상황에서도 일본 금융시장과 엔화의 가치가 다른 주요 경제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라고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일본 금융기관의 재무건전성 또한 장기불황기 구조조정을 통해 크게 개선되었다.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으로 엔고 추세화

여기에 엔캐리 트레이드의 청산 또한 엔화 강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금융위기의 발발로 국제 금융시장에서 위험회피적인 성향이 크게 확대되었고, 이에 따라 일본에서 낮은 금리로 조달되어 호주, 뉴질랜드, 브라질 등 고금리 통화를 비롯한 전세계 금융시장에 이루어졌던 투자가 부분적으로 청산되면서 다시 일본으로 회귀하고 있다. 여기에 글로벌 금융기관들의 차입의존적인 투자구조가 해소되고 레버리지 비율이 축소되는 과정 또한 엔캐리 트레이드의 청산을 추세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아울러 최근 들어서는 캐리 트레이드의 직접적인 유인도 줄어들고 있다. 미국이 사실상 제로금리 수준에 진입하는 등 금융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주요 경제권의 적극적인 금리인하 정책이 잇따르면서 일본과 해외의 금리차가 과거에 비해 크게 축소되었다. 특히 호주, 뉴질랜드, 브라질 등 캐리 트레이드의 타깃통화가 되는 국가와 일본 사이의 금리 차가 크게 줄어들어 캐리 트레이드의 매력도를 직접적으로 감소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요인들로 인해 금융위기 발생 이후 국제금융시장에서는 엔화 환율이 강세를 나타낼 것이라는 강한 기대가 형성되면서 1년이상 엔화의 강세 국면이 이어져 온 것으로 생각된다. 엔화에 대한 투기적 매수세를 나타내는 엔화 선물 및 옵션에 대한 비상업 순매수 포지션 또한 서브프라임 사태로 금융시장 불안이 고조된 이후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글로벌 실물경제 침체는 엔화 약세 요인으로 작용

이러한 가운데 2008년 말부터 나타나고 있는 실물경제 부문의 심각한 침체 상황은 엔화의 강세를 제약하거나 심지어는 엔화를 약세로 이끄는 요인으로 부각되고 있다.

우선 주요국 경제가 동시에 침체국면으로 빠져드는 상황에서 국가간 교역 또한 크게 위축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전세계 시장에 자본재 및 소비재를 공급해 온 일본 경제가 받게될 타격 또한 상당히 클 전망이다. 세계수요 부진의 여파로 작년 하반기 이후 아시아 주요국의 수출이 감소세를 나타내는 가운데, 일본의 경우 엔화강세 효과까지 겹치면서 수출경기가 급락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수출 부진이 심화되면서 작년 하반기 이후 마이너스를 나타내고 있는 일본 무역수지 또한 악화 폭이 더욱 커지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엔화 약세를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일본경제 전반에 대한 시각 악화

이에 따라 일본 수출기업의 실적악화 또한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수출기업 실적에 대한 이러한 전망의 악화는 일본 주요 기업의 주가에 대해 하락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는 주식 및 채권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의 이탈로 이어지면서 엔화환율의 약세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만성적인 내수부진에 이러한 수출경기 침체까지 가중되면서 2008년 4분기 일본의 경제성장률은 미국, 유럽 등 다른 주요 경제권에 비해 크게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일본경제의 수출의존도가 높아졌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일본의 GDP 대비 수출비중은 약 10% 내외에 머물렀으나 최근에는 20% 수준으로까지 높아졌다. 이에 따라 글로벌 수요 위축과 엔화 강세, 더 나아가서는 교역상대국의 보호주의 성향이 수출 둔화를 통해 일본 경제 전반에 미치는 충격 또한 과거에 비해 더 크게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아울러 일본의 낮은 금리 수준과 장기불황의 와중에 취약해진 정부의 재정 여건은 금융위기와 그에 따른 실물경제 침체에 대한 일본경제의 대응능력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엔화환율 현재 수준 내외에서 등락 예상

최근 일부 경제지표를 통해 실물경기의 하강폭이 다소 완화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이를 통해 곧바로 금융위기의 해소와 실물경제회복을 낙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다양한 금융구제방안이 마련되면서 금융시장이 붕괴될 위험은 줄어들고 있지만, 실물경제 침체는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으며 여기에 인플레이션이나 재정부담 증가 같은 새로운 불안요인들도 부각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금융위기 이후 나타났던 엔화 강세가 금융시장 불안에 대한 일본 경제의 강한 내성과 안정성을 확인시켜 주는 계기였던 반면, 전세계 교역의 위축을 동반한 실물경제 침체 상황은 일본경제가 지니고 있는 상대적으로 취약한 측면을 부각시킬 가능성이 높다. 최근 나타나고 있는 달러당 90엔 후반으로의 상승, 즉 엔화 가치의 약화흐름 또한 이러한 측면을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향후 엔화 환율은 금융위기가 시작된 이후에 나타난 달러당 90엔 중반 수준에서 완만한 약세의 흐름을 나타낼 것으로 보인다. 수출 부진을 비롯한 실물경제 침체에 의한 약세 요인이 계속 반영되는 한편, 해외와의 금리 차 축소 흐름은 거의 마무리 단계이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강세 요인은 완화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향후 금융시장이 간헐적인 불안 발생과 요동에도 불구하고 추세적으로는 점차 안정적 되어 간다고 전제한다면, 엔화가 지니는 신용위험으로 부터의 안전자산으로서의 매력 또한 감소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앞으로 일본 정부의 정책이 실물경제 침체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인지도 엔화 환율의 주요한 결정 요인으로 부각되고 있다.

인위적 환율 절하 시도 가능성

글로벌 실물경제 침체 상황에 대한 일본 경제가 지닌 취약성을 감안할 때, 엔화 환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또 하나의 변수로 외환시장 개입을 통한 엔저 유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엔-달러 환율이 90엔/달러 이하로 다시 하락하면서 강세를 나타내는 경우 이러한 움직임이 가시화될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엔화 환율이 절하되면 현재의 급격한 수출 감소폭을 줄여나가면서 실물경제 전반이 위축되는 것을 상당 부문 완화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이 같은 가능성이 현실화되는 경우 현재 부진한 국면이 지속되고 있는 우리나라 수출에도 작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의 엔고, 원저 상황에서 나타났던 일본산 부품 및 소재의 수입에 대한 부담은 완화되는 반면, 원화약세에 힘입어 수출시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가격경쟁력은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특히 2000년대 들어 우리나라와 일본의 기술격차가 줄어들고 주요 수출품목 가운데 서로 중복되는 부분이 계속 커졌다. 따라서 향후 국제금융시장에서 엔저 및 원고가 추세화하는 경우, 우리나라 수출산업의 매출 및 채산성과 경상수지 개선이 더뎌지거나 심지어는 악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환율과 수출을 둘러싼 이러한 움직임이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데 있다. 앞으로 많은 나라에서 명시적으로든 암묵적으로든 보호주의 성향이 나타남으로써, 수출물량 측면에서의 제약요인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경쟁력 확보 수단으로서 자국환율 절하를 통한 수출단가 인하는 더욱 매력적인 선택으로 부각될 수 있다. 더군다나 개별 기업 입장에서는 현재 전개되고 있는 경쟁구도가 향후 생존 여부의 갈림길이 될 수도 있음을 감안한다면, 정부나 중앙은행으로부터의 이러한 지원에 대한 암묵적인 요청 가능성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외화자산 취득 등의 수단을 통해 산업계가 자발적으로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1930년대 대공황 당시에도 금본위제를 폐지하면서 자국 환율을 평가절하했던 나라들이 그렇지 않은 나라에 비해 실물경제의 회복속도가 상대적으로 빨랐던 경험이 있다. 따라서 향후에도 자국통화의 가치하락을 유도함으로써 수출을 늘리고 성장률을 제고시키려는 노력이 본격화될 유인은 충분한 상황이다.

스위스, 스웨덴, 중국 등의 움직임 주시

전세계 주요국에 대해 작년 하반기 금융위기의 발발 이후 GDP 증가율의 감소폭과 실질실효환율의 절상률을 나타낸 것 가운데 이미 환율불안을 경험하고 있는 나라의 경우 금융시장 불안으로 인해 자국환율에 대한 절하정책을 펴기가 어려워 보인다. 반대로 환율이 안정적이거나 절상된 반면 GDP 증가율의 감소폭이 크게 나타나는 스위스, 덴마크, 스웨덴, 중국, 싱가포르, 대만, 일본 등은 자국 환율을 절하시킴으로써 수출을 늘리고 경제의 성장률을 제고시킬 유인이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 가운데 최근 스위스 중앙은행(SNB)이 외환시장 개입을 선언한 바 있다. 일본 또한 엔화 강세 완화 시도가 이미 현실화되었거나 또는 임박한 것으로 보이며, ‘성장률 8% 보위전’을 시작한 중국의 위안화 환율 절하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물론 이 같은 환율 절하 시도에 대해 국제적인 반대 움직임도 만만치 않다. 연초부터 오바마 미 대통령은 수 차례에 걸쳐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주요 교역상대국들이 외환시장 개입을 통해 수출과 소득을 증가시키는 시도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자국환율 절하를 통한 성장률 제고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금융시장 안정이 가시화되는 시점에 이르면 이러한 움직임은 더욱 활발해질 가능성이 크다. 그 경우 원화환율의 하향 안정 속도가 예상보다 더욱 빨라지는 반면, 수출기업들의 실적이 빠르게 악화될 가능성 또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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