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한 로컬 기업들 대거 포진
그러나 이처럼 글로벌 기업들이 중국 내수 시장 공략을 적극적으로 전개하고는 있지만 현재까지의 성과는 만족스럽지 못하다. 주요 원인으로 강력한 로컬 기업들이 내수시장을 지배하고 있다는 점과 전영점(양판점)으로 대표되는 신유통이 급성장하면서 제조업체들의 협상력이 약화되고 이에 따라 과도한 유통비용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먼저 중국 시장의 경우 강력한 로컬 브랜드들이 존재하고 있어 글로벌 기업들의 시장 진출에 녹녹치 않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인도나 러시아 등 타 신흥시장과는 달리 중국 전자통신시장에서는 각 품목별 시장 점유율 상위권에 주로 중국 로컬 기업들이 포진하고 있다. 특히 작년부터는 범용 제품군은 물론, 글로벌 기업의 아성이라고 할 수 있는 PDP TV, LCD TV 등 하이엔드 제품군에서도 로컬기업들이 상위권으로 부상하고 있다. 선진 시장에도 이미 이름이 알려진 하이얼을 비롯하여 창홍(創虹), 하이신(海信), TCL, SVA(上海廣電) 등 세계적인 생산 규모를 갖춘 메이저 로컬 기업들이 내수시장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이들은 거대한 중국 시장 전체를 커버하는 유통망과 높은 브랜드 인지도를 확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중앙 및 지방 정부의 보이지 않는 지원의 혜택마저 누리고 있다. 이와 같은 경쟁 우위는 가격 경쟁력으로 이어져 로컬 기업들은 대부분의 제품 영역에서 저가를 무기로 이른바 가격 전쟁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이미 브라운관 TV, 전자레인지 등 범용 제품분야의 경우 로컬 기업들의 저가 공세에 시달린 대부분의 글로벌 기업들이 사업을 포기한 지 오래다. 뿐만 아니라 모듈 아웃소싱을 통한 완성품 생산이 비교적 용이한 PDP TV, LCD TV 등 일부 프리미엄 제품 영역에서도 판가 인하를 통해 로컬 기업들은 시장 지배력을 강화해가고 있다. 이처럼 로컬 기업들이 촉발시킨 전 방위적인 가격 전쟁에 내로라하는 글로벌 기업들은 하나같이 맥을 못 추고 있다.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백색가전 분야의 지멘스, 휴대폰 분야의 삼성전자 등 각 품목별로 극히 소수의 기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기업들이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고 한다. 엄청난 중국 내수 시장 잠재력을 보고 시장공략을 강화해 온 글로벌 기업들은 과실 향유는 차치하고 이제 중국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느냐의 여부를 두고 고민해야 하는 처지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높은 유통 비용이 걸림돌
글로벌 기업의 중국 사업 부진의 또 다른 원인으로 높은 유통 비용 구조를 들 수 있다. 중국 시장에서 촉발된 가격 전쟁은 궈메이(國美), 쑤닝(蘇寧) 등 전영점의 급성장에 힘입은 바 크다. 전영점들은 기존의 대리상 시스템을 위협하며 공격적인 매장 증설, 특가 판매, 다양한 판촉행사 등을 통해 단 2~3년만에 중국 대도시 가전 유통 시장의 60%를 차지하며 메이저 유통 업태로 부상했다. 하지만 공격적인 매장 증설, 특판 및 판촉 활동에 따른 제반 비용은 고스란히 제조업체에게 전가되었다. 시장 지배력이 급상승한 전영점에 비해 상대적으로 협상력이 약화된 제조업체들은 전영점의 과도한 유통 비용 요구에 응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전영점들이 요구하는 유통비용은 매장 입점비, 인테리어 비용, 전시를 위한 제품 샘플 비용, 제품 설명과 판매 보조를 위한 파견 인력 유지비용, 정기적인 판촉행사 비용 그리고 판매에 따른 인센티브 등으로 구성된다. 이러한 유통 비용은 브랜드별로 차이는 있지만 적게는 매출액의 30%에서 많게는 50%까지 차지한다고 알려지고 있다. 또한 판매 확대를 위한 지속적인 가격 인하 압력도 간접적인 유통 비용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제조업체들의 입장에서 볼 때 높은 유통 비용을 부담하면서 동시에 가격하락압력까지 받는다면 사업의 유지조차 힘들어 질 수 밖에 없다.
로컬기업의 수익 구조도 악화일로
한편 사활을 건 치열한 경쟁이 지속되면서 정작 가격전쟁을 촉발시켰던 로컬 기업들의 수익 구조 역시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 국무원발전연구중심의 분석 기사에 따르면 중국 TV 시장 M/S 1~2위를 다투고 있는 창홍이 2004년 약 37억 위안(원화 기준 약 4,800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고 한다. 표면적인 원인으로 미국 내 합자 판매법인인 아펙스(APEX)의 경영 실적악화를 내세우고는 있지만 장부상에 드러나지 않는 내수 실적 부진도 이에 못지않으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심지어는 로컬 기업 중 가장 수익성이 양호하다고 알려진 하이얼 마저 공식 회계 상의 수치와는 달리 실질적으로는 적자 상태에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주력 사업인 백색가전 부문에서 디지털 TV, 휴대폰, 최근에는 노트북 PC에 이르기까지 문어발식 확장에 따른 부작용에 기인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로컬 기업의 경우, 아직까지는 고용 창출 및 유지를 바라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보이지 않는 지원책에 힘입어 근근이 버텨가고는 있는 듯하다. 하지만 가격 전쟁이 지속될 경우 로컬기업 또한 구조조정의 위험에서 자유롭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WTO 가입으로 불공정한 정부 지원 가능성이 줄어들 뿐만 아니라 한계이익 이하의 영업이 지속된다면 금융 부실의 위험이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유통 채널의 협상력 약화
로컬업체들과 유통업체들이 촉발시킨 가격 전쟁은 소비자들로 하여금 가격 위주의 구매 행태를 유발시켜왔다. 특가 판매 행사가 주기적으로 이루어짐에 따라 특정 시기에 대규모 매출이 일어난다든지, 동일 제품 내에서도 고가 모델보다는 저가 모델 위주로 판매가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이를 반증한다. 이 때문에 브랜드력과 제품경쟁력을 동시에 갖춘 글로벌 기업들 중에서도 마진이 작은 저가 모델 위주의 판매를 해오고 있는 기업들이 적지 않은 실정이다. 물론 이와 같은 가격 위주의 시장 경쟁 구도가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다. 전반적인 소득 수준이 향상되면, 품질과 브랜드를 따지는 소비자들이 필연적으로 증가할 것이기 때문인데 최근의 중국 시장에서는 이와 같은 가격 중심의 경쟁 패러다임에 변화의 조짐이 엿보이고 있다.
첫째, 유통업체들의 협상력이 약화될 조짐이 보이고 있다. 실제로 작년 하반기부터 전영점들의 과도한 요구에 대해 제조업체들의 반발 움직임이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금년 초에 일어난 삼성전자와 궈메이의 마찰을 들 수 있다. 삼성전자는 금년 1월 25일, 궈메이와의 재계약시 입점비 등 계약외 비용문제에 대한 협의에 실패하자 자사 제품을 철수시키는 등 초강수를 통해 단호하게 대응했다. 며칠 후 양사는 20억 위안 규모의 제품 공급 계약을 체결, 극단적인 대결 구도를 피하고 타협점을 찾긴 했지만 이와 같은 전영점들의 전횡에 대한 제조업체들의 반발은 거세게 퍼져가고 있다. 로컬업체 중에서도 중국 에어컨 시장의 강자인 Gree(格力)가 이미 작년 궈메이와 마찰을 빚은 적이 있다. 또한 최근에는 LG전자와 타 글로벌 기업들도 그간의 불합리한 계약조건 파기 또는 수정을 내걸고 전영점과의 일전을 치를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유통업체 내부의 경쟁도 치열하게 전개
한편, 유통업체 내부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점도 유통업체의 협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먼저 그간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세를 확장하던 전영점들이 타 지역으로 시장 확대를 도모하고 있다. 상해를 중심으로 영업을 해오던 전영점업체 용러(永樂)가 북경으로, 북경에 기반을 두고 있는 따중(大中)이 천진, 광동, 청도 등 타 지역으로의 진출을 계획하고 있다는 점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또한 WTO 가입에 따른 후속 조치로 서비스 시장이 2004년 말 전면 개방되면서 외국계 유통업체의 진출도 보다 활발해질 전망이다. 할인점의 경우 2004년까지 30개 매장을 확보하고 있던 까르푸가 2005년 한해에만 70개를 추가 출점할 계획이다. 월마트 또한 기존 20개 매장에서 80개 매장으로 확장할 계획을 밝혔다. 물론 할인점의 성격상 이들은 가전 코너를 연다고 해도 당분간 중저가 제품을 중심으로 판매할 가능성이 크지만 할인점의 가전 판매 확대는 전영점에게는 적지 않은 타격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그 외에 Bestbuy등 미국계 가전전문유통업체도 중국 시장 진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등 유통업체 내의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질 전망이다. 이와 함께 그간 전영점과의 거래에 있어서 관행으로 인식되어 오던 ‘선입고 후지불’방식이 폐지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북경의 메이저 전영점 중 하나인 따중이 최근 Gree와의 계약을 갱신하면서 기존의‘선입고 후지불 방식’을 포기한다고 밝힌 바 있다. ‘선입고 후지불 방식’이란 한마디로 현금 거래가 아닌 어음 거래를 의미한다. 즉, 제품 입고시 대금을 지불하지 않고 제품이 판매된 후에 대금을 지불하는 거래 방식이다. 따라서 제품 판매가 단기간 내에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부실 채권화 될 가능성이 커 제조업체에게는 상당히 불리한 거래 관행에 해당한다. 이렇게 본다면 향후 유통업체의 협상력은 이전에 비해 크게 약화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이에 따라 가격하락 추세도 적잖이 둔화될 것으로 판단된다.
급격한 가격 하락 추세 진정 기미
둘째, 고공 행진을 지속하고 있는 원유가 및 주요 원자재 가격 문제도 급속한 판가 하락 추세 진정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제조업체들이 유통업체와 마찰을 빚은 데에는 그간의 계약 조건이 불합리했다는 점과 함께 원유 및 주요 원자재 가격 상승 추세가 지속되면서 원가구조가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점도 주요 배경이 되고 있다. 원유 가격 인상은 먼저 물류 운송비용 증대로 이어지고 있다. 또한 유가인상에 따라 석유 파생제품인 플라스틱의 가격도 덩달아 치솟고 있으며 이와 함께 철강, 구리, 알루미늄 등 주요 원자재 가격도 크게 오르고 있다. 이는 특히 철강과 플라스틱을 외장재로 사용하는 백색가전의 원가를 상승시키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백색가전업계에 따르면 작년 하반기의 외관 원재료 비용이 전년대비 20% 이상 상승했다고 한다. 이러한 원자재 가격상승 압력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중국 전자통신 시장의 가격 하락 추세는 크게 변화되지 않고 있었는데 최근 들어 원가구조 악화에 따른 부담이 가격에 반영될 조짐이 점차 나타나고 있다. 주요 기업들이 추가적인 가격 하락은 없을 것이라 공표하고 있으며 백색가전 등 일부 품목에서는 판가 인상 움직임도 내비치고 있다. 금년 초 파나소닉, 지멘스 등이 냉장고, 세탁기의 가격을 3%~5%까지 인상하겠다고 발표한 데 이어 최근 하이얼, 컬롱 등 로컬 기업들도 최고 5%까지 가격을 인상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와 같은 제조업체들의 원가구조 악화와 이에 따른 가격 동결 또는 소폭 인상 선언은 가격전쟁의 지속 가능성이 줄어들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중산층 소비자 라이프스타일 변화
셋째, 중국 중산층 소비자들의 라이프스타일 변화 가능성도 가격 위주의 경쟁 패러다임에 변화를 초래할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 소비자들의 소득 수준은 전체적으로 급격히 상승되고 있다. 주요 전망기관의 예측 치에 따르면 대략 2010년을 전후하여 전체 중국 소비자의 소득수준이 2004년의 두 배 규모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의 경제성장 패턴이 불균형 성장의 형태를 띠고 있는 점을 감안해볼 때 중산층 이상의 소득은 두 배를 훨씬 넘으리라는 판단도 가능하다. 2001년 말 중국사회과학원이 작성한 사회계층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중산층 이상 취업자 수는 약 7,000만에 해당한다. 이들의 개인소득은 공식적으로는 4천 달러 안팎이지만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는 음성소득을 고려할 때 6천~7천 달러에 이른다는 분석도 있다. 이처럼 현재에도 중진국 수준에 근접한 소득 수준을 확보하고 있는 중산층들은 2008년 북경 올림픽과 2010년 상해 엑스포를 치르고 나면 라이프스타일이 선진국형으로 발전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실질소득의 증가와 함께 세계적인 행사를 치른 국가의 구성원이라는 자부심이 생겨나면서 선진화된 라이프스타일을 선호하는 중산층이 급증할 것이기 때문이다. 라이프스타일의 변화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트렌드로 2000년 이후 일고 있는 마이카 열풍과 고급 아파트 건설의 증가를 들 수 있다.
2000년부터 시작된 정부차원의 자동차 구입 장려 정책에 힘입어 저리 대출을 통해 자동차를 구매하는 중산층이 꾸준히 늘고 있는데 2001~2003년간 연평균 승용차 보유 증가율은 26%에 달한다고 한다. 또한 활황을 누리고 있는 건축 경기에 힘입어 인테리어가 갖추어진 아파트의 건설이 증가하고 있는데 특히 고급 아파트의 경우 빌트인 가전 시장도 형성되고 있다. 아직까지는 상류층의 전유물에 지나지 않지만 소득 수준이 증가하면서 중산층으로 점차 확산될 전망이다. 중국 전자통신 제품 소비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중산층의 라이프스타일이 선진국형으로 변모된다면 가격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기존의 구매 패턴에도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즉 브랜드와 디자인, 품질 등 비가격적인 구매기준이 우선적으로 채택되리라는 것이다.
글로벌 기업에게 유리한 경쟁 환경 형성될 듯
이상의 논의를 종합해볼 때 현재 가격 위주의 구매와 경쟁이 이루어지고 있는 중국 전자 통신 시장의 경쟁 패러다임이 서서히 브랜드와 성능 등비가격 경쟁 요소 중심으로 변모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렇게 되면 상대적으로 가격 보다는 브랜드와 품질로 승부하고 있는 Global 기업들이 중국 로컬 기업보다는 보다 유리해질 것이다. 따라서 LG전자와 삼성전자 등 국내 기업의 경우 프리미엄 브랜드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구축하고 월등한 성능의 제품을 지속적으로 출시하여 로컬기업과의 차별화에 성공한다면 머잖아 호기를 맞이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물론 원가 혁신을 통한 가격 경쟁력이 동시 확보될 경우 이와 같은Value 중심 전략의 성공가능성이 더욱 높아질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LG경제연구원 배수한 전자통신전략그룹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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